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행중인 지하철2호선 내선 순환 열차 안에서 시각장애인 심명자(가명)씨가 승객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전단지를 건네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허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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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르포
어느 구걸인의 하루
▶ 지하철에서 구걸인을 만나면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마음이 불편해 외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죠. 여기 시각장애인인 동시에 오른손마저 불편한 사람이 있습니다. 역시 앞이 보이지 않는 대학생 딸과 생활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지하철에서 껌을 파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그의 하루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취재는 지난달 10일에 했지만 세월호 사고 때문에 기사 게재가 많이 미뤄졌습니다.
덜커덩덜커덩. 육중한 철들의 마찰 소리와 함께 서울 지하철은 어두운 터널을 뚫고 달린다. 열차 내 승객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휴대전화 화면에 빠져 있거나 잠을 청한다. 소음 한가운데에 건조한 적막함이 공존하는 곳이 지하철이다.
열차 벽을 따라 길게 배치된 의자에 앉은 승객들 앞으로 한 여인이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발을 떼어 걸어온다. 손가락이 두개만 남은 오른손은 종이 무더기를 쥐었다. 여인은 왼손으로 종이 한장을 집어들어 허공에 종이를 들이밀다 이내 떨어뜨린다. 승객들은 자신의 허벅지나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주워들어 익숙한 듯 살펴본다. 몇몇 이들은 지갑을 주섬주섬 꺼내든다.
지하철에 뿌려진 종이 전단지는 승객에게 말을 건다. “죄송합니다. 저는 왼쪽 눈 실명과 오른쪽 눈 1m 식별 불가능한 의료 (시각장애) 1급 판명자로 오른쪽 손 절단과 어린것도 엄마 같은 시력장애자입니다. 식생활을 해결할 수 없어 이렇게 나섰습니다. 모녀에게 희망을 주시면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눈 실명으로… 모녀에게 희망을 주시면…”
누군가가 천원짜리를 준다
그는 400원짜리 껌을 건넨다
껌을 안 받는 사람도 있다
2013년 구걸행위 단속 319건
2008~2012년 단속 74건 불과
경범죄처벌법이 개정된 뒤
지하철 구걸 단속이 늘었다
그는 영문을 모르고 있었다
방향감각 잃고, 이미 지나온 열차 칸으로 전단지를 쓴 이는 20년째 지하철 구걸인의 삶을 살고 있는 심명자(가명·60)씨다. 그는 승객에게 천원을 받고 400원짜리 껌을 건넨다. 껌을 받는 승객도 있고 받지 않는 이도 있다. 심씨는 일주일에 서너번 나와 구걸을 한다. 그에게는 역시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 딸(24)이 있다. 딸이 돌을 맞던 1991년부터 구걸을 하며 딸을 키웠다. 딸은 이제 대학생이다. 심씨는 딸이 대학을 졸업해 자력이 생길 때까지만 구걸을 하고 싶다. 우리 눈의 홍채는 카메라의 조리개 구실을 한다. 이게 없으면 약한 빛에도 눈이 부셔 앞이 안 보인다. 심씨는 어렸을 때부터 무홍채증을 앓았다. 오른쪽 눈은 24년 전 백내장을 앓아 실명 상태고 그나마 시력이 조금 있는 왼쪽 눈마저 최근 백내장과 녹내장이 함께 왔다. 아주 약하게 존재하던 왼쪽 눈의 시력도 곧 실명이 될 예정이다. “앞이 1m도 안 보여요. 어두움과 밝음 정도만 구별할 수 있지요.” 심씨를 만난 것은 지난달 10일 서울 지하철 당산역의 한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그는 구걸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자가 손을 잡기 전까지 기자가 옆에 와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손을 잡자 그에게 오른쪽 손가락이 두개만 남아 있는 것이 느껴졌다. “28살 때 한 식품회사의 기계실에서 일했어요. 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가 잘려버렸어요.” 남은 손가락 두개도 온전하지 않고 손가락 형태만 간신히 남았을 뿐이다. 구걸은 어떻게 시작한 것인지 물었다. “아이 아빠는 돈을 벌 능력이 없었어요. 아기 분유라도 사 먹여야 해서 시작했어요. 