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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31 20:16 수정 : 2014.11.02 10:06

강서구 재력가 살인을 교사한 혐의로 기소된 김형식 서울시의원의 국민참여재판이 열린 지난 27일 오전 서울남부지법 406호 법정 모습을 스케치했다. 검찰과 변호인은 대형 화면에 변론요지와 증거를 제시하고 마이크로 변론을 펼쳤다. 평균 지성을 가진 시민들에게 누가 더 설득력있는지 다퉜다. 일러스트 김대중 mayseoul@naver.com

[토요판] 르포 / 재판 방청기

▶ 서울 강서구 재력가를 살인교사한 혐의를 받는 김형식 서울시의원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선고는 간결하지만 다툼은 길고 복잡했다. 사실관계는 종종 모호했고, 선악이 자주 흐릿했다. 미국 논픽션 작가들은 ‘공기 마시기’(breathing air)라는 취재용어를 쓴다. 뼈대 팩트뿐 아니라 사건이 벌어진 시공간, 인물의 표정과 냄새 등 정황과 관련한 디테일을 빠짐없이 취재해야 한다는 취지다. 강서구 살인사건 재판의 공기를 전한다. 이것은 스트레이트 기사가 아니다. 기자의 주관과 판단이 종종 섞여 있다.

원래부터 부자가 아니었다. 송아무개씨는 오사카 재일동포 이순봉씨의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토지·빌딩의 재산관리인이었다. 이순봉씨의 딸이 소유권을 물려받았다. 송씨 부부는 2002년 별안간 소송을 냈다. 자신이 관리하던 강서구 부동산을 ‘20억원’에 샀다며 이순봉씨의 딸을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 소송을 2002년 8월 냈다. 재판은 서울남부지법 310호 법정에서 열렸다. 무변론으로 송씨가 승소했다. 검찰은 송씨가 서울남부지법에 제출한 20억원의 부동산매매계약서와 영수증을 포함해 여러건의 문서를 위조했다고 판단하고 2006년 기소했다. 1심에서 징역 8년의 유죄가 선고됐다. 서울고법이 2심에서 대부분의 위조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결했다. 일부 문서만 유죄 판결을 받았다. 송씨는 법률적으로 부자가 됐다. 지금 언론은 송씨를 ‘강서구 재력가’로 부른다. 부자가 된 전직 재산관리인은 그 뒤 여러번 민사소송을 했다. 재판은 거의 서울남부지법의 3층 법정에서 이뤄졌다. 전직 재산관리인에게 서울남부지법은 익숙한 공간이다. 그러다가 2014년 3월3일 자정 39분 살해됐다.

변호인은 감추면서 방어했다

송씨의 살인사건 선고공판도 그가 생전에 익숙한 곳에서 열렸다. 송씨의 민사재판이 열렸던 양천구의 서울남부지법 310호와 312호 법정 위층 406호 대법정에는 2014년 10월27일 오전 9시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대법정 앞 가방 검색대의 컨베이어 벨트가 계속 돌았다. 강서경찰서는 6월 말 보도자료를 내어, 살인 피의자 팽아무개(44)씨를 검거했고 아울러 강서구가 지역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김형식(44) 의원을 살인교사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의 젊은 야당 시의원이 살인교사 혐의로 체포됐다는 충격적인 혐의가 발표됐다. 팽씨는 김 의원의 지시로 살인했다고 주장했다. 서울남부지검은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은 뒤 7월 말 팽씨와 김 의원을 각각 살인과 살인교사 혐의로 기소했다. 김 의원의 요구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만 20살 이상 주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들이 형사재판에 참여해 판결에 참여한다. 최종 쟁점은 ‘단독 범행’이냐 ‘살인교사가 있었느냐’다. 이 최종 쟁점을 둘러싸고 다시 △팽씨 진술의 신빙성 △매일기록부의 신빙성 △김 의원의 살인교사 동기 존재 여부 등 하위 쟁점이 갈렸다. 지난 10월20~24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매일 재판이 열렸다.

