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수사대의 김용주 경위가 지하철 서울역에서 코레일 기차역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주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는 몰카범을 단속한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의 뒤에서 이상행동을 보이는 남성이 주된 단속 대상이다. 오랫동안 끈기를 가지고 집중력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서 몰카 단속은 낚시와 비슷하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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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르포 ‘지하철 몰카 수사대’ 동행 취재
▶ 요즘 부쩍 한국 여성들을 몰래 찍는 중국인들의 단속이 늘고 있습니다. 이화여대에는 사진을 찍으러 온 중국인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지요. 몰래카메라(몰카)는 과연 누가 찍는지, 몰카 단속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지하철수사대는 여성들이 짧은 치마를 입기 시작하는 봄부터 여름철까지 매년 몰카 특별단속을 벌이고 있습니다. 기자도 ‘매의 눈’으로 몰카범을 적발해 보려고 시도했습니다. 쉽지 않더군요. 혹시라도 몰카를 찍을 생각이 있는 분들께 경고드립니다. 그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서울역 지하철역에서 기차역 서울역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가 하나, 서울역광장을 조금 걸어서 서울역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또 하나, 두 개가 연속돼 있는 곳이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아, 거기?’라고 할 만한 곳이다. 그곳에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남자들이 있다. 만약 당신이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 뒤에 서서 뭔가 이상한 행동을 한다면 그들이 득달같이 따라붙을 것이다. 서울역뿐만이 아니다. 건대 입구, 이화여대, 홍대 입구, 명동 등 유동인구가 많고 지하철끼리 환승하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곳이라면 그 남자들은 어김없이 자리잡고 눈을 번뜩이고 있다. 그들은 서울지방경찰청 지하철수사대, 그중에서도 ‘몰카’ 특별단속을 벌이는 경찰들이다. 지하철수사대는 지하철에서 일어나는 범죄 전반을 다루는 부서다. 소매치기나 부축치기(술에 취한 사람을 부축해주는 척하면서 금품을 빼앗는 행위), 퍽치기(술에 취한 사람을 구타해 쓰러뜨린 뒤 금품을 빼앗는 행위) 등 강력범죄부터 누가 깜빡하고 지하철에 놔두고 간 물건을 누군가 들고 가는 것(점유물이탈횡령죄) 등 다양한 범죄를 다룬다. 지하철에서 일어나는 가장 빈번한 범죄가 성과 관련된 것이다. 성희롱, 성추행부터 몰카 촬영에 이르기까지 성범죄는 지하철에서 가장 자주 일어나는 범법행위다. 특히 여성들의 치마가 짧아지는 봄여름철이 성범죄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때다. 그중 허락 없이 여성의 몸 특정 부위를 촬영하는 행위가 가장 빈번하며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더욱 악질적인 범죄다. 여덟 팀으로 이뤄진 지하철수사대가 4~8월 몰카 특별단속을 매년 벌이고 있는 이유다. 이들의 몰카 단속 현장을 두 차례에 걸쳐 동행취재했다. 서울역 홍대 이대 건대 명동유동인구 많은 환승역엔
짧은 치마만, 여성만 보이면
눈여겨보는 남자들이 있다
뒤에 붙은 몰카범을 감시한다 한쪽 다리를 슬쩍 올리고
그 위에 스마트폰 얹어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한다
신발 시계 가방 카메라에
앱까지 이용 몰카도 발전 끊임없는 기다림, 그리고 낚시 김용주 경위를 만난 지난 7월30일은 매우 더웠다. 그날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34℃에 이르렀고, 서울역 지하 가두판매대에 쌓아놓은 1개 1000원짜리 얼음물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던 날이었다. 그 땡볕 아래 에스컬레이터를 한없이 내려다보는 게 몰카수사대의 일이다. 몰카 수사의 핵심은 기다림에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바라보며 이상행동을 보이는 ‘놈’을 찾아내는 일이다. 