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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9.18 20:11 수정 : 2015.09.19 17:03

최근 설치된 4대의 러시아제 갠트리 크레인이 작업을 하고 있다.

[토요판] 르포

▶ 북한을 도합 서른세번이나 드나들며 취재해온 일본의 포토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63)씨가 지난여름 나선경제특구에 다녀온 뒤 취재기를 <한겨레>에 보내왔다. 지난 6월16일 중국 베이징에서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으로 들어가 20일부터 26일까지 나선경제특구 구석구석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히로시마·평양>을 찍었으며, 한반도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증언집 <무궁화의 슬픔> 등을 내기도 했다. 블로그 ‘평양 일기’, 웹사이트 ‘이토 다카시의 작업’ 등을 운영중이기도 하다.

나선경제무역지대

외국의 선진 자본과 기술을 도입한다는 명목으로 북한이 중국의 ‘경제특구’를 모방해 만든 북한 최초의 특수지역. 북한은 1991년 12월 ‘정무원(현 내각) 결정 74호’를 통해 함경북도 나진시와 선봉군에 이르는 지역을 ‘자유경제무역지대’로, 나진·선봉·청진항을 자유무역항으로 지정했다.

중국·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선경제무역지대에 진출하는 기업은 세금 감면과 면제, 세금 항목 감소 등의 혜택을 받는다. 2012년 나진항에서 중국 훈춘과 맞닿은 북한 원정리까지 50여㎞의 도로가 개설됐고, 2013년엔 나진에서 러시아 하산까지 철도(54㎞) 현대화 사업을 마무리했다.

터미널 빌딩만이 아니라 활주로도 새로워진 평양국제공항. 국내선의 정기편이 생겨 지방도시도 비행기로 갈 수 있게 되었다. 함경북도 어랑공항으로 가는 정기편은 화요일과 금요일에 있었다. 나선경제무역지대(이하 ‘나선경제특구’)로 가기 위해서는 어랑공항으로 가는 정기편을 이용해야 했다. ‘안토노프148-100’이라는 우크라이나에서 만든 새로운 소형제트기가 승객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지난 6월19일, 70명이 타는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어랑공항에 도착해서 렌트한 차로 청진시를 경유해 4시간가량을 달려 ‘나선경제특구’의 게이트에 도착했다. 중국과 러시아 쪽에서는 비자 없이 들어올 수가 있지만 상세한 취재를 위해서 굳이 평양을 통한 방문을 선택했다.

“장성택 처형 영향은 없어”

북한은 외자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중앙정부 차원에서 5곳에 경제특구를, 지방정부 차원에서 19곳의 경제개발구를 설치했다. 작년 6월에는 대외경제에 관한 3개의 성청을 통합해서 대외경제성을 설치하는 등 외자 도입을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선경제특구는 북한 최초의 특구다. 김일성 주석은 14회, 김정일 총서기는 11회 현지 시찰을 할 정도로 북한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특구다. 이곳은 중국·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나진항이라고 하는 천혜의 양항이 있다. 나진항은 파도도 조용하고 수심도 깊어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의 이기성 교수는 “지리적 우위가 있고, 동북아시아에 있어서 중요한 특구”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길림성은 바다와 연결되지 않고, 극동러시아에 부동항은 블라디보스토크, 자루비노 등 3곳밖에 없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나진항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존재였다.

나진시 인민위원회 경제협조국의 김형필 과장으로부터 나선경제특구의 개요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이 특구를 만든 목적은 동북아시아지역의 경제 교류 활성화와 발전을 위한 것입니다. 나선은 1991년 12월에 특별시로 제정되었습니다. 현재의 면적은 890제곱킬로미터. 이 가운데 경제특구는 470제곱킬로미터입니다. 약 150개의 외국기업과 약 30개의 합변·합작기업이 있습니다. 중국 기업이 가장 많고 러시아·미국·일본·홍콩·오스트레일리아·이탈리아의 기업도 있습니다. 현재 경제특구의 인구는 19만8천명이고, 이 가운데 노동 적령기의 인구는 10만3천명. 장래에는 인구 100만명이 될 것입니다.”

나선경제특구의 개발을 추진해온 사람은 2012년 12월에 숙청된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국가안전보위부의 특별군사재판에서는 “나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버리는 매국 행위”가 죄상의 하나였다. 이에 관해 김형필 과장에게 물었다. “장성택은 반당혁명섹트분자의 낙인이 찍힌 악인입니다. 나선경제특구는 장성택이 만든 것이 아니라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서기의 구상이고 우리나라의 정책으로 추진되어온 것입니다.” 나선경제특구에 대한 영향은 없다는 대답이었다. 중국 수출에 의존하는 수산가공회사의 담당자 등에게도 물었지만 “사업에 처형의 영향은 전혀 없었다. 다른 나선의 사업소도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노동자들이 러시아에서 화차로 반입한 석탄을 선적하고 있다.

