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광장 광화문. 이순신 동상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대기업과 언론사들, 공연장이 늘어서 있다. 이순신 동상을 지나 경복궁 쪽으로 향하면 청와대로 가는 길이다. 최고의 권력 가까이 자리한, 그러나 머나먼 광장이다. 지난 9일 저녁 광화문 광장의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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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르포
박유리의 서울, 공간 ⑥ 대한민국 광장 광화문
▶ 광장은 언어가 쏟아지는 공간입니다. 광장은 세탁되지도, 다듬어지지도 않은 언어를 받아들이는 테두리입니다. 언어는 광장을 넓히기도 축소하기도 하는, 떠도는 말들의 혼입니다. 언어는 광장 안에 쌓인 고체 덩어리들이 아닙니다. 언어는 광장의 본질이며 질료입니다. 그래서 광장의 언어일 수도, 언어의 광장이라 부를 수도 있을 테지요.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걷어내면 들리지 않는 것들이 들린답니다. 벽보에서, 하늘에 걸린 펼침막에서, 바닥에서 언어가 싸우고 노래합니다.
이순신 동상 양옆으로 흐트러짐 없이 뻗은 왕복 12차선으로 자동차 바퀴가 굴러간다. 일요일인 지난 6일 오전 11시. 이순신 동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한 세종문화회관과 교보빌딩 앞으로 무표정한 얼굴들이 지나간다. 하루 전 오만여명의 분노, 절망, 조롱, 규탄, 함성, 절규, 탄식, 비통, 슬픔, 야유가 떨어진 광화문 길을 밟고 지나간다. 전날 2차 민중총궐기 집회가 열린 여기에서, 분노의 언어가 불붙어 광화문 대로에서 시청으로, 서울대병원으로 번졌다. “평생 비정규직 만드는 노동개악 분쇄하자!” “노동개혁은 노동자 삶을 짓밟는 노동개악임을 압니다!” “공정보도 쟁취하자! 공정보도 쟁취하자!” “서울대병원에서 백남기 어르신이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백남기 농민을 쓰러뜨린 박근혜 정부, 비판합니다.” “국가 폭력 중단하라! 국가 폭력 중단하라! 와아아아아!” “대통령은 사과하라! 대통령은 사과하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들 누가 믿겠습니까?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분노의 언어가 땅에 떨어진다. 광화문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시민들이 행진 대열을 이루며 걸어갈 때 언어는 길을 따라 활활 타올라 잿빛 연기처럼 하늘로 올라갔다. 공기로 흩어진 화난 언어는 검고도 무거운 구름이 되어 하늘을 떠돌다 눈물로 떨어졌다. “정부는 고용 활성화를 위해 35세 이상 기간제 노동자 사용 기한을 4년으로 연장해야 한다고 합니다. 고용주가 4년간 마음껏 비정규직 쓰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고용 활성화 법입니까?” 사람들은 축축한 말의 눈물을 밟으며 걸어나갔다.
일요일 오전 광화문
언제 그러했냐는 듯이. 그런 일이 있긴 했냐는 듯이. 다음날 광화문은 말간 얼굴을 하고 있다. 일요일 오전이라 사람도, 차량도 적다. 고요하다. 직장인들이 출근하는 광화문의 평일은 다시 언어의 광장이다. 일상을 뚫고 어떤 언어가 새어나온다. 암호처럼 이해할 수 없는 언어, 듣기 귀찮은 언어, 외면하고 싶은 언어, 소음 같은 언어, 침묵하는 언어들이다. 누군가 손글씨로 써서 버스정류장에 붙은 종이, 나무 사이에 걸린 현수막, 거리에 튀어나온 입간판, 건물 옥상에 붙은 전광판, 호소하고 규탄하는 사람들의 몸이다.
화요일인 8일 지하철 광화문역에서 구세군 종소리가 울린다. 헐거운 수도꼭지에서 새는 물방울처럼 같은 간격으로 종이 울린다. 지하철 개찰구를 빠져나와 또각또각 걸어가는 구두 소리는 지상보다 더 크게 울린다. 구두 소리 사이로 벽보에 붙은 대자보, 현수막이 조그맣게 입을 열어 중얼거린다. 언어는 귀로 전달되지 않고 지하철 바닥에 툭 떨어졌다. 구두 굽들이 언어를 밟는다.
“통화기록에 아들이 있다고 부양의무자라는 거예요. 이혼한 지 20년이 넘어서 해준 것도 없는 자식인데. 아들한테 담당 공무원이 전화해서 네가 부양의무자라고 했대요. 아들이 이제 전화를 안 받는대요. 나를 더 미워할 것 같아요. 나를 더 미워할 것 같아요.”
암 투병 중에 수급 신청을 한 50대 독신 여성이 수술 전 관계가 끊어진 아들을 보려고 전화했는데 자녀와의 통화기록이 남아 수급 신청을 거절당했다고 했다. 벽에 붙은 종이 위의 다른 입들도 저마다 다른 목소리로 말했다.
