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 대원들이 19일 밤 10시께 서울 종로구 부암동 골목길에서 혼자 귀가하는 여성을 집까지 데려다주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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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르포 / 남녀 기자의 ‘안심 귀가 서비스’ 동행
▶ 야간 자율학습을 끝낸 고등학생 딸을 마중 나가는 부모님들 많으시지요. 집으로 향하는 가족의 뒷모습에서 훈훈한 정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혼자 밤길을 다닐 수 없는 여성의 불안함이 드러나는 모습 같아 씁쓸합니다. 서울시와 일부 지자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여성안심귀가서비스를 이용해 보았습니다. 기자들은 서비스에 만족스러워하면서도 개인정보 노출과 스카우트 대원들의 안전을 염려하네요. 가로등 골목길의 낭만 또는 공포 낙엽 위로 가로등 불빛이 은은하게 떨어지는 가을밤이라도 낭만이 앞서지 않는다. ‘또각또각’ 나의 날카로운 발소리에 ‘저벅저벅’ 누군가의 둔탁한 발소리가 얹혀지면 자연히 어깨가 움츠러든다. 두 눈이 뒤통수에 달리고 귀가 쫑긋 서는 느낌이다. 뒤따라오는 남성이 언제 어디서 사라지는지 힐끔거리며 걷는다. 혹여 남성이 앞질러 가기라도 하면 ‘어맛’ 하며 놀랄 때도 있다. 미안하고 민망해도 어쩔 수 없다. 이건 거부할 수 없는 동물적 반응이다. 늦은 밤 혼자 집에 가는 길, 실제로는 5~10분 남짓의 짧은 시간이지만 언제나 더 길게 느껴진다. 경계는 신체적 약자인 여성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다. 서울에 첫눈이 내린 18일 밤 11시 서울 관악구 신대방역 1번 출구 앞 신호등, 팔짱을 끼고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틈에 서 있었다. 골목길에 들어서자 야속한 가로등은 언제나 물수제비처럼 띄엄띄엄 어둠을 밝힐 뿐이다. 산 아래 집들이 빽빽하게 밀집한 동네, 지난 10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여성안심귀가서비스 현장시찰을 다녀간 곳이기도 하다. 해당 자치구인 서울시 관악구 구청상황실에 전화를 걸었다. (120 다산콜센터에 물어보면 번호를 알려준다) “여성안심귀가서비스 신청하려고요.” 전화를 받은 상황실 직원은 신청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확인했다. 직원은 전에도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있는지, 스카우트 대원들과 몇시에 어디서 만날지 물었다. 집에 잘 들어갔는지 확인 연락을 하길 원하냐는 질문에 추가 연락은 필요 없다고 답했다. 20분 뒤인 11시20분, 1번 출구 앞에서 노란 모자 노란 조끼를 입고 손에 경광등을 든 남자와 여자를 만났다. 40대 아저씨와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다. 이름을 밝히고 동행했다. 자연스럽게 아주머니 옆에 붙어 섰다. 힐끔 돌아보니 아저씨는 3m 떨어져 걸었다. “퇴근하는 길인가 봐요. 항상 이 시간에 퇴근해요?” 관악구 신사동과 조원동에서 안심귀가서비스 스카우트 대원으로 활동중인 안진아(60)씨가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유독 추워진 날씨 때문일까, 목적지까지 동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따뜻함이 느껴졌다. 안씨는 이 동네에서만 40년을 살았다고 했다. “지방에서 서울 막 올라와서 길 모르는 여성분들이 많이 신청해요. 밤 11시에 야간근무 끝나고 퇴근하는 언니가 자주 이용하는데, 그 집은 정말 외진 곳에 있어 무섭겠더라고요. 우범지역은 우리도 무서워요.” 