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르포
시애틀 우드랜드파크 동물원
▶ 마하트마 간디는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동물을 대하는 방법을 통해 판단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현재 한국의 동물원 수준은 어떻습니까? <한겨레>는 미국과 유럽, 아시아의 여러 동물원을 돌아보고 국내 동물원과 비교하는 기획기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에 앞서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가 미국에 다녀왔습니다. 미국의 좋은 환경만 따지지 말고 동물원의 미래를 같이 고민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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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애틀 우드랜드파크 동물원의 열대우림 구역에 사는 재규어와 그 사육장의 모습이다. 나무, 바위, 수영장 등을 조성한 사육장은 한국의 재규어 사육장과 비교하면 훨씬 풍부한 환경이다. 그럼에도 재규어가 눈에 띄게 활동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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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인간의 관계가 변화하면서 동물원의 모습도 진화해왔다. 이 과정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동물원들이 있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왕실의 재산이었던 동물을 압수해 1793년 설립된 파리동물원, 1828년 세계 최초로 과학 연구를 설립 목적으로 천명한 런던동물원, 1907년 처음으로 철책을 없애고 해자로 구역을 나눠 생태친화적 동물원의 시초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 독일 함부르크의 하겐베크동물원 등이 그렇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우드랜드파크 동물원
역시 동물원 역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곳 중 하나다. 1880년대 캐나다 출신의 목재소 주인이었던 가이 피니는 시애틀 그린 레이크 남서쪽에 위치한 자신의 사유지에 관상용 동물원인 ‘머내저리’를 조성했다. 당시 흑곰, 사슴, 아프리카 타조 등을 사육하고 있었는데 누구나 관람할 수 있도록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1893년 피니가 사망하자 시애틀 시의회는 6년 뒤 유족으로부터 동물원을 10만달러에 매입하기로 의결했다. 1903년에는 시애틀 최초의 동물원인 레샤이 공원 동물원의 동물들을 기증받아 규모를 넓혔다. 현재는 면적 26만㎡가 넘는 시설에서 국제적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300여종의 야생동물 1000여마리를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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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랜드파크 동물원은 동물들이 서식하는 기후대에 따라 전시구역을 분류했다. 아프리카 사바나 존에 조성된 초원에서 기린, 얼룩말, 하마 등 사바나 지역에 분포하는 동물들을 함께 사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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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에 살고 있는 동물 엿보는 느낌
우드랜드파크 동물원이 역사적 의미를 갖는 이유는 ‘경관몰입형’ 기법을 최초로 선보였기 때문이다. 1975년 건축가이자 동물원 디렉터 데이비드 행콕스가 우드랜드파크 동물원을 통해 처음 선보인 경관몰입형 기법은 자연 서식지의 환경을 그대로 집약해 재현하는 방식이다. 관람객으로 하여금 동물원이 아닌 야생에 살고 있는 동물을 엿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구조다.
콘크리트 바닥과 인공구조물로 이뤄진 방사장에서 관람객에게 둘러싸여 ‘구경거리’로 취급받던 동물들은 숲, 초지, 언덕, 냇물 등 실제 서식지와 흡사하게 조성된 환경에서 비로소 ‘몸을 숨길 권리’를 찾게 된다. ‘사자가 있으니 보러 오라’고 광고하던 동물원에서 오직 ‘사자를 보기 위해’ 입장료를 낸 관람객은 사자를 보지 못하면 실망했다. 그러나 사자의 서식지를 모방하는 데 초점을 맞춘 동물원에서는 야생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자가 보일 수도,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였다. 이런 몰입형 전시방법은 미국과 유럽에 전파돼 현대적인 동물원인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됐고, 관람객은 동물원에서 동물을 보지 못하는 것을 점점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1880년대 사유지 관상용으로 출발
‘경관몰입형’ 전시기법 최초로 선보여
‘구경거리’ 벗어나 ‘뭄 숨길 권리’ 인정
울타리 없고 투명벽에 관찰지점 설치
전시동물 복지 규정 갈수록 강화 추세
동물원 존재 이유에 근본적 의문 제기
‘감금’을 전제로 한 동물원 한계 넘어
관람객이 서식지 찾아가는 ‘언주’ 등장
