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06.19 20:38 수정 : 2015.06.21 10:00

서울 영등포 집창촌 담벼락에 바람이 분다. 전날의 흔적이 씻긴 수건이 나부낀다. 아침이 되면 쇼핑몰 타임스퀘어에 사람들이 들어오고 집창촌은 가게마다 유리문을 닫고 붉은 커튼을 내린다. 집창촌의 아침은 죽은 듯 적막하다. 여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음을 말하는 듯 빨래가 바람에 날린다. 사진 박유리 기자

[토요판] 르포
박유리의 서울, 공간 ② 영등포 집창촌에서 지낸 3일(하)

▶ 바로가기 : 영등포 집창촌에서 지낸 3일(상)

서울에 스며든 그림자를 바라봅니다. 서울의 얼굴이 되지 못한 뒤안길을 따라갑니다. 도시의 밤을 걸어 봅니다. 이 도시에 깃든 고독과 꿈, 그리움과 우울, 따스함과 설움, 사랑과 고립을 그리려 합니다. 낯선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먹고살아 간다는 것, 살아낸다는 것, 생존한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적어보려 합니다. 첫회로 찾아간 서울 영등포 집창촌에서 잠을 자고 새벽녘 흰밥을 먹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에 왔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집니다. 흔적은 기록이나 추억, 상처가 될 테니까요.

밤과 아침 사이의 시간. 밤은 저만치 물러나고 새벽은 이만큼 스며든 시간, 새벽 4시40분. 서울 영등포 집창촌 ㅅ언니 가게 빈방에서 자고 일어나 가게 유리문을 열었다. 검푸른 대기에 보라색 잉크가 물들어 별은 자취를 감추었다. 전날 밤 이 거리에서 여자를 훑으며 저속 주행을 하는 차량과 오토바이 굉음,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내가 머문 방으로 밀려왔다 빠져나가기를 반복했다. 몇 시간 지난 새벽녘 이 거리에는 손님이 보이지 않는다. 홍등 아래서 밤을 새운 아가씨가 고된 표정으로 의자에 기대앉았다.

집창촌 맞은편에 플라스틱 의자를 내놓고 앉아 타임스퀘어를 올려다보았다. 어떤 공간이나 위치는 그곳의 정서나 공기를 고스란히 전달해 준다. 사진 박유리 기자
집창촌 너머 불 꺼진 타임스퀘어 유리창에 의류 상점 마네킹들이 서 있다. 희미한 조명을 받은 마네킹들이 새 옷을 입고 각기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쳐다본다. 타임스퀘어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1시간 20분이 지나면 집창촌이 문을 닫을 것이다. 해가 완연히 뜨고 밝은 거리에 사람이 북적이기 전에 커튼을 치고 이 도시에서 숨을 것이다. 집창촌 거리 끝 ‘영신로 24길’ 표지판에서 왼쪽으로 향했다. 새벽에 소매상인들이 물건을 떼어가는 영등포 청과물 시장에 닿았다. 진한 마늘향이 밴 시장 가게 구석에서 상인이 반찬 몇 개 올려진 스테인리스 쟁반 위로 손을 내밀어 한 숟가락을 뜬다. 밥을 먹는다. 집창촌에 돌아온 시간은 지난 3일 새벽 6시. 거리에 아가씨들이 보이지 않는다. 홍등이 꺼진 거리에 나 혼자 서 있었다.

정든 개가 밤길을 나선다

낮의 집창촌에는 바람이 불어 빨래가 나부낀다. 어제의 흔적이다. 집창촌과 타임스퀘어를 구획하는 담벼락에 빨랫줄이 걸리고 깨끗이 씻긴 수건과 이불이 바람에 날린다. 7만원을 주고 아가씨와 15분을 보낸 남자의 흔적은 아침 해를 받으며 물기를 없앤다. 손님이 사라지고 문 닫힌 집창촌마다 붉은 커튼을 치는데 빨래는 쉽게 마르지 않는다. 아침에 아가씨들이 긴 잠에 빠지고 이모가 가게 문을 열어 쇼윈도를 닦는다. 음식과 빨래를 한다. 아가씨들이 잠을 잘 때 나도 집으로 돌아갔다. 오후 5시가 되면 6628번 버스를 타고 영등포로 돌아왔다.

