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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02 09:43 수정 : 2017.07.02 09:53

‘저지’라 불리는 캣쇼 심사위원은 깃털이나 소리가 나는 장난감을 흔들어 고양이의 체형을 보거나 성격을 짐작한다. 저지가 흔드는 장난감에 고양이가 무심하면 ‘집사’는 애가 탄다. “우리 애가 집에서는 안 저러는데….”

‘품종 고양이’와 집사들의 경연장
심사위원에게 옮기고 데려오고…
집사는 바쁘고 고양이는 어리둥절
순위에 오를 땐 물개박수…탄식도

캣쇼 성적은 명예이자 영광이지만
“조언 듣고 노하우 나누는 자리”
품종묘 향한 따가운 시선도 존재
“고양이 사랑하는 마음은 마찬가지”

‘저지’라 불리는 캣쇼 심사위원은 깃털이나 소리가 나는 장난감을 흔들어 고양이의 체형을 보거나 성격을 짐작한다. 저지가 흔드는 장난감에 고양이가 무심하면 ‘집사’는 애가 탄다. “우리 애가 집에서는 안 저러는데….”
[토요판] 르포

캣쇼, ‘냥덕후’들의 학예발표회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이 이쁘다는데, 고양이 부모라고 다를까. 꽤나 열성적인 집사들이 모여 ‘자식 자랑’에 여념이 없다는 캣쇼에 가보았다.

“쟤가 집에선 안 저러는데….”

‘저지’(캣쇼의 심사위원)가 흔드는 장난감에도 심사대에 선 고양이가 반응이 없자 집사(고양이 주인)는 속이 탄다. “집이었으면 이미 저거 물고 달아났어.” 고양이가 장난감을 향해 다리를 뻗고 몸도 일으켜야 저지는 체형을 잘 살펴볼 수 있다. 발랄한 성격을 드러낼 수도 있다. 그런데 애가 움직이질 않으니…. 집사는 답답하고 구경꾼은 즐겁다. 정작 엄마는 속이 타는데, 다른 집 부모들은 킥킥 웃는, 여느 어린이집 학예발표회장 같다.

지난 6월25일. 59마리 고양이들이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에 모였다. 래그돌, 메인쿤, 벵골, 브리티시 쇼트헤어….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이들은 모두 이른바 ‘품종묘’들이다. 누군가에겐 ‘비싼 고양이’로 알려졌고, 누군가에겐 ‘순혈종’으로 알려졌지만, 집사에겐 그냥 ‘내 새끼’일 뿐인. 오늘은 이들이 모여 캣쇼를 여는 날이다.

집사 마음, 부모 마음

이날 캣쇼의 심사는 4명의 저지가 맡았다. 참가 고양이들은 키튼 클래스(생후 4~8개월), 캣 클래스(생후 8개월 이상), 알터 클래스(생후 8개월 이상 중성화 완료)로 나눠 경쟁을 벌였는데, 캣과 알터는 다시 털이 긴 장모종과 털이 짧은 단모종으로 구분해 심사를 받았다. 1번 ‘링’(각 저지가 심사하는 곳)에서 키튼 클래스를 심사하면 2번 링에선 캣 클래스, 3번 링에선 알터 클래스, 4번 링은 특별 클래스(이날은 얼룩무니(tabby) 계열 고양이들끼리의 경쟁이 열렸다)가 진행되는 식이다. 각 클래스는 모든 저지에게 한번씩 돌아가며 심사를 받는다.

고양이 59마리가 각 링을 돌아가며 심사를 받다 보니 이들 고양이를 링으로 데리고 갔다가 다시 텐트로, 차례가 오면 다시 링으로 데려가야 하는 집사들은 쉴 틈이 없다. ‘우리 애가 이번엔 몇 등이나 할까.’ 숨죽이고 지켜보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그런 중에도 또 예쁜 고양이들을 보면 눈길이 간다. “어휴, 쟤 정말 이쁘네”라며 넋 놓고 있다가 순서를 놓치기도 한다. “○○번 고양이 1번 링으로 출전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방송이 나오고 옆에서 “○○번, 그 집 아냐?”라고 하면 그때서야 총총걸음으로 뛰어간다.

사정이 이러니 두마리 이상 데리고 나왔다면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된다. 그래서 친구나 가족과 함께 나온 경우가 대부분. 분양과 입양을 하면서 서로 잘 아는 사이인 집사들은 ‘옆집 고양이’를 심사대로 데려다주기도 했다.

