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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6.27 19:10 수정 : 2014.06.29 11:08

기자 출신인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기자들을 향해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했고, 질문은 받지 않았다. 그가 총리로 임명된 지난 10일부터 사퇴 기자회견을 한 24일까지 한결같았다. 보름 동안 보여준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다양한 표정들. 강재훈 선임기자 이종근 류우종 신소영 기자 khan@hani.co.kr

[르포] 문창극과 함께 한 보름

▶ 국무총리실은 기자 입장에서 그렇게 핫한 취재처가 아니다. 앞에서 기획하고 만들기보다 뒤에서 조정하고 조율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장을 바꾸는 지난 보름여만큼은 대한민국 어느 곳보다 치열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어찌하지 못해 쩔쩔맬 정도였다. 총리실을 맡고 있는 최현준 기자가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지명부터 사퇴까지 과정을 되짚어봤다. 그는 문 후보자와 특별한 스킨십을 두 차례나 했다고 한다.

‘버티기의 달인’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와 ‘무책임의 달인’ 박근혜 대통령이 빚어낸 ‘삼류 사극’이 24일 막을 내렸다. 두 사람은 지난 10일부터 보름가량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피곤하게 했지만, 이를 언론과 국회의 잘못으로 돌리는 가공할 만한 ‘남 탓 신공’을 선보였다. 특히 문 후보자는 기자들을 호통치고 ‘역사 강연’을 해가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일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곧장 사퇴했다.

지난 보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막전막후에서 있었던 일을 찬찬히 복기해 본다.

먼저 고백부터 해야겠다. 지난 16일 아침 문 후보자의 출근길이었다. 몇 마디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그의 손을 한 기자가 붙잡았다. 문 후보자는 “이러면 안 돼. 어디 신문 기자야?”라고 화를 내며 크게 소리쳤다. 이때 찍힌 그의 성내는 사진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날 타이밍을 놓쳐 미처 대답하지 못했는데, 그 기자가 바로 필자다. 사과한다.

당시 소속을 밝히는 대신 필자는 문 후보자에게 “4·3항쟁 유족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 뒤돌아 엘리베이터를 타 버렸다. 제주4·3항쟁을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라 표현한 그는, 여태껏 4·3항쟁 유족들에게 사과하거나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늦게라도 이 글을 본다면 꼭 입장을 밝혀주시길 바란다.

본인이 준비한 원고 크게 읽다
기자에게 대신 읽을 것 요구
아무도 읽지 않아 할 수 없이
“이 꽃은 문창극님이…” 읽어줘
손잡아 성나게 한 것과 비긴 셈?

“가 빨리, 나 따라오지 말고
선배 말 안 들으면 안 되지”
질문은 거부하고 반말 일관하며
말끝마다 ‘선배, 후배’ 타령
나중엔 호통치며 보도에 불만

“그가 기자 출신이어서 창피하다”

그가 총리 후보로 임명되는 순간으로 가보자. 10일 오후 2시 정각, 속보가 떴다. 국무총리 후보자로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내정됐다는 소식이었다. 안대희 전 후보가 과도한 전관예우 등으로 낙마한 지 2주 만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사였다. 매우 보수적인 칼럼을 썼고 시대가 요구하는 화합형 인사가 아니라는 평가가 돌았다.

오후 4시, 그가 초빙교수로 있는 서울대 커뮤니케이션센터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며칠 뒤 그의 초빙교수 급여가 본인이 부회장으로 있는 서울대 총동창회 예산에서 나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등장한 문 후보자는 잔뜩 몰려온 수십명의 기자들에게 ‘선배 타령’을 늘어놓았다. “나라를 위해 미력이나마 보태겠다”는 의례적인 얘기를 한 뒤 그는 “(내가) 기자를 해봐서 잘 알지만 오늘은 ‘후배님’들이 저의 난처한 입장을 살펴서, 질문을 하지 마시고 저를 풀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1975년부터 2013년까지 <중앙일보>에서 일했다. 평기자부터 부장, 대기자, 주필까지 기자로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직위를 섭렵했다. 퇴직한 지는 1년여밖에 되지 않는다. 아직 ‘기자 물’이 덜 빠진 것일까? 눈치 빠른 기자들은 이때 낌새를 느꼈다고 했다. 한 언론사 기자는 “총리 후보를 인터뷰하러 온 기자에게 ‘후배’라는 표현을 쓰며, 질문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하는 걸 보면서 좀 의아했다. 공과 사의 구분이 불확실하고, 반대로 상하관계는 뚜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건물 한구석에서 <한겨레> 기자와 우연히 마주친 자리에서도 그는 ‘선배 타령’을 이어갔다. ‘보수적 칼럼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가 빨리. 나 따라오지 말고. 서운하다고 그러지 마. 나도 이런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후배 고생하지 말라고 그러는 거야. 쓸데없이 고생하지 마. 부장이 뭐라 그러면 ‘이야기 안 한다고 그러던데’라고 해라”라고 반말로 답했다. ‘화합형 총리로서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는 “그런 이야기 청문회 때 다 나올 테니까. 이렇게 선배 말 안 들으면 안 되지. 날 놔줘”라고 말했다. 말끝마다 ‘선배, 선배’를 연발했다.

