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12.11 19:37 수정 : 2015.12.12 11:04

대한민국 광장 광화문. 이순신 동상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대기업과 언론사들, 공연장이 늘어서 있다. 이순신 동상을 지나 경복궁 쪽으로 향하면 청와대로 가는 길이다. 최고의 권력 가까이 자리한, 그러나 머나먼 광장이다. 지난 9일 저녁 광화문 광장의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르포
박유리의 서울, 공간 ⑥ 대한민국 광장 광화문

▶ 광장은 언어가 쏟아지는 공간입니다. 광장은 세탁되지도, 다듬어지지도 않은 언어를 받아들이는 테두리입니다. 언어는 광장을 넓히기도 축소하기도 하는, 떠도는 말들의 혼입니다. 언어는 광장 안에 쌓인 고체 덩어리들이 아닙니다. 언어는 광장의 본질이며 질료입니다. 그래서 광장의 언어일 수도, 언어의 광장이라 부를 수도 있을 테지요.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걷어내면 들리지 않는 것들이 들린답니다. 벽보에서, 하늘에 걸린 펼침막에서, 바닥에서 언어가 싸우고 노래합니다.

이순신 동상 양옆으로 흐트러짐 없이 뻗은 왕복 12차선으로 자동차 바퀴가 굴러간다. 일요일인 지난 6일 오전 11시. 이순신 동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한 세종문화회관과 교보빌딩 앞으로 무표정한 얼굴들이 지나간다. 하루 전 오만여명의 분노, 절망, 조롱, 규탄, 함성, 절규, 탄식, 비통, 슬픔, 야유가 떨어진 광화문 길을 밟고 지나간다. 전날 2차 민중총궐기 집회가 열린 여기에서, 분노의 언어가 불붙어 광화문 대로에서 시청으로, 서울대병원으로 번졌다. “평생 비정규직 만드는 노동개악 분쇄하자!” “노동개혁은 노동자 삶을 짓밟는 노동개악임을 압니다!” “공정보도 쟁취하자! 공정보도 쟁취하자!” “서울대병원에서 백남기 어르신이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백남기 농민을 쓰러뜨린 박근혜 정부, 비판합니다.” “국가 폭력 중단하라! 국가 폭력 중단하라! 와아아아아!” “대통령은 사과하라! 대통령은 사과하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들 누가 믿겠습니까?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분노의 언어가 땅에 떨어진다. 광화문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시민들이 행진 대열을 이루며 걸어갈 때 언어는 길을 따라 활활 타올라 잿빛 연기처럼 하늘로 올라갔다. 공기로 흩어진 화난 언어는 검고도 무거운 구름이 되어 하늘을 떠돌다 눈물로 떨어졌다. “정부는 고용 활성화를 위해 35세 이상 기간제 노동자 사용 기한을 4년으로 연장해야 한다고 합니다. 고용주가 4년간 마음껏 비정규직 쓰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고용 활성화 법입니까?” 사람들은 축축한 말의 눈물을 밟으며 걸어나갔다.

일요일 오전 광화문

언제 그러했냐는 듯이. 그런 일이 있긴 했냐는 듯이. 다음날 광화문은 말간 얼굴을 하고 있다. 일요일 오전이라 사람도, 차량도 적다. 고요하다. 직장인들이 출근하는 광화문의 평일은 다시 언어의 광장이다. 일상을 뚫고 어떤 언어가 새어나온다. 암호처럼 이해할 수 없는 언어, 듣기 귀찮은 언어, 외면하고 싶은 언어, 소음 같은 언어, 침묵하는 언어들이다. 누군가 손글씨로 써서 버스정류장에 붙은 종이, 나무 사이에 걸린 현수막, 거리에 튀어나온 입간판, 건물 옥상에 붙은 전광판, 호소하고 규탄하는 사람들의 몸이다.

