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열풍은 다소 식었지만 방송을 꾸준히 만드는 사람들은 오히려 늘었다. 2월24일 방송인 김미화씨가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에서 직접 운영하는 카페 ‘호미’에서 ‘리턴 나는 꼽사리다’ 1회 팟캐스트 방송을 녹음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미화, 우석훈, 선대인, 김용민씨. 이동호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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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르포 / 다시 팟캐스트 시대
▶ ‘나는 꼼수다’ 열풍과 함께 대중에게 찾아온 팟캐스트. 2012년 12월 나꼼수가 끝나면서 팟캐스트 열기는 다소 식었습니다. 2014년 현재. 그러나 팟캐스트 방송 숫자가 국내에서만 수천개에 이른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다양한 영역에서 팟캐스트는 소리없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방송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팟캐스트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봤습니다.
서울 지하철 홍대입구역 2번 출구를 나와 5분여를 걸으면 6층 규모의 사무용 건물 한 동이 나온다. 이 건물 301호는 지난달 말부터 시사평론가 김종배(48)씨가 새롭게 시작한 팟캐스트 프로그램 ‘시사통’의 녹음 스튜디오다. 책상 네 개를 ㅁ자 형태로 이어붙여 진행자와 초대손님이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마이크 두 개가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였다.
무명 3인의 현대사 프로그램이 1~2위로
4일 오후 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때 김종배씨가 마이크 앞에 앉아 있었다. “자, 가자.” 그가 준비됐다는 신호를 보내자 방송 편집을 담당하는 인턴(26)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종배씨의 굵고 정갈한 목소리가 잠자던 스튜디오를 깨우기 시작했다.
“애청자 여러분 김종배입니다. 오늘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며칠 전 있었던 송파구 세 모녀 동반 자살 사건을 언급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이분들이 기초수급자 신청을 했다면 정부의 긴급복지지원제도를 통해 도움을 받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 있는 복지제도도 국민이 몰라서 이용 못하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며 찾아가는 복지서비스를 강조했다고 합니다. 저도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찾아야 하는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내걸었던 복지 공약입니다. 이거 집권 후에 대거 폐기하거나 후퇴시키지 않았습니까. 이거부터 언급했어야 하지 않나요.”
김씨는 지난해 12월31일까지 <오마이뉴스>와 함께 팟캐스트(podcast) 프로그램 ‘이털남’을 제작하다 지난달 24일 시사통이라는 이름의 개인 방송을 시작했다.
“이털남을 그만두고 나서도 팟캐스트 방송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더군요. 그냥 일반 방송에 출연해 출연료 받고 그러면 지명도도 더 높아지긴 하겠지만 팟캐스트 방송을 듣는 사람들만의 정서가 있어요. 같은 시대에 공유해야 할 정서적 소통, 마음의 연대 같은 것들이 참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 ‘지랄’을 하고 있네요.” 김씨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웃었다.
딱히 광고도 없어 돈이 나오는 방송은 아니지만 신경 써주는 청취자들이 많아 김씨는 힘을 낸다. 이날 아침 방송에서 ‘후원을 겸허한 마음으로 받겠다’고 말하자 불과 수시간 만에 자발적으로 청취료를 보내온 청취자가 수십명에 달했다.
역시 서울 지하철 홍대입구역 2번 출구를 나와 6번 마을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 가면 팟캐스트 프로그램 ‘이이제이’를 제작하는 스튜디오가 있는 건물이 나온다. 이 건물 2층의 피시방 자리를 개조해 스튜디오로 바꾸었다. 이이제이는 2012년 7월 시작한 역사 프로그램이다. <영원한 라이벌 김대중 대 김영삼>(2012)이라는 책을 쓴 이동형 작가를 포함해 진행자 3명 모두 일반인이다.
하지만 그 인기는 유명 인사들이 참여해 제작하고 있는 여타 프로그램들 이상이다. 팟캐스트 유통 플랫폼 애플리케이션 ‘팟빵’과 애플사가 운영하는 ‘아이튠스’의 통계에서 1, 2위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3일 저녁 이이제이 스튜디오가 있는 건물에 들어서자 2층으로 오르는 계단 끝부분 벽에 ‘생활역사협동조합 안가’라고 적힌 글귀가 눈에 띄었다. 스튜디오 앞에는 테이블 16개가 놓여 있었다. 찾아온 손님들이 좌석을 가득 메웠다. 낮에는 협동조합 사무실이면서 저녁에는 주점으로 변한다고 관계자가 설명했다. 이 스튜디오는 청취자들이 돈을 걷어 마련했다.
“방송을 듣는 청취자들끼리 이이제이의 지속적인 방송을 위해 돈을 모아 지난해 10월 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조합 사무실에 스튜디오도 꾸렸고요. 올바른 역사와 경제정의에 관심이 많은 청취자들 1200명이 조합원을 자처했습니다.”
