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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올해는 4월24일부터 산불 발생 건수가 이례적으로 많아졌다. 강원·충청·경기 등 중부지방 전역에 두루 걸쳤다. 4월24일부터 5월6일까지 산불 발생 건수는 111건. 하루 평균 8.5건꼴이다. 지난 6일부터 강원 강릉과 삼척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은 진화되기까지 72시간이나 걸렸다. 산림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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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르포 5월의 대형 산불
5월초 발생한 강릉·삼척·상주 산불
삼림 340㏊ 태우고 72시간 만에 진화
4월 하순~5월 초순 하루 8.5건꼴 산불
발생 시기 길어지고 대형화 추세
최대 투입 가능한 헬기는 150대 안팎
자체 보유한 45대만 산림청 지휘받아
소나무숲 많고 담수지 여건 악화
산불상황관제시스템 계속 개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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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올해는 4월24일부터 산불 발생 건수가 이례적으로 많아졌다. 강원·충청·경기 등 중부지방 전역에 두루 걸쳤다. 4월24일부터 5월6일까지 산불 발생 건수는 111건. 하루 평균 8.5건꼴이다. 지난 6일부터 강원 강릉과 삼척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은 진화되기까지 72시간이나 걸렸다. 산림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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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고성, 2000년 동해안, 2005년 양양 낙산사, 2013년 포항…. 우리나라를 덮친 대형 산불의 계보다. 이번 강원 영동 산불은 5월 초순에, 그것도 3개 지역에서 동시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형 산불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340㏊의 삼림이 타들어간 현장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72시간. 강원 강릉과 삼척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이 진화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6일 시작된 산불은 9일 오전 11시40분쯤 완전히 꺼졌다. 백두대간 건의령 일대를 중심으로 삼척 270㏊, 강릉 57㏊, 경북 상주 13㏊ 등 340㏊의 삼림이 불탔다. 축구장 457개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유례없는 ‘5월의 대형 산불’이었다. 대형 산불이 5월에, 그것도 3개 지역에서 동시에 발생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강원 영동 산불의 경우, 10일 전쯤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였다. 통상 4월 하순은 산불 비상기간이 거의 마무리되는 시기다. 그런데 유독 올해는 4월24일부터 산불 발생 건수가 이례적으로 많아졌다. 강원·충청·경기 등 중부지방 전역에 두루 걸쳤다. 4월24일부터 5월6일까지 산불 발생건수는 111건. 하루 평균 8.5건꼴이다. 2007~2016년 10년간 같은 기간의 발생 건수 1.7건보다 월등히 많은 수치다. 이에 산림청은 4월27일부터 산불 비상근무 체제를 유지했다. 4월20일 이후에 산불 비상체제를 유지하는 건 극히 이례적이다. 예전엔 4월5일 식목일을 전후해 열흘 남짓 비상근무를 섰을 뿐이다.
“중대형 카모프의 기동도 힘들 정도였다”
지난주 두 차례 찾은 원주 산림항공본부 관제실은 내내 전쟁터의 전투상황실을 방불케 했다. 산불 진화 헬기의 출동과 투입을 위한 교신이 쉼없이 오갔다. 헬기 계류장엔 마치 전쟁영화의 한 장면처럼 헬기가 분주히 뜨고 내렸다. 하루 종일 헬기가 내지르는 굉음으로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이곳은 전국의 모든 산불 진화 헬기의 현장 상황을 지휘하는 장소다. 출동부터 복귀까지 산불 진화 헬기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이곳에서 통제된다.
