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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13 20:34 수정 : 2015.11.14 14:28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사흘 앞둔 지난 9일 오전 충청도 모처에 있는 한 출판인쇄업체에서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 공무원들이 시험 문제지와 답안지를 수송차량에 싣고 있다. 이곳에서 전국 85개 시험지구에 배부된 문제지와 답안지는 시험 당일인 12일 새벽 다시 전국 1212개 시험장으로 옮겨졌다. 시험 문답지의 ‘호위작전’에 투입되는 인원만 4800여명에 달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토요판] 르포
교육부 공무원의 ‘수능 100일’

▶ ‘2016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드디어 끝났습니다. 혼신의 노력을 쏟아부은 수험생 여러분, 맘 졸이셨을 학부모님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짝짝짝. ‘학력고사’에서 ‘수학능력시험’으로 대입 시험 이름이 바뀐 지도 21년이나 지났지만, 전체 국가기관이 총동원되고 전국민 모두가 사생결단이나 하듯 응원하는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진 게 없네요. 연인원 30만명이 투입되는 국가 최대 연례행사의 준비 상황을 교육부 공무원의 시선으로 되돌아봤습니다.

“휴~~. 드디어 끝났다.”

마지막 5교시 시험 종료 벨이 울렸다. 지난 12일 오후, 교육부와 교육청,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직원들을 비롯해 경찰까지 연인원 30만명이 투입되는 국가 최대의 ‘연례행사’가 막을 내렸다. ‘경기도 포천고에서 불이 났다’는 소식이 들려와 아찔했지만, 다행히 답안지가 무사히 시험지구로 옮겨진 뒤였단다. 큰 피해 없이 불길을 잡았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답에 대한 이의신청과 난이도 논란이 남았으니, 시험이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아직 긴장의 끈을 놓긴 이르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시험문제 출제부터 인쇄, 문답지 이송까지 지난 100일간의 수많은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실무 책임을 맡고 있는 교육부 대입제도과 과장이다.

교육부 수능 담당 과장의 ‘피말리는 수능 91일’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D-100
출제위원 중 메르스 환자 있다면?
다른 출제위원에게 옮긴다면?

D-34
출제위원 등 700명이 모였다
완전고립돼 ‘무결점’ 스트레스

D-17
국방부에 비행기 이착륙 금지 협조
기상청에도, 기획재정부에도 공문

살떨린 복병, 메르스

국가 최대 행사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100일’ 정도다. 6월·9월 두차례 모의고사를 기점으로 출제위원 선정이 이뤄지고, 역대 수능 평가와 두 차례의 모의고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출제전략을 세우는 본격적인 시험 준비 작업이 시작됐다.

올해는 시험 준비 시작부터 식겁할 일이 벌어졌다. 5월 하순께, 예상치 못했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란 복병을 만난 것이다. 메르스는 잠복기가 있는 감염병이다. ‘만일 출제위원으로 선정된 이들 중 메르스에 감염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다른 출제위원들에게까지 메르스를 옮긴다면?’ 출제본부를 덮어야 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 어쩌나 다들 좌불안석이었다. 9월 모의고사 출제를 위해 7월 출제위원들이 3주 동안의 합숙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걱정을 놓을 수가 없었다. 출제위원들은 메르스 관련 문진을 받고, 적외선 카메라 촬영과 발열 체크를 한 뒤에야 출제본부에 입소할 수 있었다.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 합숙소 인근 보건소에 ‘유사시 긴급지원 요청’도 해뒀다.

메르스 사태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혹시 모를 ‘수능시험 연기’에 대한 대비책 검토에 들어갔다. 이런, 대학들도 이런 상황을 고민해본 적이 없는 듯했다. 비상계획이라고 갖고 있는 게 고작 ‘입시 전형 자료를 어떻게 보관하고, 반출하느냐’ 하는 것뿐이었다. 이건 거의 민방위 훈련 수준이다. 천만다행으로 메르스를 피해 갔으니 망정이지, 전염병이나 각종 재난 상황 발생으로 수능시험을 치르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식은땀이 다 난다. 내년 봄부터 대학들과 이와 대비하기 위한 ‘비상 전형계획’ 수립 협의를 하기로 한 게 그나마 성과다.

지난달 10일, 드디어 출제본부가 꾸려졌다. 장소는 강원도 모처, 구체적 장소는 ‘국가기밀’이라 공개할 수 없다. 이 기밀의 장소에 교수와 교사로 구성된 출제위원 300여명과 주로 교사로 구성된 검토위원 200여명, 그리고 이들에 대한 관리인원 200여명 등 700여명이 모였다.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은 이곳의 ‘멤버’ 자격을 얻을 수조차 없다. 혹시나 모를 시험문제 유출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철통보안’이 이곳의 수칙이다. 700여명은 출제본부에 들어와 34일 동안 건물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외부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채 지내게 된다. 이곳에선 쓰레기조차 마음대로 버릴 수 없다. 휴대폰 사용은 물론 반입조차 금지된다. 이메일은 물론 인터넷 사용도 할 수 없다. 시험문제 출제를 위해 꼭 필요할 때만 인터넷 접속이 허용된다. 그것도 지정된 별도의 공간에서, 보안요원의 ‘감시’ 아래서만 가능하다. 합숙 도중 가족상을 당할 경우에만 1~2일 정도 외출이 허용된다. 이때도 보안요원이 24시간 밀착 감시를 한다. 출제본부에 들어간 이들은 자신이 출제한 과목 시험이 종료되는 순서에 맞춰 순차적으로 합숙소에서 ‘풀려나올’ 수 있다.

