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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27 19:45 수정 : 2016.05.30 08:58

지난 3월5일 오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전국인민대표대회를 앞두고 내외신 기자들이 미리 배포된 자료집을 훑어보고 있다. 올해 중국 정부의 경제성장률 목표치와 예산 등 주요 경제지표들이 처음 공개되는 자료로 제한된 수량만 배포된다. 이날 중국 정부가 발표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 6.5~7.0%는 최근 25년 사이 가장 낮은 수치였다. 사진 김외현 특파원

[토요판] 르포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의 100일 노트

▶ 갓난아기는 100일이 지나면 목을 가누고 깊은 밤잠을 자는 기적 같은 변화를 보입니다. 하지만 이달 말일이면 정식 부임 100일을 맞이하는 베이징 특파원에게 ‘백일의 기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낯설고 여전히 헤맵니다. 부디 100일이 지나면 좀 나아지면 좋겠습니다.

2월11일(목)

2016년 2월11일 저녁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했다. 지난해 잠시 왔을 때 미리 만들어놓은 휴대전화 번호 뒷자리가 0211인 건 운명이었을까. 설 연휴가 끝나지 않아 공항은 한산했다. 능숙한 척 여유를 부리며 공항을 빠져나왔다. 16년 전 처음 중국에 왔을 때와는 달랐다. 중국, 베이징. 여행, 출장 등으로 이미 몇 번을 다녀갔던가. 미리 예약해둔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다만 정확한 집 주소를 몰라 차에서 내린 뒤 잠시 애를 먹었다. 집은 썰렁했다. 한밤에 도착해 보일러 켜는 법을 물어볼 곳도 없어서 그냥 추운 집에서 잤다. 한국에서 작은 온열매트를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2월14일(일)

기자증을 신청하러 외교부에 갔다. 한국인 밀집 지역이자 내가 앞으로 살게 될 곳인 왕징에서 11~12㎞, 빠르면 20분이면 갈 거리였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 국무부처럼 대변인 브리핑을 매일 한다.(한국은 주 2회) 월~금 매일 오후 3시 브리핑을 들으러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브리핑을 직접 듣는 게 필요한 이유가 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 현장에선 기자들의 질문에 나름 성실하게 답변하지만, 외교부는 전체 영상이나 브리핑 녹취록을 공개하지 않는다. 브리핑이 끝나면 3~4시간 뒤 브리핑 내용을 외교부 누리집(홈페이지)에 올리지만 전체가 아니라 부분편집된, 이른바 ‘마사지’된 상태다. 그러니 현장에 가 있어야 실제로 무슨 얘길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하지만 100일이 지난 지금 외교부 브리핑은 일주일 1~2번밖에 가지 못한다. 차가 많이 막혀서 30~40분씩 꼼짝도 못하고 차 안에 갇혀 있는 경우도 많아, 가는 데만 1시간을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한국시각으로 4시면 한창 기사 마감에 쫓기는 시각이다. 기사가 많아 바쁠 때는 엄두를 못 낸다.

2월22일(월)

전임자 성연철 기자가 3년 임기를 마치며 “다리 같은 걸 계속 만지다가 가는데, 이게 코끼리인지 뭔지는 아직 모르겠다”는 말을 남기고 귀국했다. 이날 정식으로 신문에 부임공고를 내고 업무를 시작했다. 이날 <동아일보>가 중국의 은행들이 북한에 대한 송금 업무를 중단했다는 기사를 내면서 정신이 없었다. 이후 여러 차례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놓고 여러 보도가 나왔고, 별도의 취재를 통해서도 확인이 되지 않아 회사에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하기 일쑤였다. 다른 회사 기자는 그렇게 보고했더니 “너도 남들이 확인 못할 기사 한 번 써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했다.

