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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19일 새벽 3시22분 경기도 양평 벗고개에서 지구 자전 속도에 맞게 추적촬영한 하늘 모습. 큰곰자리의 꼬리 부분인 북두칠성은 겨울철 북극성을 중심으로 약간 동쪽에 위치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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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르포 / 별 보는 사람들
▶ 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을 본 적이 있나요? 1등성의 밝은 별이 가장 많은 계절, 겨울은 별을 보기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구름 낀 날, 안개 낀 날, 바람 부는 날, 월령(달의 크기)에 따라 하늘 모습은 매일 달라집니다. 그래서 별빛에 홀린 사람들은 밤이면 밤마다 별을 마중 나가나 봐요. 여러분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차분한 마음으로 하늘 한번 바라보세요. 어느 순간 반짝하고 별이 당신에게 말을 걸지도 모릅니다.
서쪽 하늘에 머리빗 모양의 달이 뜬 밤이었다. 도시를 빠져나간 차는 하늘과 가깝게 높은 곳으로 달렸다. 지상에 내려앉은 안개를 헤치고 도착한 곳은 강화도 하점면 이강리의 강서중학교. 학교는 산 아래 언덕 위에 있었다. 정문에 들어서자 땅 위에 인간이 켜놓은 불빛은 대부분 생기를 잃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 발을 디디는 순간, 몸은 우주의 한가운데로 입장한다. 고요한 적막감이 몸을 감싸안았다. 촘촘하게 박힌 ‘하늘의 눈’만이 머리 위에서 반짝였다. 지나가는 구름의 속삭임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지난 10월11일 금요일 밤 9시, 시인 윤동주가 ‘별 헤는 밤’에서 말한 것처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었다”. 별 보는 사람들에게 가을은 반가운 계절이다. 사람들은 여름 동안 장마와 높은 습도로 만나지 못한 별을 보러 밖으로 나온다.
달이 너무 밝으면 제빛 못 내는 별
이날 수도권에 몇 남지 않은 별 관측지인 강서중학교에도 별빛에 홀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어둠이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이곳에서는 지상에서 부르는 이름을 밝힐 필요가 없다. 목소리만으로 소통한다. 지난 관측 때 들었던 목소리라면 더욱 반갑게 인사할 수 있다. 지표면 위에 세워둔 서너대의 망원경이 마치 총포처럼 하늘의 별을 향해 기울어져 있었다.
달이 너무 밝으면 별이 제빛을 내지 못한다. 달 뜨는 시간은 달의 크기에 따라 다르다. 이날 달은 상현달에 가까웠다. 태양빛에 가렸을 뿐 상현달은 낮에 뜨기 시작해 자정 무렵 진다. 정성훈(45)씨는 달빛이 사위어드는 자정이 넘은 시각에 강서중에 도착했다. 정씨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별을 봤다.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에 가입한 것이 계기였다. 대학 때까지 천문동아리에서 별을 보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 30대에는 잠시 별을 잊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아는 40대가 되어서야 별을 다시 찾았다.
“일주일에 1번 정도 와요. 어릴 때 수원 용주사 근처에서 개기월식(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의해 가려지는 현상)을 봤거든요. 그때 숨어 있던 별들이 하늘을 뒤덮었어요. 별을 보면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죠.”
겨울에는 밝은 별이 많고
기온이 낮아 대기가 안정돼
대체로 맑은 날이 계속된다
별 보는 사람들에게 겨울은
춥지만은 않은 계절이다
가로등 하나 없는 오지에서
멧돼지와 만나기도 하는
별 보기란 낭만과 거리가 멀지만
“왜 보냐 물으면 대답은 같아요
별이 거기 있으니까 본다고”
요즘 그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팀을 이뤄 별을 보러 다닌다. 경기도 광명시 가학광산에서 주로 관측한다고 하여 ‘가학광산팀’으로 불린다. 같은 팀인 정남택(46)씨도 별을 보며 친분을 쌓아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별을 매개로 만나다 보니 자연히 천체 공부도 열심히 한다. 별은 그들에게 친구를 사귀게 해준 고마운 메신저이자 평생을 같이하고 싶은 꿈 같은 존재다.
