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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01 20:00 수정 : 2013.11.03 18:19

전두환 전 대통령을 수식하는 말은 여러가지다. 누군가에겐 학살자, 독재자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각하’, ‘모교를 빛낸 동문’이다. 사진은 대구공고 본관 1층 현관 앞에 설치됐다 없어진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과 프로필이다. 노 전 대통령은 경북고로 전학하기 이전에 대구공고를 다녔다.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르포] 전두환과 대구공고

▶ 언제부터인가, 매년 10월만 되면 대구에 있는 공립 특성화고교인 대구공고가 떠들썩해진다. 62년 전 이 학교를 졸업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총동문회가 여는 체육대회와 ‘전두환 각하배 골프대회’에 참가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 재임 중 인권탄압, 천문학적 금액의 부정축재 등으로 전 전 대통령은 ‘국민 밉상’이다. 하지만 이 학교 총동문회는 아랑곳않고 전 전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를 이어갔다.

현재 전두환(82) 전 대통령을 높여 부르는 호칭이 둘 있다. ‘전두환 각하’와 ‘전땅크(탱크) 형님’. 전자는 대구공업고등학고 총동문회 쪽이, 후자는 보수 성향인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에서 활동하는 일부 누리꾼들이 쓴다.

전땅크 형님이란 호칭엔 미화와 장난기가 함께 담겨 있다. 전 전 대통령을 띄울 때 자주 쓰는 ‘무겁지만 가벼운’ 표현이다. 반면 25년 전 퇴임한 전 대통령에 대한 ‘전두환 각하’란 호칭은 투박하면서도 무겁다. 대구공고 총동문회는 매년 10월 골프대회를 열며 ‘전두환 각하배 제○회 동문가족 초청 골프대회’라는 이름을 붙였다.

‘호칭 가지고 뭘 그러냐’고 할 수도 있지만, 단순히 표현 문제만은 아니다. 대구공고 총동문회는 지난해 6월 학교에 전두환 자료실을 열려다 비난 여론에 부닥쳐 폐쇄했고, 지난 4월엔 학교 누리집에 ‘민주화 불멸의 초석을 세웠다’며 전 전 대통령을 치켜세우는 글을 올렸다가 비난이 쏟아지자 내린 바 있다. 10월만 되면 취재진은 ‘전 전 대통령이 이번에도 골프대회에 오느냐’고 대구공고 총동문회로 문의 전화를 한다. 전 전 대통령이 행사에 참가하면 대구공고에도 불똥이 튀어 항의 전화가 폭주한다.

올해 이 학교 총동문회는 이례적으로 ‘전두환 각하배 골프대회’를 열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도 10월13일 열린 대구공고 총동문회 체육대회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일까?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큰절 올린 후배들

대구공고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학교가 아니었다.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 두 명이 다녔지만, 전교생이 1500명가량 되는 공립 특성화고교다.

최근 전국에 유명세를 치르게 된 발단은 2010년 10월10일 열린 31회 총동문회 체육대회였다. 당시 일부 기수 동문들이 ‘전두환 대통령 각하 내외분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라는 펼침막을 들고 입장한 뒤, 운동장 바닥에 엎드려 전씨 부부에게 큰절을 올렸다. 체육대회 다음날인 11일 열린 전두환 각하배 동문가족 초청 골프대회도 ‘명칭’ 때문에 입방아에 올랐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은 재산이 29만원밖에 없다며 추징금 1672억원을 내지 않고 있었다.

그로부터 13일 뒤인 11월24일 대구공고 누리집이 해킹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학교 누리집의 첫 화면에는 가수 일리닛의 뮤직비디오 ‘학교에서 뭘 배워’가 자동 재생됐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의 떠들썩했던 ‘대구 나들이’ 때문에 학교 누리집이 해킹당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했다.

지난해 6월 대구공고 총동문회가 학교 안에 전두환 자료실을 개관한 사실이 알려지며 다시 떠들썩했다. 올해 들어서도 4월 대구공고 총동문회가 학교 누리집에 전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글을 올렸다. 총동문회는 ‘모교를 빛낸 동문’ 항목에 글을 실어 “재임 기간 중 권력형 부정부패를 척결했다”, “전 동문은 우리나라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기원하는 우국충정을 한시도 잊지 않고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표현을 써가며 전 전 대통령을 추어올렸다.

