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7.05.27 09:34 수정 : 2017.05.28 09:23

504명 중 299명이 지리산 100㎞를 38시간 안에 완주했다. ‘절반’에도 들지 못했다는 아쉬움보다 도전이 끝나버렸다는 허무함이 더 컸다. 옥스팜트레일워커 참가자들이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다. 옥스팜코리아

[토요판] 르포 지리산 100㎞ 걷기, 실패의 기록

504명 중 299명이 지리산 100㎞를 38시간 안에 완주했다. ‘절반’에도 들지 못했다는 아쉬움보다 도전이 끝나버렸다는 허무함이 더 컸다. 옥스팜트레일워커 참가자들이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다. 옥스팜코리아

모르면 용감하다. 딱 그 말이 맞았다. 100㎞를 걸어본 적이 없기에 할 수 있을 줄 알았고, 걸어본 적이 없기에 결국 할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설레발을 좀 자제하는 거였는데…. 그러나 모든 도전이 성공 또는 실패로만 끝나는 건 아니기에, 그 고난의 과정을 공유하고자 한다.


급경사 2.5㎞ 성삼재오르막길은
숨이 막혔다…여자 2가 낙오했다
50㎞부턴 평지서도 숨이 가빴다
발바닥은 부글부글…“그만하자”


504명 도전자 중 299명 완주
다음날 멀쩡해서 더 아쉬웠고
도전이 끝난 뒤 허전함이 컸다
2018년에도 예정…그땐 잘하겠지?

가장 중요한 준비를 빼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평일엔 주 2회 이상 헬스장엘 갔고, 주말엔 20㎞ 정도를 빠짐없이 걸었다. 5월 들어선 아예 술도 마시지 않았다. 대회 이틀 전부터는 몸의 리듬을 출발 시각인 5시 반에 맞추기 위해 일부러 새벽같이 일어났다. 이 정도 했으니 5월20일이 다가올수록 천천히 설레기 시작했다. 분명 고난이 닥쳐오고 있는데, 설레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

“100㎞를 뒤늦게 실감했다…돌이킬 수 없게 됐다” 기사를 쓴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참가 커트라인인 ‘후원금 50만원’을 모았다. ①100㎞를 걷는 도전과 ②물 부족 국가 이웃을 돕는다는 목표 중 하나는 달성한 셈이었다. 이제 오롯이 ①에 집중할 시간이 왔다. 2017년 5월20일 토요일 새벽 4시, 알람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옥스팜코리아 홍보대사 배우 이제훈(가운데)과 함께 트레일워커 100㎞에 도전한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오른쪽)과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왼쪽). 옥스팜코리아
아, 성삼재~

난이도 별 2개(최저 1개~최고 5개)인 첫 코스 12㎞는 ‘샤방샤방’했다. 새벽 공기를 머금은 고도 200m 안팎의 숲 사이로 난 임도(임산도로)를 걷는 코스였다. 산 아래 마을에선 아침 장작불을 때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와 여자 1, 2가 포즈를 잡았고 남자 2가 사진을 찍었다. 네명이 함께 찍거나 찍힌 처음이자 마지막 사진이었다. 물론 그게 마지막일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이때까진 훈련 때 빌빌거리던 남자 2와 여자 2가 사뿐사뿐 속도를 내며 앞서갈 정도였다. “저네들 얼른 체크포인트(휴식 및 보급처)에 가서 똥 누려나보다.” 농담은 딱 거기까지였다.

클릭하면 크게 보여요
첫번째 체크포인트인 12㎞ 지점 산수유휴양림에 도착해 김밥을 먹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산수유휴양림에서 성삼재까지의 거리는 ‘고작’ 9㎞였지만 10개 코스 중 유일하게 난이도에 별 5개가 붙어 있었다. 완만한 경사로 이어지던 포장된 길이 끝나고 등산로로 접어들면서 고난이 시작됐다. 이 등산로 시작 지점의 고도가 약 200m였고 코스의 목적지인 성삼재의 고도가 1102m. 2.5㎞ 거리를 끝도 없이 오르고 또 올랐다.

여자 2의 사뿐사뿐한 걸음도 끝이었다. “요즘 복싱을 한 덕분인지” 남자 2는 멀찌감치 앞서갔고, 나와 여자 1은 함께 걸었고, 여자 2는 점점 뒤로 처졌다. 주최 측은 “가장 힘들어하는 팀원의 속도에 맞추라”며 “팀원 모두가 완주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지만 난 시작 전에 미리 공지했다. “인생은 혼자 가는 거”라고, “각자 갈 수 있는 속도로 가자”고. 근데 사실, 각 체크포인트에서 ‘팀 인증’을 해야 하기에 결국 다시 모일 수밖에 없었다.

김밥은 이미 소화가 돼 땀으로 사라지고 허기를 못 참고 에너지바를 씹으며 “어우, 뭔 이런 오르막이 다 있냐”고 할 때, 한 참가자가 지나가며 “저기까지만 가면 능선”이라고 말했다. ‘저기’에 다다르니 정말 능선이 나타났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곧 성삼재휴게소가 보였고 그곳엔 관광버스들이 가득했다. 무슨 고생인가 싶었지만, 100㎞ 중 최악의 구간을 통과했다는 뿌듯함도 있었다. 순진했다.

