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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8.28 18:55 수정 : 2015.08.29 14:41

지난 26일 부산 금정구 장전동 부산대학교 인문관 정문 1층 복도의 분향소에서 한 대학교수가 고현철 교수의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부산/김광수 기자

[토요판] 르포
고현철 교수 투신한 부산대

▶ 부산대가 2012년부터 총장직선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례적으로 교수들이 7개월 동안 총장 접견실을 점거해 농성을 한 데 이어 교수회장이 단식농성을 벌이더니 정규직 교수가 대학 건물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를 계기로 부산대가 총장간선제를 밀어붙이고 있는 교육부에 정면으로 맞서겠다고 나섰다. 부산대는 험난한 장애물들을 잘 이겨내고 전국 대학 민주주의의 본보기가 될 것인가? 전국이 지켜보고 있다.

“마음이 너무 무겁습니다.”

지난 26일 부산 금정구 장전동 부산대 본관 뒤쪽 인문관의 정문 1층 복도에 차려진 고현철(54) 교수의 분향소를 찾은 방문객들은 한결같이 말을 아꼈다. 17일 총장직선제 유지를 외치며 이 대학 본관 3층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교수의 죽음에 대한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탓이다. 이아무개 교수(영어영문학과)는 “많은 교수가 많이 애통해하면서 고민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법학과의 한 교수는 “개구리가 삶는 물에 서서히 죽어가는 줄을 모르듯이 나를 비롯한 대학교수들이 수수방관했다”고 한탄했다.

대학본부 정문 1층 복도에 차려졌던 고 교수의 분향소는 태풍 ‘고니’가 부산에 상륙하기 하루 전날인 24일 인문관으로 옮겨졌다. 대학본부가 직원들의 정신적 충격을 고려해 분향소를 고인이 평소 강의를 했던 인문관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하자, 부산대 교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분향소는 총학생회가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운영하고 있다.

고 교수의 연구실인 인문관 604호 출입문엔 고인한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고인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글이 적힌 노란색 종이들이 붙어 있었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 휘장과 조화가 출입문을 지키고 있었다.

대학본부와 부산대 교수회는 지난 19일 합의한 총장직선제를 시행하기 위한 후속 절차를 밟기 위해 장시간 머리를 맞댔다. 총학생회는 다음달 17일 고 교수 추모집회를 열기로 했다. 총장직선제와 재정위원회 구성 등을 두고 오랫동안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던 부산대 구성원들이 모처럼 한마음으로 총장직선제 사수와 대학민주화라는 대의명분 아래 뭉친 것이다.

평범한 교수의 충격적 죽음

고 교수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광복 70돌을 맞은 올해까지 민주화를 위해 스스로 몸을 던진 수많은 대학생과 노동자 등이 있었지만 존경과 신뢰를 받는 정규직 대학교수가 대학과 사회의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며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가르쳤던 대학교 건물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부산대 교수와 교직원, 학생들은 고 교수가 시국선언문에 몇차례 이름만 올렸을 뿐이지 교수들의 이익단체나 사회 현안에 대해 견해를 내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에 가입한 적이 없는 ‘평범한’ 교수였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고 교수는 왜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을까. 그의 지인들은 그의 성장 과정과 생전의 족적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 고 교수는 문학소년이었다. 부산 대동고에 다닐 때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노트에 60~70여편의 시를 쓰기도 했다. 현실과 시대를 비판하는 시를 썼던 김수영 시인을 좋아했다고 한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광주민주화운동을 탱크와 총칼로 짓밟았던 1980년 부산대 사범대를 가라는 고3 담임교사의 권유를 뿌리치고 ‘대학교수가 되겠다’며 부산대 국어국문학과를 지원했다.

고 교수는 대학 입학 뒤 현실정치나 사회참여와 거리를 뒀다. 이른바 운동권 학생이 아니었다. 부(산)대문학회, 귀성문학회 등에서 순수시를 썼다. 시 비평 등 현대시 탐구에 평생을 바쳤던 고 김준오 부산대 교수를 존경했다고 한다. 대학 졸업 뒤 고교 교사로 지내다가 1999년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무크지 <지평>에 시를 내 등단했으나 시 평론을 주로 썼다. 영화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부산대 영화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2013년엔 그동안 쓴 시들을 모아 시집 <평사리 송사리>(전망)도 냈다. 부산작가회의에선 이사를 맡아 행사 기획을 주로 했다.

