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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서 온 이윌러스(오른쪽 둘째) 가족이 24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의 한옥 게스트하우스 ‘남현당’ 툇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인디, 미치, 이윌러스, 키안.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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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르포] 서울 외국인 관광객의 하루
▶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됐습니다. 시내 곳곳에서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데요. 서울로 여행 온 외국인들은 어떤 여행을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외국인들에게 서울은 어떤 여행지로 기억될까요?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일상의 공간이 또다른 누군가에겐 여행지로 변신합니다. 여름휴가 못 가시는 분들,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둘러보세요. 새로움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다른 공기, 다른 언어, 다른 풍경이 무던해진 몸의 감각을 깨운다. 낯선 도시에서 느낄 긴장감은 조금 있지만, 휴식이 가져다줄 여유를 생각하면 마음은 금세 무지갯빛이다. 배움 또는 비움,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관찰과 체험은 삶의 활력소가 돼서 몸 안에 쌓인다. 그 힘으로 또 한번 일상을 살아가기를. 세계 모든 여행자들의 바람은 같다.
“유명한 삼순이 계단도 다녀왔어요”
기와지붕 단정하게 쌓아올린 한옥 게스트하우스의 대문을 밀고 들어갔다. 입구에 설치된 편지함에 외국인을 위한 팸플릿 여러개가 빼곡히 정렬돼 있었다. 지난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필운동 서촌에 자리잡은 ‘김치게스트하우스’는 욕실 리모델링 중이었다. 인기척이 들리자 게스트하우스의 부엌 겸 대청마루의 문이 열렸다. 꼬마 숙녀 둘이 종종걸음으로 달려나왔다. 아이들의 이름은 리버(7)와 셰이드(2). 파랗고 큰 눈에 긴 속눈썹, 빛나는 금발머리를 보고 눈을 뗄 수 없었다. 아이들은 수줍게 웃으며 여느 꼬마들처럼 몸을 배배 꼬았다.
딸들은 미국 플로리다주 남부에서 온 엄마 티프 쿡(33), 아빠 앤디 쿡(29)과 함께 여름휴가를 보내려고 서울에 왔다. 앤디는 3개월 전에 경기도 송탄으로 사업차 나와 있었다. 황토색 마루에 털썩 앉은 이들 서양 가족은 제집 안방처럼 편안해했다.
유례없이 길어지는 중부지방 장마 소식에 워터파크 일정을 취소한 뒤였다. 티프는 고향인 플로리다도 비가 많이 오는 습한 기후지만, 서울 장마만큼은 아니라며 놀라워했다. 줄곧 비를 맞으며 걷는 서울 여행이지만, 그는 밝은 표정으로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온라인으로 서울에 오면 갈 곳을 미리 알아봤어요. 와 보니 팸플릿도 유익하고요. 지하철로 이동하는 데 편리했어요. 저는 대도시인 뉴욕을 좋아하지만 뉴욕 지하철만큼은 싫어하는데 서울 지하철은 좋아요! 단순하고 쉽고 아주 멋져요.”
편리한 지하철은 좋지만
퇴근시간 피하는 티프 가족
명동에서 화장품 쇼핑한다는
일본인 나오미와 친구들
두 아이에게 한국 보여주러 온
네덜란드 입양아 미치 가족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 중
서울 찾은 사람이 800만명
명동·동대문시장·고궁에
DMZ·NLL 등 안보관광도 인기
김일성 생일 무렵 예약 취소도
이들은 엿새 동안 서울을 여행했다. 서울 서촌에 숙소를 잡고 경복궁, 청와대, 이태원, 고속터미널, 여의도 등을 다녀왔다. 고속터미널역 지하 쇼핑몰에서 딸들이 입을 ‘스타일이 새로운’ 일명 냉장고 배기바지를 10달러씩 주고 샀다. 기독교 신자인 부부는 일요일인 지난 21일 여의도의 대형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 뒤 한강변을 따라 걸었다. 가장 좋았던 시간은 23일 한낮의 남산 공원 산책이었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하는 도시 여행이 힘들지 않았을까.
“대도시 안에 걸어서 갈 만한 공원이 있는 게 좋아요. 유모차를 타고 이동한 아이들은 공원에 설치된 운동기구를 타며 놀았죠. 사람들이 남산에 있는 계단(일명 삼순이 계단)이 유명하다 해서 그 계단도 올라가 봤어요. 서울은 한 도시에 다양한 면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도시예요. 아주 매료됐어요. 인파가 붐비는데 둘러보면 주변에 조용한 궁궐이나 사찰도 있고 공원도 있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볼거리가 많고 활동적인 느낌이에요.”
이날 일정은 신설동역의 황학동시장과 창덕궁, 창경궁, 종묘까지 빡빡했다. 황학동 중고시장에서 알루미늄 젓가락과 밥그릇을 살 계획이다. 부부는 유명 관광지에서 파는 플라스틱 젓가락 말고 금속 재질이라고 꼭 집어 말했다.