출발하고 7㎞쯤을 지날 때 찍은, 처음이자 마지막 단체 사진. 남자 2가 찍었다.

지옥의 내리막, 낙오 또 낙오

뒤처진 여자 2는 좀체 나타날 기미가 없었다. 그사이 우리보다 늦게 도착한 팀들 대부분이 다음 코스를 향해 출발했다. 홍보대사인 영화배우 이제훈씨와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도 우리를 앞서갔다. 나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눈앞에 한 참가자의 배낭에 붙은 글귀가 지나갔다.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 기다리면? 늦게 간다.

도착하고 한 시간쯤 뒤, 참을 인(忍)을 새기고 또 새길 때쯤에야 여자 2는 성삼재휴게소에 나타났다. 누렇게 뜬 얼굴이었다. 올라오면서 계속 토를 했다고 했다. 금요일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시고 대회 전날 저녁에도 남자 2와 소주 한병을 나눠 마신 탓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남자 2는 “아까 먹은 김밥이 이상한 거 아닐까”라고 말했다. 이유야 뭔들, 여자 2는 낙오를 해야 했다.

그땐 초반 1시간이나 지체하게 만든 여자 2가 성삼재오르막길보다 더 싫었지만, 돌이켜보니 큰 그림을 그리지 않았나 생각도 든다. 대회 전 나의 에디터(부장)는 “기사가 재밌으려면 전원이 완주할 필요는 없다”고 저주에 가까운 기대를 보였는데, 그 ‘스타트’를 여자 2가 끊은 것이기도 했다. 일종의 살신성인 뭐 그런.

여자 2를 잠시 돌봐주고 따라오겠다는 남자 2를 놔두고, 일단 출발했다. 성삼재휴게소에서 노고단고개(1440m)까지는 완만한 오르막길. 100㎞ 구간의 가장 높은 지점에서 여자 1과 기념사진을 찍은 뒤부터는… 끊임없는 내리막이었다. 한 시간 전만 해도 “내리막길만 되면 어떻게든 가겠다”고 했는데, 역시, 세상에 만만한 일은 하나도 없었다. 슬슬 무릎 양쪽 인대가 저릿해지기 시작하는데도 울퉁불퉁 내리막 바윗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피아골대피소쯤 이르렀을 때 남자 2에게서 카톡이 왔다. “급하게 내려오다 무릎이 나간 듯. 아무래도 드롭해야 할 듯.” 나간 무릎으로 힘겹게 하산하던 남자 2는 포장된 길에 이르러 드러누웠다고 한다. 지나가던 119구급차가 태워줬다고.

나와 여자 1은 “평지만, 평지만” 하는 주문을 외면서 35㎞ 지점 연곡분교에 도착했다. 오후 6시가 가까웠으니 출발한 지 12시간 조금 지난 뒤였다. 아직 족히 25시간은 남아 있었고, 남은 코스는 지금까지 걸어온 것보다 힘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12시간에 35㎞를 걸었으니 25시간 안팎이면 남은 65㎞를 충분히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아직 체력이 남아 있었다.(고 생각했다)

노고단을 내려오는 ‘지옥의 하산길’에서 무릎이 ‘나가’ 구급차를 탄 남자 2. 여자 2가 찍었다.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연곡분교~목아재 구간 5㎞는 정말 날듯 걸었다. 평길 1㎞+완경사 4㎞였지만, 노고단을 지나온 우리에겐 그냥 평지였다. 우릴 고생시킨 오르막과 내리막에 복수하는 마음으로 걸었다. 5㎞를 걷는데 5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목아재부터는 지리산둘레길 13㎞가 이어졌다. 둘레길이니까 기대를 했었고 그래서 ‘실망’도 컸다. 짧은 오르막 뒤에 산허리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둘레길이 나왔다. 스마트폰 라디오를 틀었다. 시비에스 라디오 ‘배미향의 저녁스케치’에서 루이 암스트롱의 ‘라 비 앙 로즈’가 흘러나왔다. 해는 넘어가는 중이었고 멀리 섬진강이 보였다. 장밋빛 순간이었다. 안타깝게도 오래가진 않았다.

산허리를 타고 뻗은 둘레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했는데, 어떤 오르막과 내리막도 만만하지 않았다. 내리막이 나타나면 멀리 앞서간 사람들의 불빛을 찾았다. 이 내리막이 어디에서 끝나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는지 확인해야 했다. 멀리 시선보다 높은 곳에서 사람들의 불빛이 보이면 탄성과 욕이 튀어나왔다. 이성을 잃은 대신 ‘본성’이 튀어나왔다. “그러고 보니 체크포인트에선 기껏해야 라면이나 주고, 그것마저 기다려서 먹고 뭐 이래.” “어우씨,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48㎞ 지점 어느 마을 뒤편 언덕에 누워 별을 바라보고 있을 때, 옆에서 같이 쉬던 배우 이제훈씨팀은 ‘구조차’를 불렀다. 평소 연습할 시간도 없었을 텐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거 ‘단독’인데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그리고 다음날이 돼서야 ‘그때 이제훈이랑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하고 깨달았다.