거대한 러시아제 기계설비가
석탄 내리는 제3부두의 풍경
북·러시아 합작 라선콘트란스
부산-유럽 선박수송 현재 45일
10일이면 이뤄질 수도 있는데…

가공무역하는 수채봉수산사업소
갑자기 카메라 렌즈 가리더니
“오징어 처리방식은 기업비밀”
150개 외국기업 중 중국이 최다
나선시내 도로 표지판엔 중국어도

일본 수출 막히고 중국으로

나선 시내에서는 중국의 존재가 눈에 두드러진다. 중국 자본이 건설한 대형 호텔과 은행 건물들이다. 도로 안내판에는 중국어도 표기되어 있고, 중국이 건설한 도로가 시의 중심부를 관통하고 있다. 나진항과 나선시 북단의 원정을 연결하는 50킬로미터의 도로다. 원정에서 두만강을 건너 중국 지역의 강을 거쳐 훈춘까지 연결되어 있다. 이 도로를 통해 중국의 동북지방은 나선항에서 해외로 화물 수송이 용이해졌다.

가공무역을 하고 있는 북한기업의 사업소 3곳을 방문했다. 제일 먼저 들른 수채봉수산사업소의 구내에는 중국 길림성과 흑룡강성의 번호판이 붙은 대형트럭이 줄지어 있었다. 종업원은 약 3천명으로 90종에 이르는 수산가공품의 70%를 중국에 수출한다. 나머지는 북한 국내에서 판매한다. 이 공장의 남성 담당자가 “비디오카메라 촬영은 할 수 없지만 사진 촬영은 괜찮다”고 말하며 공장으로 들어섰다. 많은 여성 종업원들이 능숙한 솜씨로 오징어를 처리하고 있었다. 동행한 여성이 갑자기 나의 카메라 렌즈를 손으로 가렸다. 이 오징어 제품은 중국의 한 기업하고만 거래를 하고 있고, 이 여성은 중국 기업이 파견한 사람이었다. 오징어 처리방식은 ‘기업 비밀’이라고 했다.

크레인과 벨트컨베이어로 쌓아올린 서시베리아산 석탄.
나선피복공장은 조끼와 오토바이용 장갑을 생산하고 있었다. 여성 지배인이 친절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중국에서 재료를 구입해서 완제품을 만들어 중국으로 수출하고 국내에서도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중국으로 간 옷은 유럽으로도 수출되고 있습니다. 주문이 넘쳐나서 다른 공장을 더 돌리고 싶지만 이 공장의 작업 제품을 평가해준 중국 거래선이 허락하지를 않습니다.” 정치적으로 북한과 중국의 관계 개선은 그다지 진전되지 않은 듯하지만 나선에서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는 여전히 강해 보였다.

일본에서 귀국한 재일동포 출신이 사장을 하고 있는 나선대흥무역회사는 광활한 부지에 시설이 늘어서 있었다. 공장에는 많은 대형 냉동고와, 게를 컨베이어 벨트에 태워 움직이면서 증기로 가열하는 장치가 보였다. 종업원은 지사를 포함해서 약 1천명. “중국과 국내용 가공품 생산과 러시아산 게를 처리해서 러시아로 다시 보내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이 가공품을 유럽으로 수출하고 있습니다. 제품은 세관까지 가지고 가지 않고 이 공장의 부두에서 보낼 수 있습니다.” 중국·러시아와의 무역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이 사업소는 과거 일본과 거래를 했다. 일본의 경제 제재로 대일본 수출량은 2005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작년에는 전혀 할 수 없었다.

나진항 제3부두에 선 러시아인 책임자와 노동자들. 이들은 취재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주었다.
나선시 외국어학원에서 중국어와 러시아어를 공부하는 학생들.
나진지구에 ‘노비미르’라는 러시아 음식점이 있다고 해서 가보았다. 취재를 요청하자 러시아인 부사장이 흔쾌히 수락했다. “철도와 항만에서 일하는 러시아인이 거의 매일 식사를 하러 옵니다. 식당을 차렸지만 이 회사의 본업은 무역입니다. 나선에서의 호텔 운영과 건설, 해산물과 농산물의 가공무역 등 사업 확대에 밝은 전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북한의 무역 확대는 상호 이익이 됩니다.” 이 러시아 기업은 러시아 음식점을 나선에서의 사업 확대를 위한 발판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대한무역진흥공사가 6월5일에 발표한 한국을 제외한 북한의 작년 무역액은 76.1억달러, 중국은 90.1%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러시아는 불과 1.2%에 지나지 않았다. 러시아와 경제관계에 관해서 사회과학원의 이기성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재 무역 거래는 중국이 가장 많지만 유럽·동남아시아·중동으로 다각화할 방침입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문제도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와의 경제 관계를 강화하려고 합니다. 러시아에서 부산까지 연결하는 철도 건설에 대해서는 러시아가 적극적입니다.”

