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2.21 19:46 수정 : 2014.02.22 11:11

강원도 강릉시에는 11일간 눈이 내려 누적 적설량이 179㎝에 이르렀다. 1911년 국내에서 첫 기상관측이 이뤄진 이래 최고 적설량이고, 최장기간 내린 눈이었다. 사진은 9일 오전 강릉시 중앙동에서 시민들이 눈을 맞으며 제설작업을 하는 모습이다. 강릉/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토요판] 르포 / 강원 폭설 현장에 가다

▶ 첫눈은 낭만적이지만, 갑자기 눈이 많이 내린다는 뜻인 폭설은 무서운 단어입니다. 최근 강원도에는 갑자기 많이 내리는 눈이 무려 열흘 넘게 이어졌습니다. 1911년 기상관측 이래 최대 폭설이라네요. 강원도 주민들은 일부 인명피해를 입기도 했고, 집·비닐하우스·건물 등이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강원도 폭설 현장을 찾아다니며 현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강원도 태백산맥 동쪽인 영동지역에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강원도 강릉은 11일간 누적 적설량이 179㎝에 달했고, 동해(118㎝), 삼척(116㎝), 고성(129㎝), 양양(107㎝) 등 이 지역의 주요 도시들 모두 적설량이 1m 이상이었다. 태백산맥을 넘는 주요 고갯길엔 더 많은 눈이 내렸다. 미시령은 184㎝의 적설량을 기록했고, 한계령, 진부령, 백복령 등 주요 고개에도 1m 이상의 눈이 내렸다. 폭설로 인해 민가가 고립되거나, 농가의 비닐하우스와 축사가 훼손되는 등 피해도 잇따랐다. 인명 피해도 있었다. 16일 삼척시 근덕면에선 정신지체를 앓는 임아무개(47)씨가 마을 진입로에 있는 눈 더미 속에 숨진 상태로 발견됐고, 동해시와 고성군에선 60, 70대 3명이 고립된 집에서 숨져 있었다. 이제 대학에 갓 입학한 청춘들의 목숨을 앗아간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참사도 동해안에 이례적으로 많이 내린 눈이 지붕에 쌓인 탓도 있었다. 이번 폭설은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동해안에 인접한 일본도 1m 이상 쏟아진 기록적인 폭설로 23명이 사망하고, 3000여명이 고립된 상태다.

태백산맥 동쪽 영동지역에
기상관측 이래 최대 폭설
강릉 11일 누적 적설량 179㎝
“동네가 안 그래도 한산한데
눈이 오니까 더 조용해요”

‘토끼길’ 종종걸음으로 걷고
눈에 갇혀 출퇴근길이 고행길
관광객 뚝 끊겨 쌓이는 근심
제설작업에 모두가 지쳤지만
자원봉사 손길에 언 맘 녹기도

일감 생겨 다행이라던 굴삭기 기사

강원지방기상청은 이번 폭설의 영향이 북태평양 베링해 쪽의 기류가 한반도 쪽으로 흘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강원지방기상청의 이시우 예보관은 “이번 겨울엔 시베리아 고기압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면서, 고기압이 산재적으로 생겨났다. 특히 북부태평양 쪽의 기류가 기압골을 타고 영동지방으로 흘러간 탓이 크다”고 설명했다. 동해안과는 달리 영서지방엔 2월 내내 눈이 드물었다. 서울엔 8, 9일 양일간 눈이 내렸지만, 적설량이 많지 않았다. 날씨도 금세 포근해져 눈이 녹았고, 맑은 날씨가 이어졌다. 강원도 지역의 기록적인 폭설을 전혀 체감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폭설 현장을 직접 보고 현지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자 18일 아침 7시7분 서울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태백·강릉행 첫차에 몸을 실었다. 경기도 하남, 양평을 지나 강원도 원주에 도착할 때까지 창밖의 산과 들에서 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원주역을 지나 치악산 자락에 접어들자 희끗희끗한 눈이 높은 산의 봉우리를 덮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 곳은 해발 1000m에 가까운 강원도 영월이었다. 영월을 지나 태백시에 이르자 눈발이 굵어졌다. 이 지역의 추전역은 코레일의 인기 관광상품인 태백 눈꽃열차의 주요 코스다.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시에 가까워지자 날씨가 맑아졌다. 동해시는 열흘 가까이 이어진 폭설이 이날 오전에 그쳐 제설작업이 한창이었다. 시내 주요 도로는 통행이 가능하지만, 길 한편엔 성인 허리에 이르는 높이까지 눈이 쌓여 있었다. 동해시에서 제설작업이 진행 중인 북평동을 찾았다. 목적지에 닿기까지 택시기사 고재동(60)씨는 타지에서 온 기자에게 동해시에 대해 설명했다.

