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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09 19:42 수정 : 2013.08.09 20:39

국가정보원 앞으로 피서 온 국정원 감시단 3인방이 8일 오후 2시께 국정원의 댓글을 들려주는 ‘너의 댓글이 들려’(너댓들)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수근(왼쪽)씨가 댓글을 한줄 읽으면 박현탁(가운데), 김효준(오른쪽)씨가 한번씩 절을 하며 108배를 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르포] ‘국정원 감시단’의 하루

▶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에 국정원 앞으로 피서를 온 청년들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국정원 감시단’이라고 이름붙인 이들은 2주간 국정원 앞에서 야영하듯 지내고 있었죠. 그냥 야영을 하는 게 아니라, 노래와 공연 등 다양한 퍼포먼스로 국정원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무슨 생각으로 여기로 피서를 왔는지, 이틀간 함께 먹고 자면서 지켜봤습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8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입구 앞에는 화려한 무늬의 반바지를 입은 젊은 청년 3명이 나란히 섰다. 영락없는 피서객 차림인 이 청년들은 길가에 돗자리를 펼쳤고, 한 사람은 마이크를 들었다. 주변엔 ‘남재준 국정원장, 꿀리는 게 없으면 국정조사에 당장 나가서 진실을 밝혀라’는 등의 펼침막이 나부꼈다.

“우리 앞엔 조선시대 왕릉인 헌인릉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엔 국정원이 있습니다. 국정원 여러분, 역사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당신들이 쓴 댓글을 들려드리는 ‘너의 댓글이 들려’, ‘너댓들’ 퍼포먼스를 시작하겠습니다. 이 댓글들에 분노하며 책임자를 처벌하고, 민주주의의 회복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108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이크를 든 김수근(30)씨는 국정원 직원들이 쓴 댓글들을 하나씩 읽었다.

“국정원이 전라도 사람들을 비하하며 쓴 글입니다. ‘전라도 출신 원세대(연세대 원주캠퍼스) 다니는 어떤 놈이 있는데 신분세탁 잘하더라. 연세대로 편입하고 마치 연세대 성골인 냥 행세하고 다니다가, 딱 걸렸지.’ 국정원의 댓글에 분노하면 절합니다.”

김씨가 댓글을 한줄 읽으면, 옆에 있는 김효준(31)씨, 박현탁(23)씨가 한번씩 절을 했다. 댓글 읽기가 이어졌다.

“‘(5·18은) 무장폭동이 맞네. 전라도 노예근성에 간첩의 선전선동질이 조합한 대규모 지역폭동’, ‘(안철수) 생긴 건 전라도 종자인데, 개대중이 숨겨논 아들같이 생겨먹었잖아’, ‘도대체 왜 아직도 노무현을 잊지 못하는지, 정녕 어떤 죄도 자살하면 용서될 수, 아니 미화될 수 있는 건지’, ‘쌍용차 (파업주동자는) 정치 이슈화를 노린 전문 시위꾼에 선봉대들이다’, ‘민주노총·전교조·민노당 소속 애들은 집에 가서 댓글 열개씩 쓰고 잔다. 그렇게 생활하는 애들이 상근자들만 3000여명이 된다’.”

50여분이 지나 108배가 끝났다. 옷이 땀으로 흠뻑 젖은 박현탁씨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하고 나면 약간 후련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옆에 있는 김효준씨는 “국가기관인 국정원이 왜 이런 수준의 댓글들을 다는지 참 한심하다. 댓글을 읽을 때가 아무래도 가장 쉽게 와닿기 때문에 이런 퍼포먼스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지도에 안 나오는 국정원 위치를 알리다

지도에 표시조차 되지 않는 국정원 앞에서 매일 다양한 퍼포먼스로 시위를 하는 이들을 만났다. 시민단체인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의 회원인 김수근, 김효준, 박현탁씨는 “피서를 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국정원 앞에서 1인시위, 108배, 버스킹(버스 공연), 촛불집회 등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행사를 열었고, 길가에서 먹고 자는 ‘야영 시위’를 하고 있었다. 김수근씨가 취지를 설명했다.

