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밤 9시, 서울 영등포 집창촌에 한 여성이 앉아 있다. 어둠이 내리고 가게마다 붉은 조명이 켜지면 은빛 신발들이 유리창 밖으로 나온다. 손님을 유혹하는 1층은 유리창으로 노출되지만 남녀가 관계를 하는 2층 방은 잠금장치가 달린 철문을 통과해야 나온다. 공간의 폐쇄성과 공개성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곳이 집창촌이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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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르포
박유리의 서울, 공간① 영등포 집창촌서 지낸 3일(상)
▶ 서울에 스며든 그림자를 바라봅니다. 서울의 얼굴이 되지 못한 뒤안길을 따라갑니다. 도시의 밤을 걸어봅니다. 이 도시에 깃든 고독과 꿈, 그리움과 우울, 따스함과 설움, 사랑과 고립을 그리려 합니다. 낯선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가봅니다. 먹고 살아간다는 것, 살아 낸다는 것, 생존한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적어보려 합니다. 첫 회로 이 도시에 오래도록 실존해 왔지만, 단 한번 존재성을 인정받지 못한 공간을 찾았습니다. 서울 영등포 집창촌에서 3일간 새벽을 맞았습니다.
“잠깐, 잠깐만.”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ㅅ언니가 반쯤 열린 가게 문 앞에서 손을 흔들며 부른다. 빗줄기가 약하게 흩날리던 날이었다. 비를 가리기 위해 한 손으로 머리를 가리고 몇 걸음 ㅅ언니에게 걸어갔다. “우산 쓰고 가라고. 비 오잖아.” 언니는 보라색 우산을 내밀었다. 그날은 새벽부터 하늘이 희끄무레 하더니 아침 여덟시가 지나면서 한 방울씩 비가 떨어졌다. “또 놀러 와.” 나는 언니에게서 받은 우산을 집어들어 다시 길을 걸었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서류 가방 하나씩 옆에 메고 출근하는 인파들 속에 묻혀 지하철 역사로 들어갔다. 아침을 시작하는 표정들을 헤치고 나는 하루를 끝낸 지친 얼굴로 지하철을 탔다. 집으로 돌아와 신발장 옆에 젖은 우산을 두었다.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 이 생활이 며칠째다. 해가 누렇게 되어 뉘엿뉘엿 지거나, 지기 직전에 일어나 화장을 하고 밖으로 나가 아침이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
이제 잠에서 깨면 다시 나는 낮의 세상으로 돌아온다. 아침에 일어나 모르는 사람들과 출근하고 퇴근하며 밤이 되면 강아지를 곁에 두고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잠을 잘 것이다. ㅅ언니는 낮의 세상을 잘 알지 못한다. 뙤약볕의 강렬함과 피부에 닿는 햇빛의 투명함을 잘 알지 못한다. 출근 시간대, 닫히기 직전의 지하철 문을 향해 뛰어드는 사람들과, 비 오는 날 젖은 옷과 우산으로 축축해진 지하철의 공기, 무섭도록 담담한 표정들이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일렬로 오르내리는 출근길의 행진을 잘 알지 못한다.
민낯을 지운다
지난 2일 오후 5시30분, 서울 영등포의 거리에서 ㅅ언니를 처음 만났다. 대형 쇼핑몰 타임스퀘어 옆 집창촌에 사는 언니는 마흔세살이다.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을 제외하면, 매일 밤 화장을 하고 머리를 하는 것으로 ㅅ언니의 하루는 시작된다. 헐렁한 면 원피스에 슬리퍼를 신은 언니는 이제 막 일어난 표정의 수척한 민낯이었다. 미용실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를 따라 미용실로 향했다. 집창촌에는 이곳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위한 미용실이 2곳 있다. 비교적 여기서 오래 일한 여자들이 머리를 하는 곳은 영미 미용실이다. 1966년부터 운영됐다. 미용실 한구석에 오래된 레자(인조가죽) 소파와 탁자가 있고 이름과 결제 내역이 빼곡하게 적힌 붉은 수첩이 탁자 위에 놓여 있다. 머리하는 손님이 앉을 의자 세개 옆으로 벽에 붙은 낡은 선풍기는 빙글빙글 돌아간다. 2층에 자리한 미용실 창문 밖으로 ‘우도 설렁탕’ 네온사인이 깜빡이고 도로를 달리는 차들은 조금씩 느려진다. 퇴근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커트 머리를 한 아주머니 미용사가 고데기를 감자 힘없던 ㅅ언니 머리카락에 탄력 있는 웨이브가 생겨났다.