3월2일(수)

북한의 1월 4차 핵실험과 2월 로켓 발사에 따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 2270호가 채택됐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강화된 것이다. 국내에선 대북 압박에 중국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할지가 계속 관심사인데, 이 무렵 중국 언론에선 중국이 찬성표를 던진 이유를 분석하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식의 기사가 나왔다. 중국 언론의 북한에 대한 논조는 통일성이 있다. 북한 문제를 다룰 때는 <신화통신> 등 관영매체 기사를 그대로 싣는 것만 허용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때 남북관계가 좋던 시절엔, 북한으로 가거나 북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선 중국을 거칠 수밖에 없지만, 남북이 직접 통할 수 있다면 중국은 ‘불필요한 길목’이 될 거란 이야기도 더러 듣곤 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어서 이젠 중국이 북한을 들여다보는 거의 유일한 창구 구실을 한다.

외교부, 미국처럼 매일 브리핑
누리집엔 부분편집해 공개
직접 브리핑 참석하고 싶으나
본사 기사 마감시각 늘 쫓기고
30~40분씩 차에 갇히기 일쑤

전인대 개막, 열띤 취재 열기
지국 없는 매체가 외신 인용해
속보 더 빨리 전할 땐 허탈감
거주비자 받자 숙제 끝낸 기분
중국 정부, 언론 탄압 수단 악용도

3월5일(토)

중국의 입법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가 개막했다. 오전 6시30분에 다른 한국 언론사 기자들과 함께 왕징을 출발해서 천안문광장에 도착했다. 천안문 일대는 통제가 삼엄했다.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서야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천안문을 바라봤을 때 왼편에 있는 인민대회당 앞엔 새벽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8시부터 입장이지만 기자들이 서둘러 도착한 이유는 이날 오전에만 한정된 수량을 배포하는 연설 자료를 받기 위해서다. 행정기관인 국무원의 총리(리커창)는 이날 업무보고 형태로 각종 수치를 발표하는데, 인터넷 누리집 등에는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내용을 올린다. 인민 대표자들 및 취재진의 입장이 시작되고 자료 배포처에 가면, 기자들이 바닥에 엎드려 자료를 훑으며 경제성장률과 재정 적자, 실업률 등의 목표치와 국방예산 규모 등 중요한 대목을 찾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베이징에 지국을 운영하지 않는 한국 매체들은 <블룸버그> <교도통신> 등을 인용해 더러 더 빠른 속보를 내보내기도 했다. 이날 대회장에서는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무대에 선 모습을 작게나마 볼 수 있었다. 중국 기자들도 드문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이미 연설문이 배포된 총리 연설을 듣기보단 기념사진 촬영에 열중하는 이들도 있었다.

3월22일(화)

거주 비자를 받았다. 서울에서 중국대사관의 서류 심사를 거쳐 입국비자를 받은 뒤, 기자증 신청, 주숙등기(거주지 등록), 신체검사 등 온 가족이 소정의 절차를 거쳐야만 받을 수 있다. 만약 서류가 미비하거나 시기를 넘겨 받지 못하면 한국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수속을 다시 밟아야 한다. 막중한 숙제를 끝낸 것 같아 홀가분했다. 다만 상주기자 비자는 해마다 갱신해야 한다. 연말마다 중국에선 “아무개 서방 매체 기자가 비자 갱신을 못 받았는데, 그가 과거 어떠어떠한 비판성 기사를 쓴 바 있다”는 기사가 나올 때가 있다. 비자 갱신을 언론 탄압 수단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외교부 쪽은 한국 기자들에게 비자 갱신의 귀찮음을 덜어주고자 장기간 비자 발급을 검토할 거란 얘기를 몇 차례 전해왔다.

4월4일(월)

오랜만에 친구를 베이징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가던 길이었다. 사거리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와 길을 건너는데 때아닌 좌회전 차량이 횡단보도의 나를 향했다. 운전자와 눈이 마주쳤지만, 운전자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오히려 속도를 내며 지나갔다. 등골이 서늘했다. 차도 사람도 신호를 안 지킨다. 중국의 많은 것이 발전했지만, 운전 문화는 아직 개판이다.

