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출신인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기자들을 향해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했고, 질문은 받지 않았다. 그가 총리로 임명된 지난 10일부터 사퇴 기자회견을 한 24일까지 한결같았다. 보름 동안 보여준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다양한 표정들. 강재훈 선임기자 이종근 류우종 신소영 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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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문창극과 함께 한 보름
▶ 국무총리실은 기자 입장에서 그렇게 핫한 취재처가 아니다. 앞에서 기획하고 만들기보다 뒤에서 조정하고 조율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장을 바꾸는 지난 보름여만큼은 대한민국 어느 곳보다 치열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어찌하지 못해 쩔쩔맬 정도였다. 총리실을 맡고 있는 최현준 기자가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지명부터 사퇴까지 과정을 되짚어봤다. 그는 문 후보자와 특별한 스킨십을 두 차례나 했다고 한다. ‘버티기의 달인’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와 ‘무책임의 달인’ 박근혜 대통령이 빚어낸 ‘삼류 사극’이 24일 막을 내렸다. 두 사람은 지난 10일부터 보름가량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피곤하게 했지만, 이를 언론과 국회의 잘못으로 돌리는 가공할 만한 ‘남 탓 신공’을 선보였다. 특히 문 후보자는 기자들을 호통치고 ‘역사 강연’을 해가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일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곧장 사퇴했다. 지난 보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막전막후에서 있었던 일을 찬찬히 복기해 본다. 먼저 고백부터 해야겠다. 지난 16일 아침 문 후보자의 출근길이었다. 몇 마디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그의 손을 한 기자가 붙잡았다. 문 후보자는 “이러면 안 돼. 어디 신문 기자야?”라고 화를 내며 크게 소리쳤다. 이때 찍힌 그의 성내는 사진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날 타이밍을 놓쳐 미처 대답하지 못했는데, 그 기자가 바로 필자다. 사과한다. 당시 소속을 밝히는 대신 필자는 문 후보자에게 “4·3항쟁 유족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 뒤돌아 엘리베이터를 타 버렸다. 제주4·3항쟁을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라 표현한 그는, 여태껏 4·3항쟁 유족들에게 사과하거나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늦게라도 이 글을 본다면 꼭 입장을 밝혀주시길 바란다. 본인이 준비한 원고 크게 읽다기자에게 대신 읽을 것 요구
아무도 읽지 않아 할 수 없이
“이 꽃은 문창극님이…” 읽어줘
손잡아 성나게 한 것과 비긴 셈?
“가 빨리, 나 따라오지 말고
선배 말 안 들으면 안 되지”
질문은 거부하고 반말 일관하며
말끝마다 ‘선배, 후배’ 타령
나중엔 호통치며 보도에 불만 “그가 기자 출신이어서 창피하다” 그가 총리 후보로 임명되는 순간으로 가보자. 10일 오후 2시 정각, 속보가 떴다. 국무총리 후보자로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내정됐다는 소식이었다. 안대희 전 후보가 과도한 전관예우 등으로 낙마한 지 2주 만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사였다. 매우 보수적인 칼럼을 썼고 시대가 요구하는 화합형 인사가 아니라는 평가가 돌았다. 오후 4시, 그가 초빙교수로 있는 서울대 커뮤니케이션센터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며칠 뒤 그의 초빙교수 급여가 본인이 부회장으로 있는 서울대 총동창회 예산에서 나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등장한 문 후보자는 잔뜩 몰려온 수십명의 기자들에게 ‘선배 타령’을 늘어놓았다. “나라를 위해 미력이나마 보태겠다”는 의례적인 얘기를 한 뒤 그는 “(내가) 기자를 해봐서 잘 알지만 오늘은 ‘후배님’들이 저의 난처한 입장을 살펴서, 질문을 하지 마시고 저를 풀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1975년부터 2013년까지 <중앙일보>에서 일했다. 평기자부터 부장, 대기자, 주필까지 기자로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직위를 섭렵했다. 퇴직한 지는 1년여밖에 되지 않는다. 아직 ‘기자 물’이 덜 빠진 것일까? 눈치 빠른 기자들은 이때 낌새를 느꼈다고 했다. 한 언론사 기자는 “총리 후보를 인터뷰하러 온 기자에게 ‘후배’라는 표현을 쓰며, 질문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하는 걸 보면서 좀 의아했다. 공과 사의 구분이 불확실하고, 반대로 상하관계는 뚜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건물 한구석에서 <한겨레> 기자와 우연히 마주친 자리에서도 그는 ‘선배 타령’을 이어갔다. ‘보수적 칼럼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가 빨리. 나 따라오지 말고. 서운하다고 그러지 마. 나도 이런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후배 고생하지 말라고 그러는 거야. 쓸데없이 고생하지 마. 부장이 뭐라 그러면 ‘이야기 안 한다고 그러던데’라고 해라”라고 반말로 답했다. ‘화합형 총리로서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는 “그런 이야기 청문회 때 다 나올 테니까. 이렇게 선배 말 안 들으면 안 되지. 날 놔줘”라고 말했다. 말끝마다 ‘선배, 선배’를 연발했다. 그의 ‘선배 타령’은 나중에는 기자들에 대한 호통으로 이어졌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보도에 대해 한창 불만을 터뜨리던 19일 저녁 퇴근길 “여러분이 사실 확인을 안 하시고 ‘뭐 이런 데서 저러더라, 저런 데서 이러더라’ 이렇게 쓰면 어떡합니까. 저널리즘의 기본이 뭡니까. 공정하고, 사실대로 쓰는 겁니다. 소문을 쓰는 게 아닙니다”라고 기자들을 꾸중했다. 이튿날인 20일 아침 출근길에서는 “언론에 보도된 것이 진실이 아니다. 여러분 학교에서 저널리즘 시간에 배우셨어요, 안 배우셨어요? 내 말을 한 쿼트(따옴표 인용)로 하면 사실이지만 전체 맥락으로 보면 딴 의미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 중요한 겁니다”라고 기자들을 가르쳤다. ‘그가 기자 출신이어서 창피하다’는 기자들이 늘어갔다. 문 후보자는 40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해 누구보다 언론과 여론의 생리를 잘 아는 사람이다. 때문에 그의 이런 신경질적인 반응은 의외라는 평가가 많다. 자기를 객관화해서 보는 능력이 떨어지거나 자기확신이 너무 강해 남의 의견을 잘 듣지 못하는 사람일 수 있다. 어떤 경우든 총리로서는 낙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총리 후보로 지명된 지 하루 만인 11일 밤 9시 <한국방송>(KBS)은 세 꼭지로 나눠 ‘교회 강연 동영상’을 방영했다. ‘우리 민족은 더럽고 게으르다’ ‘일제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다’ ‘6·25 전쟁은 미국을 붙잡기 위한 것이었다’ 등 문 후보자의 문제적 발언이 쏟아졌다.(문 후보자가 케이비에스 사장으로 온다는 소식에, 케이비에스 기자들이 미리부터 그를 취재해 준비해 놓은 기사라는 소문이 있지만, 케이비에스 기자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비록 교회에서 한 발언이지만, 역사적 사실과도 다르고, 민족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기도 했다.
문창극 후보자가 머무는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로비엔 출퇴근길마다 40~50명의 기자들이 몰려 그의 발언을 지켜봤다. 지난 12일의 풍경.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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