화요일인 8일 지하철 광화문역에서 구세군 종소리가 울린다. 헐거운 수도꼭지에서 새는 물방울처럼 같은 간격으로 종이 울린다. 지하철 개찰구를 빠져나와 또각또각 걸어가는 구두 소리는 지상보다 더 크게 울린다. 구두 소리 사이로 벽보에 붙은 대자보, 현수막이 조그맣게 입을 열어 중얼거린다. 언어는 귀로 전달되지 않고 지하철 바닥에 툭 떨어졌다. 구두 굽들이 언어를 밟는다.

“통화기록에 아들이 있다고 부양의무자라는 거예요. 이혼한 지 20년이 넘어서 해준 것도 없는 자식인데. 아들한테 담당 공무원이 전화해서 네가 부양의무자라고 했대요. 아들이 이제 전화를 안 받는대요. 나를 더 미워할 것 같아요. 나를 더 미워할 것 같아요.”

암 투병 중에 수급 신청을 한 50대 독신 여성이 수술 전 관계가 끊어진 아들을 보려고 전화했는데 자녀와의 통화기록이 남아 수급 신청을 거절당했다고 했다. 벽에 붙은 종이 위의 다른 입들도 저마다 다른 목소리로 말했다.

“함께 살아요, 우리.”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했으나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수급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소득이 많아서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수입은 200만원으로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1학년 두 자녀를 키우고 경기도 광명에 5500만원 전셋집에 사는 형편으로 생활하기도 빠듯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손녀딸들과 같이 방을 쓰는 것도 아들 부양을 받는 것도 부담스러워 친구 집에 가 있겠다고 3년 전 집을 나와 갈 곳이 없어 노숙생활을 1년 반 동안 하였습니다.”

“23년 동안 부모님을 만난 적도 연락이 된 적도 없었습니다. 여섯살에 시설로 보내지면서 부모님이 그곳에 버린 것입니다. 지금까지 연락도 안 되는 부모님 때문에 저는 수급권자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종이 위의 입들이 저마다의 소리로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종은 끝없이 울리고 사람들은 또각또각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낸다. 지하철 5번 출구로 빠져나오면 동아일보가 보인다. 투명한 유리건물 밖으로 채널에이(A) 방송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광화문 사거리에선 청년 두 명이 전단지를 내민다. 받지 않고 거절하는 사람도, 받는다 한들 손에 쥐기만 한다. 보지 않는다. “사시 폐지 4년 유예는 청년들과의 약속을 유예하는 것입니다.” 로스쿨 학생들의 입장을 쓴 전단지였다.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11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경찰이 차벽을 치고 시민들의 집회 참여를 막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11월14일, 12월5일 두차례
민중총궐기 일어난 광화문
분노한 언어 들불처럼 타오른다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 수 없다”
“국가폭력 중단! 대통령 사과하라”

12차선 대로에 자동차가 달리는
평일 광화문에서도 언어는
일상을 뚫고 나와 규탄하고
화내며 광장에서 치고받는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을 뿐이다

비틀거리는, 웅변하는, 소리치는 벽보들

같은 자리에서 조끼를 입은 노인은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뀔 때마다 건너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외쳤다. “크리스마스가 데이트하는 날이 아닙니다.” 드르릉드르릉, 왕복 12차선을 일제히 달리는 육중한 자동차들과 아스팔트가 마찰하는 소리들, 덜컹거리는 차 기계 소리,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나는 소리에 휩싸여 노인의 말은 굉음 속에 기어 나오다 말았다. “남에게 좀 나눠줘봐. 인생 살아봐. (무어라 했지만 차 지나가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요즘 사람들 너무너무 한가해.” ‘하나님 이 나라 불쌍히 여기소서.’ 노인의 노란 조끼에 적힌 글자가 말했다. 같은 자리에 검은 모자를 쓴 한 남자는 흰 피켓을 들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피켓은 말이 짧았다. 단호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남자는 표정도 움직임도 없었다. 남자의 등 뒤로 경찰관 한 명이 서 있었다.

