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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24 19:34 수정 : 2014.10.26 09:51

지난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필재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장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르포] 국회의원 보좌관이 겪은 국감

▶ 올해 국정감사가 27일 마감됩니다.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강력한 장치 중 하나인 국정감사 한 달 전부터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의 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의원실 보좌관들은 단 하루 감사장에서 예리한 질의를 위해 몇 달 전부터 준비를 시작하고, 행정부처의 공무원들은 최대한 비판받지 않도록 방어합니다. 현직 7년차 보좌관에게 국정감사의 뒷얘기를 들어봤습니다.

두어 시간 실랑이가 이어졌다. 더이상 서로를 납득시킬 방법은 없어 보였다. 젊은 공무원은 지쳤다는 듯 일어서면서 끝내 한마디를 내던졌다. “너무 비본질적인 것에 매달리는 것 같은데요.”

국정감사가 임박한 2009년 9월쯤이었던 것 같다. 나는 국립환경과학원이 수행한 ‘4대강 사업 수질 모델링’의 입력 데이터를 제출하라는 요구를 꽤 끈질기게 하고 있었다. 그해 7월께 발간된 <4대강 사업 마스터플랜>에는 ‘4대강 사업이 오히려 수질을 개선시킬 것’이라는 모의실험 결과가 수록돼 있었다. 당연히 우리는 그 실험 결과를 신뢰할 수 없었다. 조작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아무래도 모델링에 입력된 데이터를 봐야 할 것 같은데, 담당 공무원은 난색만 표했다. 양이 너무 방대하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 난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데이터가 오면 밤새 뒤져서라도 조작된 데이터를 찾고야 말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옥신각신 끝에 젊은 공무원은 숙제를 내주는 것처럼 그 한마디를 남긴 것이다.

카트 밀고 가던 어느 공무원의 비아냥

나는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그가 한 말을 떠올려보곤 했다. ‘비본질적인 것에 매달린다’…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일 게다. 도대체 우리가 짚었어야 할 핵심은 무엇이었나? 그 핵심을 피감기관은 알고 있고 우리는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 국정감사다. 가뜩이나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정보와 이를 다루는 권한이 행정부에 집중돼 있다. 권력이 집중된 행정부를 그나마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국정감사다. 관료집단의 독단적 행정을 실효성 있게 견제하려면 감사기관인 국회가 유용한 정보를 확보해야 한다. 그 작업이 바로 ‘국정감사 제출 자료 요청’이다. 바로 이 ‘자료 요청’ 작업 수준에 따라 국정감사의 성패가 갈린다. 비판받기 싫은 관료들은 핵심을 에두르거나 동문서답풍의 자료를 보내주기 일쑤다. 그러니 핵심을 정확히 찌르는 자료 요청이야말로 국정감사의 칼자루인 것이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부터 보좌관과 공무원은 팽팽하고도 지난한 싸움을 시작한다. 일단, 고역과의 싸움이다. 의원실의 자료 요청 작업도 고역이고, 의원실이 요청한 자료를 작성해 제출하는 공무원도 고역이다. 국정감사 업무의 반은 자료 요청이다.

올해 국정감사를 앞두고서였다. 복도를 지나는데 행정부처 직원 두 명이 국정감사 요청 자료를 의원실에 전달하려 책자가 가득 담긴 카트를 끌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복도로 열려 있는 의원실을 흘낏 보고는 중얼거리는 말이 들렸다. “저렇게 앉아 있으면서 자료 요청이나 하고 싶겠지.” 비아냥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한장짜리 자료요청서 만들려고
현장답사와 밤새 공부한다
공무원들은 불리한 자료 숨기고
보좌관들은 정확히 받으려 하는
국정감사는 ‘소리 없는 전쟁터’

초짜 국회의원 보좌관에게
능구렁이 관료가 던진 한마디
“비본질적인 것에 매달리시네요”
국감 7년차 나도 ‘기술’이 늘었다
그도 그렇게 연막을 쳤던 것이다