“중고 물건이라서 더 좋아요. 우린 전통의 느낌을 좋아해요. 궁궐의 천장 문양도 예뻐요. 서울에서 어떤 역사적인 체험을 하고 싶어요.”
스스로 사회성이 좋다는 티프는 특히 한국 사람들이 보여준 관심에 흠뻑 빠진 듯 보였다. 편의점에 아이들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는데 껌을 덤으로 준 주인 이야기를 했다. 지하철 노약자석에서 만난 한 할머니가 자신의 딸을 감싸안았던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남편인 앤디가 이어 말했다.
“미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에요. 길에서 지도를 보고 길을 찾고 있으니 사람들이 다가와서 먼저 말을 붙이고 길을 알려줘서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어요.”
서울의 퇴근시간은 도시 여행에서 피하는 게 좋다. 버스와 전철에서 쏟아지는 사람들의 행렬이 엄청나다. 티프가 사람들 사이에 몸이 끼여 괴로웠다는 듯 익살스런 몸짓을 선보였다. 서울 여행을 마친 가족은 26일 밤 송탄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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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미국의 티프(오른쪽)와 앤디 부부가 딸 리버(가운데 머리띠 한 아이), 셰이드와 함께 서울 종로구 필운동의 한옥 게스트하우스 마룻바닥에 앉아 쉬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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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발 뉴스 없으면 방문객 꾸준히 찾아와
타국에서의 지루한 일상도, 흔한 풍경도 여행자에게는 특별한 기억이 되는 법이다. 같은 날 오후 광화문과 경복궁 주변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오후 3시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을 보는 여행자들 머리 위로 해가 떠올랐다. 신기한 듯 교대식 행사 주변으로 몰려든 이들에게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방송이 흩뿌려졌다.
“대고삼타~.”
둥. 둥. 둥. 큰북 소리가 세번 울리고 취타대가 등장하자 관광객들이 고개를 빼서 행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팔, 징, 소라 등 여러 악기가 어우러져 연주되고 조선시대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줄 맞춰 걸어나왔다. 당직 수문군과 교대 수문군이 군례를 마치고 신분 확인을 하자, 노란 철릭(상의와 하의를 따로 구성하여 허리에 연결시킨 특이한 형태로 지금의 두루마기 형태의 겉옷인 포의 일종. 무관의 공복)과 빨간 방령(포의 일종)을 겹쳐 입은 당직 수문장의 호령으로 무관 4품인 수문장의 교대식이 끝났다.
1박2일의 짧은 휴가를 잡아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 사이토 나오미(23)와 친구 3명에게 수문장 교대식은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나오미가 말했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음악이 생각났어요. 설명이 너무 어려워서 잘 못 알아들었는데, 화려하네요.” 일행은 명동에서 불고기랑 갈비를 사먹고 화장품을 쇼핑하고 마사지를 받을 계획이라며 탄성을 질렀다. 이들의 주홍빛 볼이 태양열을 받아 더 붉어져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매해 발표하는 ‘외래관광객 실태조사 결과’ 2012년치를 보면 나오미처럼 명동으로 쇼핑하러 여행 온 사람들이 일반적이다. 서울 방문 비율이 82.5%로 가장 높다. 한해 약 800만명이다.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일수록 서울권역을 먼저 찾았다. 이들이 꼽은 ‘좋았던 방문지’로는 명동(37.5%), 동대문시장(19.5%), 고궁(15.3%), 남산엔(N)타워(12%), 남대문시장(9.9%) 순이었다. 불편사항으로는 언어 소통이 안 된다(46.9%), 교통이 혼잡하다(15.7%), 안내표지판이 부족하다(13%)가 꼽혔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시티투어업계 말을 들어보면 고궁, 남산엔타워, 한강크루즈 등을 많이 방문한다고 한다.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수원화성, 민속촌, 남이섬 등 드라마 촬영지가 뜬 지도 꽤 오래다. 비무장지대(DMZ)와 엔엘엘(NLL·북방한계선), 공동경비구역(JSA) 등 안보관광도 눈에 띄었다.
“North Korea society, Don’t you want to see?”(북한 사회에 대해 알고 싶나요?)
게스트하우스에 꽂혀 있던 팸플릿이 물었다. 정전 60주년 동안 이어진 긴 ‘표면적’ 평화 때문일까. 대부분의 내국인에게는 생태청정지역으로 더 가깝게 느껴지는 비무장지대의 존재가 외국관광객에게는 분단의 상징으로 더 가깝게 여겨진 듯 보였다. 만난 외국인들은 “오기 전에는 한국 상황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와보니 사람들이 너무 평화로워 의아했다”고 입을 모았다.
