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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06 20:01 수정 : 2013.12.07 11:36

온라인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인기가 뜨겁다. 지난 4일 서울 용산역 아이파크몰 9층 이스포츠 스타디움에 이 게임의 프로 경기가 열리자 수백명이 몰렸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르포 / ‘리그 오브 레전드’ 열풍

▶ 주변에서 ‘롤’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티브이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게임 화면과 함께 아나운서들이잔뜩 흥분에 찬 목소리를 들은 경험은요? 대학생 동생이나 고등학생 자녀로부터 “갱”이니 “막타”라는 말을 들은 적은 없나요? 당신은 어떤 식으로든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줄여서 롤)라는 게임의 영향을 접한 셈입니다. 게임 중독에 대한 논쟁이 큰 요즘, 대세 게임이라는 롤의 세상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소란스러우면서도 진지했다. 지난 4일 서울 용산역 아이파크몰 9층의 이스포츠(e-sports) 스타디움에는 이날 오후 6시 반 시작되는 경기 입장을 위한 줄이 2시간 전부터 늘어섰다. 전체 200석 규모의 자리는 시작과 동시에 꽉 찼고 뒤에는 서서 관람하는 이들로 붐볐다. 매주 수~토요일 열리는 경기 때마다 이렇다고 한다. 현재 부정하기 힘든 최고 인기의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의 프로 게임 리그 현장이다.

줄여서 ‘엘오엘’(LOL) 또는 ‘롤’이라고도 부르는 이 게임의 목적은 단순하다. 보통 각각 5명으로 구성되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두 팀이 서로 상대방의 진지를 부수는 것이 목표다. 각 게이머들은 게임 속 자신의 아바타(분신)인 ‘챔피언’을 하나씩 정한다. 이들은 게임 안에서 숲의 괴물을 사냥을 하고, 적의 방어진을 부수고, 상대의 아바타를 제압하며 승부를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분투한다. 5명의 협동은 핵심적인 요소다.

최고 기량을 뽐내는 프로 선수들이 맞붙는 프로 게임 리그는 롤을 즐기는 게이머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이날 경기는 2013~2014 겨울 시즌 예선 16강으로 ‘에스케이티 티원 에스’(SKT T1 S)와 ‘팀 엔비’(Team NB)가 맞붙는 1경기, ‘나진 블랙소드’와 ‘케이티 불리츠’(KT Bullets)가 맞붙은 2경기 등 두 경기가 진행됐다. 경기마다 2번씩 맞붙는데 한 판에 짧으면 20분에서 길면 1시간 정도까지 걸린다.

“반 24명 중 안 하는 친구 2명에 불과”

롤 제작·서비스 회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에 본사를 둔 ‘라이엇게임즈’로, 모기업은 중국의 거대 인터넷 회사인 ‘텐센트’다. 국내에는 2011년 12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게임은 출시되자마자 인기가 가파른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3개월 만에 피시방 사용시간 기준으로 국내 전체 온라인 게임 가운데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이후 주춤했다가 지난해 7월25일 1위를 탈환해 지금까지 71주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게임 시장조사 누리집 ‘게임트릭스’가 집계한 지난 한 주(11월28일~12월4일) 동안 롤 점유율은 36.27%였다. 2위인 축구 게임 ‘피파온라인 3’의 점유율은 10.36%에 그쳤다. 최고 점유율은 지난 11월7일 기록한 45.06%로, 게임트릭스에서 40% 넘는 점유율을 기록한 게임은 롤이 유일하다. 이 게임은 전성기를 달리고 있다.

경기가 시작하자 대형 화면의 챔피언들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경기 중계 진행자의 해설이 스피커를 통해 관람객의 흥분과 섞여들었다. 하지만 수백개의 눈동자는 경기가 펼쳐지는 대형 화면에 꽂혀 떨어질 줄 몰랐다. 무대 양쪽에 설치된 방음 부스 안에서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은 외부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관객들은 대형 화면 속의 게임 캐릭터들이 마치 선수 자신인 것마냥 종종 탄성을 내질렀다. 그들은 디지털 세계 안에서 만나고 있었다.

국내 온라인게임 71주째 1위
수능날 ‘수능’ 누른 1위 검색어
평일 저녁 프로 게임리그 경기도
입장 2시간 전부터 줄 서야 했다 

“함께 할수록 재미있는 게임”
“학원 마치고 친구와 노는 공간”
남녀·세대 불문 널리 퍼진 인기에
게임 용어는 일상까지 스며들어

롤의 큰 인기는 사회문화적 반향까지 불러오는 수준에 이르렀다. 단적인 사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었던 지난달 7일 주요 포털의 검색어 순위다. 학생들에 대한 공부의 압박이 큰 우리나라에서 수능은 수험생들의 최대 관심사라 할 만한데, 이날 한때 ‘롤’ 관련 검색어가 ‘수능’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날 첫 경기의 ‘팀 엔비’를 응원하기 위해 중계 현장을 찾은 김예지(18·선린인터넷고)양은 한 달 전에 수능을 치렀다. 그는 “반 학생 24명 가운데 롤을 하지 않는 친구는 2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의 손에는 오전부터 내내 만들었다는 응원 팻말이 들려 있었다. 팀 엔비는 뛰어난 기량의 아마추어들이 모인 팀으로, 프로 게임단에 대항해 고군분투 중이다.

