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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4.22 11:28 수정 : 2017.04.22 11:37

지난해 7월 영국 웨스트서식스 지역에서 열린 옥스팜트레일워커. 우리에게도 이런 순간이 올까? 옥스팜코리아 제공

[토요판] 르포
지리산 100㎞, 걸을 수 있을까?

지난해 7월 영국 웨스트서식스 지역에서 열린 옥스팜트레일워커. 우리에게도 이런 순간이 올까? 옥스팜코리아 제공
▶살면서 단숨에 100㎞를 걸어볼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무모할 수 있는 이 도전이 기회인 이유는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하면서, 먼 나라 이웃의 가난에 공감하고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도전에 뛰어든 <한겨레> 토요판팀 박현철 기자가 준비 과정을 소개한다. 한달 뒤 100㎞ 걷기에 성공 또는 실패한 경험도 독자들께 보고할 예정이다.

“그런 걸 왜 해?”

38시간 안에 지리산 100㎞를 걸어서 완주해야 한다고 했다. 4인1조인 한 팀의 참가비는 40만원인데, 행사 하루 전날까지 기부펀딩으로 50만원을 더 모으지 못하면 100㎞에 도전할 기회도 얻지 못하는 사서 하는 고생인데, 그 고생마저도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없는 그런 일이라고 했다. ‘그걸 왜?’ 하는 반응은 지극히 당연했다.

지난 2월초 기업 홍보팀에서 일하는 중·고·대학을 함께 다닌 친구가 “옥스팜 트레일 워커라는 게 있는데”라며 말을 걸었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면서 가난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기부까지 할 수 있다는 취지에 혹했다. 더군다나 장소는 지리산이었고, 때는 5월 중순이란다. 그렇게 바람을 잔뜩 넣은 친구는 일주일 뒤 “그때 일이 생겼다”며 “나가리”를 외쳤다. 두 아이의 아빠인 친구는 분명 아내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내게 바람을 넣었을 것이다. ‘그냥 하지 말까’ 잠시 생각하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너 설레발칠 때 알아봤다. 널 버리고 가마.”

벚꽃나들이 대신 특훈

옥스팜트레일워커 누리집의 ‘트레이닝 가이드’는 대회 14주 전부터 몸관리를 시작할 것을 권하고 있다. 1주일에 적어도 두 번의 걷기운동과 한 번 이상의 심장강화운동을 하고 대회가 가까워질수록 강도를 높이기를 권한다. 4~5㎞에서 시작해 대회 3주쯤 전엔 50㎞까지 늘려야 한다(고 적혀 있다). 야간 행군도 해보길 권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권장사항일 뿐, 이를 그대로 실천하는 팀이 몇이나 될까’라는 마음으로 게으른 준비를 하나씩 하기 시작했다. 회사 동료 둘(남자2, 여자1)과 2년 전 세계일주를 하면서 남미 파타고니아 트레킹을 해봤다는, “아주 잘 걷는다”는 다른 회사 후배 한 명(여자2)을 꼬드겨 팀을 꾸렸다. 참가신청을 하려면 팀 이름을 정해야 했다. 넷 다 솔로라 ‘홀로’라고 하려다 “없어 보인다”는 의견이 다수라 포기했다. 대신 최신 유행하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로 정했다.

지난 3월11일 북한산 둘레길 13코스 송추마을길을 걷고 있는 ‘욜로’팀. 사진은 남자2가 찍었다.
3월11일 넷이 처음 모였다. 자주 모일 순 없으니 한 번 모일 때마다 강훈련이 필요했다. 서울엔 북한산 둘레길이 있어 다행이었다. 출발지와 목적지를 잘 조합하면 다양한 코스 설계가 가능했다. 첫번째 훈련은 서울 우이동에서 시작하는 우이령길을 지나 양주시 송추에서 북한산 둘레길을 시계 방향으로 돌아 지하철 1호선 도봉산역에서 끝내는 코스로 잡았다. 25㎞였고 북한산 둘레길 누리집의 예상시간은 9시간이 넘었지만 조금 속도를 내면 해가 지기 전에 끝낼 수 있겠다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생각이었다.