“국정원 국정조사를 앞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국회의원들이 피서를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국정원 앞으로 피서를 가자고 결의했죠. 우리라도 피서를 국정원으로 가서, 이들을 감시하자고 생각했어요.”

이들은 피서를 위해 서초경찰서를 찾아 국정원 앞 길가를 집회 장소로 신고했다. 집회 도구로 펼침막 등을 신고했고, 집회 기간도 8월2일부터 15일까지 2주간으로 잡았다. 국정원 앞에서 하루 24시간 내내 입출입을 감시한다는 목적이었다. 이들은 숙식을 위해 라면과 돗자리, 모기장 등을 준비했지만, 비를 피하기는 어려웠다. 천막을 치면 도로교통법에 위반되기 때문이었다. 대한문 앞에 쌍용차 분향소를 철거한 것과 같은 논리였다. 김효준씨는 “비가 너무 많이 올 때 잠시 비닐 천막을 설치하자, 바로 경찰이 신고받고 왔다며 철거하라고 했다. 심지어 파라솔 우산도 천막으로 간주해 철거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지내고 있고 비가 와도 피하지 못하지만,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고 했다.

국정원 입구에 선 3명의 남자
“5·18은 무장폭동이 맞네”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을 읽는다
“댓글에 분노하면 절합니다”
108배 끝나니 땀에 흠뻑 젖었다

“국정조사 앞두고 아무것도 안 한
국회의원들이 피서 간다길래
우리도 여기로 2주 피서 왔어요”
아침엔 줄넘기 밤에는 삼겹살
비·뙤약볕에도 하루가 즐겁다

“처음에 여기 올 땐 돗자리와 라면 정도만 준비했어요. 그렇지만 트위터, 페이스북 등으로 우리들의 소식과 사진, 동영상 등을 올리니까,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찾아와서 응원해주고 살림에 필요한 것들을 주고 가세요. 지금 앉아 있는 파라솔 의자, 탁자, 수박과 포도 등의 과일, 아이스박스 등 대부분의 것들이 모르는 분들이 주고 가신 거예요.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죠.”

이들은 시위도 색다른 방식으로 한다. 자신들을 ‘국정원 감시단’이라 일컬으며 선글라스를 끼고, 물총과 쌍안경을 들고서 이런저런 포즈를 취한다. 국정원을 감시한다는 퍼포먼스다. 아침에 일어나면 ‘남재준 사퇴, 책임자 처벌’ 등의 구령에 맞춰 줄넘기를 한다. 8일 아침, 줄넘기 1000개를 채운 박현탁씨는 “줄넘기는 혼자 뛰는 운동이지만, 함께 뛰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덕분에 건강도 좋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시로 국정원 인근에서 1인시위를 진행하고, 방문자들에게 1인시위를 권유한다. 저녁이 되면 국정원 앞에서 작은 공연을 하고 촛불집회도 진행한다.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촛불시위를 하기도 했다. 김수근씨는 “심각하고 고생스러운 시위가 아니라, 즐겁게 하고 싶어요. 피서를 온 거잖아요”라고 말했다.

이들은 국정원 앞을 새로운 집회 장소로 만들었다. 이들이 시위를 시작하고서 방문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국정원의 위치를 아는 사람도 늘었다. 지도에도 표기되지 않을 정도로 위치를 노출하지 않는 국정원으로선 부담스러운 일이다. 김효준씨는 국정원 앞을 시위 장소로 선택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국정원이 국민들의 여론을 조작했고,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 이미 밝혀졌잖아요. 국정원과 정치권은 계속 물타기를 하고, 범죄를 덮고 있어요. 그동안 범죄와 거짓말로 일관했으면서도 누구 하나 책임을 지거나, 사과하지 않고 있죠. 그래서 직접 찾아와서 잘못을 묻고 싶었어요. 또 국정원이라는 곳이 막연하게 무섭게 느껴지잖아요. 우리가 이 앞에서 유쾌하게 시위를 하면서, 그런 막연한 두려움을 깨고 싶었어요.”