전 전 대통령은 10월13일 열렸던 34회 총동문회 체육대회에 오지 않았다. 총동문회도 올해엔 전두환 각하배 제9회 동문가족 초청 골프대회를 열지 않았다.

‘전두환 각하배 골프대회’ 취소
총동문회 체육대회 전두환 불참
검찰의 추징금 환수 진행되고
자녀까지 검찰 수사 받고 있어
가을 대구 나들이 무산됐나

학교와 총동문회는 불만 많지만
전 대통령 모교 중 가장 떠들썩한
대구공고 행사는 매년 주목받아
“욕먹어도 전 대통령 치켜세워
‘대통령이 선배’ 자부심 유지”

매년 참석하던 전 전 대통령이 행사에 불참하자 또다시 대구공고는 관심을 모았다. 대구 지역사회에서는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추징금 환수 절차가 시작됐고, 자녀까지 검찰 수사를 받고 있어 올가을 ‘대구 나들이’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 전 대통령에 관심이 집중된 이때에 예년처럼 그를 불러 체육대회와 골프대회를 하기에는 총동문회도 부담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전두환 자료실 폐쇄 운동을 벌였던 김두현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올해 전 전 대통령이 대구에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대구공고 총동문회는 ‘우리가 알아서 할 문제지 외부에서 왜 그러느냐’고 억울해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은 동문을 넘어 논란의 중심에 있는 전직 대통령인데, 동문이라는 이유로 그런 행사를 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는 되새겨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항의 전화 빗발쳐 학교 업무 마비될 정도”

지난 31일 낮 대구공고는 한산했다. 4층 학교 본관 건물로 들어서자 양쪽 벽면에 학교를 빛낸 졸업생들의 사진과 이름이 걸려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른쪽 벽면에는 전 전 대통령의 사진이 크게 걸려 있었지만 이날은 보이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은 1951년 대구공고를 24회로 졸업했다.

“오래전에 치웠습니다.” 신영재 대구공고 교장은 짤막하게 말했다. “4월 학교 누리집에 전 전 대통령의 찬양 글을 올려 시끄럽지 않았느냐”고 묻자, “열흘 동안은 ‘폐교하라’는 등 항의 전화가 빗발쳐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고 말했다. 신 교장은 당시 총동문회 사무국장에게 글을 내려달라고 했고 총동문회가 받아들이기로 해 글을 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총동문회에서 한 것이고 학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장난으로 던지는 돌멩이에 학교는….” 신 교장은 총동문회보다는 언론에 서운함을 내비쳤다. 전두환 각하배 골프대회를 열고 전두환 자료실을 만든 총동문회 쪽을 비판하거나 섭섭해하는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신 교장은 전 전 대통령의 10월 행사 불참 등에 대해서는 “동문회 일이라 잘 모른다”고만 답했다.

그러면서 신 교장은 “총동문회가 학교에 장학금도 많이 전달하고 좋은 일도 많이 한다. 지난해 재학생 29명이 대기업과 공기업에 합격했고, 학생들이 자격증 따는 데 열심이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언론이 이런 긍정적인 것들을 다뤄줘야 하는데”라며 언론 쪽을 탓했다.

총동문회가 있는 건물로 가며 학생 다섯을 만났다. “전 전 대통령이 이 학교 나온 것 아느냐”고 묻자, 학생들은 “잘 몰라요”라며 빠른 걸음을 옮겼다.

대구공고에서 근무하는 한 교사는 “언론에 총동문회와 전 전 대통령의 문제가 보도될 때마다 학교가 뒤숭숭하고 학생들도 총동문회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다른 학교에 견줘 총동문회의 힘이 강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본관 옆 언덕길을 100m쯤 오르자 대구시교육청이 소유한 5층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앞 게시판에는 1~4층 안내만 있었다. 1·2층은 특성화고 홍보관, 3층은 취업지원센터, 4층이 대구공고 총동문회 사무국이었다. 총동문회는 이곳에 ‘세들어’ 있다.

