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만리재로에 자리한 봉제공장 ‘태성’에서 미싱사 두 명이 짝을 이뤄 반바지를 만들고 있다. 구입하기에 부담 없고, 저렴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의 아름다움이 이곳 미싱사들의 손으로 완성된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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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르포
햇볕도 숨은 지하 1층, 미싱사가 노랠 부르네
▶ 서울 중구 만리동에서 남대문로5가로 이어지는 서울역 고가도로가 이르면 오는 10월 폐쇄돼 공원이 만들어집니다. 공덕동에서 서부역으로 넘어가는 고개, 만리재에는 가내 수공업형 봉제공장이 밀집해 있습니다. 단층 가옥이나 다세대주택, 건물 지하에 스며든 봉제공장에서 만들어진 옷은 저녁 8시면 고가도로를 타고 동대문 의류상가 등으로 팔려갑니다. 만리재 어느 지하 봉제공장에서 이틀을 보냈습니다. 다리미와 철가위, 망치가 내는 소리는 침묵 사이로 노래가 됩니다.
옷장을 열고 비늘처럼 빼곡한 옷의 실자국을 손끝으로 만져본 적 있는가. 비싸거나 좋은 옷, 대충 입기 좋은 옷, 어느 옷이든 수없이 박힌 바늘 자국의 기원을 생각한 적 있는가.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타국일지, 서울의 변두리에 자리한 공장일지, 이름 모를 봉제공장 직공이 발로 미싱 페달을 밟아 박음질한 흔적이 상처처럼 옷에 새겨져 있다. 옷장에는 어느 봉제공장 직공이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미싱기 앞에서 원단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실로 박은 시간의 자국들이 걸려 있다. 티셔츠 소매 끝단, 재킷 어깨, 바지 허리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뒤집어 본 적이 있는가. 바늘이 통과하여 옷에 길을 낸 자국은 제각각 다르다. 우리는 매일 타인들의 시간이 박힌 옷으로 몸을 감싼다.
다른 동네보다 서울 하늘에 걸린 달과 가까운 고개, 만리재. 한때는 달동네로 불리던 곳. 마포구 공덕동에서 서부역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서 동대문 의류상가나 남대문시장에 납품될 옷들이 만들어진다. 고갯길을 따라 난 왕복 4차선 도로 양쪽으로 페인트가 벗겨진 단층 슬레이트 가옥이나 높지 않은 칙칙한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고향식당, 귀빈숯불갈비, 일번지노래방…. 싸구려 호프집과 4000원짜리 백반집. 만리재의 단층 가옥과 건물 지하에는 직원이랄 것도 없이 부부 두 명, 고작해야 서너 명이 일하는 가내수공업형 공장이 즐비하다. 대다수는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아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봉제공장은 마포구 공덕동, 중구 만리동, 용산구 서계동 일대에 2000~2500곳에 이른다.
만리재를 오르다 걸음을 멈추면 공장 같지 않은 허름한 가옥에서 공장을 만난다. 집 바깥으로 삐죽 나온 비닐관에서 물이나 뿌연 증기가 나면 내부에서 다리미를 쓰는 공장이 있다는 얘기다. 가정집에서 쓰지 않을 커다란 비닐봉지에 천조각들이 가득 담겨 거리에 쓰레기로 나와 있다면 인근에 공장이 있다는 말이다. 1970~80년대 봉제공장촌이 형성된 만리재에서 지금은 앳된 얼굴의 직공을 찾아볼 수 없다.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막 졸업하고 미싱기를 돌리던 사람들이 40, 50대 가장이 되어 이곳을 살아간다.