특히 6일 오후, 이곳 관제실 요원들은 초긴장 상태였다. 그날 오전 삼척 도계 산불이 발생한 터라, 현장에 출동한 헬기에서 무전으로 들려오는 현장 상황부터 무척 긴박했다. “강풍으로 헬기가 흔들릴 정도다”라는 최초 보고에 관제상황실은 ‘이번 산불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고 한다. 이번 산불의 헬기 진화 전 과정을 관제실에서 지켜본 김만주 항공과장은 “6일 오후 삼척 도계 일대 산지엔 초속 20미터 가까운 바람이 불어 우리 주력 헬기인 러시아제 중대형 카모프의 기동이 힘들 정도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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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시간대에 발생한 산불을 조기에 진화하지 못하면 대형 산불로 번지기 십상이다. 일몰 이후에는 안전사고 우려 때문에 진화 작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산림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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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강원 영동 산불처럼 건조한 날에 바람까지 강하게 불 경우 불길의 기세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수십미터 높이의 불기둥이 온 산을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휩쓸고 지나간다. 바람이 초속 10미터 이상 부는 건조한 날 소나무숲에 불이 붙으면, 불길이 용오름처럼 하늘로 치솟고 소나무숲 사이를 점프하듯 옮겨 다닌다. 실제로 2000년 동해안 산불 당시, 울진 원자력발전소를 방어하기 위해 삼척 가곡산에 배수진을 쳤는데, 불길이 700미터를 훌쩍 넘어간 적도 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진화 인력은 생전 처음 불길이 하늘을 날아가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산불의 실체를 뼈저리게 체감했다고 한다.
이런 날은 현장에 출동하는 헬기에서도 감이 느껴진다고 한다. 10년 경력의 김현철 기장은 “바람이 강한 날은 헬기 기체가 요동치고, 전방 500~1000미터 앞에서 펼쳐진 불길과 연기가 평소와 다르다”며 “본능적으로 긴장감이 훨씬 높아진다”고 말했다. 주력 헬기인 카모프 등 중대형이라도 기체부터 출렁거리는 걸 피할 수 없다. 정확한 위치에 물을 쏟아부어야 하므로 급속한 하강과 상승을 반복하는 고난도 비행이 종일 이어지기 마련이다.
초동진화 위해 헬기 지휘통제 보완 필요
험준한 산악 지형도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산악 지형에서 화마와 연기 사이를 비행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8일엔 삼척 도계에서 산불 진화에 나섰던 산림청 소속 헬기가 하천에 비상착륙하면서 헬기에 탔던 정비사 1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다. 사고 당시 헬기는 연료 보급을 위해 이동하던 중 시야가 가려 고압선에 부딪쳤다. 현재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소속 헬기 조종사의 98%가 육군 항공작전사령부를 거친 인력으로, 군에서 10년 이상 비행 경력을 가진 소령 또는 준위 출신들이다. 김승룡 기장은 “다들 군 출신이지만, 비행의 난이도나 위험성 정도는 군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며 “포탄만 날아다니지 않을 뿐, 험산준령의 산악 지형에서 불기둥과 연기 사이를 뚫고 신속하게 물을 투하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뭐니 뭐니 해도, 산불 진화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2000년대 들어 대형 산불이 빈번해지면서 산불 진화에 투입하는 비중 역시 헬기 80%, 지상 20% 정도에 맞춰져 있다. 바람과 건조한 대기 두 변수가 한꺼번에 찾아올 경우 진화 인력이 지상에서 산불을 잡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현재 산림청 산림항공본부와 전국 11개 산림항공관리소에 배치된 45대의 산불 진화용 헬기가 우리나라 산불 진화의 주력군인 셈이다. 여기에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산불 비상기간에만 임차해 사용하는 60대 정도가 추가된다. 소방헬기 28대와 군헬기 중 진화장비를 장착한 24대 등도 투입된다. 이렇게 볼 때, 전국적으로 최대 가용 자원은 150대 안팎. 문제는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 이 모든 헬기 자원을 효율적으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지휘통제 기능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산림청이 지휘할 권한을 지닌 건 자체적으로 보유한 주력 헬기 45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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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후 산불 진화는 대부분 헬기를 통한 항공 진화로 진행된다. 산림청 산림항공본부와 전국 11개 산림항공관리소에 배치된 45대의 산불 진화용 헬기가 주력군 노릇을 한다. 사진은 현장에 출동한 헬기에서 촬영한 산불 모습. 산림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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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적 재해·재난 사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산불 역시 해마다 되풀이되는 재해·재난 중 하나로, 골든타임 30분 이내에 현장에 출동한다는 게 현재 정부의 목표다. 이를 위해 산불 상황 관제 시스템을 더욱 첨단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일도 중요하다. 산림청은 60년대 후반부터 전국의 산림과 수목 관련 정보를 집대성해 산불 관리 시스템을 만들었다. 땅바닥에서 조사한 모든 자료와 정보가 공간정보화된 결과물이다. 50년 동안 조사한 전국의 모든 산림 정보가 산림지리정보(FGIS)에 탑재돼 있다. 실제로 진화 헬기가 산불 현장으로 출동하면, 산림청 중앙산불상황실에선 산불 상황 관제 시스템의 상황판이 자동으로 펼쳐진다. 산불 현장의 기상정보, 산악 지형 정보뿐 아니라 산불의 연료가 되는 수목 등의 산림정보가 종합적으로 제공된다. 디지털 상황판엔 3시간, 6시간, 12시간 후에 산불이 어떻게 확산될지를 예측하는 시뮬레이션까지 이뤄진다. 산불 진화의 뇌와 촉수인 셈이다.