“평생 동해에 살면서 이렇게 눈이 열흘 내내 내린 것은 처음이에요. 눈이 많이 와도 2, 3일간 집중적으로 쏟아지다 말았죠. 동네가 안 그래도 한산한데, 눈이 오니까 더 조용해요.”

이날 북평동엔 인천 계양경찰서 방범순찰대 소속 84명의 경찰이 제설작업을 했다. 중장비가 주요 길목을 맡았고, 사람들은 고립된 민가에 이르는 길목이나 비닐하우스 등에 쌓인 눈을 치웠다. 네 채의 비닐하우스에서 열무, 시금치, 쪽파 등을 재배하는 이영하(73)씨는 “경찰들 도움을 받아 비닐하우스에 쌓인 눈을 열흘 만에 겨우 치웠다. 하지만 옆에 쌓인 눈을 치울 방법이 없다. 그냥 두면 환기가 어려워 농사를 망친다”며 한숨을 쉬었다. 북평동은 영동지방의 최대 전통장터인 북평5일장이 들어서는 곳이다. 지난 열흘간의 폭설로 장을 두번 쉬었다. 마침 북평동을 찾은 18일이 오랜만에 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좌판에 고사리, 콩나물 등 채소를 깔고서 장사 중인 김종현(50)씨는 평소보다 적게 장이 들어섰다고 했다.

“상인들이 평소의 10분의 1 정도 나왔어요. 특히 생선, 건어물 등이 전혀 안 들어섰죠. 5일 전 13일은 정월대보름 전 대목인데도 장을 열지 못해서 상인들 피해가 커요.”

동해시 북삼동에서 양봉장을 운영하는 심익수(75)씨는 제설작업으로 열흘 만에 벌집을 만질 수 있었다.

“매일 벌 양식을 주고, 진드기 약도 줘야 하는데 열흘 동안 방치해 피해가 막심해요.”

동해시에는 주요 도로마다 굴삭기(굴착기), 덤프트럭 등 중장비가 투입됐다. 굴삭기가 눈을 모아 덤프트럭에 담기를 반복했다. 북평동의 한 도로에서 만난 이아무개씨는 “건설경기 침체로 워낙 일감이 없었는데 폭설로 일감이 생겼다. 피해 입은 분들에겐 미안하지만, 우린 일감이 생겨 다행이다. 하루 일하면 시청에서 굴삭기 기사는 55만원, 덤프트럭 기사는 45만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18일 오후 동해시보다 눈이 많이 내린 강릉시를 찾았다. 버스를 타고 40분이 걸려 저녁 7시께 도착했다. 강릉시외버스터미널을 나오자, 인도를 가득 메운 눈 사이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을 만한 폭 50cm가량의 길이 나 있었다. 강릉에선 이 길을 ‘토끼길’이라고 불렀다. 토끼길 양옆엔 사람 허벅지 높이의 눈이 쌓여 있었고, 군데군데 2m에 가까운 눈 무더기들이 있었다. 터미널 앞 8차선 도로 중 6차선이 뚫려 있었지만, 인도는 토끼길조차 나지 않고 막힌 곳이 상당했다. 인도와 차도가 구분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길가엔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사람들은 막힌 길을 우회해 차도 쪽으로 걸어다녔다. 퇴근 시간대였지만, 차도 사람도 많지 않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눈의 도시는 흡사 겨울왕국을 보는 듯했다. 버스터미널에서 강릉시청까지 걸어서 갔다. 평소라면 10분에 갈 거리지만, 토끼길과 차도를 넘나들며 조심스레 한발짝 내딛느라 30분 가까이 걸렸다. 시청의 건설과, 안전총괄과 공무원들은 재난대책 상황실을 지키며 야근을 하고 있었다.