“함께 살아요, 우리.”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했으나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수급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소득이 많아서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수입은 200만원으로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1학년 두 자녀를 키우고 경기도 광명에 5500만원 전셋집에 사는 형편으로 생활하기도 빠듯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손녀딸들과 같이 방을 쓰는 것도 아들 부양을 받는 것도 부담스러워 친구 집에 가 있겠다고 3년 전 집을 나와 갈 곳이 없어 노숙생활을 1년 반 동안 하였습니다.”
“23년 동안 부모님을 만난 적도 연락이 된 적도 없었습니다. 여섯살에 시설로 보내지면서 부모님이 그곳에 버린 것입니다. 지금까지 연락도 안 되는 부모님 때문에 저는 수급권자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종이 위의 입들이 저마다의 소리로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종은 끝없이 울리고 사람들은 또각또각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낸다. 지하철 5번 출구로 빠져나오면 동아일보가 보인다. 투명한 유리건물 밖으로 채널에이(A) 방송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광화문 사거리에선 청년 두 명이 전단지를 내민다. 받지 않고 거절하는 사람도, 받는다 한들 손에 쥐기만 한다. 보지 않는다. “사시 폐지 4년 유예는 청년들과의 약속을 유예하는 것입니다.” 로스쿨 학생들의 입장을 쓴 전단지였다.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11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경찰이 차벽을 치고 시민들의 집회 참여를 막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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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총궐기 일어난 광화문
분노한 언어 들불처럼 타오른다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 수 없다”
“국가폭력 중단! 대통령 사과하라” 12차선 대로에 자동차가 달리는
평일 광화문에서도 언어는
일상을 뚫고 나와 규탄하고
화내며 광장에서 치고받는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을 뿐이다 비틀거리는, 웅변하는, 소리치는 벽보들 같은 자리에서 조끼를 입은 노인은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뀔 때마다 건너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외쳤다. “크리스마스가 데이트하는 날이 아닙니다.” 드르릉드르릉, 왕복 12차선을 일제히 달리는 육중한 자동차들과 아스팔트가 마찰하는 소리들, 덜컹거리는 차 기계 소리,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나는 소리에 휩싸여 노인의 말은 굉음 속에 기어 나오다 말았다. “남에게 좀 나눠줘봐. 인생 살아봐. (무어라 했지만 차 지나가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요즘 사람들 너무너무 한가해.” ‘하나님 이 나라 불쌍히 여기소서.’ 노인의 노란 조끼에 적힌 글자가 말했다. 같은 자리에 검은 모자를 쓴 한 남자는 흰 피켓을 들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피켓은 말이 짧았다. 단호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남자는 표정도 움직임도 없었다. 남자의 등 뒤로 경찰관 한 명이 서 있었다. 광화문 한복판 광장에 노란 리본들이 바람에 분다. ‘사람과 증거가 바닷속에 있습니다.’ ‘아직도 세월호에는 국민이 있습니다.’ ‘팽목항에 아직 기다림이 있습니다.’ 노란 리본 밑에 걸린 팻말이 애처로이 말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숨진 단원고 학생들. 학생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 찍었던 단체사진도 광장에 걸렸다. 손으로 브이(v) 모양, 하트 모양을 그린 환한 얼굴이다. 동화면세점 앞에 걸린 입간판에서 일그러진 얼굴의 해고자들이 소리쳤다. “흑자 해고, 공장 폐쇄. 대만 기업에는 대한민국이 호구인가.” “노숙투쟁 195일차, 먹튀 대만 그룹과 한국 정부에 요구합니다.” “1000억의 흑자를 내고 공장 폐쇄와 정리해고를 강행했습니다.” “돈 안 되는 사람은 버리고 돈 되는 특허기술만 먹고 튀려 합니다.” “죽고 싶습니다. 정말 죽겠습니다. 나라가 지켜주지 못하고 외면한 우리는 해고자입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저희를 살릴 수 있습니다.” 해고자들의 입간판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사람들이 줄을 서 버스를 기다린다. 외침은 버스정류장까지 닫지 못했다. 대만 기업에서 해고됐다는 노동자들의 낮은 목소리 옆으로 감사의 웅변이 반복됐다. 위대한 대한민국의 역사, 이를 도운 미국을 드높였다. “4대 개혁으로 위대한 대한민국을! ‘생명을 향한 6·25전쟁 사진전’은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이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을 물리치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틀을 다질 수 있게 도와준 67개국 정부와 국민께 감사와 존경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이 사진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독립과 국민들의 자유를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한 유엔, 특히 미국의 인류애에 대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6·25전쟁으로 완전히 초토화되었던 대한민국. 그러나 온 국민이 똘똘 뭉쳐 오늘날의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지난 8일 퇴근 시간대인 오후 6시, 사람들이 지하철 광화문 역사에서 각종 사진과 글이 붙은 벽을 스쳐 지나가고 있다. 박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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