10월27일에도 오전 9시30분부터 마지막 추궁과 변론이 있었다. 70여석의 방청석이 꽉 찼다. 가운데 자리에 앉은 판사 3명의 머리 위에 법원 상징이 빛났다. 방청석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위치한 피고인 김형식 의원의 머리 뒤에 대형 프레젠테이션 화면이 있었다. 그 왼쪽에 검사 4명과 배심원·예비배심원 11명이 자리에 앉았다. 오전 9시30분 재판이 시작되자 마이크가 켜졌다. 검찰과 변호인은 다시 배심원 앞에서 공박을 시작했다. 배심원 9명과 예비배심원 2명 중에 남자 3명을 뺀 나머지는 전부 여성이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긴 머리의 여성을 뺀 나머지 배심원들은 30대 중반~50대 초로 보였다. 배심원 참여 열의가 높지는 않은 것 같다. 무작위로 추출해 출석 통보한 주민 500명 가운데 130여명만 법원에 출석했다. 그 인원 중에서 배심원 9명과 예비배심원 3명을 뽑았다. 그중 1명은 지각해서 중도 제외됐다.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서울고법 2009노3265 송씨 판결문) 해야 한다. 그것이 근대 형법이다. 숨진 송씨는 그 덕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재일동포로부터 부동산을 위임받거나 구입했다고 법정에 제출한 문서 여러건을 위조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서울고법 2심 재판부는 “피고인(송씨)들이 제출한 여러 문서에는 원심이 설시하고 있는 바와 같은 허점과 모순이 있고 피고인 송씨의 검찰에서의 진술에 일부 일관되지 못한 점이 있으며…의문이 들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결국 무죄 판결했다. 아마 배심원들은 송씨 판결문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훈련받은 법조인도 아니다. 김 의원은 시민의 평균적 지성·정의감에 기대면 무죄를 입증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평균적 지성은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검찰의 범죄 입증은 내게는 여전히 부족해 보였다. 송씨가 자신의 내발산동 ㅅ빌딩 주변을 상업지구로 변경하기 위해 김 의원에게 청탁했고 김 의원이 이를 들어주지 않자 김 의원을 독촉해 살인이 벌어졌다는 것이 공소장 내용이다. 검찰의 논리를 따르면, 김 의원이 구청이 중도폐기한 사업을 가능한 것이라며 송씨를 7개월간 속였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검찰은 김 의원이 어떻게 속였는지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했다. 송씨는 부동산 ‘법 기술자’로 유명했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은 30명이며 과반수로 의결한다. 김 의원이 당시 비공개로 진행되던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안에서 송씨를 위해 어떤 발언과 행위를 했는지도 검찰은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했다. 송씨와 2014년 단 두차례 통화밖에 하지 않은 김 의원이 어떤 압박을 받았는지도 입증하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만큼 변호인도 모호했다. 감추면서 방어한다는 인상을 줬다. 레옹 머리를 하고 블루그레이 셔츠를 입은 중키의 정훈탁(47·사법연수원 21기) 변호사는, 화술이 달변이었지만 논리와 팩트는 모호했다. 김 의원의 친형인 부장검사 출신 김아무개(47) 변호사의 친구로 고교·서울법대·사시·사법연수원 동기다. 그 모호함은 내게 의도된 것으로 보였다. 검찰 수사의 빈틈을 설득력 있게 공격하다, 매번 어떤 지점에서 멈춰버렸다. 매일기록부의 내용에는 일부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기록이 존재했다. 오세훈 시장 재직 시절인 2010년 ‘시장 5억 중 10(2010년).11/19. 2억.’이 대표적이다. 정 변호사 주장처럼, 야당 초선 시의원을 통해 한나라당 시장에게 로비한다는 정황은 합리적이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차용증에 찍힌 김 의원의 지문도 진짜 김 의원의 지문이었다. 그러나 정 변호사는 팩트/의혹/비논리를 핀셋으로 정교하게 구분하기보다 손도끼처럼 마이크를 잡고 프레젠테이션 화면 속에서 그것들을 짓이겨버렸다. 지문을 논하지 않고 곧장 차용증과 매일기록부 전부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2012년 4월에 살인범 팽씨, 김 의원, 숨진 송씨가 한 식당에서 만났다는 결정적 장면에 대해서도 김 의원의 변호인은 해명하지 못했다.