출제위원의 보수는 하루 30만원, 검토위원은 하루 25만원의 수당을 받는다. 적잖은 수입이다. 과목별로 1000명 이상의 출제위원 ‘풀’이 있는데도 출제위원 섭외 작업은 녹록지가 않다. 꼬박 34일간 외부와 단절된 채 합숙생활을 해야 하는데다 ‘본업’을 포기해야 하니 내키지 않아 하는 사람이 많다. 그뿐인가. 지난 2년 연속 수능문제 오류 사태로 출제위원들이 받은 비난을 생각해보라. ‘무결점’ 문제에, 국가시험의 위상에 걸맞은 ‘고품질’ 문제를 내야 한다는 스트레스와 압박감까지 생각하면….

시험 출제 작업은 착착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제 할 일은 수험생들이 최적의 환경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국무회의가 소집됐다. 정부 중앙부처와 각 지방자치단체 등에 수능시험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이 일제히 뿌려졌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한미연합사령부 앞으로는 ‘수능 당일 영어 듣기 평가 시험이 치러지는 오후 1시부터 25분 동안 비행기 이착륙을 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이, 시험장 인근 군부대엔 ‘수험생의 등교 시간인 오전 6시부터 1교시 시작 시간인 오전 8시40분까지 이동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이 전달됐다. 한국증권거래소에는 ‘증시 개장 시간을 1시간 늦춰달라’는 공문이 나갔고, 기상청에는 ‘전국 시험장별 일기예보를 누리집에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인사혁신처와 기획재정부에는 각각 공무원과 민간기업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을 1시간가량 늦춰달라는 협조를 구했다. 수도권 지하철엔 ‘혼잡시간 운행시간’을 2시간 늘려(오전 7~9시→오전 6~10시), 총 38차례 더 운행할 수 있도록 부탁했다. 전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하루, 우리 모두는 한때 수험생이었고, 수험생의 부모·형제자매·친구가 아닌가. 공기업은 물론 민간기업들도 흔쾌히 협조를 약속했다.

D-3
문제지를 시험지구로 옮겨라
권총으로 무장한 경비경찰 동행
 

D데이
항암치료 등 23명 수험생 입원
엉뚱한 곳 가는 수험생 꼭 나와

강탈 가능성, 교통사고 가능성

11월9일, 수능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평가원 안에 ‘종합상황실’이 마련됐다. 교육청, 평가원 직원들이 근무조를 편성해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24시간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가게 된다.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에도 자체 상황실이 설치된다. 만에 하나 비상 상황이 발생할 경우,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가동하는 것이다.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선 안 된다는 긴장감으로 곳곳이 팽팽하다.

충청도 모처에 있는 ‘인쇄본부’에서 찍은 시험 문제지와 답안지가 이날부터 시험 전날인 11일까지 전국 85개 시험지구로 옮겨진다. 이 문제지와 답안지는 시험 당일인 12일 새벽에 각 시험지구에서 1212개 시험장으로 옮겨지게 될 것이다. 수험생들이 적어낸 답안지는 시험 종료 직후 잘 걷어 13일까지 ‘채점본부’인 평가원으로 옮겨야 한다. 시험지는 해당 시험장에서 향후 최소 4년 동안 보관될 것이다.

답안지 이송 ‘작전’의 생명은 ‘보안’과 ‘안전’ 그리고 ‘정시 이송’이다.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 공무원 2인1조로 구성된 ‘중앙협력관’과 경찰로 구성된 3~4인조 ‘호위요원’들이 문답지 ‘경호’를 책임지게 된다. 전국의 고사장이 1212곳이니 호위 작전에 투입되는 인원만 4800여명에 이른다.

시험을 전후해 전국으로 옮겨다녀야 하기 때문에 문답지 ‘경호’ 문제는 각별히 신경이 쓰이는 작업이다. 지난주 정부세종청사 15동 강당에선 문답지 호위를 맡게 될 중앙협력관에 대한 연수가 실시됐다. “문답지에서 24시간 시선을 떼지 말라”는 임무가 전달됐다. 교육부에선 중앙협력관들이 근무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불시 ‘현장 감사’를 나간다. 문답지 이송 과정엔 권총과 경찰봉으로 무장한 경비경찰이 함께한다.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문답지 ‘강탈’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다. 행여 교통사고나 일어나지 않을까 조바심이 난다.