움직임은 거의 없지만 인내심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본질은 낚시에 가깝다. “예전에는 치마를 들치고 촬영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요즘은 거의 100% 몰래 촬영합니다. 핵심 수단은 바로 스마트폰이죠.” 김 경위의 설명을 들으면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지켜봤다. 휴가철이어서 그런지 나들이옷 차림에 짐을 한가득 들고 웃으며 기차역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평일 오후인 만큼 지방 사무실과 서울을 오가는 회사원도 제법 보였다. 김 경위가 선 자리는 의외로 사람들이 의식하기 힘들었다. 에스컬레이터를 조금만 타고 올라오면 이 위치는 시야에서 사라진다. 사람들은 자신의 뒤통수를 노출할 뿐이다. 과대망상 환자가 아니라면 평소에 누가 자신을 지켜보는지 주위를 끊임없이 의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몰카범들은 사람 의식의 이런 허점을 노리고, 경찰은 그 몰카범의 허점을 노린다. 김 경위는 한 여성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저런 사람들이 주로 몰카범들의 타깃이 됩니다.” 그 여성은 하늘하늘한 블라우스 아래에 꽃무늬 프린트의 나풀나풀한 짧은 치마를 입었고, 뒷모습이 아주 아름다웠다. “저걸 주름치마라고 하나요? 보기엔 참 예쁜데 몰카범들에게도 그래 보이나 봐요. 게다가 밑이 퍼진 치마라서 속옷 사진을 찍기에도 아주 좋지요.” 김 경위는 걱정하는 건지 경탄하는 건지 모를 어투로 말했다. 몰카범들이 노리는 대상은 당연히 여성, 그중에서도 짧은 치마를 입은 젊은 여성이다. 몰카범을 잡으면 99%가 여성의 치마 속을 찍었다. 바지는 아무리 짧아도 몰카범이 노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니까 몰카범들은 보이지 않는, 아니 봐선 안 되는 곳을 찍는다. 가끔 착 달라붙는 흰색 청바지나 핫팬츠를 입은 여성의 엉덩이 부분을 찍는 ‘특이 취향’도 있지만 치마 속을 직접 찍는 경우가 아니라면 단속은 쉽지 않다. 에스컬레이터 위에 선 사람들은 백이면 백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거나 손에 들고 있었다. 저게 화면을 보고 있는 것인지 촬영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채기는 힘들다. 짧은 치마와 여성이라는 공통분모를 빼고라도 주로 타깃이 되는 여성의 유형이 따로 있을까. 김 경위는 “체형으로 나누기는 힘들다. 내가 볼 때 더 날씬한 여성이 옆에 지나가는데도 조금 통통한 여성을 노리는 범인도 있었다. 각자의 취향이 따로 있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몰카수사대의 형사들은 보통 2인1조로 움직인다. 이날 김 경위는 파트너가 다른 수사 때문에 바빠서 혼자 왔다. 두 시간 정도를 지켜보던 그는 다른 점유물이탈횡령죄 수사를 위해 지하철 폐회로티브이(CCTV)를 보러 떠났다. 배턴을 이어받은 사람은 정인수 경장이다. 그는 7월부터 지하철수사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몰카 수사에는 아직 ‘초보’인 셈이다. “잡기가 참 어렵고 애매하더라고요. 저게 몰카를 찍는 건지 아닌 건지… 게다가 요즘은 이상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늘어나서 잡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어요.” 그는 적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스마트폰의 보급은 날개를 달아줬다. 손바닥보다 작은 초고화질 카메라를 모두가 들고 다니게 된 셈이다. 게다가 새로운 응용프로그램까지 계속 나오고 있다. “카메라를 무음으로 바꾼다든가, 화면을 끈 채로 촬영한다든가 하는 건 기본이 됐고요, 요즘은 이런 앱까지 나왔다고 하는데… 아, 이건 기사에 나가면 안 돼요. 우리가 일을 못 해요.” 그가 비보도를 전제로 설명해줬는데, 과연 그 앱을 사용한다면 현행범 적발이 원천적으로 봉쇄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몰카범은 찍은 영상이나 화면이 그대로 물증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피해자를 조사할 필요도 없고, 법적으로 다툴 여지도 거의 없다. 적발되면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으로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5년 이하의 징역 처벌을 받는다. 성희롱보다 처벌이 더 강력하다. 몰카는 광범위하게 유포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고개를 까딱거리는 것은 수상한 행동 정 경장은 7월10일부터 일했는데, 이날까지 4건을 적발했다고 했다. 본인이 아니라 함께 있던 베테랑 선배가 적발한 것을 옆에서 지켜본 게 대부분이다. 