이 거리가 깨어나는 오후 5시면 나처럼 할 일 없이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추리닝 차림에 더벅머리인 남자는 진짠지 가짠지 알 수 없는 루이뷔통 손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매일 모습을 드러낸다. 5, 6년 전쯤 여자 옷을 입고 처음 나타났다고 한다. 미쳤다고들 했다. 그가 이 거리에 왜 나타났는지, 그 남자의 과거를 알지 못한다. 누구도 묻지 않았다. 그 남자는 그때부터 매일 집창촌에 왔다. 1966년부터 이 거리를 지켜온 영미미용실 레자(인조가죽) 소파에 앉아 아가씨들 머리를 구경했다. 원래 이 거리의 사람이었던 것처럼 그도, 사람들도 익숙해졌다. 그에게 이름이 생겼다. 진실이 삼촌. 집창촌에서 업주나 가게를 관리하는 남자는 ‘삼촌’, 청소나 요리를 하는 아주머니는 ‘이모’, 손님을 받는 여성은 ‘아가씨’로 불린다. 진실이 삼촌은 홀복(손님 받을 때 입는 옷)을 입은 아가씨가 담배나 음료수를 사달라고 하면 심부름을 한다. 아가씨들이 심부름값을 준다. 이 거리 한복판에 있는 경성약국과 영달네 떡볶이 가게 앞 야트막한 계단에 앉아 있으면 왔다 갔다 하는 진실이 삼촌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 자랑할 것 많은 세상에서 사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집창촌. 그에게 이 거리는 숨쉬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온기를 주는 곳인지도 모른다.

꺼졌던 홍등이 켜지고 약국과 떡볶이 가게가 문을 닫으면 이 거리의 사람들이 계단에서 쉬었다 간다. 한 업주가 나와 앉아 있으면 또 다른 업주가 와서 몇 마디 말을 붙인다. 아가씨들에게 물건을 파는 상인들도 계단에 앉는다. 과일 파는 리어카 아저씨, 강아지 옷과 동물 간식 파는 상인, 머리띠나 액세서리를 파는 여자, 홀복 파는 아주머니도 집창촌을 돌며 물건을 권한다. 아이스커피를 파는 일흔살 할머니도 떡볶이 가게 앞에 앉아 주문을 기다린다. 할머니는 2년 전까지 영등포 집창촌 업주였다. 이상하게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고 한다. 들어온 돈이 바람처럼 쉽게 날아갔다고 한다. 단속에 걸리기도 했고, 재판이 진행되면 변호사 비용으로 나갔다. “여기서 한 이십년 장사를 했는데 쉬니까 여기저기 몸이 아파. 그래서 커피를 시작했지. 일이 있으니까 덜 아파. 나도 이런 아가씨, 저런 아가씨 겪어봤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시집간 애들이지. 시집보내면서 말했어. ‘여기 벗어나면 뒤도 돌아보지 말아라, 행여 나한테 전화라도 하지 말아라, 잘 살아라.’”

밤이 되면 아가씨의 개와 고양이도 거리에 나온다. 업주를 도와 가게를 관리하는 총각이 스물세살 아가씨의 푸들 ‘페페’를 안고 산책을 한다. “뭘 잘못 먹었는지 간 수치가 엄청 높아져서 얘가 죽다 살아났어요. 아가씨들이 일을 하니까 개 데리고 밤에 동네 한 바퀴 도는 거죠. 아가씨들이 정에 주려서 그래요. 그래서 개를 키워요.” 어제 회색 양복 차림의 중년 남성을 받았던 아가씨(31)가 잠옷 차림으로 닫힌 가게 문을 연다. 이 아가씨는 오늘 쉬는 날이다. 안경을 끼고 민낯을 한 아가씨가 고양이 ‘코코’를 안고 커피 파는 할머니에게 다가간다. “이모, 코코가 다 아나 봐. 삼촌이 알고 보니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네. 그래서 며칠 안 놀아주고 가까이하지도 않았거든. 얘가 똥을 안 싸는 거야. 스트레스 받았나 봐. 얘가 말만 못하지 다 느낀다니까.” 커피 파는 할머니가 손주를 받듯 아가씨에게서 코코를 넘겨받아 품에 안았다.

홍등 아래서 밤을 새운 아가씨가
고된 얼굴로 의자에 기댔다
집창촌 인근 청과물시장 상인이
가게 구석에서 새벽밥을 뜬다
아가씨도 새벽에 흰밥을 먹는다

집창촌은 아침에 커튼을 내린다
전날 흔적을 지우고 문을 닫는다
담벼락엔 깨끗이 씻긴 빨래가
쉽게 마르지 않고 바람에 날린다
해가 질 때까지 바람에 날린다

서사가 생략된 거리

영등포 업주 대표 ㅇ씨도 약국 앞 계단에 나온다. “우리 가게가 다른 데보다 크잖아요. 큰 가게에 아가씨 채우려면 직업소개소에 부탁하면 되지. 근데 사람 산다는 기분이 들어서 어째 좀 그렇데. 그냥 알음알음으로 소개를 받는데 지금은 아가씨 한 명뿐이야. 아가씨도, 나도 번번이 단속 대상이 되는데 난 솔직히 세상이 좀 가식적이란 생각이 들어. 필리핀 원정 성매매에 호화 룸살롱에 미러룸에 이미지방에… 더한 데도 많고 즐기는 놈들도 많은데 여기가 단속하기엔 제일 쉽지. 근데 아가씨는 결혼했어?”

