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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2.19 19:29 수정 : 2016.02.20 16:23

시니어보안관의 업무도 일반 지하철 보안관의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승객의 안전을 살피고, 불법 전단지를 수거하거나 이동상인(잡상인)을 단속한다. 14일 오후 서울 지하철 7호선 열차 안에서 이경영(왼쪽)씨와 최정진(오른쪽)씨가 순찰을 돌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시니어보안관으로서 일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르포
지하철 시니어보안관의 하루

▶ 아직 백세도 안 됐는데 저승사자가 자꾸 데리러 옵니다. 저승사자에게 노래를 불러줍니다. ‘아직은 쓸 만해서 못간다고 전해라.’ 최근 유행한 이애란의 노래 ‘백세 인생’ 가사입니다. 노인들은 아직 일하고 싶은데 사회는 자꾸 회사에 더는 나오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변화의 조짐도 보입니다. 서울도시철도공사가 60살 이상 노인들로만 구성된 ‘시니어보안관’을 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노인들은 어떤 반응일까요. 백세 시대의 변화하는 현장을 찾아가보았습니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 지하철 6호선과 7호선 환승역인 태릉입구역 승강장으로 육중한 몸집의 전동차가 무거운 쇳소리를 질질 끌며 들어온다. 문이 열리고 승강장에 서 있던 무표정한 승객들이 전동차에 오르면 문이 닫힌다. 전동차는 승강장을 빠져나간다. 13일 오후는 토요일이었지만 지하철은 평일처럼 특유의 무표정함을 잃지 않았다.

이경영(69)씨는 머리가 희끗희끗하지만 몸매는 젊은이처럼 군살 하나 없이 날렵하다. 그 옆을 동료 최정진(70)씨가 함께 섰다. 칠순의 최씨 역시 몸이 다부지다. 이들도 태릉입구역 승강장에서 열차에 올랐다. 스마트폰을 향해 고개를 숙인 얼굴 없는 승객들 사이를 뚜벅뚜벅 걸어다닌다. 이씨와 최씨는 두툼하게 부푼 회색빛의 잠바를 입었다. ‘시니어보안관’이라는 글자가 잠바 뒤편에 선명하게 써 있다. 열차 끝마다 붙어 있는 노약자 배려석을 지나자 노인들이 이씨와 최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수군거린다. “노인들이 이런 일도 하네?”

시급 7200원의 행복, 출퇴근의 즐거움

‘노인들이 이런 일을 시작한 건’ 두달 전부터다. 지난해 12월부터 서울시도시철도공사(5, 6, 7, 8호선)는 만 60살 이상으로 구성된 시니어보안관을 채용해 운용중이다. ‘몇살 이하까지만 지원 가능하다’는 제약이 없다. 신체만 건강하다면 누구나 일하게 한다. 현재 31명이 근무중이다. 이달 중 49명을 더 뽑아 총 80명으로 시니어보안관을 운용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기존에도 도시철도공사에는 지하철 보안관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주말 근무까지 담당하며 업무 피로도가 증가하자 상대적으로 승객이 적은 주말에는 시니어보안관을 투입하고 기존의 인력은 평일을 맡는다. 철도 보안을 강화하고 노인 일자리도 창출하고, 평일 보안관의 업무 효율도 높이는 등 여러모로 긍정적인 효과가 많다는 게 도시철도공사의 분석이다.

“정년 은퇴한 뒤 집에서 연금 받고 놀면 좋을 것 같죠? 전혀 안 그래요. 고통이야.” 이경영씨가 시니어보안관 일을 계기로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며 웃어 보였다. 돈을 다시 벌게 된 것이다. 이씨는 10여년 전 공기업에서 일하다 퇴직한 뒤 일정한 소득이 없었다. 이제는 시급 7200원의 노동을 한다. 하루 8시간 주말 이틀만 근무해 한달에 약 46만원을 번다. 돈을 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고정적인 시간에 출퇴근하는 즐거움을 다시 찾게 된 것이 이씨의 가장 큰 소득이다. 몸을 계속 움직이며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노동은 어쩌면 삶의 자존감이다. 다만 6개월 임시직이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13일 오후 1시 이경영씨와 그의 동료 최정진, 김동윤(68)씨가 오전 근무를 마친 뒤 태릉입구역 역무실 소파에 앉아 쉬고 있었다. 김씨는 나이에 비해 피부가 젊은 사람처럼 깨끗했다. “직장 그만두고 먹고 노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술 먹는 기회만 늘어요. 건강도 안 좋아지고.” 김씨 역시 시니어보안관 일이 행복해 보였다.

시니어보안관이 하는 일은 주로 열차 내 순찰이다. 이동상인(잡상인)을 단속하고 승객이 불편을 겪는 일들을 찾아내어 역무실에 신고한다. 승객이 두고 내린 물건을 수거해 분실물센터에도 맡긴다. 종착역에 입고되는 열차에 올라 취객들을 내리게 하는 일도 이들의 주요 업무다. 사실상 하루 종일 걸어다니는 업무다.

