|
두달 남짓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담당한 취재기자들은 출퇴근 시간에 맞춰서 국정기획위가 입주한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건물의 출입구에서 대기하며 관계자들한테서 한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매달렸다. 사진은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이 5월28일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브리핑을 마친 뒤 건물을 나서려 하자 기자들이 질문을 던지고 있는 모습. 공동취재사진
|
두달 전 복도까지 꽉 들어찼던 자리
마지막 브리핑엔 기자 열 명 참석
출퇴근 시간 맞춰 출입구 대기했으나
약속한 듯 “대변인 통해 답변” 반응
논의과제 결론날 때마다 발표한다면
충실한 보도와 논의도 가능할 텐데
역대 정부, 공약집에서 크게 후퇴
공약과 국정과제 비교검증 문화 절실
|
두달 남짓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담당한 취재기자들은 출퇴근 시간에 맞춰서 국정기획위가 입주한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건물의 출입구에서 대기하며 관계자들한테서 한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매달렸다. 사진은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이 5월28일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브리핑을 마친 뒤 건물을 나서려 하자 기자들이 질문을 던지고 있는 모습. 공동취재사진
|
[토요판] 르포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보낸 60일
사상 초유의 직선제 대통령 궐위선거에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 다음 날인 지난 5월10일에 바로 취임하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미 임기가 시작되었기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도 처음으로 설치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인수위 역할의 일부를 대신할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조직했습니다. 이 위원회를 60일간 현장에서 지켜본 기자가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전합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 해단식이 열린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의 1층 기자실에선 마지막 정례 브리핑이 있었다. 이날 브리핑엔 불과 열명 남짓한 기자들이 참석했다. 두 달 전만 해도 100여석의 기자실이 꽉 차다 못해 복도에까지 기자들이 빼곡히 자리를 차지하며 치열한 취재 경쟁을 벌였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장면이다. 이미 보름 전부터 국정기획위는 기자들 사이에서 ‘기사가 안 나오는 곳’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박광온 대변인(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담담하게 마지막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는데 이 기자실에서 마지막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열정과 도움이 있어 저희들의 활동이 국민들에게 잘 전달되고, 국민들이 새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태생부터 이전 인수위와는 달라
이날 브리핑의 내용은 국정기획위가 60일간 활동하며 90여차례 정부 부처의 업무보고를 받았고, 500여차례 자체 토의를 거쳐 100대 국정과제와 487개의 실천과제를 확정했으며 이를 19일에 발표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마지막까지 야박한 질문을 던졌다.
“제가 어제까지 국정기획위가 발표한 자료들을 정리해봤습니다. 다 합쳐도 100개에 턱없이 못 미칩니다. 방금 국정과제의 세부 실천과제가 487개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19일에 처음 발표되는 정책이 300개가 넘게 됩니다. 미리미리 나눠서 발표해야 언론이 하나하나 상세하게 보도하고, 공론장에서도 충분한 논의와 검증이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공약집을 보면, 발표를 안 한 국정과제 중에 이해관계가 복잡하거나 추진하기 쉽지 않아 보이는 것들이 많은데, 혹시 공약 후퇴라는 비판을 우려해 발표를 주저하는 것 아닙니까?”
박광온 대변인은 이렇게 답했다.
“500개에 가까운 과제들을 다 공개하지 못한 이유는 아직 최종적으로 확정되지 않은 게 많아서였습니다. 그리고 일부 정책들은 일시에 도입한다고 발표했다가 (이해관계자들과) 충돌하면 오히려 그 정책을 추진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적 합의를 거쳐서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정책을 탄탄하게 제도로 정착시킬 수 있습니다.”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국정기획위 안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어느 정도는 공개할 줄 알았습니다. 그 정도도 밝히지 않으면 사회적 논의가 시작조차 될 수 없습니다.”
박 대변인은 능숙하게 대답했다.
“이 짧은 기간에 그 많은 과제를 다 던졌다면 추스르는 데 애로사항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방식으로 하기엔 우리 위원회가 시간과 인력이 부족했습니다. 그 문제의식엔 충분히 공감합니다. 앞으로 그렇게 할 것입니다.”
국정기획위가 해단식을 열기 십분 전까지 주고받았던 문답이다. 이런 질문을 던진 이유가 있다. 이번 국정기획위는 이전 정부의 인수위들과는 ‘제발’ 달랐으면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실제로 국정기획위는 태생부터 이전 인수위들과 달랐다. 이름조차 인수위원회가 아니다. 이미 권력은 ‘인수’받은 뒤였다.