25일 안보관광상품을 판매하는 ㈜썬버스트 윤정희 과장이 전했다. “이 지역이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곳이라는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해요. 독일을 포함해서 유럽인들이 많이 오는 편이에요. 일본 관광객들은 아베 신조 총리 등장 이후 한국에 대한 관심이 줄어 전체 관광객 수 자체가 줄었어요. 엔엘엘 관광은 강화도 수상한계선 전망대를 가는데 황해도 곡창지대까지 보이거든요. 이번주는 정전기념주간(7월27일)이어서 판문점이 열지 않았어요. 북한발 뉴스가 터지지 않으면 꾸준히 방문객이 유지되는 편이에요.”
전쟁의 상흔에 대한 공감은 꽤 두터웠다. 시티투어업계와 게스트하우스 운영자들은 4월15일 김일성 생일의 충격을 공유하고 있었다. 북한이 그날을 기념해 매년 도발해왔다는 이유에서다. “올해 4월15일 무렵에도 그랬죠. 예약손님들이 대부분 걱정된다며 예약을 취소하는 메일을 보내왔어요. 관광객보다 한국에 취재 나온 외국 언론인들이 많이 왔어요.” 윤 과장이 당시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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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앞에서 일본 나오미와 친구들의 단체사진.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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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만 보는 서울 사람들, 바빠 보여요
“인디(12)가 지난 4월 북한 뉴스를 접하고 무서워하더라고요. 인디가 총 쏘는 게임을 좋아하는데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려주고 싶어서 비무장지대 관광을 계획중이에요.”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 온 이윌러스(54)가 둘째 아들 인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의 가족은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가 남달랐다. 24일 아침 촉촉하게 젖은 서울 종로구 경운동의 한옥 게스트하우스 ‘남현당’에서 이들 가족을 만났다. 이 가족의 지인은 일부러 운현궁 아래에 있는 100년 된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해주었다. 남현당 대표 이상암(50)씨가 핸드폰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입양인 가족은 할인을 해드리고 있어요. 최근에 스웨덴에서 온 두 가정이 묵었는데, 입양한 아이들(총 4명)에게 한국을 소개한다고 온 가족이었어요. 페이스북으로 계속 연락하며 지내죠. 처음에는 입양 이야기를 직접 꺼내지 않는데 며칠 묵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말을 나누게 돼요.”
부인 미치(한국이름 정미승·44)는 한국계 네덜란드인이다. 전라도 목포에서 태어나자마자 네덜란드로 입양돼 한국말을 전혀 못한다. 16년 전 남편과 한국에 처음 돌아왔다. 미국 워싱턴에 친어머니가 사는 걸 알았고 그 후 4년 뒤 엄마를 만났지만 지금은 서로 만나지 않는다.
20년 전에 같은 직장에서 만나 7년 전 결혼한 남편이 부인 곁에서 덤덤히 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 기억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아요. 조카와 친척들이 있는 도시를 방문하고 가족들을 만날 계획이에요.” 미치가 말했다. 한국 다녀가고 9개월 뒤에 태어난 첫아들 키안(15)의 눈이 엄마를 닮아 까맣고 깊었다.
이 가족의 이번 여름 정기휴가 목적은 한국에 처음 온 두 아이에게 엄마의 나라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미치의 7살 많은 친오빠 정승철씨를 찾는 것이다. 미치 가족은 보통 여름휴가로 프랑스 파리나 이탈리아, 네덜란드 해변 등으로 캠핑을 가곤 했다. 이번 여행은 서울과 다른 지역 등 한달 동안 전국을 둘러보며 미치의 친척을 만날 계획이다.
남현당 객실 앞 좁은 문간에 걸터앉은 이윌러스가 여행의 성격을 정리했다. “여행할 때 나는 보통 빡빡하게 일정을 짜서 움직이는 편이에요. 그런데 이번 가족여행은 천천히 진행할 계획이에요. 여행의 목적 중 하나가 아이들에게 한국에 대한 인상을 보여주는 것이니까 기념물과 문화재를 보러 다니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에요.”
키안이 작은 목소리로 추임새를 넣었다. “이렇게 천천히 여행하는 건 정말 처음이야.”
서울 온 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시간, 네덜란드라면 새벽 3시 무렵이었다. 이들 가족이 마주친 서울의 첫 모습은 어땠을까. 사춘기 소년 키안과 인디가 수줍게 말했다. “사람들이 매우 바빠 보였어요. 지하철을 탔는데 다들 스마트폰만 쳐다봤어요. 서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우리 가족뿐이었죠. 네덜란드보다 거리가 깨끗한 편인 것 같아요. 바닥에 앉아서 밥 먹는 것도 신기하고 작은 반찬 종지도 색달라요. 신발 벗고 방에 들어가는 거나 한방에서 넷이 다 같이 자는 게 신기해요.”
서울 여행에서 키안은 미용실에 가 머리 스타일을 바꿀 계획이고, 동생 인디는 동대문에 들러 쇼핑을 할 마음이다. 방에서 간단한 짐을 챙겨 나온 가족은 첫 관광지인 경복궁으로 씩씩하게 걸어갔다.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휴가철이 시작됐다. 여행의 숨은 뜻은 새 출발이기도 하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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