지난 5월4일 찾은 우드랜드파크 동물원은 서식지의 기후에 따라 아프리카 사바나 구역, 아시아의 열대 우림을 재현한 트로피컬 아시아 구역, 알래스카의 툰드라와 침엽수림 지역을 재현한 노던 트레일 구역, 남미와 아프리카의 열대림을 재현한 트로피컬 레인포레스트 구역 등 총 7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처음 발길이 닿은 아프리카 사바나 구역은 사바나 초원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에 충분했다. 멀리 손톱만 하게 보이는 기린 옆에는 얼룩말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웅덩이 안의 바위처럼 보이는 건 하마의 등이다. 몇분을 걸어 도착한 전시장 반대편에서는 파타스원숭이 몇마리가 나무에 매달려 장난치는 모습이 보인다. 전시장 안에 울타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전시장 주위에는 동물 자체에 대한 설명보다는 아프리카에서 인구 증가로 인한 농장화가 동물 서식지를 침범하고, 밀렵과 트로피 사냥이 야생동물을 멸종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설명하는 표지판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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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봐야 보인다. 바위틈 그늘에서 수사자와 암사자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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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형 동물원의 특징 중 하나는 동물과 관람객 간의 거리다. 전시구역마다 투명한 벽으로 된 관찰지점이 설치돼 있는데, 전시장 전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다 숲, 바위, 언덕 등으로 시야를 가려 동물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사자, 곰 같은 큰 동물일수록 사육장이 넓어 더 찾기 어려웠다. 숨죽여 기다리다가 동물의 뒷모습이라도 발견하면 ‘저쪽에 보인다’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관람객들의 모습이 꼭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모양새다. 이런 구조와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동물과 관람객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문을 두드리지 마세요”라고 쓰인 표지판이 없는데도 단체 관람을 온 초등학생 어린이들은 자고 있는 동물을 깨우면 안 된다며 일제히 손가락을 입에 대고 까치발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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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생물이 사는 수조 같지만 재규어의 수영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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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우림 구역의 재규어 전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수영장이다. 재규어는 고양이과 동물 중 호랑이와 함께 유일하게 수영을 잘하는 동물로, 야생에서는 물속에서 악어를 사냥하기도 한다.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는 재규어를 사육할 경우 땅을 팔 수 있는 공간, 수직으로 기어오르고 스크래치가 가능한 나무, 몸을 숨길 수 있는 은신처 등과 함께 수영장을 제공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사육시설 규모도 최소한 91.4㎡(약 27평)를 확보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국제적 멸종위기종 사육시설 설치기준의 경우 14㎡(약 4평)라고 시설 크기를 규정하고 있을 뿐, 따로 제공해야 하는 환경에 대해 명시해놓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실내에서 사방이 유리로 된 시험관 같은 사육장에 재규어를 전시하는 경우도 생긴다.
사육장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한 시간쯤 기다리자 드디어 재규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함께 기다리던 사람들은 낮은 탄성을 질렀다. 야생에서처럼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는 모습을 기대했으나 재규어는 그럴 의지는 없어 보였다. 느린 걸음으로 사육장을 한 바퀴 빙 돌고 나무로 된 다리를 두어 번 건너는가 싶더니 이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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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사육장과 연결된 방사장에서 오랑우탄 한 마리가 담요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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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 프로그램 시청하는 오랑우탄
오랑우탄 전시장의 바닥에는 지푸라기, 두루마리휴지, 종이, 쓰레기통, 헌 담요, 마대자루 등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모두 오랑우탄의 행동풍부화를 위해 제공하는 물건이다. 안내인은 이 도구들 외에도 퍼즐에서 먹이 빼먹기, 색연필로 그림 그리기, 밧줄 만들기, 티브이 시청 등 다양한 풍부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며, 오랑우탄이 가장 좋아하는 채널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디스커버리 채널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오랑우탄이 직접 꼬아 만든 밧줄을 나무에 걸고 그네를 타기도 한다며 “흔히 정신적 자극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종 외에도 모든 종을 대상으로 생태적 습성에 맞는 풍부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드랜드파크 동물원에서 코끼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전에는 ‘코끼리 숲’이라고 불렸던 코끼리사는 비어 있었다. 1989년 설치된 코끼리사가 2015년 폐쇄되기 이전에는 아프리카코끼리인 ‘와토토’와 아시아코끼리인 ‘차이’ ‘뱀부’ 등 세 마리가 살고 있었다. 모두 태어난 지 1년에서 2년 사이에 야생에서 포획된 개체들이었다.