집창촌 거리에 의자를 내놓고 새벽까지 앉아 있으면 낯선 남자가 말을 걸어온다. “얼마예요?” 홀복을 입거나 짙은 화장을 하지 않아도 30대 여자가 한밤에 오래도록 앉아 있으면 질문을 받는다. 검게 선팅을 한 차량 속 남자는 창문을 열어놓고 얼굴을 반쯤 내놓았다. 사람 걸음만큼 저속 주행을 하는 차량 속 남자가 서서히 다가와 손 내밀면 닿을 거리로 다가왔다. 눈과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남자가 묘한 미소를 짓는다. 네가 누군지 모르지만, 무슨 일을 하는지 안다는 표정이다. 네가 누군지 알 필요도 없지만, 7만원을 내면 할 수 있다는 웃음이다. 남자가 지나가고 나는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차량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았다. 남자와 여자가 가까워지기까지, 세상 이 끝과 저 끝에 살던 두 사람이 상대의 숨소리를 들을 만큼 가까이 서기까지, 우연과 인연이 반복되어 그들만의 서사를 만들어낸다. 이 거리에선 우연과 인연, 서사가 생략되었다. 15분의 정사가 반복되었다.

아이를 낳은 아가씨들도 거리에 나온다. ㅅ(33)은 싱글맘이다. 아이를 임신했고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아이를 떼어낼 생각도, 고아원에 보낼 생각도 했다고 한다. 낳고 보니 ㅅ과 똑같이 생긴 아들이었다. 보낼 수 없었다. ㅅ은 이곳에서 일한 돈으로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에게 양육비를 드린다. 손님을 받는 작은 방에서 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깊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 “사람들이 우릴 보는 시선은 두가지예요. 경멸이거나 동정이지요.” 영업을 하기 전에 화장을 하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었다. “내 새끼 초코파이라도 하나 더 사주자, 장난감 하나라도 더 사자.” 담담한 목소리에서 미세한 변화를 느꼈다. 내가 먼저 방을 나오고 ㅅ이 뒤따라 나왔다. ㅅ은 쇼윈도 앞 의자에 앉지 않고 벽면에 붙은 거울을 물끄러미 보았다. 눈 화장을 고쳤다. ㅅ이 손님을 받는 안쪽 빈방으로 들어가버렸다.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ㅅ이 다시 쇼윈도 앞으로 나와 남자들에게 “여기, 여기”라고 부른다. ㅅ이 일하는 가게 맞은편에 있던 나는 발길을 돌렸다. 창밖으로 ㅅ을 보는 것이, 질문을 한 것이 미안해졌다. 그에게 가졌던 마음이 동정은 아니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커튼을 내리고 밥을 먹는다

집창촌에선 일을 마친 새벽에 저녁밥을 먹는다. ㅅ(43) 언니, ㄴ(33)과 나는 새벽 6시면 가게에 커튼을 내리고 부엌방에 둥그렇게 앉았다. 밥상에 오른 오이냉국과 마른멸치, 꽈리고추볶음, 생선구이는 전날 이모가 해놓고 간 것이다. 매니큐어를 바른 긴 손톱의 ㅅ언니 손이 칼을 들어 수박을 자른다.

“칼이 너무 잘 들어. 왠지 이 칼이 무서워. ㄴ아, 밤에 우리 부엌방 잠가놓고 일해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부엌에 칼 있다는 걸 알 거 아냐. 저번에 그 남자 기억하지? 잠깐 한눈판 사이에 가게 안에 쑥 들어온 남자. 다른 가게 삼촌이 급하게 들어와서 내보냈었잖아.”

옆 가게 노란 머리 아가씨가 부엌문 안으로 머리를 들이민다. “언니, 패드.” 노란 머리 아가씨는 손님과 관계를 할 때 침대 커버에 까는 패드를 빌려 두 손에 안고 돌아갔다. ㄴ과 몰티즈 강아지 핑키가 2층 방으로 올라가고 ㅅ언니와 나만 밥상에 앉아 수박에 박힌 씨를 발랐다.