아무런 안내가 없는 5층은 지난해 6월 총동문회가 전두환 자료실로 개관하려던 곳이다. 승강기는 4층까지만 운행하게 돼 있었다.

총동문회 사무국에서 “사무차장”이라는 남성은 언론에 불만부터 나타냈다. “매년 체육대회 때마다 새로 들어오는 기수가 있었고, 역대 선배들에게 그렇게 절을 해왔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학교 선배 자격으로 왔던 거다. (언론이) 그걸 나쁜 쪽으로 폄하하니까….” 동문 선후배간 인사 나누기인데 언론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 찬양’으로 과장해 보도했다는 말이다.

올해 골프대회를 열지 않은 까닭을 묻자 “원래 매년 여는 대회가 아니다”라고 했다. 최근 3~4년만 연이어 열었고 그 전까진 경제 사정에 따라 띄엄띄엄 열었다는 것이다. ‘전두환 각하배 골프대회’는 지난해까지 8차례 열렸다. 지난해까지 5년간은 해마다 열었는데, 올해는 열지 않은 것이다.

전두환 자료실을 두고도 그는 “좋게 보려면 모든 게 좋은 거 아니냐. 역사적 진실은 당사자가 모두 죽고 난 뒤 오랜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실을 보여 달라고 했으나 거절했다. 총동문회장 연락처도 알려주길 거부했다.

“언론에 모교이름 나오면 고개를 못 들겠어”

대구공고를 졸업한 사람 모두가 전 전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총동문회가 전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졸업생들도 일부 있다.

1967년 대구공고를 졸업한 서성교(64)씨는 “나는 전두환이라는 사람이 내가 나온 학교를 나왔다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한다. 내가 만약 총동문회 임원이라면 동문 명부에서 그 사람의 이름을 빼버렸을 텐데, 총동문회와 학교는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 보도에 모교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내가 만나는 동문들은 ‘고개를 못 들겠다’고 하더라. 국민 대다수가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을 동문이라는 이유만으로 띄워주면, 그걸 보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라고 우리 학교를 생각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구공고 동문회는 왜 매년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전 전 대통령을 챙겼을까. 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명박 전직 대통령이 졸업한 학교 가운데 대구공고를 빼면 매년 이렇게 떠들썩한 동문 행사를 하는 곳은 없다.

대구공고 총동문회 누리집을 보면 그들의 이런 행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대구공고 총동문회는 다른 학교 동문회 조직보다 좀더 체계적이다. 총동문회 사무국에는 사무국장과 사무처장, 사무간사를 비롯해, 행사 담당과 홍보 담당, 홈페이지 담당까지 정해져 있다. 21기부터 62기까지 기수별 동문회가 산하 조직으로 있고, 서울과 부산, 울산, 구미 등 전국 30개 지역별 동문회도 꾸려져 있다. ‘동문네트워크’라는 코너에 들어가면, 동문사업체와 동문구인구직, 동문벼룩시장, 동문경조사 등의 세부 항목이 주르륵 펼쳐진다. 마치 ‘우리가 남이가’라는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대구’의 느낌이 강하게 난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과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가 대선에서 맞붙었던 때 대구 출신의 이효상 국회의장은 경상도 유세 도중 “문디(문둥이)가 문디(문둥이)를 안 찍으면 어떡하느냐”고 말한 적이 있었다. 대구공고 총동문회도 마치 “동문이 동문을 위해주지 않으면 어떡하느냐”고 말하는 것 같다. 대구공고 총동문회는 마치 대구 사회 분위기를 옮겨놓은 느낌이다.

이에 대해 백현국 대구경북진보연대 상임대표는 대구공고 총동문회가 전 전 대통령의 ‘출세’를 동문 우월성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백 대표는 “대구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인식이 형성돼 있는데, ‘내 친구가 고위 공무원이다, 8촌이 국회의원이다’라는 말이 곧 자기 자신의 자부심을 키워주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단체니 지역의 우월성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면 그게 곧 자신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오류가 뿌리 깊게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한테 욕을 먹더라도 전 전 대통령을 ‘자랑스런 동문’으로 치켜세워야 ‘대통령을 배출한 학교’와 ‘대통령이 우리 선배’란 자부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구/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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