4월11일(월)

저장(절강)성 닝보에 갔다. 앞서 7일 통일부가 중국의 북한 식당 종업원들의 입국을 발표한 데 따른 후속취재를 위해서였다. 2박3일 동안 닝보의 ‘류경’이라는 식당 주변 상인들과 오가는 사람들을 만나서 기사를 썼다.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남과 북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아직 모호하게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부분들이 없지 않지만, 중국인 경영책임자와 예전에 일했던 직원을 인터뷰했던 취재가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 닝보에 다른 게 유명한 게 뭐가 있는진 모르지만, 누군가 닝보에 뭐가 있더냐 물으면 나로선 류경이 있다고 말할 수밖에.

4월23일(토)

집에 카메라를 하나 설치해놓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샤오미 감시형 카메라를 주문했다. 사실 우리 집은 샤오미가 지배한다. 나는 지난해 900위안에 산 샤오미 스마트폰을 쓴다. 집의 인터넷은 샤오미 공유기를 통해 각종 기기로 연결되고, 그중 2대의 공기청정기와 정수기가 샤오미다. 집 밖에서도 스마트폰으로 공기 상태와 물 상태를 알 수 있고, 간단한 조종도 가능하다. 거실에서 지상파, 위성방송과 영화 및 드라마를 주문형(VOD)으로 보는 텔레비전 셋톱박스도 샤오미다. 가방과 티셔츠, 보조배터리 및 휴대용 와이파이 생성기, 가정용 멀티탭 등도 쓰고 있지만, 아내는 ‘미팬’(샤오미빠)처럼 굴지 말라 한다. 하지만 가격 및 성능의 만족도가 높으니 자꾸 관심이 간다. 나와 같은 모델의 샤오미 스마트폰을 쓰던 일본 기자가 얼마 전 샤오미 새 모델로 갈아탄 걸 보고 내심 부러웠다. 지금은 샤오미가 새로 내놓은 드론을 탐내고 있다. 출장을 몇곳 다녀보니 높은 곳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4월25일(월)

베이징 모터쇼가 개막했다. 프레스데이라고 했는데, 절대 기자는 아닐 것 같은 사람들, 정확히는 연예인 팬클럽 회원들이 많이 왔다. 한국 업체의 행사에선 연예인 등장 탓에 행사장이 엉망이 돼버렸고, 시간도 지켜주지 않아 이웃 부스의 행사도 사실상 방해를 받았다. 신문사에 들어와 경제부를 해본 적이 없어서 경제 기사를 쓰는 건 부담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담당이 ‘중국의 모든 것’인지라 공부해가며 쓰는 수밖에 없다.

5월1일(일)

4월 비용 정산을 하려고 보니, 현금을 쓸 일이 거의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스마트폰에 깔아놓은 즈푸바오(알리페이)와 웨이신즈푸(위챗페이) 앱으로 웬만한 결제는 다 해결한다. 앱에는 내 은행계좌가 연결돼 바로 출금되고 은행은 문자메시지로 잔고를 확인해 준다. 수도, 전기, 가스 요금과 통신비 등도 전자화폐로 결제한다. 스마트폰으로 정보무늬(QR코드)를 한쪽이 띄우고 다른 쪽은 읽는 식으로 현금 입출금도 가능하다. 전자화폐 사용이 활성화되니 ‘전자화폐만으로 살아보기’가 아니라 ‘전자화폐 없이 살아보기’ 기획기사를 써야 할 판이다. 택시를 타기보다 디디추싱 같은 앱을 통해 차를 부른다. 디디추싱은 ‘중국판 우버’로 불리지만, 사실 우버보다 이용자가 많다. 각종 음식 배달 서비스 앱은 거의 심부름센터 서비스로 변신했다. 슈퍼마켓, 커피숍, 약국 등의 상품도 집까지 배달된다. 며칠 전 에어컨 청소를 예약·결제한 앱은 출장안마, 이사, 가사도우미 서비스도 가능하다.