과거 인수위에서 많이 나오는 뉴스는 대개 두 가지였다. 하나는 청와대 주요 직책과 국무총리, 정부 부처의 장관 등 주요 인사의 인선이다. 이 명단을 미리 알기 위해 인수위 출입기자들은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 어쨌든 간에 이 분야는 이번 국정기획위 출입기자의 몫은 아니었다. 정부 주요 인사의 인선은 이미 출범한 청와대가 담당했다. 정부 부처가 그동안의 업무와 향후 5년간 할 일을 새 정부에 보고하는 사안도 언론의 주된 관심사지만, 대개 10일 남짓이면 끝난다. 이번 국정기획위는 활동 기간의 대부분을 인수위 본연의 역할에 집중할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출범한 셈이었다.
그렇다면 인수위 본연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실제로 이번 국정기획위도 여러 기능을 수행했다. 비정규직 정책에 쓴소리를 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비판의 날을 세우며 정부를 대신해 공격의 선봉장에 서거나, 장관 후보자들이 대통령의 인선 기준에서 벗어났다는 비판에 대해 대안을 마련하겠다며 나서서 방어하기도 했다. 또 “앞으로 경유세를 인상하지 않는다”고 정부가 섣불리 발표한 것을 바로 뒤집기 어려우니 ‘조세·재정 특별위원회’라는 조직을 새로 꾸려 에너지 세제 개편을 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히는 등 현실 정치의 플레이어 노릇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이런 역할이 인수위가 맡아야 할 몫은 아니다. 누구나 동의하는 인수위 본연의 역할은 ‘새 정부의 밑그림 그리기’다. 기업으로 비유하면 이미 있는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홍보·영업 조직이 아니라, 신제품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연구소’ 역할 말이다. 따라서 국정기획위는 앞으로 5년간의 임기 동안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재원대책과 이해관계 조정, 야당 설득 등 각종 난관을 넘어설 전략을 짜야 한다.
역대 인수위의 면면이 화려했던 것도 이런 역할이 맡겨졌기 때문이다. 이번에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을 맡았던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참여정부의 인수위에서도 부위원장을 맡은 뒤,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를 지내는 등 정부의 핵심 실세로 거듭났다. 이명박 인수위에서도 맹형규, 이주호, 박재완, 이달곤, 현인택, 진수희 등이 장관을 역임했다. 박근혜 인수위에선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초대 총리로 지명됐고, 진영 부위원장이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았다. 이번 국정기획위에서도 부위원장 자리를 여당의 정책위의장인 김태년 의원이 맡았고, 대선 당시 정책본부장이었던 윤호중 의원이 기획분과 위원장, 이재명 캠프에서 정책을 총괄했던 이한주 가천대 교수가 경제1분과 위원장 등을 맡았다. 30명의 자문위원과 65명의 전문위원은 여당과 정부, 학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들로 구성됐고, 경험칙으로 볼 때 이들은 현 정부의 5년 임기 동안 주요 보직을 맡을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인재풀이다.
박근혜 인수위 때보다는 취재환경 개선
정작 국정기획위 출입기자들은 이들을 상대로 취재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박광온 대변인은 5월22일 국정기획위 출범 첫 기자 브리핑에서 “과거 인수위 기간에 조율되지 않은 정책들이 경쟁적으로 보도돼 국민들에게 혼선을 주고 정부에도 부담을 주지만, 결국 오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자문위원들에게도 모든 발표는 대변인을 통해 한다고 철저히 약속을 받았다. 여기 자문위에서 공식 발표되지 않은 것이 보도되면,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미리 못을 박았다. 실제 자문위원들은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기자들은 출퇴근 시간에 맞춰서 국정기획위가 입주한 금융감독원 연수원 건물의 출입구에서 대기했고, 자문위원들을 마주칠 때마다 궁금한 사안들을 물어봤지만 대개 “대변인을 통해 말씀드리겠다”,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식의 대답만 돌아왔다.