정신없기는 사실 집사보다 고양이가 더하다. 아주 오랜만에 또는 처음으로 집 밖을 나온 고양이들은 어리둥절 그 자체다. 심사대를 바라보며 8열로 친 쇼텐트에 자리를 잡고 앉은 고양이들은 낯선 공간과 처음 보는 사람과 처음 맡는 다른 고양이 냄새에 대부분 반쯤 혼이 나갔다. 세상 모든 게 신기한 몇몇 어린 고양이들만 팔팔하다. 도그쇼와 달리 캣쇼가 개방된 공간에서 시끌벅적하게 열리지 않는 주된 이유는 고양이의 이런 습성 때문이다. 카메라 플래시도 터뜨리지 않는 게 예의다. 일부에선 “사람들 재밌자고 영역 동물인 고양이에게 하루 종일 낯선 곳에서 스트레스를 준다”며 캣쇼를 비판하기도 한다.

이런 중에 또 심사대에 나가 맵시 자랑을 해야 하니 집사들은 고양이들을 달래느라 여념이 없다. 행여 더울까봐 소형 선풍기를 틀어주고 장난감을 이리저리 흔들며 기분을 맞춰주는 중이다. 끊임없이 털도 빗겨줘야 한다. 오늘만은 ‘차오츄르’(많은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간식 브랜드, ‘마약 간식’으로 불림)도 무한제공이다. 저지는 고양이의 얼굴과 몸통, 털 색깔과 윤기 등을 꼼꼼히 살핀 뒤 점수를 매기고 각 클래스 순위를 발표한다. ‘이 품종의 고양이는 이래야 한다’는 ‘스탠더드’라는 게 있지만 사람이 하는 심사라 결과가 늘 한결같진 않다. 예를 들어 캣 클래스 단모종에 출전한 내 고양이가 1번 링에선 1위를 하더라도 나머지 2~4번 링에서 순위권에 못 들 수도 있다. 그러면 또 ‘부모 입장’에선 속이 탄다. 여기선 ‘물개박수’가 저기선 탄식이 쏟아진다. 때론 “저기선 베스트에 들었는데 여기선 왜 못 들지”라고 중얼거리기도 한다.

무엇을 어떻게 겨루나?

캣쇼는 품종묘들이 외모를 겨루는 이벤트다. 비품종묘(하우스홀드·Household Pet)들이 참가하는 클래스가 있는 캣쇼도 있지만 최근엔 비품종묘는 거의 참가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싼 고양이들 미모 경연대회”라고 곱지 않게 보는 이들도 있다. 캣쇼에 나오는 고양이들 대부분이 품종묘이고 이들의 외모를 평가해 순위를 매기는 식으로 행사가 진행되니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그게 또 전부는 아니지만.

품종(breed)이란 생물학적으론 ‘다른 집단과 구별되는 유전적인 특성’(www.biology-online.org)으로 정의할 수 있다. 품종묘란 각 개체의 순수한 유전형질을 보유한 고양이를 일컫는데, 단순히 해당 품종의 외형적 특성을 갖췄다고 품종묘로 인정되진 않는다. 고유한 특성이 다음 세대까지 유전될 수 있도록 하는 ‘품종개량’ 과정을 거쳐야 가능한데, 현실에선 고양이애호가협회(CFA: Cat Fanciers’ Association), 국제고양이협회(TICA: The International Cat Association) 등 고양이 혈통등록협회에 등록된 ‘품종증명서’를 발급받은 고양이를 품종묘라고 한다. 이 품종묘들을 키우면서 교배하고 분양(‘입양비’를 받고 새 주인에게 고양이를 넘기는 것)하는 사람들을 브리더(breeder), 브리더가 고양이를 기르고 분양하는 곳을 캐터리라고 한다. 캐터리는 한 마리에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의 분양비를 받는다.

각 혈통등록협회엔 품종별 고양이의 기본적인 특성(standard)을 규정해놓고 있다. 캣쇼에선 각 품종묘가 이 ‘스탠더드’에 얼마나 가까운지를 심사한다. 그래서 ‘미모 경연대회’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품종마다 요구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적어도 캣쇼 심사대 위에선, 모든 고양이들이 사랑스러울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키웠던 래그돌(Ragdoll)은 ‘둥근 눈’이 감점 요인인 반면 브리티시 쇼트헤어(British Shorthair)가 래그돌 같은 아몬드형 눈 형태를 지니면 감점이 된다. 페르시안(Persian)은 앞이마와 코끝, 턱이 일직선상에 있어야 스탠더드다. 코나 입이 길고 날씬하면 감점된다. 머리(얼굴)와 몸통 위주로 심사하지만 러시안 블루(Russian Blue)는 털의 색과 패턴에 머리나 몸통보다 더 많은 가중치(40:33:27)를 두고 심사한다.

