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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05 19:30 수정 : 2015.06.07 12:07

지난달 8일 오전 경기 평택시 팽성읍 동창리 미군기지 내 차량정비시설 건설 현장에서 한 하청 건설사 사장이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린 뒤 불을 붙였다. 현장엔 불에 그을린 자국을 가리기 위해 모래를 뿌려 놓았다. 평택시민비대위 제공

[토요판] 르포
평택 미군기지에서 생긴 일

▶ 서울 용산 등에 주둔하는 주한미군이 이전하기로 돼 있는 경기도 평택의 미군기지 확장공사 현장에서 지난달 초 한 하도급 업체 사장이 분신했습니다. 그가 분신하기 전날엔 기지 내 병원을 짓는 건설 현장의 소장이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때 ‘대추리 사태’로 불리며 기지이전 반대 운동이 격렬하게 일었던 그곳에서 또다시 불행의 씨앗이 잉태되고 있는 걸까요. 주한미군 기지 확장공사가 한창인 평택 팽성읍을 찾아가봤습니다.

“나이도 있고 딸린 자식들 셋에 식구도 많고, 제 돈이 5억~6억원 이상 들어가 있어요. 제가 올해 쉰일곱살인데… 노후대책까지 하려고 시작한 건데…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지난 1일 오후 경기 평택 팽성읍 미군기지 인근의 한 ‘현장 식당’(함바집). 사장 김아무개씨의 눈에 보일 듯 말 듯 눈물이 고였다. 지난해 6월 180석 규모에 직원 10여명인 이 식당을 인수한 김 사장은 미군기지 확장공사에 참여한 하청업체들로부터 밥값 2억1500만원가량을 받지 못했다. 이곳 식당들이 공사업체로부터 밥값을 못 받는 일은 이미 하루이틀 된 문제가 아니었지만, 직전 사장은 김씨에게 식당을 넘기며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열 받아서 정말…. 이 일대에 저처럼 멋모르고 덤볐다가 밥값 못 받아서 도산한 식당이 엄청나게 많아요. 저도 올해 경영이 어려운데, 이 돈 못 받으면 정말 망해버릴지도 몰라요.”

인터뷰 중 담배를 꺼내 피워 문 그는 치밀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식사시간을 훌쩍 넘긴 식당엔 손님이 거의 없었고 식당 앞엔 점심시간마다 미군기지 안 공사현장으로 식사를 나르는 ‘밥차’ 석 대가 주차돼 있었다. 김 사장은 인근에 이런 식당이 40~50곳에 이른다고 했다. 식당끼리 경쟁이 붙다 보니 일부 식당은 인부들 숙소도 마련해준다. 충분한 현금이 없는, 영세한 건설현장의 하도급 업체들을 위한 일종의 서비스다. 2억원이 넘는 김 사장의 미수금에도 이런 방값이 포함돼 있었다.

“이번에 사고 난 회사는 다 해결해줬대요. 꼭 사고가 나야 해결해주나요? 그건 아니잖아요. 제가 그렇게 분신자살이라도 해야 하나요? 그 회사가 갚아야 할 돈이 수십억원 될 거예요.”

김 사장이 언급한 ‘사고’는 지난달 초 미군기지 내에서 분신을 시도한 한 하도급 건설사의 사장 한아무개(62)씨 이야기다.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어 생명이 위독한 상태로 병원에 실려 간 한씨는 분신 열흘 만인 지난달 18일 서울 한강성심병원에서 숨졌다. 그의 죽음은 9년 전인 2006년부터 시작된 미군기지 이전 과정에서 이 지역 주민들에게 드리운 검은 그림자의 일단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밥값 2억여원 떼인 식당 사장
“분신자살이라도 해야 하나?”
하도급 업체 한 사장은 분신
‘갑질’ 원청 원망하며 죽어가
“유독 서희 하청 부도 많아”