섬유 끝단을 말아 박는 인터로크와 올이 풀리지 않게 휘갑치는 오버로크 작업을 하는 미싱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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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선 가내수공업 봉제공장촌
“우리는 외로운 형제 길 잃은 기러기”
공장 지하에서 여자가 노래를 하면
다리미·망치·철가위도 노래를 하고 노동의 아름다움과 쓸쓸함이 묻은
만리재에서 서울역으로 이어지는
고가도로가 폐쇄돼 공원이 된단다
저녁 8시, 동대문상가로 팔려 가는
옷엔 직공의 땀이 비늘처럼 박혔다 “여긴 사연 없는 사람 없어” 이제 미싱사 차례다. 미싱사들은 둘이서 짝을 이뤄 일한다. 옷의 주요 부분을 미싱기로 박는 ‘메인 미싱사’와 끝단 처리 등을 돕는 ‘보조 미싱사’가 짝이다. 다 같아 보이는 재봉 기계는 쓰임이 각각 다르다. 섬유 끝단을 촘촘히 말아 박는 인터로크, 옷감의 올이 풀리지 않게 실을 휘갑치며 박는 오버로크, 주요 박음질을 하는 일반 미싱기. 페달을 밟으면 실패에 감긴 실이 돌돌 풀리고 바늘이 원단을 뚫으며 길을 낸다. 완성된 옷은 단추를 달고 다림질을 해주는 ‘시아게’(마무리라는 뜻으로 봉제업에서 쓰는 일본말)집으로 보내진다. 시아게집에서 마무리된 옷들은 소형 냉동차를 타고 동대문 의류상가 등으로 팔려 나간다. 냉동차지만 옷을 싣기 때문에 냉동 기능은 없다. 옷 한 벌을 완성해서 봉제공장이 받는 돈은 5000~1만2000원. 이 돈은 패턴사, 재단사, 미싱사, 보조미싱사 등의 임금과 공장 월세 등으로 나간다. 지난 13일 태성사는 일곱 종류, 100여벌을 주문받았다. 오전에 주문을 받으면 그날 저녁에 바로 납품한다. 저녁 8시께를 전후해 완성된 옷들은 동대문 상가 밤시장에 진열된다. 매일 소비자 반응에 따라 수요, 공급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이 만들지는 않는다. 만리재의 봉제공장은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이다. 미싱사들은 바쁘게 하루를 쪼개야 한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참말로 힘드네잉.” 김 사장의 아내가 미싱을 돌리며 한마디를 던진다. 조용하던 공간의 정적이 깨졌다. 김 사장의 아내도 30여년간 미싱을 잡았다. 이미자의 ‘기러기 아빠’ 같은 노래를 곧잘 부른다.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봉제공장에선 여자들의 수다가 많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잠시 한눈을 팔면 불량품이 나온다. 침묵 사이로 잠이 쏟아지지 않게 가끔 흰소리를 하는 정도다. “여기 사연 없는 사람이 없어. 그래서인지 노래 한 자락씩은 잘 부르지. 근데 언니는 언제부터 미싱했어?” “나? 부산에 자유시장 불탈 때가 언제냐? 그때부터 했으니까 한 30년 됐지.” 또다시 침묵이다. 침묵을 가르는 기계나 도구 소리만이 공간을 움직인다. 천장에서 검은 줄을 타고 내려와 작업대에 사뿐히 내려앉은 다리미 네 대가 도열해 있다. 칙, 칙. 칙, 칙, 칙. 기차 소리를 내며 다리미가 옷을 지나간다. 거미줄 같은 네다섯 가닥 실들이 미싱기에 달려 옷들에 박힌다. 미싱 소리는 작업 방식이나 기계마다 다르다. 특, 특, 트트트트특, 스타카토처럼 끊어지는 음이 있는가 하면, 이이이이잉 코맹맹이 소리를 길게 내는 기계도 있다. 옷감을 자르는 재단사의 철가위는 척, 척 번쩍이는 소리를 낸다. 탕, 탕, 완성된 옷에 똑딱단추 박을 자리를 내는 망치 소리도 들린다. 슥, 슥, 재단사가 원단을 펄럭일 때 얇은 천들이 희미한 바람 소리를 낸다. 봉제공장에서는 기계와 도구들도 노래를 부른다. 한 벌 옷은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야 완성된다. 옷 만드는 사람들의 몸엔 때로 고통이 박힌다. 패턴사와 재단사의 손에는 수십년 가위질하느라 생긴 굳은살이 있다. 미싱사의 손가락에는 깊이 찔린 흔적이 남는다. 1년에 한두 번 바늘이 손가락을 관통해 피를 흘린다. 피가 나도 반창고를 붙이고 다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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