‘나이도 있는데 일하다 힘들 때는 없느냐’고 묻자 최씨가 말했다. “가끔 열차 안에서 흉기 난동 부리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일 맞닥뜨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한 적은 있어요. 우리가 솔직히 나이도 있고 유단자도 아닌데 승객들은 우리만 바라보고 있을 거잖아요.” 이들을 관리하는 도시철도공사 이종암 과장이 마침 그 이야기를 듣더니 조언을 한다. “어르신. 그럴 때는 직접 대응하시는 게 아니라 경찰에 빨리 연락을 취하시면 됩니다.” 노인이 젊은이처럼 힘을 쓸 필요는 없다. 대신 노인에게는 경험과 연륜에서 나오는 대처방법과 지혜가 있다. 시니어보안관만의 역할이다.

오후 2시께 이들은 다시 순찰 활동에 나섰다. 이씨와 최씨가 오늘 한 조다. 7호선 면목역과 노원역 구간의 열차를 오가며 이곳저곳을 살핀다. 태릉입구역 상행선 승강장의 한 스크린도어에서 ‘딱’ 하는 소리가 났다. “어? 이게 무슨 소리지?” 이씨와 최씨가 두리번거리며 소리가 난 쪽으로 급히 걸어갔다. “가끔 스크린도어에서 사고가 나거든요. 승객의 가방이 걸릴 수도 있고 스크린도어가 완전히 열리지 않았는데 승객이 무리하게 탑승하려다 부딪히기도 하고요.” 다행히 별일은 없었다. 이씨는 승강장 곳곳에 떨어진 휴지를 주워가며 계속 걸었다. ‘5-1’이라고 적힌 스크린도어 앞에 붙은 지하철 노선도에 검은색 펜으로 누군가 낙서를 해놓은 것이 발견됐다. 노선도를 교체해야 한다. 최씨가 승강장 벽에 걸려 있는 비상인터폰으로 신고했다.

곧 열차에 올라탔다. 주말이라 번잡하지 않았다. 이씨와 최씨도 그저 조용히 열차 끝에서 끝까지 걸은 뒤 하차하고 이어 뒤따라온 다른 열차를 갈아타고 곳곳을 순찰한 뒤 내리고를 반복했다. 오후 2시45분께 열차는 상봉역을 향해 가고 있었다. 작은 손수레를 끌고다니는 이동상인이 발견됐다. 그는 접착 파스를 파는 상인이다. 열차 내 물건 판매는 철도안전법상 금지행위이고 걸리면 과태료 대상이다. 이씨와 최씨는 이동상인을 제지하고 열차에서 내리게 했다. 60대 이동상인의 표정이 좋지 않다.

갈수록 심화되는 고령화시대 맞춰
5·6·7·8호선 서울도시철도
60살 이상 시니어보안관들이
승객 적은 주말 열차 안팎 누벼
업무 질 높이고 노인일자리 창출

흉기난동 벌어지면 어쩌냐고?
젊은이처럼 힘을 쓸 필요 없다
경찰에 빨리 연락 취하면 된다
노인에겐 경험과 연륜에서
나오는 대처방법과 지혜가 있다

이동상인은 “거, 너무하네”

“사진 찍을 테면 찍어보시우. 나는 열번 딱지 끊어도 계속할 거예요. 젊은 보안관들도 이렇게까지는 안 하는데 시니어보안관이 거 너무하네. 같이 나이 먹는 사람들끼리….” 젊은 보안관이건 시니어보안관이건 대응방식은 같다. “열차가 혼잡할 때 이렇게 다니시면 승객이 위험해서 그래요.” 최씨가 마지못해 이동상인에게 짧은 설명을 했다. “네네. 연세도 있으신데 고생이 많으십니다.” 비아냥인지 격려인지 알 수 없는 상인의 대답에 최씨는 더 대꾸를 하지 않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데 이날 과태료까지 내게 된 이동상인의 처지를 모르지 않는다. 6개월 임시직이나마 시니어보안관 일자리를 찾기 전까지는 ‘빈곤한 노인의 삶’은 이들에게도 눈앞에 닥친 현실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릴 때 보니까 장애인카드로 찍고 나가더라고요. 단속하는 저희도 마음은 아프죠. 아무래도 생계형 상인일 텐데.” 이씨는 그러나 이날 원칙대로 처리했다. 이동상인의 신원을 파악한 뒤 역 바깥으로 내보냈다. 그가 다시 역사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동안 상봉역 입구에서 감시를 하다 자리를 떴다.

상봉역 안으로 들어오자 승강장 안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시니어보안관을 보고 신기한 듯 “시니어보안관이다!” 하고 외쳤다. 아이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성이 “어르신 보안관이야. 지하철을 지켜주시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씨에게도 저만한 나이의 손주가 있을 것이다. 이씨는 아이의 모습이 귀여운 듯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넸다. 시니어(senior)는 단순히 나이가 많음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다. 사회적 선임이나 선배를 지칭할 때도 쓴다.

