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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04 20:30 수정 : 2015.12.05 09:10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의 교실은 2014년 4월16일의 모습 그대로다. 이곳엔 수많은 이들의 기억과 상념들이 쌓였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르포
단원고 교실 존치 논란

▶ 별이 된 아이들의 교실. 지난해 4월16일 이후 시간이 멈춰버린 그곳에 그동안 3천명의 시민이 다녀갔다고 한다. 이들은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 저마다 상념과 슬픔, 죄책감 등을 두고 갔다. 내년에 새로 신입생을 받아야 하는 학교는 교실을 정리하려 한다. 유가족들은 교실을 그대로 남겨 참사의 교훈을 되새길 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한다. 결론은 쉬이 나지 않고 갈등만 증폭되고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을까.

아이들의 달력은 지난해 4월에 멈춰 있었다. 지난 1일 찾은 경기도 안산의 단원고 교실은 참사 뒤 595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수학여행을 떠나기 이전의 모습이었다. 시간이 멈춘 곳에서 아이들은 ‘명예’ 3학년이 됐다. 10곳의 교실에서 아이들은 떠났고,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상념, 단상들이 그 자리에 대신 남았다. 복도의 창문과 교실 문엔 온갖 글귀가 적힌 종이들이 덕지덕지 붙었다. 교실 안 아이들의 책상 위도 여러 물건들로 어지러웠다. 가득한 꽃들 사이로 책상의 주인이었던 아이의 사진이 놓였고, 인형·과자·종이학·열쇠고리 같은 물건들이 작은 책상 위에 그득했다. 쪽지나 엽서, 편지도 있었다. “언니가 항상 멀리서부터 손 흔들어주고, 밥 먹으러 갈 때 뒤에서 머리 만져주고, 울었을 때 볼 감싸주던 기억이 아직 너무 생생해요”, “복도에서 인사하면 밝게 인사해줬는데, 우리 동아리가 제일 짱이잖아요. 얼른 다시 와서 고기 먹으러 가요.”

빈 교실을 찾는 아이

각자의 기억은 어떤 순간들의 집합이다. 떠난 이와 주고받은 말들, 그의 손길, 목소리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는다. 그 잔상들이 각자의 머릿속에서 나와 이곳에 켜켜이 쌓였다. 아이들의 책상엔 각자의 이름이 적힌 푸른색 방명록이 놓여 있었다. 방명록은, 이곳을 찾은 이들이 아이들에게 말을 거는 도구다. 멀리서 이곳을 찾은, 숨진 아이들을 직접 알지 못하는 이들이 이곳에 그들의 말을 남겼다. “형이 너희들 대학 오면 해줄 말이 많았는데… 너희들을 먼저 보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리는구나”, “겪어보지 말아야 할 것을. 담배보다, 술보다, 너희가 경험해서 안 되는 일을 경험했구나.” 방명록엔 숨진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안산 ‘416기억저장소’에선 지난 2월부터 주말마다 ‘기억과 약속의 길’이란 이름의 프로그램을 통해 숨진 아이들의 교실을 둘러보고 세월호 참사를 되새기는 자리를 마련해왔다. 지금까지 3천명의 시민이 이곳을 다녀갔다고 한다.

교실 앞 반 소식을 주고받는 화이트보드엔 3반의 누군가가 잃어버린 가방을 찾고 있으니 갖다달라는 글이 그대로 남았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이 반의 당번은 9번과 10번이었던 모양이다. 교실 한쪽에 걸린 달력엔 누군가가 ‘만우절’(4월1일)에 붉은 펜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달력에 쓰인 일정대로면, 아이들은 4월15일부터 18일까지 수학여행을 떠나기로 돼 있었다. 그 여행을 무사히 다녀왔다면 그 다음주 금요일에 동아리 활동을 하고, 그 다음주 월요일에 학생회장 선거를 치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돌아올 수 없었다.

교실 안에서 건물 바깥쪽으로 향한 창문엔 걸레와 밀대가 널려 있었다. 수학여행을 가며 이렇게 널어놓았던 것인지, 최근 돌아가며 교실을 청소한다는 아이들의 부모들이 청소 뒤 널어놓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교실 칠판은 어지러웠다. 서로 다른 이들이 서로 다른 때에 서로 다른 색의 분필로 적은 글들이 칠판을 가득 메웠다. 쓰인 글 중 가장 많은 말은 ‘사랑한다’와 ‘보고 싶다’, ‘돌아오라’였다.

