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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말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핸드픽트호텔에 벌이 들어오던 날, 벌 맞을 준비를 하던 벌통 아래로 주택과 빌딩이 보인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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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르포
‘옥상 양봉’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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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말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핸드픽트호텔에 벌이 들어오던 날, 벌 맞을 준비를 하던 벌통 아래로 주택과 빌딩이 보인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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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없으면 식물 없고, 식물 없으면 인류 없어
서울 시내 호텔들 옥상에서 도시양봉
호텔은 꿀로 요리, 학교는 벌통 활용 교육
뉴욕·도쿄·파리 등 대도시에선 이미 활성화
옥상에 벌집 있는 벌은 하늘길로만 다녀
사람들과 마주치기 어려워요~ 돈 워리!
미래를 상상할 때 항상 그리는 장면이 있다. 높다란 빌딩과 빌딩 사이를 자동차가 여러 층을 이뤄 오고 가는 장면이다. 미래과학영화에 자주 나오는 그 장면 맞다. 근데 이 하늘길에선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왜냐면 저 아래 땅을 걷고 있을 테니까. 도심 옥상에서 벌을 키우며 종종 같은 생각을 한다. 머리 위에 벌이 사는 걸 사람들은 알까?
올해 나는 옥상을 자주 들락날락했다. 낙엽이 질 때까지는 그럴 것 같다. 지난해부터 맛 들인 꿀맛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한겨레> 2016년 8월27일치 15면) 지난해에는 서울 외곽 산 바로 아래 밭에서 양봉했다면, 올해는 도심에서 도전하고 있는 것이 다르다.
“도시 양봉이 아니라 도시인의 양봉이네.”
지난해 나의 양봉장 위치를 확인한 누군가는 그렇게 놀렸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같은 서울이긴 한데 1시간 동안 지하철을 3번 갈아타고 가야 할 정도로 시내와 먼 곳이었다. 도시 외곽의 텃밭, 그러니까 결국 도시인이 시골 같은 곳에서 양봉했다고 보면 된다.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그럼 도시 양봉은 어디서 해?”
이제 누군가의 질문에 멋지게 대답을 할 수 있게 됐다. 건물 옥상이다. 올해는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이비스버젯 앰배서더 서울 동대문’ 호텔 옥상이 나의 새로운 양봉장이다.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벌통을 따로 둘 곳이 없는 나는, 올봄 새 벌통을 사지 않았다. 대신 예비사회적기업인 어반비즈서울의 벌통과 호텔의 옥상을 돈을 약간 주고 빌려서 양봉을 하고 있다.
흙밭에서 최신 호텔 옥상으로 옮겼으니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느낌이 이럴까. 드디어 도시인이 도시에서 양봉하게 됐다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했다. 신문사와 당시 출입처(서울시청)와 가까운 곳이라 더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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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서울 성동구 ‘카우앤독’ 건물 옥상 양봉장에서 한 교육생이 양봉을 배우고 있다. 어반비즈서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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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확한 꿀로 신혼부부에게 ‘허니’ 선물
지난 5~6월, 직장인들이 가장 쉬고 싶은 토요일 이른 아침이나 마음의 여유가 조금 있는 금요일 이른 아침이면 동대문 양봉장을 방문했다. 처음 벌통을 설치한 곳이기에 꽃이 피는 곳은 어딘지, 벌은 잘 사는지 신경이 많이 쓰였다. 주변 환경을 볼 때 남산 말고는 숲이 있어 보이지 않아 걱정이었다. 지도를 펼쳐놓고 주변 작은 공원이 몇 개인지 살피다 남산밖에 없다며 실망하곤 했다. 하지만 6월 중순 30㎏의 많은 꿀을 수확했다.
옥상 양봉장이 양봉가에게 좋은 점 중 하나는 멋진 경치를 보며 양봉을 할 수 있다는 거다. 벌통 검사를 마치고 쨍한 더위를 식혀주는 바람을 맞으면서 남서쪽에 있는 남산타워를 바라보곤 했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것 같은 하얀 솜털 구름과 말 그대로 하늘색 하늘, 남산타워로 향하는 언덕 위로 빽빽한 아파트와 주택까지 서울이란 대도시의 중앙과 동북쪽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언제 또 볼까 싶어 양봉장 갈 때마다 눈에 경치를 담느라 바빴다.
옥상 바로 앞으로는 동대문의 쇼핑몰 건물과 디디피(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물이 서 있다. 해 질 무렵 벌을 보러 온다면 동대문의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도깨비(배우 공유)나 배트맨 같은 영웅이 이곳 난간에 걸터앉아 고독하게 도시를 지키기에도 좋은 위치라며 그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일을 끝내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있을 때가 제일 좋았다. 옥상을 채운 건 벌 몇 마리가 한가롭게 나는 소리뿐. 대여섯통의 벌통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다 보니 땀은 꽤 쏟았는데, 힘들기보다는 마치 가파른 경사의 산길을 올라 정상에 당도한 느낌같이 여유로웠다. 벌도 귀찮은 검사를 마치고 만족했는지 금세 차분해진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 이 역시 힘든 양봉을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지나치게 미화한 것 같아 조금 걸리지만, 암튼 호텔 옥상에서 해보는 양봉은 좀 특별했다.