“여기 설경 한번 봐라, 혼자 보기 아깝다”

원영석 건설과 과장은 “밤낮없이 제설작업을 하고 있다. 시내의 주요 도로는 대부분 뚫린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날까지 강릉지역에서 접수된 피해 건수는 총 522건, 피해액은 신고 기준으로 81억9300만원에 이르렀다. 건설과의 심봉섭 계장은 “직원들 대부분 열흘간 집에도 못 들어갔다”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밤 9시께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경포대를 찾았다. 이곳 상인들은 폭설로 관광객들이 뚝 끊겨 울상이었다. 50년간 경포대에서 부산처녀횟집을 운영한 박복순(68)씨는 “복구작업이 한창이라 관광객들이 미안해서 못 오는 것 같은데, 오는 게 강원도민들을 도와주는 거다. 오히려 해변과 해송 설경이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전정숙(61)씨는 “손님 한 명이라도 받으려고 길에 눈을 다 치웠지만, 예년에 비해 손님이 5분의 1도 안 된다. 여기 설경 한번 봐라. 혼자 보기 아깝다”며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눈 덮인 해송을 찍은 사진이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17일 트위터에 “100년 만의 눈으로 피해가 크지만, 강원도 동해안은 절경으로 장관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많이 많이 와주세요”라고 적어 논란이 일었다. 폭설로 인해 피해가 큰 상황에서 적절치 못한 언행이라고 지적을 받았지만, 이곳의 상인들은 “폭설로 관광객이 끊기면 더 피해가 크다”는 입장이었다.

19일 오전 강릉시는 오랜만에 이틀 연속으로 맑은 날이었다. 이날 오전 8시30분께 강릉 시내인 중앙동에서 만난 직장인 한상엽(26)씨는 출퇴근길에 삽질을 한다고 했다.

“제가 사는 구정면은 아직 제설작업이 별로 안 됐어요. 골목길은 다 눈으로 막혀 있어서 출근길에 20여분 삽질하며 나와 삽을 눈에 꽂아두고 출근하고, 퇴근길에도 집 앞까지 삽질하며 들어가요. 평소엔 회사까지 15분이면 도착했는데, 요즘은 1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시내에 있는 강릉중앙시장에 들어섰다. 좁은 길에 허름한 먹거리 장터가 줄지어 있었다. 국숫집에 들어가 아침식사를 하고, 직원을 붙잡고 폭설 피해에 대해 물었다. 이화국수의 종업원 최정자(52)씨는 집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시장 바로 옆에 살고 있는데요, 엊그제 지붕에 눈이 많이 쌓여서 무너졌어요. 다행히 밖에 있어서 다치진 않았죠. 그날부터 남편이랑 아들은 친구 집에서 자고, 저는 찜질방에서 자고 출근하고 있어요.”

강릉시청이 19일 중장비를 집중 투입한 내곡동을 찾았다. 내곡교를 건너 관동대학교까지 뻗은 4차선 도로는 쌓인 눈으로 인해 겨우 한두 차선만이 나 있었고, 이마저도 트럭과 굴삭기가 제설작업을 진행하느라 막혀 있는 곳이 많았다. 이 길목에는 강릉보건소가 있다. 다리 관절이 불편한 최진수(72)씨는 이날 열흘 만에 부인과 함께 보건소를 찾았다.

“약이 떨어져 아픈데도 꼼짝을 할 수가 있어야지. 평소 같으면 15분이면 올 거리를 오늘 버스 타고 한 시간 만에 겨우 왔어요. 동네에 쓰레기차도 안 와서 집 안에 쓰레기도 쌓아두고 있어요.”