그의 ‘선배 타령’은 나중에는 기자들에 대한 호통으로 이어졌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보도에 대해 한창 불만을 터뜨리던 19일 저녁 퇴근길 “여러분이 사실 확인을 안 하시고 ‘뭐 이런 데서 저러더라, 저런 데서 이러더라’ 이렇게 쓰면 어떡합니까. 저널리즘의 기본이 뭡니까. 공정하고, 사실대로 쓰는 겁니다. 소문을 쓰는 게 아닙니다”라고 기자들을 꾸중했다. 이튿날인 20일 아침 출근길에서는 “언론에 보도된 것이 진실이 아니다. 여러분 학교에서 저널리즘 시간에 배우셨어요, 안 배우셨어요? 내 말을 한 쿼트(따옴표 인용)로 하면 사실이지만 전체 맥락으로 보면 딴 의미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 중요한 겁니다”라고 기자들을 가르쳤다. ‘그가 기자 출신이어서 창피하다’는 기자들이 늘어갔다.

문 후보자는 40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해 누구보다 언론과 여론의 생리를 잘 아는 사람이다. 때문에 그의 이런 신경질적인 반응은 의외라는 평가가 많다. 자기를 객관화해서 보는 능력이 떨어지거나 자기확신이 너무 강해 남의 의견을 잘 듣지 못하는 사람일 수 있다. 어떤 경우든 총리로서는 낙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총리 후보로 지명된 지 하루 만인 11일 밤 9시 <한국방송>(KBS)은 세 꼭지로 나눠 ‘교회 강연 동영상’을 방영했다. ‘우리 민족은 더럽고 게으르다’ ‘일제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다’ ‘6·25 전쟁은 미국을 붙잡기 위한 것이었다’ 등 문 후보자의 문제적 발언이 쏟아졌다.(문 후보자가 케이비에스 사장으로 온다는 소식에, 케이비에스 기자들이 미리부터 그를 취재해 준비해 놓은 기사라는 소문이 있지만, 케이비에스 기자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비록 교회에서 한 발언이지만, 역사적 사실과도 다르고, 민족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기도 했다.

문창극 후보자가 머무는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로비엔 출퇴근길마다 40~50명의 기자들이 몰려 그의 발언을 지켜봤다. 지난 12일의 풍경.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분간 혼자 떠든 뒤 도망치듯 가버려

이 보도로 문 후보자는 단번에 여론의 중심에 섰다. 그가 총리 후보직을 사퇴하기만 기다리는 희한한 상황이었다. 시한부 총리 후보, 사퇴하는 방법만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 이만 사퇴한다’는 얘기를 듣기 위해 기자들은 매일 문 후보자의 출퇴근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문 후보자가 머무는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로비에 통신사와 방송사 기자 10여명이 상주했고, 출근길과 퇴근길에는 40~50명의 기자들이 몰려 그의 발언을 지켜봤다. 낚시 의자와 방석이 등장했고, 주변 카페는 잠시 성수기를 누렸다. 몇몇 기자들은 분당에 있는 문 후보자의 집 앞까지 갔다. 007작전처럼 어느 날은 그가 집에 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 많은 기자들이 허탕을 치기도 했다. <와이티엔>(YTN)과 <뉴스와이(Y)>, <티브이조선> 등 방송 채널들은 그의 출퇴근길 발언을 생방송으로 보도했다. 아버지 출퇴근 지켜본 것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영화 <트루먼쇼>처럼 온 국민이 그의 출퇴근 광경을 보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태 초반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에 당황해하던 문 후보자는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흔들리던 눈동자는 당황하지 않고 눈웃음을 짓는 단계로 발전했고, 기자들의 질문에도 초반에는 말실수가 잦았지만 나중에는 곤란한 질문은 아예 피해갔다. 아예 20분짜리 ‘역사 강연’을 열기도 했다. 가죽가방을 열고 본인이 준비해 온 원고를 꺼내 큰 소리로 읽고 “정확하게 확인하라”며 주변에 있는 기자에게 대신 읽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이때 아무도 읽지 않자 필자가 읽었다. ‘이 꽃은 문창극님께서 헌화해 주셨습니다’라는 글귀였다. 그가 안중근기념관에 꽃을 바쳤다며 증거로 내민 사진이었다. 앞서 그의 손을 잡은 것과 비긴 셈이다.) 이런 모습을 쭉 지켜본 한 기자는 “문 후보자가 총리가 되지 않는다면 종편 채널에서 그를 스카우트할 것”이라며 “강용석에 이어 제2의 종편 스타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그의 발언이 매우 일방적이었고 발언을 마친 뒤에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전혀 답하지 않은 채 퇴장해 버렸기 때문이다. 50여명의 기자들이 그의 일방적인 강연을 20분씩이나 끊지 않고 들은 것은 그에게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였는데, 그는 기자들을 ‘바보’로 만든 뒤 도망치듯 가버렸다. 뒷목이 화끈거렸다. 그는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여러분들 어제 제 의견을 말씀드리고 그냥 가니까 많이 서운했죠. 일방적인 기사에 그동안 제가 얼마나 서운했겠어요. 앞으로 역지사지합시다”라고 기자들을 약올렸다. 이란 축구팀이 구사한 ‘침대 축구’처럼 그는 점점 비겁해졌고, 그를 지켜보는 기자들은 지쳐갔다.