활동가·취업준비생·대학생의 앙상블

국정원 앞 길가에서 2주간 숙식하며 시위를 하는 이들은 어떤 사람일까. 이틀간 이들과 함께 머물면서 틈틈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물었다. ‘국정원 감시단’의 단장인 김효준씨는 자신의 신분을 ‘취업준비생’이라고 했다.

“남다를 것 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고, 아직까지 취업도 못 하며 살고 있죠. 그렇지만 몇몇 분기점들이 있었어요. 고교 시절 학교에서 두분뿐인 전교조 소속 선생님들이 3년 내내 제 담임이었어요. 1학년 때 담임은 학생들에게 친구들 앞에서 자주 꿈과 관심사를 발표하도록 했어요. 2,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자기 집의 서재를 털어서 교실에 학급문고를 만들었어요. 그때 읽었던 책이 <태백산맥>,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전태일 평전> 등입니다. 그분들이 특별히 시국이나 역사에 대해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꿈을 키우라고 격려하고 책을 읽도록 유도한 것에 여러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김씨는 졸업 이후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다가 접고, 여러 기업에 원서를 내며 취업에 뛰어든 상태다. 강원도 인제가 고향인 김수근씨는 대학 시절 방황의 나날들을 보냈다.

“강원대 경영학과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시간을 죽이며 살았어요. 가끔 시사주간지를 읽으며 사회에 관심을 갖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무언가 참여한 적은 없었죠. 대학교 4학년이 되자 미래를 준비해야겠단 생각에 휴학하고서 서울 신림동에 자리를 잡았어요. 당시만 해도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려 했죠. 마침 그때가 2008년 6월이어서 광우병 촛불집회에 몇번 참석했고, 그것을 계기로 노동운동 현장에도 가봤어요. 서울 가산동의 기륭전자 농성장에 찾아가 주변만 둘러보다 돌아오길 여러번 했죠. 그러다 하루는 용기를 내 말을 걸었더니, 한분께서 ‘릴레이 단식 중인데 내일 단식 좀 해주셔야겠다’고 하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알겠습니다’고 했고, 그렇게 사회참여가 시작됐어요. 지금도 우리는 서로 이름, 출신도 묻지 않고 연대해요.”

김씨는 올해 초부터 민권연대의 상근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민권연대의 회원들인 김효준, 박현탁씨에게 국정원 앞 ‘야영시위’를 제안한 것도 김씨다. 셋 중에서 제일 동생인 박현탁씨는 아직 대학생이다. 박씨는 ‘쌍용차 파업현장’에 다녀온 것을 계기로 사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선배들 따라서 아무 생각 없이 쌍용차 파업 현장인 평택 공장에 갔었어요. 전쟁터 같은 현장에 깜짝 놀랐죠. 하루는 한밤중에 도로에서 잠을 자던 대학생들에게 사측에서 고용한 용역회사 직원들이 나사, 드라이버 등의 집기들을 던졌어요. 학생들이 놀라 황급히 도망쳤고, 친한 형이 집기에 맞아 눈 밑에 상처를 입었어요. 조금만 위에 맞았으면 실명했을 상황이었죠. 그 이후 학생회 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어요. 농촌봉사활동에서 만난 농민분들과 막걸리를 마시면서 ‘왜 우리네 삶이 나아지지 않느냐’며 푸념을 늘어놓는 것을 보고도 많은 걸 느꼈습니다.”

▷ [미디어몽구] 국정원으로 피서간 겁없는 녀석들

“경찰분들도 언제든 공연해도 됩니다”

올여름 최고로 더운 날이었다던 8일엔 방문객이 한명도 찾아오지 않았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이들은 국정원 관련 기사를 검색하고, 틈틈이 공연에 쓸 노래를 골라 개사를 시도했다. 박현탁씨는 “우리끼리 있어도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준비하다 보면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고 말했다.