원청 대기업 저가수주 경쟁에
하도급 업체들은 연이은 부도
‘최약자’ 지역상인에게도 피해
해마다 피해액만 40억~60억원
“미군기지가 아픔만 남겨”

반복되는 ‘갑’의 횡포

한씨는 지난달 8일 오전 10시5분께 팽성읍 동창리 미군부대 내 차량정비시설 건설 현장에서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린 뒤 불을 붙였다. 한씨의 분신 현장을 찍은 사진엔 시커멓게 불에 그을린 자국을 가리려 뿌려놓은 하얀 모래와 현장 접근을 막기 위해 세워둔 고무고깔 등이 찍혀 있었다. 지난 1일 오후 팽성읍 내 ‘평택안정국제교류센터’에서 만난 김동완(48) 평택시민경제살리기비상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분신 소식을 듣고 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이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이곳에서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으며 한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씨는 손으로 쓴 A4용지 두쪽 분량의 유서를 남겼다. “갑의 횡포가 (나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계약금과 실행금이 현실적으로 차이가 너무 크다. (이번 공사로) 부채가 20억원에 이르게 됐다. 철저히 수사하여 찾아달라. 죽음으로 부탁한다.” 유서에서 한씨는 자신의 회사인 상빈건설이 미군부대 내 차량정비시설 공사를 위해 지출한 돈이 84억원에 이르지만, 원청인 서희건설로부터 64억5000만원밖에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씨는 “전년 추석 때 손실보전금 15억원을 요구했지만 갑(서희건설)의 협박과 압력으로 6억5000만원에 합의했다. 금년 구정에 연장계약 및 추가공사비로 15억6000만원을 청구했지만 갑의 압력과 협박으로 7억5000만원에 합의했다”고 썼다. 상빈건설이 철근 콘크리트 공사를 하도급받아 참여한 미군기지 내 차량정비시설 건설 공사는 2013년 5월 발주돼 서희건설이 수주, 올해 10월 준공될 예정이다. 경찰은 앞서 원청인 서희건설이 한씨 쪽에 “공사기간을 맞추지 못할 것 같으니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보냈다는 공사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확인돼야 하겠지만, 한 사장은 20억원에 이르는 돈을 주지 않은 채 계약을 해지한 원청을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원망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그동안 수차례 반복돼 왔다는 사실이다. 평택 미군기지 건설 현장에서 서희건설의 하도급 업체가 도산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군기지 확장공사가 시작된 2006년 지역상인 등이 중심이 돼 결성된 팽성애향회의 이훈희(57) 회장은 “공사 초기 서희건설이 10억원가량의 돈을 지급하지 않아 하도급 업체였던 진성산업개발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한조건설·우정특수기업·무진건설 등 하도급 업체들이 서희건설로부터 공사대금을 제대로 못 받아 모두 도산해버렸다. 유난히 서희건설 하도급 업체들의 부도가 많았다”고 말했다. 미군기지 건설엔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지만, 유독 서희건설의 하청업체들에 문제가 많았던 것이다.

건설업계에서 서희건설은 부실공사와 임금체불 등으로 뒷말이 무성한 회사다. 지난 수년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아파트 건설공사 시공사들의 하자 발생과 임금체불 건수 1위가 모두 서희건설이었다. 지난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김윤덕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09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서희건설이 시공한 엘에이치 아파트에서 발생한 하자는 모두 3825건이었다. 2위, 3위 회사의 하자 발생 건수가 각각 2230건, 2061건이었으니 아래 순위와의 격차도 큰 편이었다. 하도급 업체에 대한 임금체불도 가장 많았다. 2010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서희건설의 하도급 업체 임금체불 민원 건수는 59건에 체불액 13억7500만원으로 1위였다. 2위 시공사는 같은 기간 11건 10억8062만원, 3위는 3건 8억466만원이었다. 서희건설은 2011년과 2012년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같은 문제로 도마에 올랐다. 수년째 문제가 반복되자 지난해 국회는 국정감사장에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을 증인으로 부르려다 진행 중인 재판이 있다는 이유로 출석 요청을 철회하는 일도 있었다.