문 후보자는 본인의 감정에 굉장히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 자기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노력했고, 수모를 견디면서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남의 아픔이나 불편함에는 그만큼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발언에 상처 입고, 화가 났을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거나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문 후보자는 일요일인 15일 오후 2시 첫 ‘육성 사과’를 내놓았다. 그러나 핵심적인 비판인 ‘식민사관’과 ‘민족성 비하’ 등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서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해 자신이 오해받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저의 진심을 여러분께서 알아주시기 간절히 바란다”며 총리직에 대한 미련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충격-당황-분노-체념’에서 체념이 빠진…

그가 중도사퇴하지 않고 버틸 수도 있다는 예측이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것을 예상하든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그에게 ‘사상 최강의 버티기’ ‘진정한 멘탈 갑’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박근혜 대통령이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는 농담도 나돌았다. 19일 출근길 발언을 통해서는 “오늘 국회에서 대정부 질문이 있다. 정홍원 총리님이 경제문제에 대해 답변하시는데 저도 공부를 해야 될 거 아니겠냐. 그걸 제가 열심히 같이 보면서 저도 한번 배우겠다”고 말했다. 총리가 될 것에 대비해, 대정부 질문 답변 모습을 보고 배우겠다는 것이었다.

문 후보자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창성동 별관 로비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문창극 후보님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문창극 후보를 지지합니다’, ‘법치국가에서 웬말이냐! 언론횡포 처벌하라! 민주적인 절차대로 청문회를 빨리하라’와 같은 손팻말을 들었다. 스스로를 ‘문창극 후보를 지키는 기독교인 모임’이라고 밝힌 이들은, 문 후보자가 출퇴근할 때마다 찾아와 그를 응원했다. 이들은 “문창극 아웃”을 외치는 다른 시위자에게는 “빨갱이 ×× 꺼져라” 등의 욕설을 쏟아부었다.

여론의 시선은 차츰 박 대통령에게 옮겨갔다. 부적격 후보가 사퇴하지 않고 버틸 경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이는 임명권자인 박 대통령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를 후보로 내정한 박 대통령은 시종일관 무책임했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인사청문 요청서를 국회에 보내지 않는 식으로 애매한 신호를 보낸 것이다. 한 정부 직원은 “버티려고 마음먹은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겠냐. ‘조금만 더 버텨보라’는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문 후보자가 사퇴한 직후 자신의 인사 실패에 대해서도 사과하지 않은 채 “앞으로는 부디 청문회에서 잘못 알려진 사안들에 대해 소명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자신의 결정으로 보류된 사안을 마치 남 일처럼 얘기하는 ‘유체이탈’ 화법이었다.

지난 보름 동안 문 후보자의 반응은 사람이 갑자기 큰 충격을 받았을 때 보이는 ‘충격-당황-분노-체념’의 단계와 비슷했다. 한가지 다른 점은 그에게는 체념의 단계가 좀처럼 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분노의 단계가 굉장히 오래가고, 결국 그에 상당한 반대급부, 즉 독립운동가의 후손일 수 있다는 명예가 주어진 뒤에야 물러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마지막 사퇴 기자회견에서 “뜻하지 않은 기쁨을 갖게 됐다”며 조부에 대해 오랫동안 자랑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최현준 기자의 ‘문창극 구하기 3단 작전’ [한겨레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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