캣쇼 성적은 점수로 환산되는데 이 점수가 누적되면 아시아챔피언, 세계챔피언 같은 상위 그룹 순위에 들 수 있다. 물론 아시아챔피언이나 세계챔피언이 된다고 금전적 이익이 생기진 않는다. 대신 ‘품종 고유의 혈통과 특성을 지닌 고양이’라는 인정을 다수로부터 받은 것이고 집사와 고양이에겐 큰 영광이 된다. 브리더들은 ‘한국 최초’, ‘국내 유일’ 등의 타이틀을 자신의 캐터리에 붙일 수 있게 된다. 사실 고양이를 키우지 않거나 ‘코숏’(코리안 쇼트헤어)으로 널리 부르는 비품종묘를 키우는 사람들에겐 남의 나라 얘기다. “좀 덕후스럽다”고, 캣쇼에 참가한 집사들도 인정한다.

성적이 또 전부는 아니다. 캣쇼엔 브리더뿐만 아니라 품종묘를 기르는 평범한 집사들도 참가한다. 남의 집 고양이와 비교해보면 ‘내가 얘를 잘 키우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게 캣쇼에 참가하는 또 다른 이유다. 고양이 키우는 마음은 집사들만이 안다. 짧은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집사들의 수다는 끝날 줄을 모른다.

노르웨이 숲(Norwegian Forest) 고양이 두마리와 함께 산다는 김승현씨는 “여기 참가자들 대부분이 나보다 더 많은 고양이를 더 오래 키운 분들이라 노하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씨와 함께 출전한 고양이 ‘아미’는 이날 순위에 오르지 못했다. 그렇다고 김씨가 아미를 잘 키우지 못한 건 아니겠지만 이유가 있긴 했다. 김씨는 “요즘 좀 잘 먹였더니 몸이 불었다”며 웃었다.

저지들이 심사 과정에서 해주는 평들은 김씨 같은 집사들에겐 좋은 조언이 된다. 심사가 끝난 뒤 저지를 찾아가 내 고양이가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 물어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안타깝게도 국제 혈통등록기관에서 공인한 한국인 저지는 이날 참여한 이선희씨가 유일하다. 통역하는 스태프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외국인 저지에게 사소한 부분까지 묻고 답하는 게 쉽지 않다 보니 집사들은 이선희 저지의 심사에 더욱 귀를 기울인다. 브리티시 쇼트헤어 4마리를 데리고 나온 변제섭씨는 “외국인 저지들은 주로 좋은 얘기만 해주는데, 사실 집사들은 우리 애가 어떤 면이 부족한지에 더 관심이 많다”며 “이선희 저지가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러시안 블루 브리더이던 이선희씨는 2014년 8월 국내 1호 캣쇼 저지가 됐다. 이씨를 포함한 4명의 저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끊임없이 고양이를 케이지에서 꺼내 심사대에 올려놓고 심사가 끝나면 다시 케이지에 넣는 일을 반복했다. 끊임없이 장난감도 흔든다. 그런데도 지루한 기색이 없다. 어린 고양이랑 놀아주다 발톱에 상처를 입기도 했는데 별거 아니란 투다. 이씨는 “나 역시 고양이에 빠진 사람이라 가능하다”며 웃었다.

좋은 걸 어떡해

캣쇼가 사람들의 학예발표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화내거나 얼굴 찡그린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각 클래스 참가비는 15만원에서 20만원. 고양이 두마리를 데려와 캣 클래스와 키튼 클래스에 각각 출전한다면 참가비만 35만원이다. ‘본전 생각’을 하다 보면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진행이 조금 미숙해도, 내 고양이가 순위에 들지 못해도 다들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외국 저지들 항공료와 체재비, 행사장 임대료(360만원) 빼면 마이너스”인 행사를 주최한 신우찬 티케이비에스(TKBS: The Korea Bengal Cat Society) 회장도 “결국 다들 고양이가 좋아서 그러는 거”라고 말했다. 신 회장은 “품종묘를 키우고 캣쇼를 하는 데 적은 비용이 드는 건 아니다. 품종묘에 대한 거부 반응이 있는 것도 잘 알고 유기묘나 길고양이를 키우는 분들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마음은 모두가 마찬가지”라며 “다양한 모습들이 있다는 걸로 봐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캣쇼의 공식 이름은 ‘ANF TICA-TKBS 캣쇼’다. 티케이비에스가 주최하고 국제고양이협회에서 인증한 캣쇼를 반려동물 사료 회사 에이엔에프(ANF)가 후원한다는 뜻. 기업들은 이미 캣쇼를 단순히 ‘냥덕후들의 학예발표장’이 아닌 마케팅 시장으로 보고 후원하는 중이다. 홍지후 에이엔에프 마케팅팀장은 “캣쇼에 참석한 고양이 오너들은 사료나 물품에 대한 안목이 높다. 커뮤니티 활동도 왕성하게 하는 분들이라 캣쇼 후원은 마케팅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고양/글·사진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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