머리를 한 ㅅ언니가 미용실에서 20m쯤 떨어진 가게로 걸어간다. “들어오세요.” 서너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의 가게 유리문을 열고 따라 들어갔다.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ㅅ언니의 방이 나온다. 손님도 받고 영업이 끝나면 잠을 자는 개인 공간이다. 커버가 덮인 높고 커다란 침대, 향수와 인형이 가지런히 정리된 장식장이 흰색으로 통일돼 있다. 영등포 집창촌이라는 걸 기억하지 않는다면 보통의 여자 방이다. 손님을 받지 않을 땐 자기 방인 것처럼 여기려고 실내를 꾸며놓았다고 한다. ㅅ언니는 좌식용 화장대를 펼치고 앉아 거울을 쳐다보았다. 나는 ㅅ언니 등 뒤에 앉아서 화장하는 모습을 보았다.
“여긴 어떻게 온 거예요?”
“맞다, 틀렸다 그런 거 말고 그냥 여기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 써보려고요. 법을 어기고, 여성이 상품화되고 그런 시선도 있지만 그 시선 너머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있을 거니까. 언젠가 먼 훗날에는 사라질 공간이잖아요. 4년 전에 설치미술 작가가 집창촌 공간을 작품으로 만든다고 해서 따라온 적이 있었어요. 여기 쇼윈도 앞 의자에 앉아서 타임스퀘어를 봤는데 건물이 다르게 보였던 것 같아요.”
“아, 네.”
ㅅ언니는 부채처럼 길고 풍성한 속눈썹을 정교하게 눈에 붙였다. 검은 아이라인을 굵게 그리니 눈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피곤해 보이던 얼굴의 흔적이 하나씩 사라져간다. ㅅ언니와 3일간 이 공간에서 같이 지내기로 했다. 화장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
“여기가 인생 종착역이라고 하잖아요. 보통 다방, 술집, 룸살롱을 거쳐 마지막에 집창촌에 와요. 저 같은 경우는 독한 마음 먹고 집창촌에 바로 왔어요. 그때가 만으로 서른세살이었으니 일한 지 십년 됐네요. 광주에서 중소기업 경리를 했어요. 집은 가난했고, 제3금융권에서 대출받다가 사채를 썼어요. 말도 못하게 독촉당하고 사채업자들이 회사에 찾아오고. (빚이) 커지고 커지다 터지기 직전이었어요. 친구 소개로 서울로 올라왔어요. 영등포 업주에게서 빌린 돈으로 사채를 갚았죠. 누가 억지로 끌고 온 것도 아닌데, 제 발로 들어와놓고는 처음 3, 4개월은 어떻게 지냈나 모르겠네요. 울다가, 웃다가. 뭐 그랬어요. 여기 처음 올 때는 계획이 있었어요. 1년만 있자 했는데 3년이 되고, 5년이 되고. 그러다 10년이 됐네요. 지금은 (이 생활을) 받아들여서 괜찮아요.”
화장하는 언니 옆으로 흰색 몰티즈 강아지가 들어와서 꼬리를 흔든다. 옆방에 사는 ㄴ(33)씨가 키우는 개다. ㄴ씨 친구의 친구가 기르던 개인데 술을 마시면 주인이 이 개를 때렸다고 한다. 그걸 보고 ㄴ씨가 뺏다시피 개를 데리고 왔다. 개 이름은 핑키다. “이 동네에 개, 고양이가 진짜 많아요. 버려졌던 동물들도 많고. 다른 가게에서 일하는 ㅇ이가 키우는 개 이름은 도림이에요. 도림동에서 주웠다고. 우리처럼 사연이 많은 동물이에요.”
ㅅ언니는 화장을 오래도록 정성스럽게 했다. 화장을 마친 ㅅ언니가 뒤를 돌아다보았다. 얼굴엔 분홍 홍조가 피어올랐다. 수척했던 민낯이 완벽히 지워졌다. 무대에 서는 배우처럼 얼굴에 생기가 돌고 선명해 보였다.
“나도 내가 사회악인 거 알아요. 떳떳한 일은 아니니까요.”