이날 열린 예선 토너먼트를 비롯해 매 경기는 케이블 티브이(TV)와 온라인 등을 통해 중계되는데, 중요 경기의 시청률은 상당한 수준이다. 지난 8월31일 열린 ‘롤 챔피언스 서머 2013 결승전’ 경기의 경우 시청률 조사기관 ‘에이지비(AGB) 닐슨’ 조사에서 13~25살 남자 시청률 1.04%를 기록했다. 이 시청층에서 같은 시간대 케이블, 종합편성채널을 통틀어 가장 높았다. 동시에 네이버 스포츠 중계에서 이 경기를 본 이들이 10만2000명이었는데, 이는 종전 최고 기록 6만7000명에 비해 3만5000명 늘어난 수다.

첫 경기가 팀 엔비의 2게임 모두 패배로 마무리된 뒤 중간 쉬는 시간에 한 건장한 젊은이가 주변 사람들에게 팻말을 나눠주며 응원을 호소하고 있었다. 케이티 불리츠팀의 서포터스로 뛰고 있는 유진석(23·서울대 경영)씨다. 유씨는 “매주 한번 경기가 있을 때마다 와서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씨의 대학 후배로 이날 처음 현장을 찾았다는 이원수(22)씨는 “요즘 청소년 시기에 롤을 안 하는 친구를 못 봤다”고 말했다.

화장 고치면서도 화면에서 눈 못 떼는 그녀

두번째 경기가 시작됐다. 관람석에 앉아 무대의 대형 스크린에 펼쳐지는 경기에 눈을 익힐 즈음 해설자와 관람객 사이에서 낯선 단어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막타’, ‘갱킹’, ‘캐리’ 등의 말들이다. 막타란 상대 아바타의 숨통을 끊는 마지막 공격, 갱킹이란 숨었다가 뒤를 급습하는 행위, 캐리는 압도적인 힘으로 팀을 이끄는 선수를 말한다. 팬들은 이 말을 게임에서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쓴다. 예컨대 “잘 차려진 밥상에 막타만 얹다니”라는 말은 고생은 남이 하고 자신은 마지막에 숟가락만 얹었다는 뜻, “땡땡이쳤다가 교수님에게 갱 당했어”라는 말은 수업을 몰래 빠져나왔다가 교수님에게 걸렸다는 뜻이다. 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한번쯤 이런 단어들을 들어보았을 법도 하다. 특정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은 외부와 구분 짓는 그들만의 언어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열기의 중심에는 10대와 대학생이 있지만 이 게임의 매력에 빠진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경기를 보던 임경환(26·해운업)씨는 직장 동료들과 자주 게임을 즐긴다고 말했다. “여럿이 함께 할수록 재미있기 때문에 일을 마치고 종종 함께 하러 가죠.” 전라남도 나주에서 일하는 그는 친구를 만나러 서울에 올라왔다가 이날 처음 현장을 찾았다. 남편이 매일같이 롤을 즐긴다는 한 여성 직장인은 “도대체 어떤 게임이길래 그렇게 빠져드는지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일더라”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이들은 대부분 남성인데 이날 유독 여성 팬이 많은 점도 눈길을 끌었다. 적어도 열에 셋은 여성이었다. 눈치 없는 남자친구를 따라온 듯한 이도 눈에 띄었지만, 화장을 고치면서 잠시도 게임에서 눈을 떼지 않는 모습이 보통의 팬이 아님을 짐작하게 하는 이도 있었다. 김예지양은 “우리 반 여학생은 7명인데 그 가운데 5명은 롤을 해요. 게임의 캐릭터들이 예뻐서 시작했다가 재미에 빠진 친구들이 대부분이죠”라고 말했다. 현장을 안내한 라이엇게임즈의 관계자는 “주말에 열리는 리그의 경우 유모차를 끌고 나들이 오듯 오는 부부 관람객들도 제법 된다”고 귀띔했다.