“그런데 호텔에서 왜 옥상을 벌에게 내주는 거야?”
누군가가 또 물어봤다. 보통 도시의 양봉장은 호텔이나 학교 옥상에 많이 만든다. 학교는 연구나 교육용인 경우가 많고, 호텔은 호텔의 이미지를 고려해서거나 실용적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 벌통 3개를 들여놓은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핸드픽트호텔은 특별한 손님을 위한 선물을 만들었다. 가을에 수확한 약간의 꿀로, 결혼식을 하고 허니문을 떠나는 부부에게 ‘허니’(꿀)를 선물했다.
“늦게 설치해 지난해는 수확을 거의 못했어요. 올해 채밀하면 갈비찜 같은 한식요리나 피자 같은 양식에 단맛을 내는 재료는 모두 꿀로 바꿀 생각입니다.”
김성호 핸드픽트호텔 대표이사의 목적은 꿀 그 자체만은 아니었다. 호텔에서 사용하는 꿀도 소중하지만 7살인 자신의 아이에게 환경과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갖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동대문 양봉장을 흔쾌히 내준 이비스버젯 앰배서더 호텔은 “예비사회적기업을 돕고 환경친화적인 호텔의 정책과 맞아서” 옥상 양봉장을 허락했다. 미국 뉴욕, 일본 도쿄, 프랑스 파리 등 세계 주요 도시에는 이미 옥상 양봉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호텔은 같은 그룹의 외국 호텔이 도시 양봉을 가장 활발하게 하고 있어 참여가 더 쉬웠다고 했다.
벌통의 주인인 어반비즈서울은 6월 중순 수확한 꿀을 옥상 주인인 이 호텔과 나누었다(벌통 관리인인 나도 곧 꿀을 나눠 가질 예정이다). 이곳 역시 8월 이후 객실 손님을 위해 꿀비누를 제공할 계획이다. 올해는 호텔 음식에 꿀을 사용하지는 않고 벌통에서 정기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양을 따져봐서 넣기로 했다. 아시아에서 온 관광객이 많이 찾는 호텔이라 투숙한 외국인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이 호텔 황보석 총지배인은 말했다.
“한 일본 손님은 안내데스크에 와서 벌이 쏘지 않냐고 자세히 묻고는 한 시간가량은 재밌게 구경하고 방으로 내려갔어요. 어떤 중국 손님은 ‘보기 좋다’고 호텔 이용 후기를 적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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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울 동대문 호텔 옥상 양봉장에서 꿀을 잘 모아준 벌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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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관련 규정 아예 없어
꼭 빌딩 옥상에서만 도시 양봉을 할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다. 양봉하는 동료 중에는 자신의 주택 옥상에 양봉장을 꾸민 사람도 많다. 경기도 성남에 사는 프로그래머 김아무개(44)씨의 집은 3층짜리 주택이다. 김씨의 부모님과 여동생, 아내와 5명의 자녀까지 9명이 같이 산다. 김씨는 양봉 교육을 받자마자 옥상에 벌통을 들였다.
김씨처럼 주택 옥상에서 양봉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하고 중요한 점은 이웃과의 관계다. 벌을 잘 관리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웃이 걱정하지 않고 불쾌해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한국은 도시 양봉이나 도시 농업 자체가 널리 퍼지지 않았기 때문에 양봉과 관련한 규정이 아예 없다. 관련 법규도 없다. 옥상에서 양봉할 수 있다는 법도, 하면 안 된다는 법도 없다. 심지어 벌이 우리 집을 나가 이웃을 쏘았을 때도 벌이 우리 집 벌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기에 법적 처벌을 요구하기란 쉽지 않다.
외국은 약간의 규정을 정해두었다. 미국 뉴욕시의 경우 양봉가가 양봉 사실을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알리고 등록해야 한다. 개인정보와 긴급 연락망, 벌집 위치 등도 제출해야 하고 변화가 있을 경우 다시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벌통은 이웃과 직접 마주 보지 않는 곳에 설치해야 한다. 또 도로나 인도와 떨어져 있고 벌집으로 향하는 길이 양봉가가 소유한 땅에 속해야 한다. 벌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표지판 설치도 요구하고 있다.
캐나다 앨버타는 가이드라인을 두고 있다. 벌집 위치는 양봉가 건물 뒷마당에 두고 사람의 왕래가 잦은 놀이터, 운동장, 학교, 교회 등으로부터는 최소 25m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 양봉협회에 등록한 후, 허가된 양봉가는 승인된 허가 내용을 서면으로 이웃에게 통보한다. 한국과 주거환경이 다른 외국 사례가 무조건 맞지는 않지만, 국내 양봉 전문가들은 도시 양봉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씨에게 어떻게 옥상 양봉을 시작할 용기를 냈느냐고 물어봤다.