이런 모호함이 내내 법정을 덮었다. 모호함은 27일 오전 아주 잠깐 걷혔다. 김 의원과 정 변호사의 변론 전략에 이견이 있는 듯 보였다. 김 의원이 스스로 자신의 혐의에 대해 진술하려 했다. 재판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다. 김 의원이 마음먹은 듯 진술하려 하자 정 변호사가 이를 제지하는 장면이 4~5번 벌어졌다. 납치사건 공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김 의원의 형이 내내 재판을 지켜봤다. 그는 공개된 사진과 달랐다. 안경을 꼈고 머리가 벗겨졌다.

9명 배심원은 유죄 평결했지만
검찰 범죄 입증은 부족해 보였다
김 의원이 어떻게 송씨 속였는지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했다
변호인도 검찰만큼 모호했다

김 의원 변호인은 검찰이 아니라
피고인의 진술을 제지하려 했다
초선 시의원은 숨진 송씨와의
관계가 드러날까봐 걱정했다
2심에서 다시 진실을 다툰다

“술값에 대해서, 몇번 얻어먹긴 했는데…”

#오전 재판 중 한 장면

검사 : (피해자로부터) 술접대 받은 사실이 없다는 말인가요?

김 : 접대를 받은 것은 아니고요, ㅆ, ㅌ 술집은 못 들어본 곳이구요, 고인이 (제가) 먹은 술을 계산해주셨습니다.

변호인 : (#갑자기 끼어들며) 조사중인 내용인데 피고인이 수사중인 사건에 대해 답변하지 않기로 했는데 혼미한 상태에서 조사받는…이것에 대해서는 진술 거부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술값에 대해서, 몇 번 얻어먹긴 했는데 정확히 기억도 못하는 상태에서 누구랑 먹었는지, 얼마를 먹었는지 진술 거부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재판장 : 피고인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에 진술을 거부할 건지 상의할 수 있거든요, 진술 거부할 수 있습니다.

김형식 : 제가….(#변호인 변호인석에서 일어나 가운데 앉은 김형식 의원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문서를 보여주며)

검사 : 돈관리가 매우 철저했던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3500만원 상당의 술값을 대준 이유는 무엇입니까?

김형식 : 진술 거부하겠습니다.

검사 : 대가는 무엇입니까?

변호인 : 수사중인 사항이라 진술 거부하겠습니다.

김 의원은 점심시간에 변호인과 상의한 뒤 자신의 뜻대로 진술했다. 김 의원의 진술에서 새로운 정황이 새로 드러났다. 김 의원은 송씨와의 관계가 정치인으로서 부적절한 것임을 스스로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드러날 것을 걱정했음도 드러났다. 이날 오후 재판에서 변호인이 “(팽씨가 송씨를 살해했다는 소식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고 피고인과 송 회장의 관계가 나타날까 두려웠죠?”라고 묻자 김 의원은 “네”라고 답했다.

초선 시의원과 사문서위조 전과자의 관계는 과연 부도덕했다. 송씨가 부동산이나 세무 등 사업과 관련해 전화하면 김 의원은 관련기관에 “연락한 경우”가 많았다. “궁금하거나 연락 온 게 있으면 자문해드리고 그런 정도이면서, 도와드리려고 애썼”다. 핵심 혐의인 내발산동 ㅅ빌딩 주변 토지의 용도변경과 관련해 송씨가 자신을 찾아와 “강서구청에서 못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법률적 설명만 하고 “보내드렸다”고 해명했다. 차용증에 대해 변호인이 “술이 취해 있던 중 아무 생각 없이 글 쓰고 이름 쓰고 해준 것뿐이죠?”라고 묻자 “네”라고 답했다. 송씨는 불법행위로 수백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자 이를 감면할 방법을 찾기 위해 김 의원에게 전화했다. 그런 사이였다. 무죄의 증거는 부도덕의 증거였다.