시내에서 껌을 파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저는 앞이 잘 안 보여서 버스에 비해 좀 덜 흔들리는 지하철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딸을 업고 껌을 팔러 다녔어요. 동네 복지관의 어린이집에 딸을 맡기고 싶었지만 신청이 늦었다며 받아주지 않았어요.” 오후 1시30분. 심씨는 당산역에서 잠실 방향의 2호선 열차를 탔다. 오후라서 열차 안은 크게 혼잡하지 않았다. 겨우 눈앞의 아른거리는 불빛 정도만 식별하는 심씨는 승객들이 앉아 있는 의자를 향해 걸어갔다. 승객들은 그가 내려놓은 전단지를 바라보았다. 승객들은 대체로 호의적인 듯 보였다. 열차 한칸에 2~3명의 승객이 심씨에게 천원짜리 한장을 건넸다. 심씨가 책을 읽고 있던 여성(39) 앞을 지나갔다. 여성이 들고 있던 책 위에 전단지를 내려놓았다. 여성은 심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원짜리 한장을 쥐여주었다. 심씨가 “고맙습니다” 하고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여성은 미국에서 십여년 만에 한국으로 들어온 동포였다. “아직도 한국에 어려운 사람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네요.” 그는 독서를 방해받았지만 짜증을 내지 않았다. “승객이 붐비는 시간대가 아니니까 이 정도는 국가에서 봐줘도 되지 않을까요.” 심씨는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아 승객 무릎 앞에 떨어뜨린 광고지를 제대로 수거하지 않고 그냥 가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몇몇 승객들은 주워주기도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는 승객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심씨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오후 2시께 심씨는 방향 감각을 잃고 이미 지나온 열차 칸으로 다시 돌아가기도 했다. 한 승객이 “여기 다녀가셨어요” 하고 알려주자 그는 원래 가던 방향을 되찾을 수 있었다. 오후 2시10분께 심씨는 처음 탄 열차에서 내렸다. 잠실나루역 승강장의 빈 의자에 앉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준다’고 말을 건네자 심씨는 “오늘은 운이 좋다”고 답했다. 평소의 두배 정도 손님들이 돈을 주고 있는 것 같다고 심씨는 말했다. 심씨는 그러나 웃지 않았다. “(구걸을) 단속하는 지하철 보안관이 있어요. 단속을 당하면 경찰에 고발되기도 하는데 그러면 그날 번 돈을 홀랑 벌금으로 내야 해요.”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3월 구걸하는 사람도 처벌이 가능하도록 경범죄처벌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가난을 처벌하는 법’이라는 비판이 일었지만 법질서 강화라는 명분에 밀려 이제 구걸은 범죄 행위로 단속 대상이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심씨의 지갑 주머니에는 범칙금납부통고서 두장이 담겨 있었다. ‘2013년 4월18일 신림에서 봉천으로 가는 열차에서 구걸을 하다 단속돼 5만원의 범칙금을 내야 한다’고 적힌 서울 관악경찰서 발행 통고서와 ‘2013년 10월15일 뚝섬역을 지나던 지하철에서 구걸을 하다 단속돼 8만원의 범칙금을 내야 한다’고 적힌 서울 성동경찰서 발행 통고서였다. 적용 법조는 경범죄처벌법 3조1항18호였다. “3월11일 밤 12시께 열차에서 구걸을 하면서 집(당산역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었어요. 선릉역을 지나는데 지하철 보안관이 나타나서 저를 쫓아냈어요. 저는 이번 막차를 놓치면 집에 갈 수 없다고 사정했지만 제 두 팔을 붙들고 역 밖으로 내쫓았어요. 제 (시각장애인 1급을 증명하는) 복지카드를 보여주면서 제발 열차에서 쫓아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는데 보안관은 ‘승차를 거부하겠다’고 했어요. 정말 서러웠어요.”
구걸을 하던 심씨가 지하철 보안요원에게 적발돼 끌려가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허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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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씨가 지하철 승객들에게 건넨 전단지는 시각장애와 생계곤란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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