사실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이 의원실 보좌진이라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얘기다. 행정부처 소속기관에서 근무하는 내 지인도 나만 만나면 자신의 기관을 피감기관으로 삼고 있는 상임위원회 의원실 욕을 하느라 입에 침이 마를 새가 없다. 그는 야권 정치 성향을 강하게 가졌음에도 자료 요청이 쇄도한 날들이면 여야 가리지 않고 의원실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남김없이 표출하곤 했다. 그렇다고 보좌관들이 즉흥적으로 자료 요청을 하는 게 아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작가들이 몇 달을 합숙하며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할까. 자료 요청은 일종의 ‘기획’이다. 그러니 단 한장짜리 자료요청서를 작성하기 위해서, 조사하고 현장답사하고 궁리하는 나날들을 보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원하는 자료를 확보하면 보람이라도 있지만 막상 자료를 받아들었는데 원하는 내용이 아니면 그 기획은 실패한 것이다. 보좌관들은 다시 기획을 해야 하고 새로운 국감 아이템을 발굴해야 한다. 국정감사일이 다가올수록 그 초조함과 긴박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자료 요청과 자료 제출이라는 고역과 중노동을 묵묵히 견디면서 보좌진과 공무원의 진짜 싸움이 벌어진다. 행정부의 가장 큰 반격은 ‘자료 제출 거부’다. 그들이 밝히는 이유는 다양하다. “영업비밀이 포함되어 있어서 제출할 수 없음”, “해당 사항 없음”, “미완료 사업임”, “지자체 자료를 취합하기 어려움”, “소관부처에 해당하지 않음”, “보고서가 완료되면 제출하겠음”, “개인 신상정보가 담겨 있어서 제출할 수 없음”, “보존기한이 지나서 폐기하였음”, “해당 자료가 존재하지 않음”,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았음”, “내부 기안문서이기 때문에 제출할 수 없음” 등등 형식적인 답변으로 자료 제출을 대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충분히 이해될 때도 있다. 하지만 여러 경로의 제보를 통해서 존재하는 자료라고 확인했음에도 해당 자료가 없다고 발뺌하는 일도 다반사다. 차라리 그런 경우는 증거를 내놓고 요구하면 실랑이 끝에 받을 수 있다. 그런데 피감기관이 공기업일 경우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정말 어렵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수명이 다한 원자력발전소의 ‘계속운전 심사보고서’다. 심사보고서는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작성해서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하는데, 한수원의 영업비밀이 담겨있다고 한번도 공개된 바가 없다. 지역주민의 안전이 걸려 있는 문제이고 어찌 보면 국가적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자료인데도 철저히 ‘비공개’다. 이 때문에 원전과 관련된 자료 공개 문제는 매년 국정감사의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

또다른 사례는 보고서가 아직 작성이 완료되지 않았다며 제출을 거부하는 경우다. 정부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기 앞서 연구용역을 수행한다. 연구용역 보고서에는 정부가 도입하는 제도의 취지와 배경, 현장의 실태, 각종 데이터와 조사자료, 그리고 수립하려는 제도개선안이 담겨 있다. 꽤 내용물이 묵직한 보따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연구를 수행한 용역기관은 보고서를 행정부처에 제출했는데도 막상 해당 부처에서는 보고서 작성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며 자료 제출을 거부한다. 보고서 검증이 안 되었다는 핑계를 대기도 한다.

너무 복잡해서 ‘저주받은 걸작’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것도 문제지만 ‘고의로’ 부실한 자료를 제출하는 것도 의원실 입장에서 속을 끓이는 일이다. 물론 국정감사 7년차를 맞이하면서 자료 제출 거부와 부실자료 제출을 방지하기 위한 노하우가 없진 않다. 대단한 것은 아니다. 자료를 제출하는 공무원으로 하여금 가급적이면 새로운 자료를 작성하거나 가공하는 작업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나름의 방법이다. 그러니까 담당 공무원의 컴퓨터 폴더 안에 있는 파일을 변형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도록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료 요청 전에 행정부처 문서등록대장이나 연구보고서 목록을 샅샅이 살펴봐야 한다. 물론 그 일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피감기관이 보유한 문서의 공문번호까지 표기해서 요청해야 자료가 있네 없네 하는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국정감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기자들의 경쟁도 불꽃을 튄다. 이와 관련한 보좌관의 가장 큰 실무 중 하나가 보도자료를 만드는 것이다. 국정감사에서는 수많은 국감 보도자료가 쏟아져 나온다. 국감 기간이 아니라면 비중 있게 보도될 만한 자료들이 왜소화된 비중으로 보도되기가 다반사이다. 사회적으로 파장이 커야 마땅한 국감 아이템도 단명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저주받은 걸작’도 탄생한다. 오랜 조사와 분석 작업을 통해 꽤 의미있는 사실을 밝혔지만 언론에서 주목받지 못한다. 이런 결과는 대개 내용이 너무 복잡하거나 어렵기 때문에 빚어진다. 2011년 환경부 국감에서 ‘수질오염총량제’와 관련한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파고든 것도 나 나름의 ‘저주받은 걸작’이었다. 며칠 동안 머리를 싸매고 수질 데이터를 분석해, 4대강 사업 때문에 수질관리 제도가 심각히 교란될 수 있음을 포착했다. 나는 ‘유레카’를 외쳤지만, 기자들은 수질오염총량제를 설명하는 데만도 기사 절반을 써야 할 것이라며 냉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의외로 국정감사 보도는 스트레이트성 보도가 대부분이다. 한두쪽짜리 짧은 보도자료가 각광받는다. 취재하는 기자의 수는 한정돼 있고 보도자료는 넘쳐나기 때문에, 기자가 한눈에 봐서 이해하기 쉽고 메시지가 간명하여 전달하기 용이한 아이템들이 기사화가 잘 된다. 그래서 양질의 자료는 묻히고, 깊이 없는 보도자료가 전파를 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안타까운 일이다.