광화문 한복판 광장에 노란 리본들이 바람에 분다. ‘사람과 증거가 바닷속에 있습니다.’ ‘아직도 세월호에는 국민이 있습니다.’ ‘팽목항에 아직 기다림이 있습니다.’ 노란 리본 밑에 걸린 팻말이 애처로이 말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숨진 단원고 학생들. 학생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 찍었던 단체사진도 광장에 걸렸다. 손으로 브이(v) 모양, 하트 모양을 그린 환한 얼굴이다.

동화면세점 앞에 걸린 입간판에서 일그러진 얼굴의 해고자들이 소리쳤다. “흑자 해고, 공장 폐쇄. 대만 기업에는 대한민국이 호구인가.” “노숙투쟁 195일차, 먹튀 대만 그룹과 한국 정부에 요구합니다.” “1000억의 흑자를 내고 공장 폐쇄와 정리해고를 강행했습니다.” “돈 안 되는 사람은 버리고 돈 되는 특허기술만 먹고 튀려 합니다.” “죽고 싶습니다. 정말 죽겠습니다. 나라가 지켜주지 못하고 외면한 우리는 해고자입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저희를 살릴 수 있습니다.” 해고자들의 입간판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사람들이 줄을 서 버스를 기다린다. 외침은 버스정류장까지 닫지 못했다.

대만 기업에서 해고됐다는 노동자들의 낮은 목소리 옆으로 감사의 웅변이 반복됐다. 위대한 대한민국의 역사, 이를 도운 미국을 드높였다. “4대 개혁으로 위대한 대한민국을! ‘생명을 향한 6·25전쟁 사진전’은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이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을 물리치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틀을 다질 수 있게 도와준 67개국 정부와 국민께 감사와 존경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이 사진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독립과 국민들의 자유를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한 유엔, 특히 미국의 인류애에 대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6·25전쟁으로 완전히 초토화되었던 대한민국. 그러나 온 국민이 똘똘 뭉쳐 오늘날의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지난 8일 퇴근 시간대인 오후 6시, 사람들이 지하철 광화문 역사에서 각종 사진과 글이 붙은 벽을 스쳐 지나가고 있다. 박유리 기자
광화문 우체국 맞은편에선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지나가는 이들에게 지구를 살리자고 설득했다. 자동차 바퀴가 굴러가는 사이로 환경단체 소속 직원은 환경에 관심을 가지자고 말했다. “지구가 더워져서 얼음이 녹고 있는데 곰들이 떠돌아다니거나 탈진하는 경우가 있어요. 얼음이 녹는데 천연자원을 각 기업에서 개발해서 오염이 되고 있는데요. 바로 석유 시추 문제가 있어요. ‘셸’이라는 석유회사가 활발하게 석유를 채취하는데, 너무 광범위하게 했어요. 실제 시추는 채산성이 높은 곳에서만 하고 나머지 뚫어놓은 부분으로 원유가 새어나오고 있어요. 검은 바다가 되었어요. 기름은 물 위에 뜨니 얼음과 섞이지 않고 기름 제거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북극에 환경 파괴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도와달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셸이라는 회사는 시민분들의 힘으로 북극에서 올해 철수했습니다. 남극처럼 북극도 국제보호구역으로 유엔에서 묶어 보호하자고 시민분들에게 알려 드려요. 참여 요청을 부탁드려요.” 그린피스 직원 뒤로 애국당 창당을 알리는 소리가 바람에 펄럭인다. ‘이승만의 자유정신과 박정희의 자주정신을 승계 발전시키겠습니다.’

광화문에서 시청 방향으로 가는 중간에 프레스센터가, 프레스센터 앞에는 버스정류장이 있다. 손글씨로 빼곡하게 쓴 종이 두 장이 버스정류장 유리 벽면에 붙어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횡설수설한다. 단어들의 조합이었을 뿐, 똑같은 말을 되풀이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가 그깟 댓글 200만개에 감동받아 박근혜 대통령을 찍은 줄 아십니까. 자꾸 댓글로 대선 불복의 모습 보이시는데 그럼 교사들이 술집에서 술 마실 때 자신의 제자들에게 누구를 찍으면 독재정치가 되니 부모님께 누구 찍어라 말하는 것과 교회에서 예배당 안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떻게 아느냐. (…) 윗글 4편이, 제가 전파 고문을 받은 이유입니다. 위의 글 4장은 전부 다 무기명으로 돌렸는데 무기명 때문에 죽이는 거랍니다.”