‘결전’의 날이 밝았다. 오로지 이날을 위해 지난 100일을 달려왔다. 한 치의 오차 없이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도록 준비해왔지만 신경이 곤두선다. 63만여명의 수험생이 한꺼번에 고사장에 몰리다 보니 ‘상상 그 이상의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2004년 수능시험 때 벌어진 조직적 ‘부정행위’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 사건이다. 광주를 비롯한 몇 군데 지역에서 수험생들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조직적으로 답안을 주고받은 게 들통나, 16명이 구속되고 312명의 시험이 무효처리되는 ‘역대급’ 사건이었다. 명문대 대학생이 재수생으로 위장해 시험을 치르면서 미리 공모한 입시학원으로 답을 보내주고, 이를 받은 학원은 컴퓨터를 이용해 수십명의 수험생들에게 대량으로 답을 뿌려주는 수법을 썼다고 한다. 현장 감독관은 이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감쪽같이 묻힐 수도 있었던 조직적인 커닝 사건이 꼬리를 밟힌 건 인터넷 소문을 통해서였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이를 놓치지 않고 즉각 수사팀을 구성해 문자메시지 수만건을 분석해, 부정행위가 있었음을 밝혀냈다. 일대일로 ‘쪽지’를 건네주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뤄지던 커닝이 일 대 다수의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준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고사장에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 반입이 더욱 엄격히 금지됐다.

이처럼 언론에 대서특필된 사건 말고도 수능시험 날에는 크고 작은 온갖 일들이 벌어진다. 올해 수능시험을 앞두고 교통사고와 맹장염, 항암치료, 안구질환 등으로 23명의 수험생이 병원에 입원했다. 수험생 본인의 의지와 의사의 판단에 따라 22곳의 병원에 시험장을 설치하고 각각 시험감독을 2명씩 파견했다.

신분증을 안 갖고 오거나 학생증에 사진이 없는, ‘작지만 중대한’ 문제들은 매년 등장하는 단골 사고 메뉴다. 시험 하루 전날 시험장을 확인하도록 하는데, 이걸 안 했다가 꼭 엉뚱한 고사장으로 가는 학생도 해마다 2~3명은 나온다. 올해는 수험표를 분실해 어느 학교로 가야 할지 몰라 허둥대다, 최종 고사장 입실 시간을 놓칠 위기에 처한 여학생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남학생 고사장으로 달려가 아슬아슬하게 시험을 치른 일도 생겼다. 시험 보다 쓰러져 병원에 이송해야 하는 경우도 한 해 평균 2~3건이다. 올해는 전북의 한 시험장에서 ‘시험 감독관’이 탈진으로 쓰러져 대기하던 대체 감독관을 긴급 투입하는 일도 벌어졌다.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니지만, 현장에선 한 건 한 건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피가 바싹바싹 마른다.

D+20일
계엄상태 방불케 하는 채점기
온갖 민원 견뎌야 하는 괴로움

채점, 다시 계엄상태

어쨌거나, 끝났다. 시험이 종료되면 수험생들이야 후련하겠지만, 우리는 이때부터 새로운 시작이다. 12월2일, 수험생들에게 성적이 최종 통보되기 전까지 그야말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화들짝 놀라는 ‘채점기’를 맞는다.

이 기간, 채점본부는 계엄상태를 방불케 한다. 수험생들이 제출한 답안지가 분실·수정될라 안에선 보안업체가 경비를 서고, 2인3교대조로 경찰이 삼엄한 외곽경비를 선다.

공개된 문제와 정답에 대해 수험생들의 이의신청이 시작되고, 온갖 민원 사항이 들어오는 괴로운 시기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수능이 끝난 직후부터 평가원 누리집에 개설된 게시판에 110건(13일 오전 9시 기준)이 넘는 이의신청이 올라왔다. 민원은 해마다 평균 500건 정도 들어온다. ‘수학 시험은 시험지 여백에 문제풀이를 하도록 돼 있는데, 여백이 부족하니 연습장을 줘야 한다’는 요구부터 ‘여성 감독관이 신은 구두 소리가 시험에 방해가 됐다’, ‘감독관이 나를 자주 쳐다봐서 시험 보기가 어려웠다’는 항의까지 각양각색이다. ‘시험날 급식을 제공하라’는 민원도 있었다.

이런 일들이 어디 올해 하루만인가. 199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작되기 전, 대학입학학력고사 때부터 해마다 반복돼온 풍경이다. 대학 입시가 인생의 큰 방향을 결정짓는 한국적 현상이 유지되는 한 계속 되풀이될 풍경이기도 하다. 수능시험이 치러진 시각,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선 입시 경쟁과 학벌 사회를 비판하는 청소년들(‘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의 대학 거부 선언이 이뤄졌다고 한다. “낙오자를 양산하는 줄세우기식 입시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이들의 외침은 벌써 4년째 수능시험 날마다 계속되고 있다. 이런 외침이 잦아들고, 온 나라가 총동원돼 요란법석을 떠는 수능시험이 사라지는 날이 언젠가 오긴 올까.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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