‘시니어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70대 안팎의 사람들은 어떤 시대를 겪어왔을까. 20대에 박정희 시대 산업화, 30대에 전두환 정권의 독재, 40대에 민주화와 고도성장을 경험하다가 50대에 아이엠에프(IMF) 시대를 감내했을 것이다. 60대에 2000년대를 보내고 직장에서 은퇴한 뒤 이제 더는 번듯한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진 이들이 바로 이경영씨와 같은 세대일 것이다. 평생 열심히 일하며 우리 사회의 고도성장을 이끌었지만 이들의 노후는 젊은 시절 꿈꾸었던 것처럼 풍요롭지만은 않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면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힌다. 복지나 사회 안전망이 턱없이 부족하다. 통계청의 고령화 관련 자료를 보면, 고령층(65살 이상) 10명 중 6명은 노후 소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연금을 전혀 못 받고 있다. 2014년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 공적연금을 받는 고령자는 총 253만1000명으로 전체 고령인구의 39.6%에 불과하다.

‘백세 인생’이라는 노래가 최근 유행했다. 팔십세, 구십세, 백세가 되어도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 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고 하는 재미있는 노랫말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여전히 일할 수 있는 나이인데 자꾸 사회에서 은퇴 압력에 시달려야 하는 노인들에게도 백세 인생 노랫말은 가볍게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원광대 장수과학연구소의 발표 내용을 보면, 65살 이상 노인이 100살까지 사는 비율은 1000명당 16명꼴이다.

노원역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이씨가 최씨에게 조용히 물었다. “우리가 정말 백세까지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제일 중요한 게 건강이야. 돈 필요 없어. 그러니까 건강하자고. 많이 웃어야 건강하대.” 이들만큼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한 노인이 시니어보안관 옷차림을 발견하곤 다가와 “이 열차를 타면 군자(역)로 가나요?”라고 물었다. 열차가 도착했고 이들의 순찰도 계속됐다. 노약자석에 앉은 이들의 눈길이 시니어보안관의 발걸음에 닿는 게 최씨에게도 느껴진다. “우리도 이 일 하기 전에는 노약자석에 앉아만 있던 노인이었어요. 이젠 이 나이에도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아마 저분들도 우리가 신기해서 쳐다보는 것 같아요.”

오후 3시39분께 도봉산행 열차에 탑승하자 곳곳에 ‘못 받은 돈 받아드립니다’라고 적힌 손바닥만한 크기의 전단지가 지하철 광고판 틈 사이마다 꽂혀 있었다. 이씨와 최씨는 걸어가며 전단지를 모두 수거했다. 열차 칸마다 꽂혀 있던 전단지가 어느 칸부터는 갑자기 사라져 있었다. 보안관이 나타나자 배포를 중단하고 승객처럼 위장해 급히 좌석에 앉아버린 것 같다고 이씨가 말했다.

‘백세시대’를 위하여

오후 5시가 다 되어가자 이들은 퇴근 준비를 하기 위해 다시 태릉입구역 역무실로 돌아왔다. 최씨가 모자를 벗자 듬성듬성 난 머리칼 사이로 땀이 흥건하다. 하루 종일 걸어다니는 것도 만만치 않은 운동이다. “처음에는 퇴근할 때 어질어질할 정도로 피곤하고 다리가 아프더라고요. 하지만 이제 적응돼서 괜찮아요.” 최씨가 정수기에서 떠온 물을 한 움큼 마셨다.

그는 시니어보안관과 같은 일자리가 많아졌으면 하는 게 소망이다. “노인 일자리를 만들면 젊은 사람들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오해하면 안 돼요. 젊은 사람들이 다 채우지 못하는 빈틈을 메우는 그런 노인 일자리를 만드는 거지요. 도시철도공사가 만든 시니어보안관이 그런 자리지요. 이런 게 창조경제지 별거 있겠습니까.”

시니어보안관들은 퇴근하기 전 오늘의 근무일지를 확인하고 이동상인 단속 사진을 스마트폰을 꺼내 카카오톡으로 관리자에게 전송했다. 이제 퇴근하면 뭐 할 거냐고 묻자 이씨와 최씨, 그리고 김동윤씨가 각자 대답했다. “이제 체육관 가서 운동해야죠. 저는 요즘 보디빌딩을 합니다.” “저는 대포 한잔 하러 갈 거예요.” “저는 테니스 치러 가요. 80세 된 분들도 테니스 쳐요. 나이 먹으면 집에만 있을 거라는 건 편견입니다.”

시장형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 등은 최근 노인일자리 개발에 한창이다. 한국도로공사는 고객접점 지역에 시니어 사원을 배치해 환경정비 일을 맡기고 있고 엘에이치(LH)공사는 관리사무소에 시니어 사원을 보내 시설물과 안전점검을 맡기고 있다. 강원랜드는 벽화거리 조성 사업에 시니어 사원들을 활용한 바 있다. 백세시대를 맞아 변화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또다른 풍경이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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