언어의 재를 밟고 지나가는 행진

시청광장으로 걸어갔다. 전날 사람 5만여명의 함성이 떨어진 바닥은 스케이트장 공사로 덮여 있었다. 우리카드 홍보 광고판이 붙은 공사현장은 곧 스케이트장이 될 것이다. 쏟아낸 분노의 언어 위로 아이와 엄마, 연인과 친구들이 씽씽 얼음을 가르며 웃을 것이다. 서울시청 앞으로 거리에 빈 의자가 하나 놓였다. 주인 없는 의자 옆으로 태극기 깃발 하나 꽂혔다. ‘대한민국 영토 대마도 반환하라.’ 깃발 위의 글자가 말했다. 서울시청 문 앞에는 동성애 축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겨울 파카를 입은 남자는 옷에 달린 모자로 머리를 가린 채 서울시청 앞에 앉아 있었다. 남자는 휴대전화만 본다. 남자 옆에 대형 입간판이 무한반복 말한다. ‘박주신(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아, 한 시간이면 되는 것을 무엇이 두려워 공개 신검을 피하는가. 박원순은 공직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

시청 맞은편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꼭대기에 두 남자가 보인다. 저 멀리 손가락 마디처럼 조그맣게 보이는 두 남자는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저들의 눈에도 시청과 광장, 광화문이 조그맣게 보일까. 두 남자는 5일 열린 제2차 민중총궐기대회 집회 때도 저 멀리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추워서 다리를 몇 번이나 털면서.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 노동자들이다. 두 남자는 입을 열어 소리 내 말하지 않았다. 아니다. 그들이 말했다. ‘기아차를 비정규직 없는 공장으로.’

인권위원회 맞은편 인도에 두 남자의 동료들이 텐트를 쳤다. 텐트 앞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글자가 적혀 있다. ‘최명정 한규협 힘내라!’ 텐트에 붙은 종이들이 말했다. ‘불법파견 10년 법원 판결 전원 승소. 불법파견 현행범 정몽구를 구속하라.’ ‘국가인권위 고공농성 181일째.’ 말들은 슬픈데 슬픔을 감추려 결연했다.

11월14일, 12월5일 두 차례 민중총궐기 집회가 열린 광화문. 집회가 없을 때도 들리지 않는 언어들은 일상을 뚫고 나와 광장에서 치고받았다. 어떤 언어는 고용자와 정부를 규탄하고, 다른 언어는 정부를 옹호했다. 신이 떠난 세상에서 신에게 돌아가라 외치고, 이해할 수 없는 단어의 조합을 쏟아내고, 저 멀리 북극곰이 사는 곳을 생각하라 하고, 가라앉는 세월호의 진실 규명을 촉구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자고 말하고, 장애인등급제와 부양의무제 철폐를 요구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광화문에도 질과 색이 다른 언어들이 대결한다. 들리지 않을 뿐이다. 벽보, 전단지, 현수막, 입간판, 거기에 가만히 서 있는 사람들의 몸에서 언어들이 추락해 광화문 거리에 떨어지면 구두 소리가 밟고 지나간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광장에 비로소 수만의 사람들이 외칠 때 언어는 바닥에 떨어져 들불이 되어 번지고 타올라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고 빗물이 되어 눈물이 되어 머리로 가슴으로 심장으로 마음으로 떨어져 적신다. 보아라. 가로막으려는 차벽 위로 언어가 피어올라 하늘로 상승하는 말의 연기를, 말의 그을음을, 말의 분노를. 재가 되어 떨어진 언어의 광장을. 재를 밟고 지나가는 행진을. 차벽처럼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르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