고 교수와 고교 문예반에서 같이 활동하고 부산대를 함께 다녔던 동길산(54) 시인은 “고인은 남에겐 관대하고 온순하면서 자기 자신한테 엄격한 외유내강형이었다. 친구와는 스스럼이 없었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좀처럼 주장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순수함이 자신을 내버려두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오래전부터 투신을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투신을 하기 며칠 전에 총장직선제를 요구하며 대학본부 앞 천막에서 단식농성 중인 김재호 부산대 교수회 회장을 찾아와 “미안하다”고 말한데다, 투신하면서 16절지 크기 두 장에 남긴 유언이 매우 차분하고 논리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엄격한 고 교수의 성격을 고려하면 투신 동기도 이해될 듯하다. 그는 2011년 김기섭 총장이 출마했을 때 적극 지지했다고 한다. 공대나 의대 등 교수들이 많은 단과대학이 아니라 교수들이 적은 인문대에서 처음으로 총장을 배출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는 것이다.

또 고 교수가 인문대 사학과 교수인 김 총장이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대학민주화를 무척 기대했다고 동료 교수들은 기억했다. 이 대학 인문대 한 교수는 “고 교수의 입장에선 믿고 지지했던 김 총장이 총장직선제 공약을 지키지 않고 간선제를 도입하는 것을 보면서 깊이 실망했을 것이고 책임감도 느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총장이 김재호 교수회 회장이 단식하는 동안 여름휴가를 가지 않았거나, 일주일 동안의 휴가를 보내고 업무에 복귀한 17일 다른 지역에 출장을 가지 않고 학교로 출근해 농성 중인 교수들을 만났다면 고 교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부산대 교수회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17일 아침 8시께 김기섭 총장한테 항의하기 위해 20여명의 교수들이 대학본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김 총장이 나타나지 않아 보직간부한테 항의를 했다. 이때 고 교수가 뛰어내린 국기게양대 근처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고 교수가 단지 총장직선제만을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고 교수가 이명박 정부 때부터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것을 쳐다만 보고 있지 말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을 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것이다. 강명관 부산대 인문대 한문학과 교수는 “고 교수의 유언장을 보면 대학민주화와 사회민주화를 위해서 기꺼이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고 교수의 죽음을 계기로 대학이 다시 학문의 자유를 위해 일어서고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반격의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운동권도 아니던 문학 교수가
총장직선제 요구하며 목숨 끊었다
간선제 추진하던 현 총장 지지했던
부채감이 죽음으로 이끌었을까
부산대는 다시 직선제로 선회했다

200여억원 예산 지원권 가진
교육부의 ‘옥죄기’ 계속되고
먼지 낀 단어로 보였던 ‘대학민주화’
전국 대학가로 퍼지고 있다
전국교수회의는 간선제 폐지 나서

고현철 교수의 죽음으로 총장직선제를 요구하는 국립대학 교수 사회의 요구가 커졌다. 고 교수의 영정 사진. 부산/김봉규 기자 bong92hani.co.kr

교육부의 간선제 압박

부산대 교수들은 교육부의 옥죄기가 고 교수의 죽음을 예고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부는 2012년부터 국립대 선진화라는 명분 아래 총장직선제 폐지 여부를 각종 지원사업의 평가 항목에 포함해 간선제를 추진했다. 이게 고 교수의 죽음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실제 교육부는 2012년 대학교육역량강화사업을 공모하면서 총장직선제 개선과 기성회 회계 건전성 등 두 항목을 평가에 반영했다. 총장직선제 항목은 2012년 3월 이전에 학칙에서 총장직선제를 삭제하면 만점을 주고, 2012년 3월 이전에 ‘2012년 8월까지 학칙에서 총장직선제를 삭제하겠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하면 80점을 주겠다고 했다. 학칙에서 총장직선제를 삭제하지 않거나 삭제할 것을 약속하지 않는 국립대는 0점을 주겠다고 을렀다.

이에 전국 4년제 국립대 38곳 대부분이 백기투항했다. 교육부의 요구를 거부한 부산대·경북대·전남대·목포대 등 네 곳은 대학교육역량사업 지원대학에서 빠졌다. 부산대는 2010~2011년 대학교육역량사업 평가에서 2~3위를 차지해 2년 연속 받았던 연간 60여억원씩의 국비를 2012년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교육부의 으르기는 효과를 발휘했다. 전남대·경북대·목포대는 총장직선제를 포기했다. 부산대도 2011년 10월 총장직선제를 공약해 당선된 김 총장이 2012년 8월 학칙에서 교수와 교직원이 총장을 뽑도록 한 직선제를 삭제하고 간선제로 바꿨다. 또 총장선출제도에 관한 교수회의 의결권을 폐지하고 심의권으로 변경했다.

다들 속수무책으로 백기를 들었지만 부산대 교수들은 달랐다. 교수 30여명이 2012년 8월29일부터 이듬해 3월28일까지 210일 동안 총장 부속접견실을 점거했다. 김기섭 총장은 한발 물러섰다. 2014년 6월까지 직선제 절차를 마무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교수들은 농성을 끝냈다.