북한산 둘레길 21코스 우이령길 중간에서 오봉을 바라보고.
완만한 우이령길까진 즐거웠는데, 사패산(552m)의 6부 능선까지 올라가는 산너미길 꼭대기를 정점으로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목적을 달성하려면 산너미길 이후에도 10㎞ 가까이를 더 걸어야 했다. “등산화 그런 거 없다”며 스니커즈를 신고 나타난 여자2는 계단이 나타날 때마다 한숨을 내쉬었고, 남자2는 “쫌 천천히 가자”고 노래를 불렀다. 애초에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따라나섰던 이들이었다. 그러니 더 힘들고 답답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과 함께 100㎞를 걸어야 하기에 난 악역을 자처했다. “이제 그만 가자”는 세 명을 “좀만 더 걷자”고 달래며 걸었다. 그러는 중에 걷는 속도가 눈에 띄게 줄었고, 여자2가 점점 표정이 굳어지고 낯빛이 노랗게 변하길래 결국 마지막 3㎞ 다락원길은 포기했다. 물론 나머지 셋은 애초 계획을 몰랐기에 포기했는지도 몰랐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돌아와 고기를 구워 뒤풀이를 했다.

두번째 훈련은, 그동안 각자 충실히 개인훈련을 했다고 믿으며, 한달 뒤인 4월9일에 했다. 바야흐로 서울 남산과 여의도에 벚꽃이 만발하던 때였다. 어디로 갈지를 물으니 대뜸 “남산으로 가자”는 말이 나왔다. 여자2가 그랬다. 그 마음은 이해가 갔다. 때가 때였으니.

지난 4월9일 관악산 훈련을 마친 뒤 허기진 배를 탕수육으로 달랬다.
그런데 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 남산타워까진 걸어서 1.94㎞였다. 바야흐로 4월이었으니 벚꽃 구경을 겸한다 치고, 대략 20㎞ 정도 걷는다고 한다면 남산타워를 다섯 번은 왕복해야 운동 효과를 볼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빠르게 포기하고 관악산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코스로 바꿨다. 밧줄을 잡고 관악산 연주대를 오르면서 남자2와 여자2는 “무섭다” “다신 못 오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힘든 대신 훈련은 이른 오후에 끝이 났다. 뒤풀이는 폭식으로 이어졌다.

38시간 동안 100㎞ 걷는 도전
옥스팜트레일워커 지리산 대회
빈곤 극복+한계 도전에 솔깃해
팀을 꾸렸다…훈련을 시작했다

성삼재·노고단…첩첩산중 코스
‘중도포기자’ 맞을 준비도 완료
시작된 기부, 물릴 수 없다
한달 뒤 우린 낙오자가 될까?

100㎞를 걸으면 무엇이 바뀔까?

이쯤 되면 “옥스팜트레… 그게 뭐길래 사서 그 고생이냐?”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옥스팜은 1942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설립된 ‘옥스퍼드 기아구제위원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나치 독일이 그리스를 점령하고 연합군이 해상을 봉쇄하면서 그리스 시민들이 기근에 직면했는데, 이들을 위한 식량구호를 허용하도록 영국 정부를 설득하는 게 주된 목표였다. 이후 옥스팜은 빈곤 해소와 불공정 무역 시스템 개선 활동을 펼치는 대표적인 국제구호단체로 성장했다.

옥스팜트레일워커는 1981년 옥스팜홍콩에서 시작한 이벤트 중 하나다. “물을 얻기 위해 매일 수십㎞를 걷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도전이자, 지정된 시간 안에 100㎞를 완주하는 나를 위한 도전”이라고, 옥스팜코리아는 설명한다. 12개 나라 18개 도시에서 옥스팜트레일워커가 진행 중인데, 한국에선 오는 5월20~21일 지리산에서 처음 열린다. 코스 길이는 대부분 100㎞이지만, 대회가 열리는 지역의 지형·기후에 따라 완주 시간은 차이가 있다. 지난 3월 프랑스 산악지역에서 열렸던 대회는 눈이 쌓인 60㎞의 코스를 30시간 안에 완주해야 했다.