사람들과 커피를 나눠 마시며 별 이야기를 하는 동안 초저녁부터 보이던 여름철 별자리들은 동쪽 하늘로 넘어갔다. 그 자리를 가을밤 남쪽 하늘 낮은 곳에서 홀로 밝게 빛나는 별, 남쪽물고기자리의 가장 밝은 1등급별 ‘포말하우트’가 채웠다. 밝은 별이 거의 없는 가을 하늘의 쓸쓸함과 적막함이 땅 위로 쏟아졌다.
11월, 우주의 시간은 별을 보기 좋은 계절로 흘러가는 중이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별 보기 좋은 기후가 아니다. 황사가 지나가고 난 뒤인 4월 말~5월 초, 태풍과 장마가 끝나는 8월 말 이후, 일교차가 심한 초가을을 지내고 10월 말~겨울까지를 빼면 별을 보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여름에는 습기에 약한 카메라가 매물시장에 쏟아지고, 늦가을부터 별 보는 장비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재미난 현상도 일어난다.
맨눈으로 별을 볼 때, 으뜸인 계절은 단연 겨울이다. 11월 말부터 떠오르는 겨울철 별자리는 1등성의 밝은 별이 많다. 별자리 사이에 숨어 있는 성단(별들이 뭉쳐 있는 집단)도 많다. 기온이 낮아 대기가 안정된 편이라 대체로 맑은 날이 계속된다. 별 보는 사람들에게 겨울은 춥지만은 않은 계절이다.
지난달 15일 금요일 밤 10시, 연무가 조금 낀 날이었다. 30년 가까이 매일같이 별을 봐 온 권우태(37)씨는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금왕리 벗고개로 가고 있었다. 달의 나이를 뜻하는 ‘월령’이 별 보기 그리 좋은 날이 아니었다. 그믐을 0으로 둘 때 이날은 보름에 가까운 13이었다.
“오늘이 음력 13일이니까 내일모레가 보름이에요. 가면 달이 밝을 거예요. 달이 지는 새벽 4~5시 이후가 별 보기 좋겠죠. 일기예보를 보니 양평 지역 기온 4도, 습도 90%예요. 습도가 조금 높은데 바람은 서풍이 분대요. 남동풍이 불면 그쪽에 있는 저수지에서 습기가 올라오지만 서풍은 괜찮을 거예요. 새벽에 연무 걷히는 것 기대하고 일단 가요.”
기상청 예보관만큼이나 철저한 분석이었다. 변화무쌍한 하늘의 변화에 울고 웃다 보니 일기예보 확인은 이들에게 일상이 됐다. 기온, 습도, 달 뜨는 시각은 물론 구름양, 이슬점, 바람 방향 등 여러 기후조건을 챙긴다. 동행한 정지욱(46) 영화평론가도 거들었다.
“점점 별 보기 안 좋아지고 있어요. 개발되는 지역이 느니까 빛 공해가 심해졌어요. 펜션이 새로 생기거나 스키장이 개장하면서 망가진 관측지가 여럿이에요.”
태양이 싸는 똥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2시간을 달려 도착한 관측지는 2차선 도로 위이자 작은 터널 앞이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산속 오지 중에 오지가 목적지였다. 도착하니 수능을 본 고3 조카와 함께 온 40대 삼촌이 망원경으로 별 일주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예상대로 별빛보다 달빛이 강했다. 서쪽 하늘 절반을 둥근달이 환하게 비추어서일까, 별이 잘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연무는 걷힐 줄 몰랐다. 새벽녘에는 이슬점보다 높은 기온에 망원경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갈수록 까무룩 잠이 쏟아졌고 차갑게 식은 아스팔트 위에 서서 발만 동동거렸다. 별 보는 곳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대부분이라 화장실은 따로 없는 곳이 많다. 멧돼지와 고라니 등 산짐승들과 약속 없이 조우하기도 한다. 여름에는 모기의 습격이 이어지고 겨울에는 동장군이 엄습한다. 별을 보기란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이렇게 힘들게 별을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6월 이곳에서 여름 은하수를 본 기억을 떠올리며 정지욱씨가 말했다.