머리를 하고 분홍빛 화장을 한여자는 여기서 10년을 보냈다
아가씨가 2층서 손님을 받으면
고양이는 쇼윈도에 웅크리고
여자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새벽 3시, 집창촌 골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면 소리가 밀려온다
흥정하고 들어와 신발 벗는 소리
타이머가 울리고 남자가 나간다
저속주행 차들이 여자를 훑는다 홍등이 켜진다 ㅅ언니가 영업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거리로 나왔다. 200m 남짓한 거리에 옅은 어둠이 내리자 붉은 등이 가게마다 켜진다. 집창촌 옆 쇼핑몰 타임스퀘어가 영업을 종료하기 2시간 전이다. 집창촌은 저녁 8시에 영업이 시작돼 다음날 새벽 6시에 끝난다. 23살부터 43살, ‘아가씨’로 불리는 여자들이 머리와 화장을 마치고 ‘홀복’(손님 받을 때 입는 옷)을 입고 쇼윈도 앞에 앉는다. 통통한 아가씨, 빼빼 마른 아가씨, 가슴 큰 아가씨, 키가 큰 아가씨. 가게 유리문 너머에 한명, 또는 두세명의 아가씨가 앉아 있다. 마네킹처럼 쇼윈도 앞 의자에 앉아 자세를 취했다. 아가씨 60명이 이 거리에서 일하는데 일하러 나오는 날도 있고, 안 나오는 날도 있다고 한다. 영업하는 가게는 25곳이다. 이 거리에서 누군가를 지칭하는 대명사는 네가지다. 업주나 가게를 관리하는 남자는 ‘삼촌’, 가게에서 청소·요리를 맡은 아주머니나 미용사는 ‘이모’, 손님을 받는 여성은 ‘아가씨’, 밤에 이 거리를 지나가는 남자는 나이가 적든 많든 ‘오빠’다. 이 거리 끝에 서면, 가게 밖으로 삐죽 나온 발이 일렬로 보인다. 모두 같은 신발이다. 검정 나팔바지에 신는 30㎝ 까만 통굽이나, 엉덩이만 가릴 정도의 짧은 원피스에 신는 은빛 15㎝ 뾰족구두다. 얼굴도, 입은 옷도 다른 아가씨들은 일렬로 유리 앞에 앉아 다리를 꼬고 앉아 다리 한쪽을 비스듬히 가게 밖에 내민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게 밖으로 삐죽 나온 발이 떨린다. 다리를 떠는 것이다. 손님이 오지 않고 그마저도 지루하면 짧은 원피스 차림의 아가씨들이 가게 앞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 한대를 피운다. 유리창 밖으로 팬티를 보이지 않으려 허벅지 뒤쪽에 방석을 끼우고 쭈그린다. 해가 까맣게 지기 전에는 남자들이 다니지 않는다. 아직은 완전히 어둡지 않다. 밤 9시가 지나면서 하나둘씩 남자들이 거리를 지나갔다. 까맣게 선팅을 한 차량이 지나다닌다. 운전자들은 아가씨 구경을 하는데 택시마저 이 거리에 들어서면 저속 주행을 한다. 차보다 사람 걸음이 더 빠를 정도다. 선팅한 창문 안에서 남자들은 시선의 자유를 느낀다. 여자를 훑는다. 아가씨는 선팅된 창문 너머를 볼 수 없다. 시선은 일방적이다. 남자들이 간혹 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아가씨들은 그를 주시했다. 웃음을 준다. 말을 붙인다. 손짓을 한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하고 회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서류 가방을 들었다. 남자는 이곳저곳에 시선을 주지 않고 목적 없이 이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처럼 직진을 하다 한 가게 안으로 쑥 들어갔다. 아가씨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곧장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익숙해 보였다. 이 아가씨의 단골일지 모른다. 시선을 돌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며 훑다가 이 아가씨를 고른 것인지도 모른다. 앳된 얼굴의 아가씨가 50대로 보이는 남자를 따라 올라간다. 손에 몇만원을 쥔 아가씨가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내려와 업주가 있는 공간으로 들어간다. 업주에게 돈을 줬을 것이다. 15분에 7만원. 빈손의 아가씨가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아가씨가 사라지자 유리창 너머에 고양이 한마리만 앉아 있다. 아가씨가 기르는 고양이 ‘코코’다. 15분쯤 지나자 남자가 내려와 유리문을 열고 나간다. 여자는 다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고개를 묻고 휴대전화를 쳐다본다. 둘은 별다른 인사를 하지 않았다. 아가씨와 15분을 공유한 남자는, 이 거리를 벗어나면 15분간의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이다. 내일이면 낮의 세계로 들어가 일터에 출근할 것이다. 어제 일은 까맣게 잊을 것이다. 모른 척할 것이다.
세 남자가 영등포 집창촌 거리를 걷고 있다. 한 남자의 시선이 유리창 안에 선 여자에게 향한다. 강재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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