보건소 민원실 직원 김가영(42)씨는 “당뇨, 고혈압 등 만성 환자들이 제때 병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원봉사 하니 즐겁고 재밌다”

관동대를 지나 30여분 걸으면 제설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구정면이 나온다. 이곳까지는 제대로 길이 뚫리지 않아 택시를 잡을 수도 없었다. 관동대 앞에서 콜택시 회사에 전화를 걸었으나 “오늘 그쪽은 운행하지 않습니다”라는 대답뿐이었다. 구정면사무소의 직원은 이날 경찰청 전의경 230명, 홍천군자원봉사센터 38명 등이 어단리, 학산리 등지에서 제설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안내했다. 면사무소에서 20여분 걸어 학산리로 향했다. 한적한 농촌에서 하얀 눈이 덮여 있지 않은 곳은 2차선 도로뿐이었다. 2차선 도로도 갓길에 사람 키만큼 눈이 쌓여 있었고, 눈이 갓길 차선을 침범해 길이 좁아진 상태였다. 드문드문 차들이 빠르게 지나쳤다. 학산리로 가는 길에 창고 앞에서 눈을 치우고 있는 부부를 만났다. 냉장고 배송업을 하는 최동환(40)씨 부부였다. 최씨는 “열흘간 일을 못해 배달 물량이 70~80개 정도 밀려 있다”고 전했다. 창고 지붕엔 눈이 1m가량 쌓여 있었고, 철로 된 파란 지붕은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최씨는 “눈이 워낙 많이 오다 보니 철제로 된 지붕이 쓰러질 지경이다. 빨리 눈이 녹기만을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학산리에선 비닐하우스에 쌓인 눈을 치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비닐하우스 다섯 채에서 시금치 등을 재배하는 이상단(60)씨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두 채는 비닐을 찢었다. 아예 무너지는 것보단 골조라도 살리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학산리 이장 김목기씨는 “비닐하우스가 무너지기 전에 비닐을 찢으면 100만원이면 복구가 가능하다. 그런데도 아예 무너져야 정부가 보상해 주기 때문에 그냥 놔두는 농가들도 상당수다”라고 말했다.

홍천군자원봉사센터에서 온 봉사자들은 이날 오후 비닐하우스 열두 채가 있는 곳으로 투입됐다. 이미 한 채는 눈으로 인해 완전히 무너졌고, 두 채는 비닐을 찢어 하우스 안으로 눈이 다 들어온 상태였다. 남은 아홉 채 위에 쌓인 눈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비닐하우스에 쌓인 눈을 걷어내려면 하우스 두 채 사이에 쌓인 눈 위로 올라가야 한다. 눈은 대략 2m쯤 쌓였고, 이 위로 올라가면 한발 내디딜 때마다 다리가 허벅지까지 눈 안에 파묻히기 쉽다. 발을 잘못 디디면 허리까지 훅 빠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옆 사람의 도움으로 겨우 눈 더미에서 빠져나온다. 그렇게 눈 위를 다니며 비닐하우스 위에 쌓인 눈을 치운다. 하우스 위에는 약 70~80㎝의 눈이 쌓였다. 위에 쌓인 눈은 비교적 가벼우나, 아래쪽에 있는 눈은 녹았다 얼어붙어 무겁고 딱딱했다. 삽질을 하다 보면 영하의 날씨인데도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봉사를 하러 온 사람들은 대부분 50대 이상의 여성이었다. 익명을 요청한 한 70대 여성은 “정작 내집 마당이나 내 하우스엔 눈을 안 치웠지만, 여기 와서 같이 자원봉사를 하니까 즐겁고 재밌다”고 말했다. 아줌마들은 눈밭에 드러눕기도 하고, 끊임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수다스럽게 일했다. 그럼에도 숙련된 솜씨로 삽질을 했다. 이날 오후 작업은 3시간 만에 끝났다. 비닐하우스 아홉 채 위에 쌓인 눈을 말끔하게 치운 상태였다. 비닐하우스 주인 이상단씨는 연신 고마움을 전했다.

“내일부터 다시 눈 온다고 해서 너무 막막했는데 정말 고맙습니다. 봉사하러 오면서 삽도 가져오고, 밥도 준비해 와서 줄 게 없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이날 마을 주민들은 봉사자들을 위해 따뜻한 대추차를 준비했다. 그들은 봉사자들에게 “추운 데서 땀 흘려도 이거 마시면 감기 안 걸린다”며 차를 권했다. 따뜻한 차가 온기를 채우는 동안 추위는 눈 녹듯 사라졌다.

강릉 동해/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르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