안씨와 엄마와 딸처럼 가깝게 붙어 걷는 동안 대원 김종기(46)씨는 계속 두 사람의 뒤를 따라 걸었다. 남성 대원은 서비스 신청자와 여성 대원의 안전을 책임진다. 헤어지기 전 김씨가 말했다. “아무래도 여성들은 남성 대원을 불편해하시니까 나서지 않아요. 처음에 여성 2명으로만 구성해 서비스를 했어요. 그런데 해보니 여성 스카우트 대원들의 귀갓길도 위험한 거죠. 노란 조끼 입고 경광봉까지 들고 다니니까 취객들이 시비를 걸기도 해요.” 다음날 밤 10시30분 관악구 미성동 난곡우체국 앞 사거리에서 만난 김서영(13)양은 안심귀가서비스의 ‘단골’이었다. 안심귀가 스카우트 대원 정지혜(가명·60대)씨를 보고 김양이 “추운데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하고 투정을 부렸다. 말투가 마치 외할머니를 부르듯 서로 가까워 보였다. 노란 모자 노란 조끼를 입고손에 경광등을 든 남녀와
신대방역 앞에서 만났다
자연스럽게 아주머니 옆에 섰고
아저씨는 3m 떨어져 걸었다 “친구가 칼을 든 남자 만난 뒤
혼자 못 다니겠다며 단골 됐죠
수능 끝나고 연락 끊겨 걱정돼요”
6개월간 귀갓길 동행 2만2675건
내년 예산은 아직 확보 안됐다 김양이 말했다. “할머니가 밤길 위험하다고 이용하라고 알려주셨어요. 학원이 늦게 끝나는 날에는 꼭 이용해요. 7~8번 정도 이용했어요. 가장 무서운 곳이요? 여기 가로등 없는 골목이요.” 상점들이 늘어선 이면도로 안쪽으로 휘어지자 나타난 어두운 골목, 김양의 집까지는 불과 20m 남짓 짧은 거리였다. 누군가에게는 가로등 조명 아래 골목길이 낭만일지 몰라도 중학생 소녀에게는 두렵기만 한 공간이다. 김양의 안심귀가를 책임진 뒤 미성동 스카우트 대원 나연규(67), 정지혜, 김미정(53)씨와 함께 어두운 골목길 순찰에 나섰다. 산동네 골목은 사람 혈관처럼 복잡하게 샛길이 여러 갈래로 나 있었다. 가로등은 왜 꺼져 있을까. 빌라 1층에 있는 주차장은 어찌 저리 컴컴할까. 위험한 줄은 알지만 지나칠 뿐인 익숙한 동네 풍경이었다. 대원들이 손에 든 빨간 경광등 3개만 어둠 속에서 흔들렸다. 아랫길로 난 계단을 가리키며 정씨가 말했다. “전에 바래다준 여성 말이 친구가 여기서 맞닥뜨렸대요. 칼을 든 남자가 계단 아래서 튀어나오길래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칼날을 잡았대요. 친구가 그런 일을 겪은 걸 보고 나서는 혼자 못 다니겠다며 우리 단골이 됐죠. 수능이 끝나고서 연락이 뚝 끊긴 게 조금 걱정되기도 하고 그래요. 밤이 길어져서 일찍 집에 다니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골목 구석구석 순찰을 도는 동안 전에 서비스를 이용한 여성들의 사연이 대원들의 입을 통해 쏟아졌다. 극단적인 사례지만, 여성이라면 누구나 상상해본 적이 있는 공포스러운 상황이다. “재수생이었어요. 서비스를 신청한 건 아니고 어두운 길에 혼자 걸어가고 있길래 말을 걸었죠. 데려다주겠다고 하니까 좀 빼다가 동행하게 됐어요. 들어보니까 몇년 전에 집 앞에서 어떤 남자가 갑자기 튀어나와 칼을 목에 갖다댔대요. 자기도 모르게 ‘빽’ 하고 소리질렀더니 앞집 사람이 문 열고 나와서 살았다고. 어휴, 무서운 세상이죠.”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걷는 여성은 많았다.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안전한 귀가를 돕는 이런 정책이 있는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퇴근중이던 이 지역 주민 정희은(39)씨는 “지하철 광고를 본 것 같기도 한데 잘 몰랐다. 외진 동네라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 5월부터 실시한 여성안심귀가서비스는 서울시 여성 직원의 아이디어로 채택됐다. 긍정적인 반응이 많지만 ‘이용자’로서 느낀 아쉬움도 있었다. 이름과 전화번호, 집의 위치를 구청 상황실 직원과 스카우트 대원들에게 공개하게 되는 점이다. 