교수회와 대학본부는 2013년 12월 “학칙은 투표를 하지 않고 직선제로 바꾸고 총장 선출 규정은 대학본부 안과 교수회 안을 교수 투표에 부쳐 최종 확정한다”고 추가 합의했다. 하지만 김 총장은 2014년 3월 투표를 하지 않고 총장 선출 규정을 대학본부 안으로 변경했다.

교수회는 2014년 12월 독자적으로 교수회 차원에서 투표를 강행했다. 투표 참가자의 84%가 교수회 안을 지지했다. 이에 김 총장은 “올해 5월 말까지 대학 구성원의 의사를 물어 총장선출제도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총장은 올해 6월 또다시 말을 번복했다. 교육부의 재정 압박 때문에 부득이하게 간선제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대학 쪽이 이달 초 간선제 순서 밟기에 들어가자 김재호 교수회 회장은 단식으로 맞섰다. 김 교수회 회장의 단식 12일째인 17일 고 교수는 오후 3시께 대학본부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김 교수회 회장이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고 한 시간 뒤였다.

부산대는 정규직 교수의 죽음을 대가로 총장직선제를 전국 4년제 국립대 38곳 가운데 유일하게 지켜냈다. 하지만 험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 교육부에서 총장직선제로 돌아선 부산대에 불이익을 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학본부 관계자는 “연간 교육부에서 공모 형식을 통해 지원하는 예산이 200여억원에 이른다. 이들 예산을 삭감하면 타격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부산대 구성원들의 각오는 비장하다. 김 교수회 회장은 “교육부가 재정을 삭감하면 또 단식에 들어갈 것이고 이번에는 부산시민과 연대해 맞서겠다”고 밝혔다. 차정인 교수회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교육의 본질은 참되고 바른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재정이 부족하면 교수들이 시간을 더 내서 더 좋은 것을 가르치면 된다. 그것이 교육혁명이고 고 교수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 교수의 죽음이 대학민주화의 불씨를 다시 살리는 형국이다. 전국거점국립대 교수회 연합회는 20일 부산대 교수회관에서 총장간선제 폐지에 힘을 쏟기로 결의했다. 전국거점국립대 교수회 연합회, 전국국공립대학 교수회 연합회, 한국사립대학 교수회 연합회,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 비정규교수노동조합 등 7개 교수단체는 21일 ‘고 고현철 교수 추모와 대학 자율성 회복을 위한 전국교수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다음달 18일엔 전국교수회의를 열어 총장직선제 사수를 결의할 예정이다.

취업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대학생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부산대 등 19개 국립대 총학생회가 24일 부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권력에 맞서 대학과 사회의 민주주의를 지켜내겠다”고 밝혔다. 전국 비정규직 교수 노조도 힘을 보태겠다고 선언했다.

부산대의 싸움은 확전 양상

부산대의 선택은 전국 국립대 교수들이 현장에서 총장직선제를 얼마나 관철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당장 내년 1월 현 총장의 임기가 끝나는 충남대가 시험대에 오른다. 부산대 교수회 관계자는 “그동안 각개격파식으로 국립대학들이 무너졌다. 이제 부산대를 기점으로 하나둘 직선제로 전환하면 교육부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률적 다툼도 변수다. 지난해 4월 교수회는 “교육부가 재정을 무기로 총장간선제를 강요하는 행위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가 이를 인용하면(받아들이면) 전국 국립대 총장직선제 회복운동이 힘을 얻을 것이고, 헌법재판소가 기각하면 부산대는 힘겨운 길을 걸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대가 총장 투표권을 어떻게 배분할지도 관심사다. 직선으로 다시 돌아서려는 다른 국립대들의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다. 한 교직원은 “투표권을 1200여명의 교수와 550여명의 교직원들한테만 주고 3만여명의 대학생 및 대학원생을 배제하면 총장직선제가 교수들의 기득권 누리기라는 오해를 받을 수가 있다”고 말했다. 한 정규직 교수는 “진정한 대학민주주의를 실현하고 교육부라는 공룡에 함께 맞서기 위해서라도 대학 구성원 모두에게 투표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문제로 내부 분열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파벌과 과열 양상 등 총장직선제의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해 간선제로의 전환을 계속 밀어붙이겠다는 태도다. 강명관 부산대 교수는 “직선제인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도 폐해가 있는데 폐지해야 하느냐? 직선제와 간선제 모두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직선제로 하는 이유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교정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직선제의 폐해가 있으면 내부 자정기간이 필요하다. 강요는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부산/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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