5월4일(수)

인터넷에서 검색결과 상위에 뜬 ‘좋은 병원’에 갔다가 차도를 못 보고 숨진 ‘웨이쩌시 사건’과 관련해 베이징의 무장경찰제2병원이 외래와 입원 등 모든 업무를 중단했다. 군 병원이 왜 민간인을 진료했을지가 난제였다. 지난 3월 중국 군 지도부가 ‘유상복무활동’ 전면 금지를 천명했을 때도, 외신은 군 병원의 민간인 진료 등을 예로 들었다. 알아보니 군 병원은 민간인에게 개방돼 있고 자금 형편이 좋아서 장비도 의사급여도 민간 병원보다 낫다고 했다. 군 의료의 상업화에 비판적인 이들은, 이를 개혁·개방의 후유증이자 자본주의화의 병폐로 보기도 했다. 언어 환경도 문제지만, 체제와 문화가 달라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많다. 다만, 역설적이게도 체제의 자본주의화에서 비롯되는 문제는 좋은 점도 나쁜 점도 모두 한국의 모습과 상당 부분 일치해서 그다지 어렵지 않다.

중국 베이징 왕징의 주상복합건물 왕징소호 앞에서 27일 오후 오토바이에 탄 배달서비스 직원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왕징소호는 유명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주상복합건물로, 소호(SOHO)는 ‘작은 사무실 가정 사무실’(Small Office Home Office)의 줄임말이자 중국의 부동산회사 이름이다. 왕징은 베이징 북동부 외곽에 위치한 한인밀집지역이다. 사진 김외현 특파원

5월10일(화)

구이저우성 마오타이 진에서 중국의 국주(나라술) 마오타이의 공장을 직접 들어가 봤다. 마오타이 진의 인구 4만명 가운데 2만명이 마오타이그룹에서 일한다. 꽤 생생한 목소리를 현장에서 들으며 현장 취재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베이징에선 온종일 중국어 신문과 뉴스사이트, 중국 방송을 보며 국내외 기사를 모두 보려면 시간은 늘 모자라고, 늘 뭔가 놓친다. 게다가 혼자다. ‘베이징지국장’ 직함은 거창하지만 사실 지국엔 나뿐이다. 중국도 각종 기자 브리핑과 초청행사가 있지만, 몸이 하나뿐이라 여의치 않다. 한국 기자 다수가 비슷한 상황이다. 베이징 한국대사관에는 등록된 26개 매체(36명) 가운데, 5곳 외에는 모두 ‘1인지국’ 체제다. 게다가 많은 이들은 집이 사무실을 겸하는 ‘재택근무’여서, 일 많은 날엔 온종일 집에서 한 발짝도 못 나오기 일쑤다. 자녀 교육이나 생활 편의 등의 이유로 베이징의 한인 밀집지역 왕징에 거주하는 한국 기자들은 스스로 ‘왕징 글 감옥’이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왕징에 앉아 중국 전체 기사를 다루는 ‘왕징의 현인’이라며 낄낄대기도 한다.

5월27일

송중기씨가 출연한 중국판 런닝맨 <달려라 황제 - 서울편>이 방송된다. 송씨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중국 대륙의 연인이 됐고, 누구나 ‘태후’를 이야기한다. 한국 가수와 한국 방송의 오락 프로그램은 이미 중국 대중문화의 한 장르가 됐다. 말끝마다 ‘스미다’(思密達, ‘-습니다’를 본뜬 표기)를 붙이는 엉터리 한국어는 중국인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느닷없이 ‘오빠’라고 불러놓고 “‘오빠’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 아저씨도 있었다.

베이징/글·사진 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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