2001년 8월 김정일 총서기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북·러 모스크바선언’에 서명하고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한반도 종단 철도의 연결 등에 합의했다. 이를 기초로 2008년 4월에 러시아가 70%를 출자한 북-러 합변기업 라선콘트란스가 설립되었다. 작년 9월에는 나진항과 러시아의 하산을 연결하는 54킬로미터의 철도 보수공사가 끝났고, 11월에 나진항 제3부두 개조와 준설 공사를 마쳤다. 라선콘트란스는 이 철도와 부두의 49년간 조차권을 얻었다. 중국에 대한 극단적인 의존 형태를 시정하고자 하는 북한에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구도다.

가공사업을 하는 수채봉수산사업소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중국으로 수출할 오징어를 처리하고 있다.
혁명사적지를 방문한 아이들. 북한 각지에서 김일성·김정일의 벽화가 증가하고 있다.
드디어 나선경제특구의 심장부인 나진항으로 향했다. 게이트에서 엄격한 심사를 받고 먼저 북한과 중국 등이 사용하고 있는 제1, 제2부두로 안내되었다. 부두와 창고는 노후화가 역력했다. 제1부두에는 중국으로 수출되는 러시아산 목재가 쌓여 있었다.

제3부두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였고, 하산에서의 선로가 들어온 상태였다. 선로는 러시아가 사용하는 광궤였다. 러시아인 경비책임자의 인솔로 안으로 들어갔다. 희망하면 어디든 촬영해도 좋다고 했다. 부두 안에는 석탄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부두만이 아니라 러시아제 기계 설비도 새로웠다. 거대한 4기의 갠트리 크레인(컨테이너를 싣거나 내리는 작업을 하는 대형 크레인)과 중장비가 돌아다니며 러시아 화물차에서 분주하게 석탄을 내리고 있었다.

대단한 활기였다. 바로 석탄을 실은 5톤 화물선이 중국으로 출항했다.

제3부두 책임자인 러시아인 솔로몬 유리 드미트리이에비치와 인터뷰를 했다. “제3부두는 연간 400만톤을 취급할 수 있습니다. 이 부두의 운용은 북한과 러시아에 이익을 가져올 것입니다. 올해 1월부터는 시베리아산 석탄을 본격적으로 취급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이 주요 수출국입니다.”

작년 4월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알렉산드르 갈루시카 극동개발부 장관이 북한을 방문했다. 2020년까지 무역액을 현재의 약 10배인 연간 약 10억달러로 하는 의정서에 조인했다. 러시아통화인 루블에 의한 무역 대금 결제, 철도 현대화 사업에 러시아 기업의 참여 등에 합의했고, 나선 개발의 추진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러시아는 북한과의 경제 관계 강화를 크게 진전시키려 하고 있다. 나진항 제3부두의 열기는 그것을 예감하게 했다.

나진지구의 러시아 레스토랑 앞에 함께 선 러시아인 부사장과 종업원들.
나진지구의 중심부에는 북한의 여느 지방도시와는 달리 빌딩이 많다.

동아시아 평화가 필수적이다

북한·러시아 합작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라선콘트란스. 2013년 11월 한국-러시아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출자분의 34.3%를 한국의 포스코·한국철도공사·현대상선이 투자했다. 이미 제3부두에서 선적한 석탄을 한국으로 두번 시험 수송했다. 이런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 나선시 경제협조국에 문의했다. “경제지대법 제4조에는 각국의 법인으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의 투자는 없고, 제안도 없습니다.” 현재로서는 나선경제특구의 전략적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있는 나라는 분명 러시아다. 이 때문에 한국은 북한과의 정치적 관계 개선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러시아를 통해 간접적으로 투자를 하는 중이다. 북한은 이를 수용하는 상황이다.

[%%IMAGE11%%][%%IMAGE12%%]박근혜 대통령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물류와 에너지 수송을 촉진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라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에서 유럽까지 수에즈운하를 거쳐 45일간 걸리는 선박 수송이 한반도 종단 철도와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통해서는 10일이면 이루어질 수 있다. 지난 8월5일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서울과 북한의 원산을 연결하는 철도 경원선의 한국 측 9.3㎞ 복원 공사가 시작되었다.

나선경제특구의 미래에는 불안정 요인이 몇 가지 있다. 수요의 증대가 예측되는 전력과 물의 확보, 고속도로와 국제공항 등의 인프라 정비가 계획대로 추진되는가의 여부다. 나진지구의 한 가정에는 다른 지방도시에서도 볼 수 있는 소형 태양광 발전 패널이 베란다에 설치되어 있었다. 러시아와의 송전탑 건설사업은 아직 시간이 걸리고, 전력 부족은 계속되는 듯했다. 피복공장에서는 “새로운 노동력 확보가 어렵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8월 말 수해로 40명이 사망하고 1천채의 가옥이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지만 방재 대책은 늦어지고 있다. 중국 경제 성장의 감소와 루블 급락에 따른 러시아 경제의 악화가 향후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이러한 많은 과제를 안고 있는 나선경제특구지만 북한의 다른 경제특구보다 지리적인 면에서는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 특구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안정과 동아시아의 평화라고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보였다.

이토 다카시/프리랜스 포토저널리스트, 번역 안해룡 아시아프레스 서울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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