유연식 서울시 여성가족정책담당관은 “귀갓길을 동행한 여성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않고 있다. 일부 구청에서 보유하고 있던 정보들도 전면 폐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울시의 지침은 현장 곳곳에까진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듯했다. 일부 스카우트 대원들은 동행한 여성의 인적사항을 정확히 파악해 기록대장에 적고 있었고, 이는 경찰서에 보관돼 있었다. 여성들의 귀갓길만큼 개인정보 보호에도 배려가 필요해 보였다. 안심귀가 스카우트의 귀갓길도 걱정 어두운 골목길을 걷다 보면 가끔 난감해질 때가 있다. 앞서 걸어가는 여성이 갈림길에서 방향을 꺾었는데도 우연히 같은 길에 들어선 경우다. 순간 고민을 한다. 그냥 앞서서 갈까, 아니면 좀더 천천히 갈까. 골목이 깊어질수록 가로등은 찾아보기 힘들고, 여성의 날카로운 구두 소리는 점점 빨라진다. 뒤를 쳐다보진 않지만 여성의 온 신경은 내 발걸음 소리에 향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난 그저 집으로 가고 있을 뿐인데…. 여성이 밤거리에서 느끼는 두려움은 남성으로서 충분히 공감하긴 어렵다. 남자도 가끔 아주 어둑하고 으슥한 골목길을 지날 때면 ‘위험하겠다’는 정도의 생각을 한다. 낯선 남성이 가까이 접근하면 때론 긴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별생각 없이 골목길을 지난다. 오히려 여성들의 경계가 신경이 쓰인다.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받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사회가 워낙 흉흉하니 여성들의 불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내 가족, 애인이 어두운 골목길을 홀로 걷는다고 생각하면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다. 여성의 안전한 귀가를 위해 서울시는 올해 5월부터 안심귀가 스카우트 제도를 운영중이다. 서울시 25개 구 중 15개 구에서 495명의 스카우트 대원을 채용했다. 이들은 남녀가 2인1조로 구성돼 평일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거리를 순찰하고, 신청을 한 여성의 귀갓길을 동행한다. 서울의 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19일 밤 10시, 서울시 종로구 세검정파출소에서 순찰을 나가려고 준비하는 정영화(50), 조상기(50)씨를 만났다. 이 파출소에선 매일 2인1조로 구성된 두 팀이 인근의 부암동·구기동·홍지동 등을 다닌다. 이 동네에서 각각 15년, 6년을 거주한 정씨와 조씨는 ‘안심귀가 스카우트’를 알리는 노란 조끼와 모자를 착용하고, 한 손엔 30㎝ 길이의 빨간색 경광봉을 들었다. 주머니에는 호루라기를 넣었다. 정씨는 순찰을 돌다가 신청이 들어오면 귀갓길을 동행한다고 했다. “추워지기 전까진 하루에 7~8건 정도 했어요. 수능이 끝나고 건수가 줄었죠. 늦게까지 공부하는 여고생들이 안심귀가서비스를 많이 이용했거든요. 수능 며칠 전엔 자주 바래다주던 지민이가 ‘아줌마,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그동안 고마웠어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말을 들을 때 참 보람있죠.”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인 19일 밤 10시 소집 장소인 서울 관악구 미성동 미성파출소에 모인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 대원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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