“사람은 계속 변하지만 별은 그 자리에 있잖아요. 별을 잊고 살다가 별을 보고 있는 순간이면 나도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할까요. 영화를 읽어내는 데 있어서도 별을 보면서 얻은 상상력이 나의 시선을 새롭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의 말을 듣고 허리를 굽혀 110㎜(4인치) 망원경의 접안렌즈에 눈을 또 한번 갖다 댔다. 목성과 4개의 위성이 망원경 안에 둥실 떠 있었다. 밝은 달을 등지고 서서 큰개자리의 시리우스, 작은개자리 프로키온, 오리온자리의 베텔게우스를 연결하는 겨울철 삼각형을 손가락으로 그렸다. 검은 잉크가 번진 듯한 하늘에서 별들이 때로 길게 선을 그리며 지나갔다. 별똥별이었다. 아프리카의 부족들은 별똥별을 보고 별들끼리 음식을 교환하는 것, 또는 지상에서 하늘로 올라오는 악마를 쫓기 위해 천사들이 던지는 칼날, 외계에서 지구로 귀환하는 영혼, 태양이 싸는 똥 등이라고 생각했다니, 별은 역사적으로 인류에게 항상 예술적 영감과 과학적 상상력을 선물했다.
신비한 별의 세계를 사람들은 동경한다. 태곳적부터 인간은 자석처럼 별에 끌리도록 태어난 걸까. 11월17일 일요일 새벽 4시, 경기도 과천과학관에도 300여명의 사람이 별을 보러 모였다. 지난 2일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이 “아이손 혜성은 28일 태양에 흡수되어 소멸됐다”고 발표하기 전이었다. 이번 세기 가장 밝은 혜성이라는 언론 보도가 계속 됐고, 과학관 쪽은 사람들의 열망을 담아 일생에 한번밖에 볼 수 없는 혜성의 관측 행사를 열었다. 아쉽게도 겨울을 재촉하는 차가운 비가 내려 야외에서 아이손을 관측할 수는 없었다. 실내에서 별자리와 천체에 대한 강의를 들어도, 사람들에게 별은 어떤 소망이고 목표였다.
“처음 별 보러 나왔어요. 아이손이 엄청 밝다고 해서, 엄마한테 태워달래서 새벽에 둘이 나왔어요.”(서울 양재동의 황현정(13)·김예은(13)양)
“미래에는 별처럼 살고 싶어요. 사람들이 힘들 때 나를 바라보면 희망을 얻어 가면 좋겠다는 생각, 위로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경기도 평택의 감은이(42)씨 가족)
올해 초부터 별을 보기 시작한 인천의 한 초등학교 선생님 유미(34)씨는 겸손함을 배운다. “지난 8월 강서중학교에서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페르세우스 유성우를 처음 봤어요. 우주는 이렇게 방대하게 넓고 나는 점처럼 작은 존재인데, 이제껏 내 불평불만만 많았구나. 교사 연수 프로그램에 천문 관련한 것도 있어요. 망원경을 만들어본다거나 별자리 관측하는 걸 함께 하면 애들도 좋아하죠.”
별이 좋아 별을 보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안해도(33)씨의 직장은 천문대다. 충청북도 충주 고구려 천문과학관에서 일하는 안씨는 NGC(New General Catalog)목록(성단·성운 목록)에 적힌 7840개의 천체를 다 눈으로 보는 것이 인생의 꿈이다. 명승지나 문화유적지를 찾아다니며 별 사진을 찍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에게 별은 앎의 즐거움을 알려준다.
“왜 보냐고 물으면 다 대답 똑같을걸요. 별이 거기 있으니까 본다고. 하하하. 저는 남에게 잘난 척하는 걸 조금 좋아하는데, 별을 보면 알게 되는 게 많죠. 내가 몰랐던 지구 밖 존재를 관측하는 매력이 있고, 몇십만년 전 천체를 지금 제 눈으로 확인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끌려요. 겨울에 뜨는 장미성운은 아주아주 날씨 좋은 날 망원경으로만 볼 수 있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보거나 믿어주지 않아도 그런 거 볼 때가 제일 재밌어요.”