학교 건물은 크게 보아 좌우가 바뀐 ‘ㄷ’ 자로 지어져 있다. ‘ㄷ’ 자의 윗변에 해당하는 뒤쪽 교실은 좀더 길게 뻗어 있다. 희생된 2학년 아이들의 교실은 ‘ㄷ’ 자의 앞쪽 건물 2층과 3층에 있었다. 교실을 돌아보는 중에 쉬는 시간이 되고 점심시간이 됐다. 빈 교실과 마주한 계단과 복도로 아이들이 돌아다녔다. 옆 교실로 가자 한 여학생이 홀로 앉아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여학생은 참사 당시 2학년 4반이었던, 고 김동혁군의 여동생 예원이였다. 기자임을 밝히고 “이곳에 자주 오느냐”고 묻자 “오늘이 오빠 생일이라서요”라고 했다.

예원이는 참사가 있던 지난해 중학교 3학년이었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단원고를 지망해 올해 입학했다. 오빠 대신 단원고를 졸업하겠다며 오빠의 학생증과 자신의 학생증 두개를 늘 목에 걸고 다닌단다. 예원이는 점심시간에 숨진 오빠의 교실에 들러 생일을 맞은 오빠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사연을 기사로 써도 되겠냐고 묻자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예원이는 “전 어차피 사진 많이 나갔어요”라며 밝게 웃고 자신의 교실로 돌아갔다. 가까운 가족을 어린 나이에 잃은 경험 때문일까. 나이에 비해 의젓한 느낌이었다. 예원이의 사연은 동행한 김종천 416기억저장소 사무국장의 설명과, 단원고를 다녀온 뒤 찾아본 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 예원이는 몇 달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초중고를 다 오빠와 같은 학교에 다녔고 그래서 자주 서로의 교실을 찾아갔다고 했다. 이젠 오빠가 자신의 교실을 찾아오지 못하지만 단원고에 진학하면 자신이 오빠의 교실로 찾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예원이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살아 있을 때 오빠가 이따금 사랑한다고 해서 징그러워 피하곤 했다는데 정말 후회한다고도 했다. 이날 예원이가 오빠에게 쓴 엽서의 편지는 ‘사랑해’로 끝나 있었다. 예원이는 인터뷰에서 오빠가 있는 교실을 없애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예원이의 바람대로 교실은 그대로 남을 수 있을까.

단원고는 숨진 2학년 아이들의 교실 10개와 2학년 교무실 1개를 지금까지 그대로 보전해왔다. 올해 새로 신입생을 받았지만 3학년이 된 아이들의 수가 적어 교실이 부족하진 않았다. 문제는 내년부터다. 신입생을 받아 새로 12개 반을 편성해야 한다. 유가족들은 숨진 아이들의 교실을 그대로 둔 채 새로 교사를 증축하길 바라지만, 재학생 학부모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단원고 재학생 학부모들은 학교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명예 3학년 교실을 재학생들의 학습 공간으로 돌려달라”고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1일 찾은 경기도 안산 단원고 내 한 2학년(명예 3학년) 교실에서 이 학교 1학년 김예원양이 숨진 자신의 오빠 김동혁군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잃어버린 가방 찾아달라
당번은 9번과 10번…”
시간이 멈춘 희생자들의 교실
숨진 오빠를 기억하려 입학한
동생이 앉아 편지를 쓴다

내년 신입생 들어오기 전까지
교실 존치·이전 여부 결정해야
원형 보전 원하는 유가족과
면학 분위기 걱정하는 재학생 가족
세월호는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나

공간 분리해 별도 출입로 내는 안

학교와 경기도교육청은 난감하다. 도교육청은 지난달 13일 교실의 책걸상과 칠판, 집기, 유품 등을 학교 인근으로 옮겨 원래 교실 모습대로 재현하는 방안을 유가족 쪽에 제시했다. 내년 1월 명예졸업식 이후 안산교육지원청의 별관으로 이들 물품을 이전했다가 2년 뒤 단원고 진입로 옆 시유지(도로부지)에 5층 규모의 가칭 ‘416민주시민교육원’을 지어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예산은 도교육청과 경기도가 절반씩 부담해 100억원을 들인다. 지난달 22일엔 유가족들을 상대로 설명회도 열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반발했다. 아이들의 교실을 지금 그대로 남겨 반성과 성찰의 기념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도교육청이 지역사회와 충분히 협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416민주시민교육원’ 건립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했다. 최근 이런 유가족들과 뜻을 함께하는 ‘416교실지키기시민모임’이 발족해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1일 단원고에서 만난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단호했다. 그는 “‘4·16 참사’와 단원고는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엮여 있다. 학교가 참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교육을 만들어갈 것이냐가 핵심이다. 고통스럽고 아픈 역사지만 학교가 이것을 긍정적 방향으로 바꾸지 못하면 영원히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4·16 이전으로 학교를 돌려달라’고 할 게 아니라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희생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새로운 교육을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416가족협의회는 지난 9월 교실 문제에 대한 자체 안을 마련했다. 숨진 아이들의 교실을 재학생 학습 공간과 분리한 뒤 별도의 출입로로 드나들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학교 담장 밖엔 ‘416기념관’을 지어 참사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부족한 교실 문제는 학교 운동장 한쪽에 교실 12개, 다목적 공간 3개 규모의 교사를 새로 지어 해소하게 했다. 예산은 교육청 안의 절반가량인 50억원 남짓이다.