제임스 앤윌(24)은 영국인으로 한국에 유학 중인 여자친구를 만나러 여행을 왔다가 함께 리그 현장에 왔다. “벌써 페이스북을 통해 이곳 사진을 올리고 고향 친구들에게 자랑을 늘어놓았죠. 모두 부러워해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인기는 세계적이다. 현재 게임 누리집 ‘엑스파이어’ 집계 기준 북미 지역 인기 게임 1위를 달리고 있고,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에서 집계한 인기 게임 1위도 롤이다. 한국의 이스포츠 현장은 이들에겐 일종의 ‘성지’와도 같다. 앤윌은 “영국에서부터 온라인으로 경기를 보아 왔습니다. 한국은 경기 실력과 중계 면에서 최고죠”라고 말했다. 라이엇게임즈는 롤 게임 자체를 한국의 이스포츠 경기 중계를 염두에 두고 설계했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다.

롤 경기를 보며 탄성을 지르는 관중들. 강재훈 선임기자

대세 게임, 안 하면 대화 못 낀다

이런 열풍의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달 30일 인천 부평의 한 피시방에선 다른 게임 리그가 펼쳐졌다. 이른바 ‘피시방 토너먼트’로 전국 재야의 날고 긴다는 롤 플레이어들이 서로 기량을 겨루는 토너먼트다. 이날 8개팀 모두 40명이 승부를 겨뤘는데 절반은 피시방 신청, 절반은 롤 누리집 신청자들이다. 피시방의 정문선 사장은 “4개팀 20명을 뽑아야 했는데 알린 지 2~3일 만에 인원이 몰려서 서둘러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받았으면 신청자가 80명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가 열린 이날 88석 규모의 피시방은 선수와 응원하는 친구들로 가득 찼다. 라이엇게임즈의 운영 요원 3명이 와서 진행을 준비하고 다과와 선물 등을 마련했다. 정 사장은 “예전에 다른 게임의 토너먼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참여가 저조해 힘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활기가 넘쳤다”고 말했다.

피시방 토너먼트는 롤 인기 요소를 복합적으로 보여준다. 우선 디지털 게임이면서도 스포츠에 가까운 요소다. 마치 축구가 전국의 1~3부 리그에 나라 간 월드컵이 있는 것처럼 롤 역시 피시방 토너먼트부터 프로 게이머 리그, 세계 대회인 ‘롤드컵’까지 단계가 짜여 있다. 롤을 즐기는 누구나 친구, 지인과 함께 동네 피시방에서 대회에 참가할 수 있고 여기서 기량을 인정받으면 세계 무대에서도 뛸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5월부터 매주 토요일 8개 지역에서 6개월 동안 진행한 피시방 토너먼트에는 신청자가 3만명, 참여 플레이어는 8000명에 달했다. 롤은 게임의 성격 자체도 매번 게임을 할 때마다 모든 선수가 초기 상태에서 뛰기 때문에 기량과 협동만이 승패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스포츠 경기의 요건에 맞다.

동시에 라이엇게임즈가 한국 게임산업 유통의 주요 통로인 피시방을 중요하게 다룬 점이 초기 빠른 확산을 도왔다. 이 회사는 피시방 토너먼트를 비롯해 점주들의 만족을 위한 다양한 지원 정책을 펼친다. 손님이 피시방에서 특정 게임을 즐기면 플레이 시간 등에 따라 피시방은 일정액을 게임 회사에 내야 하는데 롤의 경우 모든 게임을 통틀어 과금이 가장 낮은 편이다. 라이엇게임즈의 브랜던 벡과 마크 메릴, 두 대표는 게임사를 차리기 전 굉장한 게임광으로 엘에이(LA) 한인 타운의 피시방을 찾아 게임을 하고 순두부찌개를 즐겨 먹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 라이엇게임즈의 미국 본사에도 컵라면을 파는 한국식의 피시방이 있고, 통상 외국에서 ‘인터넷 카페’ 등으로 부르는 이런 업태에 대한 사내 용어도 ‘피시방’으로 통일할 정도라고 한다. 이스포츠와 함께 피시방 등 한국적 특성이 이 기업의 문화에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젊은층이 ‘대세’로 인식하면 자연스럽게 ‘또래 문화’로 자리잡게 된다. 안 하면 대화에 낄 수 없으니 주변 사람들도 빠르게 빨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신의진 의원(새누리당)이 대표 발의한 이른바 ‘게임 중독법’ 등으로 게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기 게임인 롤은 대표로 포화를 맞고 있기도 하다. 라이엇게임즈의 오진호 한국 대표는 지난 11월 여성가족부 국정감사에 나와 과몰입 방지 대책이 미흡하다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고등학생 김예지양의 생각은 다르다.

“학원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11시가 넘어요. 셧다운제는 그 시간에 친구들과 만나서 그나마 이야기 나눌 공간을 막아버렸어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는데 게임이 문제인 것처럼 계속 막고 보는 게 맞는 일인가요?”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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