분신사건 닷새 뒤인 지난달 13일 평택시민경제살리기비상대책위원회와 팽성상인회 회원 등 50여명이 미군기지 앞에서 집회를 열어 “비현실적인 공사금액 탓에 지역 업체들이 도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평택시민비대위 제공

원청의 저가수주가 문제

서희건설의 평택 미군기지 하청업체들로부터 1억3500만원의 밥값을 받지 못했다는 현장 식당의 김 사장이 경험한 서희건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청인 서희건설은 공사 진행 상황에 맞춰 하청에 지급하는 대금인 ‘기성’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원청에서부터 돈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니 식당에까지 돈이 흘러들어올 리 없었다. 하청은 돈이 없었고 밀린 밥값은 쌓여만 갔다. 김 사장은 “원청인 서희건설을 보고 인부들에게 밥을 제공한 것이니 서희건설이 밀린 밥값을 지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번번이 거절당하다 지난해 가을 서희건설은 김 사장에게 밀린 밥값의 30%만 주겠다고 했다.

“난 1000원짜리 밥을 줬는데 왜 300원만 주겠다는 거냐. 이거 갖곤 안 된다. 당신 같으면 받겠느냐면서 따졌죠. 집세도 줘야 하고 직원들 월급에 음식재료비도 줘야 하니 안 된다고 했어요. 근데 급전을 쓰며 버티다 보니 두세달 뒤엔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30%라도 일단 달라고 했죠. 근데 시간이 지났으니 자기네 법무팀과 해결하라고 하더라고요. 소송을 걸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란 거죠.”

상빈건설 한 사장의 죽음 이후 서희건설은 그제야 비대위, 애향회, 상인연합회 등과 협의해 그동안 하청업체들에 지급하지 않은 노임의 100%, 장비대의 80% 등을 지급하기로 했다. 1년 가까이 밀린 김 사장의 밥값에 대해선 아직 아무런 언급이 없다.

서희건설의 ‘갑질’이 도드라졌지만, 이곳 평택 주한미군 기지 확장공사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비단 서희건설만의 문제가 아니다. 강원 원주, 경기 부평·의정부·동두천, 서울 용산 등에 배치된 2만8000여명의 미군은 올해 말부터 내년 사이 확장되는 평택 미군기지로 주둔지를 옮긴다. 평택기지는 총 16㎢가량으로, 서울 여의도 면적(8.4㎢)의 두 배에 이른다. 기지 내부엔 군사시설뿐 아니라 장병 숙소와 병원, 생활편의시설, 각급 학교 등이 지어져 사실상 하나의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진다. 현재 3만명가량인 팽성읍의 인구는 2020년께 20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전국의 미군기지를 이곳으로 이전해 오기 위해 주한미군 극동공병단(FED)과 국방부, 엘에이치 등이 발주한 건설공사엔 삼성물산과 에스케이건설, 포스코건설, 대림산업, 한화건설, 동양건설산업, 현대엠코, 경남기업 등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원청업체로 참여했다. 대규모 건설현장에서 대기업들이 벌인 수주 경쟁은 하청업체의 도산과 지역경제에 피해를 끼치는 저가수주로 이어졌다.