유 위원장은 “다른 학생들에게 추모를 강요하고 싶지 않다. 원치 않는데도 이 공간과 마주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희생된 아이들의 교실이 있는 2층과 3층에 벽을 세워 다른 교사와 완전히 분리한 뒤 별도의 출입로로 드나들게 하고 학생들도 원하는 사람만, 교육 목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만 출입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가족협의회의 기념관 건립안을 설계한 전홍필 디자인쏨니엄 전시기획팀장(건축학 박사)은 “추모 공간이 학교 안에 있긴 하지만 최대한 동선을 분리해냈다. 완벽한 분리, 완벽한 차단은 보기에 따라 한계가 있지만 유례가 없는 시설인 만큼 전향적인 관점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무엇보다 여전히 실종자가 남아 있는데다, 참사의 원인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은 참사의 현장이라 할 교실이 정리되는 것에 반발한다.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정부합동분향소에서 만난 고 신호성군의 어머니 정부자(47)씨는 “숨지기 전 아이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던 교실은 부모들에겐 정말 가슴 아픈 곳이다. 진상 규명을 위해 다니느라 교실에 대해 신경 쓸 여유가 없었는데 ‘기억과 약속의 길’ 프로그램을 통해 이곳을 다녀간 분들이 먼저 우리에게 교실을 그대로 남겨야 한다고 했다. 우린 부모 욕심으로 비칠까 우려했는데 그분들은 ‘안전과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한다면 참사의 교훈을 상기시켜줄 교실이 남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린 누굴 위해 진상 규명을 하는 걸까, 그때부터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3일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로 숨진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의 장례식이 열려 운구차량이 노제를 위해 단원고 교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교실은 정리돼야 하나

교실 문제에 최종 책임과 권한을 갖는 경기도교육청은 고심중이다. 교실을 그대로 남겨야 한다는 416가족협의회의 제안도,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는 재학생 부모들의 반대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416가족협의회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은) 학교로 사용되는 공간과 추모 시설이 공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으냐는 판단이 있었다. 재학생과 그 부모, 다른 선생님들도 세월호 참사의 또다른 피해자인데 그분들은 교실 존치를 반대하고 있다. 이를 무릅쓰고 추모 공간을 그대로 학내에 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얘기”라고 했다. 416가족협의회와의 협의를 주로 맡아왔던 교육청의 또다른 관계자는 “교육청은 416가족협의회와 재학생 학부모와의 합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를 중재하는 노력을 지속해왔다. 교실 일부를 존치하고 나머지를 환원하자는 절충안도 내봤지만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외려 증폭되기만 해왔다. 지금 시점에서 교실을 ‘박제화’해 보존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다. 새로 지어질 416민주시민교육원을 통해서도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모순을 극복할 새로운 교육을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갈등은 지속되고 있고, 어떻게든 결론을 내려야 하는 시점은 다가온다. 2주 뒤면 안산 지역의 중학교 예비졸업생들이 자신이 진학할 고등학교 지망을 마무리한다. 늦어도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내년 초엔 숨진 아이들의 교실을 비워야 한다. 김종천 416기억저장소 사무국장은 “문제의 본질은, 상황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돼 참사의 원인 규명 작업이 진행 중이고, 아직 국가기구의 공식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인데도 희생자가 머물던 공간이자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찾는 공간이 지금 치워져야 하는가이다. 우린 너무 쉽게 잊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의 9·11기념관은 테러가 일어난 지 13년째이자 한국의 세월호 참사 직후인 지난해 5월 개관했다. 두 채의 건물이 무너진 자리는 건물 하단이 차지했던 크기 그대로 거대한 구덩이가 됐다.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구덩이로 물이 흐르고, 이 구덩이를 둘러싼 담장엔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혔다. 지하에 조성된 기념관 내부엔 사고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살린 외벽과 기둥, 당시 뉴욕 시민들의 모습을 담은 실물 크기 사진, 잔해와 유품, 전화 음성메시지, 구조요청 교신 등이 그대로 남았다. 기념관 내부 벽 한가운데 거대하게 아로새겨진 문구는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어떤 날도 시간의 기억에서 당신을 지우지 못할 것이다.) 우린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얼마나 보존하고 있을까. 우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안산/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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