“처음 만났던 손님, 기억이 나지. 처음에 몇 개월은 내 몸을 탐닉하는 게 참 싫었어. 뱀이 기어가는 그런 느낌이었으니까. 내가 세번째 날에 받았던 손님이 지금도 가끔 오거든. 그 손님이 내가 10년 전에 어떠했는지 말하면서 가끔 날 놀려. 내가 들어온 지 3일째 그 손님 방에 들어가서는 뒤돌아서 옷을 벗더래. 손님 옆에 누워서는 한참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더라. ‘서비스 안 해요?’ 물으니까 그제야 일어나서 더러운 걸 잡는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두 손가락으로 잡았다고.

오래 만난 남자가 있었지. 이 일 하기 전부터 만난 남자인데 영등포 집창촌에 오면서 3년을 더 만났어. 나중엔 미안해서 눈을 못 쳐다보겠더라. 그 사람은 내가 여기서 일하는지 몰랐어. 만난 지 8년째 헤어졌어. 헤어질 때 이유가 없어서 다른 남자 생겼다고 거짓말을 했어. 그 남자가 그러데. ‘그래서 네가 그렇게 나랑 자는 걸 안 좋아했구나.’ 여기 와서부터는 그 사람이랑 자는 게 못 견디게 힘들었어. 그때 결혼했으면 내 짐이 그 사람 짐이 됐을 텐데. 그 사람이랑 잘 헤어진 거지.

여기서 일하다 보면 누구나 한계가 와. 4, 5년 전에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나가 여관방 하나를 얻었어. 넉달쯤 살았거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어. 손님 안 받으니까 진짜 정말 자유롭더라. 나 하나만 생각하자, 하고 나간 거지. 그런데 그게 쉽지 않잖아. 부모님이 바라볼 데는 나밖에 없는데…. 결국 돌아왔어. 이 거리 뒷골목에 옛날에 여기서 일하다 나이 든 언니들이 살아. 지나가면서 언니들 볼 때가 있지. 나도 저렇게 되진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 처음엔 계획이 있었는데 10년이 됐네. 여기 온 이후에 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어. 병원비가 계속 나가니까, 나도 사람이니까, 엄마가 그만 가셨으면… 그러다가 내가 미쳤나, 무슨 생각 하나, 그러지. 나랑 마음 터놓고 지내는 후배가 한 명 있거든. 저기 다른 가게에 있는데 걔가 카톡을 보내. ‘언니는 정말 일하기 싫을 때 어떻게 해?’ 그래서 내가 답을 보냈어. ‘직장이라 마음먹어. 몸이 아프다고, 니가 생일이라고 뭐가 어떻다고 쉴 수 있겠니?’ 지금 나한테 손님 받는 건 일이야. 아무 느낌이 없지. 손님이 좋아하면 소리도 내고.

내 딴에는 아는 게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가끔 손님이랑 이야기하다 막힐 때가 있어. 그럼 나도 별수 없구나 싶지. 우물 안 개구리인가, 영등포 벗어나서 살 수 있을까 싶고. 나이가 많다 보니 내 이야기를 잘 안 하거든. 손님이나 동생 이야기를 듣지. 그런데 오늘은 내 이야길 하게 되네.” 나는 수박을 씹어 삼켰다. ㅅ언니와 수박을 먹는 사이 새벽은 아침을 맞았다.

ㅅ언니네 가게에서 세 밤을 자고, 세 번의 새벽밥을 먹었다. 떠나는 5일 아침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그날 새벽 6시부터 삼겹살을 굽고 맥주를 마셨다. 그 전날 밤 나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ㅅ언니에게 내밀었다. ㅅ언니는 떠나는 날 아침 장식장에서 포장을 뜯지도 않은 새 향수병을 꺼냈다. “저 선물 안 받아요. 못 받아요.” 향수를 든 그의 손이 한참 부끄러워졌다. “선물 아닌데? 내 마음인데.” 정적이 흘렀다. 그에게서 향수를 받았다. 집으로 돌아가 침대 모퉁이에 향수를 올려놓고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향수가 서랍에 들어가 있다. 내 어머니는 어떤 물건이든 서랍이나 가방에 집어넣는 습관이 있다. 향수를 꺼내 침대 모퉁이에 다시 올려두었다. ㅅ언니가 매일 밤 손님을 받는 곳에도 소설책 한 권이 있을 것이다.

“밖에 잘 돌아다니지 않으니까 영화 다운받아 보려고 손님 받는 방에 아이피티브이(IPTV)를 달았어. 타임스퀘어 앞에 살면서도 영화관에 가는 건 일년에 한두 번이야.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 건 몸으로 하는 일이라 피곤해서인데, 생각해보니 어딘가에 숨고 싶어서 그랬던 것도 같아.”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 바로가기 : 영등포 집창촌에서 지낸 3일(상)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르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