자의식이 있고 무리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사는 습성이 있는 코끼리가 사육에 부적합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2000년대 초반부터 우드랜드파크 동물원의 코끼리 전시를 비난하는 시민들이 늘어났다. 최저온도가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이 일 년에 절반이 넘는 시애틀에서 코끼리들은 좁은 내실에 갇혀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세 마리 모두 족부 질병과 만성적 관절염을 앓았고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정형행동을 보였다. 동물원 코끼리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증상이다.
차이가 낳은 새끼인 ‘한사’는 2007년 6살의 나이로 헤르페스 바이러스에 감염돼 폐사했다. 2010년 시애틀 시민들과 동물보호단체인 동물법적방어기금은 시애틀 시가 우드랜드파크 동물원에서 일어나는 코끼리 가혹행위를 지원하는 데 세금을 낭비했다는 이유로 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기각되기도 했다. 2014년 아프리카코끼리 와토토마저 폐사하자 동물원에 대한 비난은 더 거세졌다. 이에
동물원 측은 더는 코끼리를 사육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차이와 뱀부는 다른 동물원으로 이송하겠다고 밝혔다. 2011년 강화된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의 코끼리 사육규정에 의하면 최소 3마리 이상을 함께 사육해야 하기 때문에 남은 두 마리만 전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과 동물보호단체들은 코끼리들을 동물보호단체가 운영하는 캘리포니아의 코끼리 보호구역으로 은퇴시킬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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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의 툰드라 지역을 재현한 전시구역의 회색 늑대 무리. 기후가 동물원이 위치한 시애틀과 가장 근접하다. 한국 동물원의 늑대들과 달리 정형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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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시민들의 저지에도 코끼리들은 오클라호마 동물원으로 옮겨졌고, 오클라호마로 이송된 지 8개월 만에 차이가 폐사했다. 코끼리 전시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미국에서는 1991년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동물원을 시작으로 지난해 버지니아 동물원까지 더는 코끼리를 사육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곳이 모두 26곳에 이른다.
최첨단시설로 동물원의 발전에 획기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던 우드랜드파크 동물원이 최근에 와서는 동물보호운동의 표적이 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철책과 콘크리트를 숨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동물이 인간과 같은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연구논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대중의 동물복지 의식은 빠르게 성장한다. 전시동물의 복지를 보장하기 위한 규정은 점점 강화되고, 이에 부합하는 시설을 갖추려면 필요한 예산은 증가한다.
수컷 고릴라 ‘하람베’의 죽음
지난해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어린아이가 고릴라 사육장 안으로 추락해 수컷 고릴라 ‘하람베’가 사살된 사건은 사고 책임의 주체를 떠나 고릴라를 우리에 가두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논란을 확산시켰다. 이제 사회는 동물원의 존재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데이비드 행콕스는 언론과의 인터뷰와 저서를 통해 몰입형 전시라 하더라도 결국 동물과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눈속임일 뿐 동물복지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회의적인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감금’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 동물원의 한계점을 지적한 것이다. 행콕스와 함께 우드랜드파크 동물원을 디자인한 동물원 디자이너 존 코는 동물원의 역발상인 ‘언주’(Unzoo)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그가 설계한 오스트레일리아의 태즈메이니아 데빌 언주에서는 야생동물을 사람이 사는 곳으로 데려와 전시하는 대신 관람객이 동물의 서식지로 찾아가 생태계를 관찰한다. 행동반경이 넓은 대동물 대신 지역에 분포하는 소동물의 생태구조를 중심으로 전시하고 이들을 보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늘고 있다. 미래의 동물원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혹은 계속 존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사회는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방법으로 전시하는 동물원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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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안 보이지만 고릴라가 오른쪽 나무판 위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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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서 나오는 길에 마주친 어린이들에게 오늘 본 동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동물이 뭐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한목소리로 “미어캣!”을 외쳤다. 어쩌면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는 동물원에서 재규어나 오랑우탄을 찾아볼 수 없을지 모른다.
시애틀/글·사진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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