100㎞ 완주를 위한 도전을 위해선 기부펀딩 50만원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각 팀들은 완주를 응원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십시일반’ 모금을 받아 대회 시작 이틀 전까지 50만원을 채워야 한다. 옥스팜코리아에 물었다. “참가비도 있는데 왜 추가로 50만원을 모금해야 하나요?” “50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첫번째 질문엔 답을 듣지 못했다. 옥스팜코리아 쪽도 당황했을 것 같다. 기부 행사에 참여하면서 “왜 기부해야 하냐?”고 물은 꼴이니. 대신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들을 수 있었다. “50만원이면 케냐나 니제르 등 심각한 물 부족을 겪고 있는 곳에 물탱크나 펌프를 설치할 수 있고 300명에게 지속적으로 물을 공급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30년 이상 모은 후원금이 2억달러, 우리돈 23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번 행사를 한달 앞둔 4월20일 현재 98개 팀이 신청했는데 이미 50만원 기부펀딩을 달성한 팀만 47개에 이른다. 모금액 1위 팀은 200만원이 넘었다. 우리 팀은 33만원을 기부받았다. 기부펀딩 50만원을 달성하더라도 낙오의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대회는 5월20일 새벽 5시30분에 시작한다. 평지를 걷는 사람의 평균 속도는 시속 4㎞ 안팎. 산을 오르내리면 시속 3㎞로 떨어지고 시속 3㎞로 100㎞를 걷는다면 33.3시간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쉬는 시간이 5시간을 넘으면 주어진 38시간 안에 완주가 불가능하다는 걸 뜻한다. 더군다나 잠을 거의 자지 못한 채 걸어야 한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1은 “잠을 안 자고 걸을 순 없다. 5시간은 자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5월20~21일 지리산에서 열리는 옥스팜트레일워커 지리산 대회의 코스 개요. 체크포인트 2~3구간에 성삼재와 그보다 더 높은 노고단이 기다리고 있다.
더군다나 그곳은 지리산이다. 100㎞ 중 힘든 코스는 초반 35㎞ 안에 집중돼 있다. 21㎞ 지점 해발고도 1102m 성삼재를 지나 노고단(1507m)까지 이어지는 구간을 넘으면 대략 낙오 여부가 결정될 듯하다. 어쩌면 주최 쪽의 배려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빨리빨리 낙오하고 산을 내려가 지리산 흑돼지 구이라도 먹은 뒤 느긋하게 돌아가라는.

다행히도 주최 쪽은 코스 중간에 9개 체크포인트를 운영한다. 쉬기도 하고 물도 마시고 간식거리도 먹고 가는 쉼터인 셈이다. 기대어 쉴 수 있는 벤치도 준비할 예정이다. 이 중 세 곳에선 “서포터들과의 만남이 가능”하다. 밤새 걸어야 하는 참가자들을 위해 따뜻한 밥이나 방한 옷을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이다. 물론 서포터가 있어야 가능한 얘기라, 우리는 없는 셈 치기로 했다.

이곳 체크포인트는 또 낙오자를 위한 장소이기도 하다. 차량 운행이 가능한 곳이라 낙오자를 출발·도착지로 데려다 준다고 주최 쪽은 밝혔다. 훈훈한 얘기 같지만, 낙오를 하더라도 되도록 쉼터에서 하라는 얘기와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낙오자를 맞을 준비는 잘 갖춰져 있다.

돌이킬 수 없으니…

“첨엔 그냥 운동이나 좀 될까 싶어서 했어요. 100㎞ 얼마 안 될 거라 생각했는데, 좀 걸어보니 이게 생각보다 너무 긴 거리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어요. 그만두려고 보니 이미 돈을 내버린 거예요. 생각해보니 파타고니아 트레킹도 누군가의 등산화를 빌려서 간 거였어요.”

여자2는 걱정이 많다. 난 이미 여자2에게 “낙오하면 그날로 인연 끊자”고 엄포를 놓았다. 인연도 유지하고 괜한 고생도 면하는 길은 한달 뒤 지리산 따위는 잊고 한강 산책이나 가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낙오를 각오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대회 규정에 따라 참가 신청을 하면서 낸 참가비(팀당 40만원)와 기부펀딩 후원금은 환불이 안 된다.(모르고 신청한 건 아니다.) 더군다나 이미 가족과 회사 동료, 친구들에게 33만원을 기부받았다.

한달 뒤에 어쩌면 나와 남남이 될지 모르는 여자2는 최근 거금을 들여 트레킹 겸용 등산화를 장만했다. “기부까지 받으면 진짜 끝까지 가야 할 것 같아서” 그동안 친구들에게 얘기도 하지 않다가 최근에야 말을 꺼냈다. 하루 만에 수만원의 기부가 답지했다.

세상일 뭔들 안 그럴까마는, 돌이킬 수 없다면 앞으로 갈 수밖에 없다. 나머지 셋에게 오는 일요일(4월23일) ‘대회 한달맞이 초강력 특훈’을 예고했다. 5월초엔 야간 걷기도 해야 한다. 주최 쪽이 제시한 트레이닝 스케줄엔 턱없이 모자라겠지만 이게 최선이라고 믿으며. 부족한 훈련량은 의지로 채울 작정이다. 이런 도전 언제 또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일단 가보기로 한다. ‘욜로’라는 팀 이름 그대로 인생 한번이니까.

팀 ‘욜로’의 멤버 확인과 후원은 팀 소개 페이지(www.oxfamtrailwalker.or.kr/ko/node/5213)에서 가능하다. 대회가 끝난 뒤에도 6월30일까지 기부펀딩은 계속된다. 참가 접수는 4월30일까지 옥스팜트레일워커 공식 누리집(https://www.oxfamtrailwalker.or.kr/ko)에서 받는다. 아직 일주일 이상 남았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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