1996년 고성, 2000년 동해안, 2005년 양양 낙산사, 2013년 포항…. 우리나라 산림을 덮친 대형 산불의 역사다. 하지만 이번 강원 영동 산불은 그간 익숙한 산불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산불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우선 시기부터 예전과 달라졌다. 이제 산불 발생 가능성이 높은 기간은 2월부터 5월 초순까지로 그 폭이 더욱 확대됐다. 대형화 추세도 한층 뚜렷해졌다.
솔잎 자체가 휘발성 높은 인화물질
그럼, 이처럼 대형 산불이 점점 빈번하게, 그리고 더욱 넓은 기간에 걸쳐 발생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환경 요인도 빼놓을 수 없다. 대형 산불은 통상 소나무숲, 건조, 강풍 등 세 가지가 한데 겹치면서 나타나기 쉽다. 삼척 산불의 경우, 진화가 더디게 이뤄진 데는 소나무가 밀집한 산림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있었다. 강릉을 중심으로 북쪽의 양양과 남쪽의 동해·삼척은 강원도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소나무숲 지대다. 소나무는 송이 등의 임산물뿐 아니라 경관이 탁월한 장점을 지녀 인기를 끈다. 하지만 산불엔 매우 취약하다. 소나무, 잣나무, 리기다소나무 등 일반적인 소나무류는 불이 나면 수관부 전체가 불덩어리로 쉽게 변한다. 솔잎 자체가 휘발성이 높은 인화물질이다. 참나무류를 비롯해 낙엽이 떨어진 활엽수림 지대에서 설령 산불이 발생하더라도 대형화하지 않는 것과 대비된다. 산림청은 지난해 4월부터 3억원의 예산을 들여 전국의 소나무림 실태를 조사해 올해 11월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해마다 2억원의 예산으로 전국을 권역별로 나눠 더욱 정밀한 소나무 분포를 조사한다.
산불을 제때 잡는 데는 담수지의 중요성도 크다. 산불을 빠르게 진화하려면 진화 헬기가 불기둥에 물을 뿌린 뒤 가장 가까운 저수지나 하천에서 물을 계속 담아 올 수 있어야 한다. 담수지가 멀리 떨어져 있거나 드문 경우, 진화 시간은 늦어지게 마련이다. 헬기 10대가 투입되더라도 담수지 거리가 멀다면, 가까운 담수지를 활용할 수 있는 5대보다 진화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국적으로 담수지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시급한 이유다.
산불은 진화 헬기라는 ‘하드웨어’와 산불 상황 관제 시스템과 같은 첨단 ‘소프트웨어’가 모두 제 몫을 할 때 비로소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재해·재난이다. 기후변화의 시대, 재해·재난은 갈수록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고, 대형 산불의 패러다임 역시 바뀌고 있다. 5월에 불어닥친 이번 강원 영동 대형 산불은 아직도 우리의 종합적인 재해·재난 대응체계가 부족함을 일깨워준 뼈아픈 기억이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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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 지형에서 화마와 연기 사이를 뚫고 비행하면서 정확한 장소에 신속하게 물을 뿌리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산림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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