숨진 송씨는 지역 정치인들 사이에서 “조심할 사람”이라는 악평이 퍼져 있었다. 그는 “2000년도 이후의 범죄전력만으로도 업무방해, 명예훼손, 폭행, 상해, 모욕 등으로 인한 수 회의 벌금형 전과가 있는”(2013노2437 판결문) 사람이었다. 탈세를 목적으로 두건의 부동산 매매 이행 각서를 위조한 혐의로 지난해 7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67살의 나이로 죽기 직전까지 2명의 내연녀를 두고 정기적으로 성관계를 했다. 매일기록부가 사실이라면, 강서구 정관계에 광범위하게 로비를 한 혐의가 있는 ‘뇌물공여 혐의자’다. 그런 인물에게 술이 취한 상태에서 훗날 어떻게 악용될지도 모를 법적 위험을 떠안고, 이름과 지장만 있는 ‘백지 차용증’을 써줬다는 것이 김 의원의 진술이다.

김 의원은 팽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더 상세히 설명했다. 김 의원 진술에 의하면, 팽씨는 검찰 묘사처럼 그저 “믿고 따르는 10년지기 친구”가 아니었다. 팽씨는 “모든 걸 맡길 수 있는 사무장 같은 친구”였고 “선거 때만 도와주는 애가 아니”라 “평상시에도 지역구에서 인사 다니는 친구”였다. 그래서 팽씨가 송씨를 알 거라는 취지다. 팽씨의 큰형이 김 의원에게 5000만원을 빌리고 잠적했다. 아들의 이름을 친구의 이름을 따서 짓는 관계, 수천만원을 빌려주고 받는 관계, 그중 일부는 떼먹힌 채권·채무 관계, 환치기 사업자와 투자자의 관계, 선거 사무장과 지역구 시의원의 관계. 이 모두가 뒤섞인 관계를 대체 뭐라 부를 수 있을까? 김 의원은 팽씨가 살해 사실을 고백하자 전화로 “(네가) 인생에서 사라졌으면 싶겠다고 이야기한 적은 있다”고 울며 말했다. 김 의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친구·채무자·동업자·사무장이던 팽씨가 갑자기 김 의원에게 누명을 덮어씌운 셈이 된다. 무엇이 팽씨를 화나게 했을까?

서로가 서로를 이용한 세 남자

세 남자의 관계는 모호하다. 팽씨와 송씨에 대해 “피고인 김형식에게 철저히 이용당하고 버려진 사람들”이라고 검찰은 묘사했다. 배심원들의 심리에 ‘가해자/피해자’ 구도를 각인시키려는 의도로 보였다. 검찰은 24일에 프레젠테이션 스크린의 팽씨의 유서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배우가 재연하듯 유서를 읽어 방청객의 웃음을 샀다. 검찰의 묘사는 관계의 실체와 맞지 않아 보인다. 송씨는 뇌물공여 혐의자다. 팽씨는 짝퉁 사업 등을 하면서 형사처벌 받은 전과가 10건이다. 비슷하게 부도덕한 세 남자는 서로 ‘친구’와 ‘아버지’라 부르면서 서로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정의도 모호하다. 송씨의 유족은 매일기록부를 훼손한 혐의를 받고있다. 검찰은 몇달이 넘도록 훼손 혐의 수사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매일기록부에 돈 받은 것으로 기록된 정아무개 검사는 대가성을 수사하는 대신 그냥 면직처리했다. 서울남부지검은 “곧 나머지 수사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29일 밝혔다.

이날 밤 9명의 평균 지성은 검찰의 입증이 ‘합리적 의심을 넘어섰다’고 판단해 유죄 평결했다. 6일 동안의 재판 중에 증인과 피고인에게 직접 질문한 배심원은 한명도 없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박정수)는 평결 취지대로, 27일 밤 김 의원과 팽씨에게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5년형을 선고했다.

김 의원은 30일 항소했다. 정황 증거는 여전히 김 의원에게 불리하다. 김 의원이 ‘자신-팽씨-송씨’의 관계의 실체를 해명하지 않고서는 2심에서도 검찰의 공소유지를 방어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관계의 실체는 도덕/비도덕, 불법/합법, 돈과 사생활이 마구 뒤섞인 어떤 모호한 덩어리로 추측된다. 저열한 정치 비리, 우정과 배신, 돈과 여자, 자이니치의 역사와 인생이 마구 뒤섞인, 모호한 살인사건 재판은 겨울에도 계속된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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