이날 이종우씨는 심리상담 팟캐스트 ‘참나원’의 첫 녹음을 했다. 이이제이의 자매 프로그램이다. 이이제이 진행자인 이동형(38·이작가)씨와 이종우(39·이박사), 윤종훈(39·세작)씨는 원래 <딴지일보>의 ‘시사대담 헌정방송’(2002년 김구라·황봉알이 진행하던 프로그램) 팬클럽 회원들이었다. 평범한 누리꾼이었던 이들은 올바른 현대사를 알리고 싶은 욕구가 강해 방송을 시작했다.
“현대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보수 정당을 막연하게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역사를 제대로 알려주고 싶었어요.”
익명의 시민들이 시작한 방송이라 처음부터 인기가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었다. 청취자들은 이이제이의 꾸준함에 빠져들었다. 대안언론에 대한 욕구와
스마트폰 보급 확산 맞물려
500만~1000만명 들은 나꼼수
예전보다 청취자 줄었지만
지난해 1601개나 새로 생겨
시사평론가 김종배의 ‘시사통’
일반인 3명이 만든 ‘이이제이’
김용민 등의 ‘리턴 나꼽살’
“나꼼수란 큰길 사라졌지만
수천개의 오솔길들이 생겼죠”
팟빵 스튜디오 시간당 대여료 달랑 5000원 우리 사회에 팟캐스트 방송이 대중적으로 자리잡는 데는 ‘나는 꼼수다’(2011년 8월~2012년 12월. 약칭 나꼼수)의 역할이 컸다. 국내에서만 최소 500만명에서 최대 1000만명까지 들은 것으로 추산되는 나꼼수는 대안 언론에 대한 욕구와 스마트폰 보급의 확산과 맞물려 ‘국민 팟캐스트 방송’으로 인기를 모았다. 팟캐스트가 곧 나꼼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꼼수 이후의 팟캐스트 세계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팟캐스트의 시대는 갔다’고 단정했던 이들은 생각을 수정해야 할지 모른다. 절대적인 팟캐스트 청취자 수는 줄었지만 팟캐스트 제작자는 늘고 청취자층은 다양해지면서 새로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팟빵 집계로 지난해에만 1601개의 새로운 팟캐스트 방송이 시작됐다. ‘팟빵’ 운영자인 이유석(코리아센터닷컴)씨는 팟캐스트가 갈수록 활력을 더해간다고 말한다. “나꼼수라는 큰길은 사라졌지만 이후 수천개의 오솔길들이 생기면서 새 길을 걷는 청취자들이 나타났다고 보면 돼요. 최근 들어 팟캐스트가 활력을 되찾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새로운 방송들이 새로운 청취자들을 끌어모으고 있기 때문이지요.”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팟캐스트 청취자층을 100만명 이상으로 추산한다. 나꼼수가 한창 주가를 올릴 때에 비하면 분명 적은 수다. 대신 팟빵에 등록돼 있는 팟캐스트 방송은 670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 중 한달에 한번 이상 새 프로그램을 제작해 올리는 방송은 4000여개 수준이다. 시사 프로그램이 강세이긴 하지만 음악, 책 소개, 주식, 스포츠, 종교 등의 프로그램도 많다. 이렇게 팟캐스트 방송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제작비용이 별로 들지 않는다는 게 알려지면서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음향 장비를 갖춘 고급 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올리는 서버 비용 등 때문에 ‘방송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나도 가능한 일’이라고 깨닫고 있다는 것이다. 팟빵, 젤리팟, 아이블러그 같은 업체들은 거의 무료로 방송을 업로드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팟빵의 경우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 안에 전용 스튜디오도 4개 운영하고 있다. 시간당 5000원의 대여료만 받고 있어 주말에는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이용자들로 북적인다. 이곳 팟빵 스튜디오를 이용해 방송을 제작하는 이들 중 한명이 김진애 전 민주당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4일 저녁 ‘김진애의 책으로 트다’ 방송 19회차를 녹음했다. 이 방송은 지난해 11월 시작했다. “책을 매개로 소통하고 사람을 만나는 프로그램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 진행자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많았는데, 18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자 다산북스라는 출판사에서 방송을 해보자고 제안이 왔어요.” 김 전 의원이 씩씩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김 전 의원은 18대 국회에서 4대강 공사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파헤쳐 ‘4대강 저격수’라는 별명을 갖고 있지만, 지금까지 30여권의 책을 쓴 스테디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이날은 김 전 의원이 쓴 책 <왜 공부하는가>를 소재로 그가 미국 유학 시절 겪었던 이야기를 3시간 동안 방송으로 풀었다. 엠아이티(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 전 의원은 공과대학으로 널리 알려진 이곳에서 인문학이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지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김 전 의원은 팟캐스트를 통해 어떻게 하면 정치적으로 좌도 우도 아닌 중간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갈까 고민중이다. “팟캐스트를 듣는 사람들이 진보적인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은 중간적 입장에 계신 분들도 제 방송을 듣고 우리 사회 여러 문제들의 해법이 무엇인지 한번쯤 고민하게 하는 그런 방송을 만들고 싶어요.” 