오후 4시께 화장실에 가기 위해 농성장 옆 헌인릉 관리사무소를 찾았다. 이 앞에는 제초, 청소 등 헌인릉 관리를 담당하는 분들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청소를 담당하는 한 여자분이 “언제까지 시위를 하느냐”고 물으며 불만을 토로했다.

“청년들이 여기에 시위하러 온 다음부터 쓰레기통에 쓰레기가 늘었어. 아무래도 귀찮아. 그만했으면 좋겠어.”

그러자 옆에 앉은 아저씨가 말렸다.

“보니까 좋은 취지로 사회를 생각해서 무언가 하는 것 같아. 그렇게 귀찮게 굴지도 않는데 놔둬.”

저녁 6시가 되자 김수근씨와 박현탁씨는 1인시위 팻말을 들고 큰길가로 나왔다. 분당내곡도시고속화도로에서 국정원 입구 쪽으로 빠지는 길목에 자리잡은 김수근씨는 ‘남재준 사퇴, 국정원 해체’가 쓰인 팻말을 들고 있었다.

김씨는 “퇴근하는 국정원 직원들과 도로를 지나는 시민들이 많이 쳐다본다. 방금 전엔 오토바이 타고 가던 사람이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고 말했다.

저녁 6시 반이 되자, 감시단 3인방은 ‘국정원게이트 버스킹’ 행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버스킹이란 버스를 타고 다니며 즉흥적으로 여는 공연이지만, 국정원 앞에는 타고 다닐 버스가 없었다.

“왜 버스킹이죠?”라고 묻자, 김수근씨는 마이크를 들고서 큰 소리로 말했다.

“저 앞에 경찰버스가 있잖아요. 경찰분들도 언제든 오셔서 공연해도 됩니다. 그럼 이번 국정원 집회가 낳은 스타, 박현탁씨를 모십니다.”

박씨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풍문으로 들었소’를 개사한 노래를 열창했다.

“우~ 풍문으로 들었소. 원세훈이 대선에 개입했다는 그 말을. 우~ 풍문으로 들었소. 김용판이 수사를 왜곡했다는 그 말을.”

박씨는 이 노래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동영상 누리집 ‘유튜브’에 올렸고, 이 영상은 현재 1만2500명 이상이 조회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짧은 공연을 마치고 작은 촛불집회를 열었다. 김수근씨는 “방문객들이 오는 날이면 함께 촛불을 켜고서 식사를 하고, 국정원 사건에 대한 소회를 짧게 발표한다. 어제만 해도 4~5명의 방문객들이 찾았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국정원 감시단에 두개의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이런다고 국정원을 감시할 수 있느냐”고 묻자 김수근씨가 답했다.

“솔직히 여기 있는다고 국정원이 하는 일을 감시할 순 없죠. 그래도 출퇴근하면서 우리를 보고, 느끼는 바가 있겠죠. 하루 24시간 동안 여기 있으며 보니까 국정원 직원들은 대부분 오전 9시까지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을 해요. 댓글도 정확히 근무시간에 달더니, 출퇴근도 칼같이 지키더라고요. 우리가 출퇴근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으니까, 근무시간에도 정당한 일들만 했으면 해요.”

“국정원 사건에 큰 관심 없는 사람들도 꽤 있지 않으냐”는 질문엔 김효준씨가 답변했다.

“겨우 댓글이 선거에 얼마나 영향을 줬겠냐는 의구심이 있을 순 있죠. 그런데 저도 인터넷을 하다가 댓글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영향을 받아요. 누구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국정원은 사람들의 심리를 조종하고자 한 것이에요. 그것도 자기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말이죠. 앞으로 국정원이 쓴 댓글들이 더 발견되고 체계적으로 분석되면 공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봐요.”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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