“제가 이 동네에서만 20년 살았어요. 동네분들 다 알고 사이도 나쁘지 않았어요. 물론 싫어하는 주민들도 있고 그래서 싸운 적도 있긴 한데,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관리 잘 하고 수확한 꿀 나눠드리면서 가까워졌어요. 나 재밌다고 하는 일이지만 해 끼치면 안 되니까.”
김씨의 주택은 삼면이 다른 주택으로 둘러싸여 있다. 김씨 집이 홀로 빌딩처럼 불쑥 튀어나오게 높다면 좋았을 텐데 한 채는 높이가 더 높아 그쪽에 따로 벽을 세웠다. 김씨는 이웃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벌통 주변에 성인 남자 키 높이의 벽을 공사용 스티로폼으로 따로 만들었다.
김씨는 옥상에서 직접 양봉을 해보면서 양봉 실력이 늘었다. 이제는 여왕벌도 태어나도록 하고 세력이 강한 벌통의 벌을 나눠 다른 통으로 옮길 정도가 돼 벌 관리에는 자신이 있다. 주말에 하루만 벌통을 보는데, 평일에도 벌통 외부를 살피러 종종 올라간다.
“벌통이 가까이 있으니까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어요. 아내가 반대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 제가 전보다 부지런해서일 거예요. 갓난아기는 당연히 위험하죠. 첫째랑 둘째도 전에 벌에 쏘인 적이 있어서 옥상에 잘 안 와요. 셋째(8)는 신기한지 들여다보고 그래요.”
김씨는 지난 5월 말 옥상에 있는 벌통 세 통에서 11ℓ의 잡화꿀을 수확했다. 취미로 양봉을 시작했다는 김씨는 옥상 양봉에 대해 “아무에게나 양봉하라고는 못 한다. 위험하니 조심해야 하고, 벌이 만드는 밀랍이 바닥에 떨어지면 옥상이 쉽게 더러워지니 잘 치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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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서울 동작구 핸드픽트호텔 양봉장에서 벌집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어반비즈서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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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길과 높이가 달라 사고 확률 적어
지난 7일 동대문 호텔 옥상 양봉장, 이른 아침부터 볕이 뜨거웠다. 여왕벌이 잘 있나, 꿀은 잘 들어오나, 장마 앞두고 병충해 흔적은 없는지 벌통을 들여다보다 허리를 펴서 하늘을 봤다. 벌의 동선을 사람의 눈으로 따라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도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어 계속 쳐다보았더니 한 마리는 옥상 밖으로 나가 위쪽으로 바로 사라졌고, 또 한 마리는 앞으로 쭉 날아 사라졌다. 이마저도 제대로 보았는지 완전한 확신은 없다. 일단 옥상 밖으로 나가는 건 확인했다.
“그래도 도시에 벌이 많으면 사람들을 쏠 수도 있잖아.”
“하늘 길로만 다녀서 땅 위에 있는 사람들과는 마주칠 일이 없어.”
누군가의 질문에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양봉가와 벌 모두 옥상 양봉장에 만족하는 또다른 이유다. 날 수 없는 사람은 옥상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벌보다 적은 건 확실하다. 그래서 옥상에 양봉장이 있는 경우, (적당히 또는 이웃집보다) 높으면 높을수록 사람의 동선과 벌이 꽃을 찾아가는 여행길이 겹칠 일이 없어 사고 날 위험도 적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것이 비싼 도시에서 새로 너른 땅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 단, 모든 도시 양봉이 그렇듯 관리를 더욱 잘 할 경우에만 해당한다.
옥상을 들락날락하며, 가끔 도시 옥상에는 무엇이 있는지, 옥상 하면 뭐가 떠오르는지 생각하곤 했다. 일하다가 올라가 담배 한 대 피우며 시름 더는 곳, 옥상에 있는 의자에 누워 잠시 쉬러 가는 곳, 사람들 몰래 뒷말하러 가는 곳, 에어컨, 난방기 등 굉음을 내는 기구가 많이 있는 곳, 초록색 페인트로 칠해진 휑한 옥상, 작은 도심 속 정원이 있는 곳, 그윽한 조명으로 멋을 낸 술집, 옥탑방과 복잡한 빨랫줄, 할머니가 고추 말리고 장독 두던 곳, 집 안에 두기 모호한 물건들 일단 죄다 올려둔 곳, 도시인이 반려견이랑 가볍게 뛰어노는 곳…. 옥상은 생각보다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곳에 도시 양봉도 슬쩍 추가해본다. 대신 안전한 도시 양봉이어야 하겠지만.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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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초 서울 명동의 유네스코빌딩 옥상 양봉장 모습. 어반비즈서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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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진구 재한몽골학교 건물 옥상에도 양봉장이 있다. 지난 1일 촬영한 사진. 어반비즈서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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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광진구 재한몽골학교 옥상 양봉장에서 벌통 주인이 웃고 있다. 어반비즈서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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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주택 옥상 양봉장의 모습. 이웃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집 공사를 하고 남은 분홍색 스티로폼으로 벽을 쳤다. 성남 김아무개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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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천구 씨제이(CJ)대한통운 서울지사 옥상에도 양봉장이 있다. 어반비즈서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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