이종호(48) 평택시민경제살리기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이뤄진 입찰 과정에 참여한 이의 말을 들어보면, 입찰엔 통상 1군업체(원청) 대여섯곳이 참여한다. 적정가의 78% 정도에서 입찰이 이뤄지고 발주처가 다시 가격을 낮추기 위해 3~4차례 유찰시켜 74% 선에서 낙찰시킨다. 원청이 낙찰가의 10%를 이익으로 챙기면 하도급 업체엔 64%가 간다. 하도급 업체는 부도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이 미군 쪽이 내세운 품질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해 재공사를 하는 등 공기가 지연된 것도 이런 상황을 부채질했다고 한다. 조행원(56) 팽성상인연합회 전 회장은 “품질기준을 미국 내 기준에 따르다 보니 기지 내에서 공기가 지연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그러면 애초 계획보다 공사비가 늘고 이에 대한 부담은 먹이사슬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상빈건설의 한 사장이 분신하기 하루 전인 지난달 7일 기지 내 병원 신축공사 현장에선 한 원청업체의 현장소장 김아무개(53)씨가 공기가 지연된 것에 부담을 느껴 목을 매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김씨가 회사 쪽에 남긴 유서엔 “공기가 늦어진 것은 내 책임”이란 취지의 글이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원청의 저가수주 경쟁은 자금 여력이 없는 하도급 업체의 부도로 이어지고, 하도급 업체에 건설 자재, 장비, 식사와 숙소 등을 제공한 지역 내 소규모 납품 업체들이 돈을 받을 길이 사라지는 상황이 이곳에서 수년째 반복되고 있었다.

“미군기지가 아픔만 준다”

조행원 전 회장은 “내가 상인회 회장을 맡고 난 직후인 2011년에만 전체 피해액이 60억원이었다. 이듬해엔 40억원, 그다음에도 40억원, 지난해 말엔 38억원이었다”고 했다. 상인회장은 해마다 상인회에 속한 자재업체와 인력회사, 현장 식당 등의 피해액을 모아 원청사들과 협상을 해야 했다. 서희건설 같은 원청사들은 30%, 사정이 나은 다른 원청사들은 75%를 제시하곤 했단다. 그나마 법 규제를 받는 인건비는 최소 90%를 받아냈지만, 다른 비용들은 매번 약속한 금액만큼 받지 못했다. 식비가 65%, 장비가 45% 같은 식이었다. 해마다 30~20% 정도로 합의를 본 건설자재는 몇년이 지나자 지역업체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현장 식당들도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까지 외상 밥값을 받지 못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2013년 12월엔 목수 등 8명이 기지 내 공사현장에서 중장비에 올라 밀린 임금 지급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기도 했다.

평택 팽성읍의 산들애식당 사장 목양숙(60)씨도 원청사인 대보건설의 하청업체가 부도가 나 두달치 밥값 940만원을 받지 못했다. 목씨는 “함바 한 지 10년 정도 됐는데 밥값을 못 받은 건 여기 와서 처음이다. 계속 전화해야 하고 밥값 받아내는 게 일이다. 화가 날 땐 대통령한테 가서 1인시위라도 하고 싶었다. 국방부나 정부가 조처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조 전 회장은 “애초 자기자본을 제대로 갖춘 업체한테 하도급을 줘야 한다. 원청도 기성을 지급할 땐 식당 외상값 같은 것부터 먼저 정리해줘야 한다. 그렇게 하면 깨끗한데도 누구도 책임지고 관리하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조 전 회장과 함께 그의 차로 공사 중인 미군기지 외곽을 돌았다. 한때 미군기지 이전 반대운동이 격렬하게 일었던 동창리와 대추리, 도두리 일대는 이제 모두 기지 내로 편입돼 접근할 수 없었다. 멀리 공사 중인 기지 내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따금 머리 위로 미군 헬기가 날아들었다. 이착륙 항로를 변경하라며 주민들이 길가에 걸어둔 펼침막이 헬기의 회전날개가 일으킨 바람에 펄럭였다.

이훈희 팽성애향회 회장은 “과거 팽성이 이념 갈등의 장이었을 때 난 주한미군 이전을 적극 찬성하는 쪽이었다. 한데 이젠 시민들한테, 주민들한테 미안하다. 이곳은 일제 때에도 해군성의 기지였고, 해방되고 나선 미군이 들어왔다. 어차피 기지촌이니 그 기지가 더 커진들 손해 볼 것 없지 않겠느냐 싶었다. 한데 주민들 중 이익을 보는 사람은 별로 없고 손해만 보고 있다”고 했다.

평택/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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