잡힌 사람들은 대학생 1명, 대학원생 1명, 회사원 2명이었다. “전혀 안 그렇게 생겼는데, 착실하게 생겼는데… 사람 속을 모르겠더라고요.” 그사이 다른 일을 마친 김영호 경사가 왔다. 그는 3년이 넘게 지하철수사대에서 일하며 몰카범을 수십명 잡은 베테랑이다. 서 있는 자세부터 ‘포스’가 남달랐다. “몰카범들은 서 있는 자세부터 좀 다르고 이상한 행동을 계속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고개를 아래위로 까딱거리는 거예요. 카메라의 초점이 맞나 화면을 확인하기 위해서죠.” 그가 기본 강의를 시작했다. 몰카범들의 전형적인 자세, 이른바 ‘에프엠(FM) 자세’는 바로 에스컬레이터에 똑바로 서 있지 않고 한쪽 다리를 한 계단 위에 놓는 짝다리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카메라 렌즈가 위로 가게 해서 자신의 무릎에 놓아둔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 뒤에 딱 붙어서 그런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의심해봐야 한다. 다른 변종은 수도 없이 많다. 똑바로 서서 스마트폰을 아래로 축 늘어뜨리고 있는 경우도 적잖고, 스마트폰이 아닌 다른 기구를 동원하는 경우까지 생각한다면 방법은 수천수만 가지다. 신발이나 가방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시계형, 열쇠형, 카드형까지 몰카용 기구의 모양도 엄청나게 많다. 김 경사가 눈여겨보는 것은 쇼핑백이다. “짧은 치마 여성 뒤에 서서 쇼핑백을 무심한 척 자기 앞 계단에 올려놓는 남자들이 있어요. 쇼핑백을 들여다보면 미리부터 녹화를 시작한 스마트폰이 렌즈를 위로 향한 채 놓여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장 강의를 들은 기자는 직접 몰카범을 단속해봤다. 거창하게 단속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 등장할 때마다 그 뒤에 딱 붙은 남자가 이상한 짓을 하지는 않는지를 눈여겨봤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서울역을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 제법 긴 에스컬레이터가 상행 2줄, 하행 2줄로 있는 큰 엘리베이터다. 여름인 만큼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은 수도 없이 많았다. 기자의 눈에는 영 수상한 행동이 보이지 않았지만 형사들은 확실히 달랐다. “저기 저 사람 좀 보세요” 하고 가리키는 데를 쳐다보면 확실히 수상한 구석이 있었다. 오후 내내 땡볕 아래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을, 그것도 위에서 유심히 쳐다보는 것은 굉장히 고생스러운 일이었다. 김 경사는 가방으로 치마 뒤를 가리거나 몸을 에스컬레이터 벽 쪽에 기대어 서는 여성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몰카 범행을 미연에 방지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아마 저 여성들은 어디선가 몰카의 위험성에 대한 보도 등을 본 사람일 거예요.” 현행범 검거 실패, 모두 해수욕장 갔나? 수상한 행동을 하는 남자가 있으면 형사들은 곧바로 뒤로 따라붙는다. 확인을 위해서다. 실제로 영상을 찍고 있는지, 치마 속을 들여다보는 각도로 놓여 있던 가방 안에 실제로 카메라가 있는지 등을 가까이에서 자세하게 지켜본다. 실제로 수상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싶으면 곧바로 경찰 신분을 밝히고 의심나는 물건을 조사한다. 촬영된 화면 등 물증이 있으면 종로3가역에 있는 지하철수사대 사무실로 연행되고 사법절차를 밟는다. 잡힌 범인은 100% “호기심에 그랬다”고 대답한다고 했다. 대학생과 젊은 회사원이 가장 많지만 직업과 나이는 다양하다. 의사도 있었고, 대기업 간부도 있었고, 영관급 군인도 있었다. 외국인도 곧잘 잡힌다. 김 경위는 싱가포르의 선사 임원을, 김 경사는 일본인 관광객 2명을 잡은 경험이 있다. 아쉽게도 이틀간의 동행취재에서 한 명의 현행범도 잡지 못했다. 정 경장은 “사실 휴가철에는 단속 건수가 많이 줄어든다”며 멋쩍게 웃었다. 해석은 간단했다. “휴가철엔 변태들이 다 해수욕장으로 간다고 하더라고요.” 단속 건수가 많은 때는 여성들의 치마가 짧아지기 시작하는 5월께다. 보통 한 시간에 한두 명을 임의동행 방식으로 조사하고, 실제로 몰카범을 잡는 건수는 하루에 한두 건이다. 이렇게 공치는 날도 적잖다. 서울지하철경찰대에서 올해 들어 6월 말까지 단속한 성범죄 563건 중 ‘공중 밀집 장소에서의 추행’이 301건,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이 262건이다. 262건 중 2명이 구속되고 나머지는 불구속 기소됐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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