팟캐스트 청취자들은 주로 오후 7시 이후 차 안이나 집에서 방송을 듣는다. 팟빵이 지난해 8~9월 600명의 청취자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오전 5~7시에 팟캐스트를 듣는 사람이 6%, 오전 7~9시가 15%, 오전 9시~오후 1시가 3%, 오후 1~3시가 12%, 오후 3~5시가 10%, 저녁 7~9시가 21%, 밤 9시 이후가 19%다. 집에서 듣는 비율이 39%,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가 27%, 직장에서가 17%, 자동차 운전 중이 6%다. 김어준은 <한겨레 티브이>에서 12일 첫 녹음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대안 방송국 <국민티브이> 건물 9층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내달 1일 영상 뉴스 방송 시작을 앞두고 세트장을 짓느라 분주했다. 국민티브이는 지난 1년간 라디오 프로그램만 만들어왔는데 제작하는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팟캐스트 순위 상위권에 올라 있다. 이제 영상 뉴스를 시작하게 되면 ‘팟캐스트 종합방송국’의 입지를 더욱 굳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종면 <와이티엔>(YTN) 해직기자가 이곳의 방송제작국장을 맡았다. 노 국장은 형태를 갖춰가는 방송 스튜디오 곳곳을 안내하며 “새로운 형태의 온라인 뉴스가 시청자들을 찾아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주류 언론들이 에이(A)가 중요하다고 말하면 우리는 비(B)가 왜 중요한지 설명해줄 겁니다. 비 가운데서도 무엇을 더 주의깊게 봐야 하는지 맥을 짚어줄 겁니다.” 노 국장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국민티브이는 방송국 설립을 지원하는 2만2000여명의 조합원이 큰 자산이다. 이들은 출자금을 5만원씩 냈다. 지금까지 이들이 낸 37억여원의 돈으로 국민티브이가 운영돼왔다. 노 국장은 ‘제2의 나꼼수’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 생각이 없다. 수많은 작은 ‘나꼼수’들의 출현이 더 바람직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나꼼수 같은 프로그램이 한번 더 나오면 좋은 것이긴 하죠. 하지만 나꼼수가 치밀하게 계획되어 탄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기대하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위험합니다. 작지만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자생적으로 생겨나 각자 대안 역할을 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한 개의 나꼼수보다 열 개의 이이제이가 낫고, 열 개의 이이제이보다 수백 수천 개의 이름없는 팟캐스트 방송들이 생겨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미국에서는 나꼼수 없이도 팟캐스트 청취자가 꾸준히 늘었듯이 우리 사회에서도 대안방송의 수요는 계속 늘 것이라는 게 노 국장의 생각이다. 김용민 피디도 비슷한 생각이다. “기성 미디어들은 정권의 눈치를 보거나 장악당해 할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어요.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을 출연시켰다는 이유로 ‘제이티비시(jtbc) 뉴스 9’이 징계를 받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한 박창신 신부를 인터뷰한 ‘시비에스(cbs) 김현정의 뉴스쇼’가 징계를 받았어요. 팟캐스트 방송이 유일하게 정권의 통제를 받지 않는 매체로 남았어요. 올바른 뉴스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팟캐스트로 눈길을 돌릴 겁니다.” 김 피디는 2주에 한번씩 방송인 김미화씨가 운영하는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의 카페 ‘호미’를 찾아 경제전문가 선대인, 우석훈씨와 함께 ‘리턴 나는 꼽사리다’의 제작을 지휘하고 출연할 예정이다. 이 방송은 공개방송 형태로 진행된다. 지난달 25일 첫 방송을 시작했다. 이이제이 진행자 이동형씨는 팟캐스트의 성장을 민주주의의 성장으로 해석한다. “야권이 대선에서 진 뒤 팟캐스트나 에스엔에스(SNS)의 가능성을 재평가하는 논의들이 있었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결과론입니다. 대선에서 이겼다면 아마도 일등공신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팟캐스트 방송을 계속 만드는 이유는 여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꼭 정치 문제가 아니더라도, 일반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더욱 늘어나길 바랍니다. 우리 같은 무명의 시민들이 인기를 얻는 경우가 많아져야 민주주의 아닐까요?” 나꼼수 열풍의 주인공 김어준(46)씨는 <한겨레 티브이>와 함께 팟캐스트 방송 <김어준’s KFC>을 시작한다. 12일 첫 녹음을 한다. 허재현 기자, 손지은 인턴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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