자동탐색기능으론 맛볼 수 없는 손맛
캄캄한 어둠 속에서 별 보는 사람들의 두근거림을 돕는 것은 최신 장비들이다. 망원경과 사진기, 자동차는 별 보는 데 꼭 필요한 기계다. 차가 없이는 높은 곳, 인공의 불빛이 비치지 않는, 별 보기 좋은 곳으로 떠날 수 없다. 별을 가까이 보여줄 망원경은 눈만큼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평생 간직하게 해줄 카메라도 중요하다. 관측지에 나가 보면 종종 천문대에서 볼 법한 렌즈 크기 500㎜ 이상의 망원경을 가진 사람도 있고, 직접 망원경을 만들어 별을 보는 사람도 만날 수 있다. 3만명 가까운 회원이 가입돼 있는 인터넷 카페에는 별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쌓인다.
그렇게 별에 미쳐 살다 보면 간혹 가까운 사람들에게 미안할 때가 있지는 않을까. 물론 이해받지 못할 때도 있다.
“맨날 밤마다 나가니까 집에 있을 때 좋은 소리 못 들었죠. 그래도 술 먹는 것보다 낫지 않냐고 반격해요.”(안해도씨)
“집사람이 제발 아파트 베란다에서 망원경으로 하늘 보지 좀 말라고 하죠. 주민들 보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신고 들어온다고요.”(권우태씨)
12월1일 자정 다시 강화도 강서중학교를 찾았다. 월령이 좋은 그믐 무렵이었다. 영하의 날씨에 학교 운동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몸은 떨렸지만 눈은 금세 어두움에 익숙해졌다. 겨울철 대표 별자리 오리온자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힘이 장사인 사냥꾼 오리온이 곤봉을 쳐든 늠름한 모습이다. 오리온자리 가운데에 있는 세개의 별, 삼태성 남쪽에 희미하게 보이는 오리온 대성운을 망원경으로 찾아봤다. 오직 망원경 렌즈만으로 하늘 위를 표류하다, 망원경이 알아서 찾아주는 자동탐색기능을 이용하니 더 쉽다. 하지만 별을 찾아가는 ‘손맛’은 느낄 수 없어 아쉽다. 이날 렌즈 지름 210㎜(8인치) 굴절망원경을 직접 조립해 만든 ‘별지기’를 만난 덕분에 목성 표면의 갈색 줄무늬 3~4줄을 보는 행운도 누렸다.
관측 내내 운해(구름덩어리)가 오리온자리 위로 계속 흘렀다. 구름이 몰려왔다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시간이 흐르자 별자리들은 동쪽으로 조금씩 이동했다. 하늘의 시간을 따라가다 보니 지상의 시간은 의미없게 다가왔다. 구름이 걷히자 다시 하늘은 유리거울처럼 선명해졌다. 쨍하고 소리 날 만큼 맑고 깨끗한 하늘에 다시 구름이 몰려오면 구름과 구름 사이에서 별들은 살짝살짝 얼굴을 보여줬다.
“나만의 별 하나를 키우고 싶다/ 밤마다 홀로 기대고 울 수 있는 별/ 내 가슴속 가장 깊은 벼랑에 매달아 두고 싶다/ 사시사철 눈부시게 파득이게 하고 싶다/ 울지 마라, 바람 부는 날도/ 별이 떠 있으면 슬픔도 향기롭다”(문정희의 시 ‘별 키우기’)
어느새 하늘은 코발트빛으로 밝아졌다. 아침 7시 집에 돌아와 눈을 감고 마음으로 별을 본다. 마음속에 별 하나씩 품은 사람들은 낮의 부산함보다 밤의 고요함을 닮았다. 이들은 별의 맥박 속도로 하루를 산다. 언제나 별을 그리고 청춘을 그린다.
강화 양평/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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