그래도 박근혜 인수위 때보다는 괜찮은 취재 환경이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당시엔 인수위가 입주했던 금융위원회 연수원에서 기자들과 인수위원들이 사용하던 건물을 구분해 일상적 접촉을 아예 차단했다. 자문위원들과는 달리, 국정기획위를 방문하는 정부 인사나 지자체장, 시민단체나 노조 관계자 등은 종종 기자들의 질문에 응하기도 했다. 국방부 업무보고가 끝나는 시간에 복도에서 마주친 국방부 관계자는 “임기 내 전작권(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한다고 보고했냐”는 질문에 순순히 “그렇다”고 대답했다. 담담한 대답이었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무기한 연장됐던 전작권 환수 시기가 특정되는 전격적인 정책 전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취재 열기는 초반 20일간 가장 뜨거웠다. 정부 부처의 업무보고가 이어졌고, 특히 최민희 경제2분과 자문위원이 통신비 인하 방안이 미흡하다며 미래창조과학부의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교육청에 부담시키지 않고 중앙정부가 직접 부담하겠다거나,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일제고사를 폐지하는 등 이전 정부와 차별화되는 선 굵은 정책들이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 취재 열기는 점점 가라앉았다. 국정기획위는 하루에 하나씩 보도자료를 내며 브리핑을 했지만, 태권도 남북교류를 국정과제로 삼겠다거나 공무원 시험의 합격 대기기간을 단축한다는 등 의미가 없진 않되 지엽적인 사안들뿐이었다. 출입기자들은 슬슬 불안해진다. 무언가 다른 기자들은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걸까? 이럴 때마다 늘 이런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구조적으로 국정기획위 내부인들과 외부인의 정보 격차를 확연히 줄일 순 없을까.’
국정기획위 자문위원이나 전문위원들과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안한 아이디어가 있다. 국정기획위 안에서 논의되고 있는 과제들을 결론이 모아지는 대로 나눠서 발표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487개의 세부 과제를 국정기획위 활동 기간에 나눠서 발표하려면 하루에도 10개에 가까운 정책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하루에 수백개를 한꺼번에 발표하는 것보다 언론 입장에선 정책을 구체적으로 보도할 수 있고, 공론장에서도 충분히 논의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만난 국정기획위 관계자들은 이런 제안에 모두 동의했지만, 결국 현실화되진 않았다.
정권평가의 기초, ‘세 가지’ 문서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국정기획위가 만든 100대 국정과제가 발표됐다. 다음날 대부분의 신문은 국정과제 내용을 소개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하지만 공약이 어떻게 국정과제로 구체화됐는지, 빠지거나 수정된 공약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기사는 매우 부족했다. 실제 국정과제 보고서엔 상가임대차계약의 갱신청구권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내용 등이 구체적으로 담긴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공약이 단순히 ‘임차인 지위 강화를 위한 상가임대차 보호법 개정 추진’(보고서 57쪽)이라고 기재됐고, 실업급여 지급요건 완화 등의 정책도 국정과제에서 외려 추상화됐다. 가계부채, 저출산, 민간부문 비정규직 문제 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구체화되지 않은 채 공약의 표현이 그대로 국정과제에 담겼다. 무엇보다 재원대책이 누락된 과제들이 상당수다.
사정이 이런 데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정부가 선거 때 국민들에게 어떤 약속을 했고, 이를 어떻게 이행하거나 파기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살펴봐야 할 세 가지 자료가 있다. 바로 선거 캠프가 발간하는 ‘공약집’, 인수위원회가 발표하는 ‘국정과제 보고서’, 정부가 임기를 마칠 때 출간하는 ‘국정백서’다. 이 세 자료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특히 공약집→국정과제 보고서→국정백서 순으로 구체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약이 어떻게 정책으로 구체화됐고, 실제로 실행해보니 어떤 영향이 있더라가 담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역대 정부에서는 공약집→국정과제 보고서→국정백서 순으로 내용이 되레 추상화되거나 아예 국정백서에서 공약과 국정과제가 대거 누락되는 일이 잦았다. 마치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정부의 문서는 나이를 거꾸로 먹듯이 시간을 거슬렀다.
그래서 누구나 공약 검증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제안하고 싶다. 인수위는 국정과제 보고서에 공약의 원문을 기재하고서 항목별로 어떻게 구체화시켰는지를 적고, 정부는 국정백서를 공약과 국정과제가 하나하나 어떻게 이행됐는지, 그 영향은 어땠는지를 설명하는 식으로 작성하면 어떨까. 역대 어느 인수위와 정부도 이런 식으로 국정과제와 국정백서를 만들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획위도 과거의 방식대로 국정과제 보고서를 발간했다.
그럼에도 희망적인 소식은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일 국정현안조정회의에서 1년에 두 차례 100대 국정과제를 점검하는 대국민 성과보고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때마다 공약이 어떻게 구체화됐고, 국정과제를 어떻게 실행했다는 구체적인 얘기들이 나오길 기대한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