53㎞ 지점 운조루에 도착한 뒤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21일 새벽 1시를 지나고 있었다. 아직 47㎞가 더 남았다는 건 알겠는데, 그럼 남은 구간을 평균 얼마의 속도로 걸어야 오후 7시30분까지 완주가 가능한지, 도착 시간과 무관하게 완주는 가능할지, 뒤늦게 완주를 하면 오늘 중으로 서울로 돌아갈 순 있을지…. 어떤 질문에도 답이 떨어지지 않았다. 남은 희망은 60㎞ 지점 구례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임시 숙소’였다. “일단 거기까지 가서 한 시간만 자보자. 그러곤 결정하자.” 여자 1과 합의를 봤다. 운조루~사성암주차장 12㎞ 구간이 완전한 평지라는 사실도 희망적이었다. 그런데 구례실내체육관을 1㎞ 남짓 남겨둔 지점에서 여자 1과 서둘러 ‘최종 합의’를 했다. 그렇게 자신있던 평지에서 1시간30분이 지났는데 6㎞도 걷지 못한 뒤였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허리 아래 모든 곳들이 아팠다. 물집은 잡히지 않았는데 발바닥은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았다. 발바닥으로 화염을 쏠 수 있을 것 같았다. “원래 포기하는 게 더 힘들어”, “모든 사람이 같은 목표를 가질 필요는 없다”는 명언들이 이어진 뒤 결정을 내렸다. “내 올해 안에 등산 따위를 하면 성을 간다”는 선언과 함께. 출발하고 22시간이 지난 뒤였다.

발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도착한 구례실내체육관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곯아떨어졌다. 한 시간쯤 잤을까. 온몸의 땀이 식으면서 오한이 몰려왔다. 여자 1을 깨웠다. “사우나 가자. 여기서 이렇게 자다 진짜 죽겠다.” 대회 본부에 전화를 걸어 욜로(YOLO)팀 ‘전원 낙오’를 알렸다. 주최 측 설명과 달리 스마트폰 지피에스(GPS) 앱이 알려준 최종 거리는 66㎞였다. 에디터에게 모든 팀원의 ‘전사’를 메신저로 알렸더니 “좀 약한데 ㅋ”라는 답신이 돌아왔다.

504명 중 299명이 지리산 100㎞를 38시간 안에 완주했다. ’절반’에도 들지 못했다는 아쉬움보다 도전이 끝나버렸다는 허무함이 더 컸다. 옥스팜코리아
낙오, 그 뒤…

이번 대회엔 126개 팀 504명이 참가했는데 이 중 4명 모두 완주한 팀은 56개(224명), 개인별로 완주한 이는 75명이었다고 한다. 참가비를 포함해 모금한 금액은 1억8778만원이었다.

월요일 출근해 이 소식을 들은 여자 1은 절반 이상이 완주했다는 사실에 놀라고 또 아쉬워했다. “이렇게 멀쩡할 줄 알았으면 더 갔어야 했는데.” 난 “다시 이 100㎞를 걷더라도 낙오할 거 같다. 나에겐 최선이었다”고 여자 1에게 말했는데, 사실 이건 거짓말에 가깝다. 100㎞에 도전한 우리 중 누구도 100㎞를, 심지어 50㎞조차 한번도 걸어보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준비를 하지 않았으니 낙오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100㎞를 완주하지 못해서 오는 아쉬움은 없다. 대신 진짜 아쉬운 건 도전이 실패해서가 아니라 도전이 끝나버렸다는 것. 두달 가까이 (그래도 나름) 준비하고 기대하고 설레던 과정이 끝나버려서인지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허전하고 멍하다. 이래서 운동선수들이 “성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면서도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 계속 도전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들에게 “왜?”냐는 질문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허무함에 빠진 난 월요일부터 ‘다음엔 자전거로 속초를 한번 가볼까’ 하고 여자 1에게 바람을 넣고 있었다. “그러다 후딱 늙어버린다”는 어느 선배의 직언이 아니었다면 9월쯤으로 일정을 잡았을 거다. 일단 올해엔 좀 자제하기로 했다. 옥스팜 트레일워커 100㎞ 행사는 내년에도 열릴 예정이라고 하니.

※ 덧붙여, 욜로팀의 무모한 도전을 후원하고 동아프리카에 깨끗한 물과 위생시설을 지원하는 데 힘을 보태준 분들 이름을 남긴다. 무엇보다 이분들에게 미안하다. 실패 소식에 “완주한다고 후원금 돌려주는 것도 아니잖냐”며 우릴 위로한 통 큰 후원자도 있었다.

강혜진 권은중 김서하 김성래 김소윤 김정혜 김혜선 류서현 류현정 맹정은 박은주 박현석 배혜영 성지혜 손기철 안영선 안현주 이경하 이수희 이연이 이유미 이윤정 이춘재 이현화 전미란 정고운 정민영 정원학 정은경 채창주 최연실 황국상 황춘화 지리산/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르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