올해는 방송 3사 뉴스와 중앙일간지, 통신사, 주요 인터넷매체 외에 또 하나의 뉴스 공간이 열렸다. 바로 제이티비시(jtbc)의 <뉴스룸>이었다. 하필 국감 직전에 손석희 앵커의 뉴스 프로그램이 무려 100분짜리 분량으로 개편되었다. 의원실마다 뉴스룸에 자료를 제공하는 흐름이 만들어졌다. 언론 작업을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물으면 만나는 보좌진마다 제이티비시와 작업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올해 국정감사의 주요 풍경 중의 하나가 바로 제이티비시의 단독보도일 것이다.

국감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서 늦게서야 시작됐다. 보좌관들의 준비 기간은 그만큼 늘어났지만 정작 언론들은 ‘부실국감’이라는 프레임으로 국정감사를 다뤘다. 그래서인지 국정감사 때마다 의원실을 다니며 기삿거리를 찾는 기자들의 발길도 올해는 특이하게 드물었다. 유족이 동의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의 실마리조차 만들어지지 못했던 안타까운 상황에서 국정감사를 계획대로 하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국정감사 연기가 거듭되면서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준비한 국정감사 아이템에 대한 열정과 신선함이 점차 사그라지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국감 일정이 여야 합의로 뚝 떨어졌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름 한철 내내 국정감사를 준비했고, ‘과연 국정감사를 하기는 하는 걸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에 젖어 있다가 눈앞에 닥쳐버린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과의 신뢰

보좌진은 국정감사의 스태프다. 밤새 자료를 뒤지다가 눈이 번쩍 뜨일 만한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이 자료가 세상에 공개되면, 세상의 한구석이라도 변할 것인가? 자료공개를 통해서 피해 보는 사람은 없는 걸까? 이러한 설렘과 두려움으로 새벽을 맞기도 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정작 국정감사의 현장에서 싸워야 하는 선수는 바로 국회의원이다. 내가 만든 질의자료를 가지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행정부처의 수장과 싸워야 한다. 스태프가 만든 질의자료에 근거해서 행정부의 잘못을 지적했는데 상대방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반박이 나올 수가 있다. 바로 그 순간 국회의원이 스태프를 신뢰하지 못하면 국회의원과 장관과의 일대일 대결은 싱겁게 끝날 수가 있다. 그러니 스태프는 국감을 준비하기 전부터 국회의원에게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사실 국감 준비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바로 이것이다.

“본질을 못 짚고 있다”고 말한 젊은 공무원은 관록이 붙은 관료가 되었다. 가끔 그를 만날 때마다 당시 수질모델링의 핵심은 무엇이었냐고 묻고 싶었다. 그런데 그 궁금증을 2013년 감사원의 4대강 감사를 통해 풀었다. 정말 어이없게도 그의 말은 거짓이었다. 감사 결과 4대강 사업 후의 수질예측 결과를 만들 때 막대한 예산의 수질개선사업 데이터도 추가로 넣었다는 사실이 들통났다. 일종의 ‘데이터 조작’이었던 셈이다. 2009년에 데이터를 제출받았다면 충분히 밝혀낼 수 있는 일이었다. 분했다. 이러니 국정감사를 여러번 할수록 의심은 깊어질 수밖에. 그것이 행정부를 대하는 보좌관의 직업적 태도인가 보다.

송용한 장하나 의원실(새정치민주연합)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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