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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4.19 21:06 수정 : 2013.04.21 15:52

사상 첫 사전투표가 시행된 19일 오전,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서울 노원구 상계9동 투표소에서 사전투표를 한 뒤 투표소를 나서 노원병 후보들의 벽보 옆을 지나가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토요판/르포]①노원병 보궐선거 현장

▶ 4·24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서울 노원병과 부산 영도, 충남 부여·청양 등 지역구 세 곳의 국회의원을 다시 뽑는 이번 재보궐선거의 최대 관심 지역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출마한 서울 노원병입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 이어 이번 노원병 보궐선거에서도 ‘새 정치’를 내세우고 있는 안 후보의 지난 17일 선거운동 현장을 따라가 봤습니다. 그가 말하는 새 정치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아침밥 먹다 뛰쳐나온 주민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꼭 한번 만나고 싶어서…
일단 사인 하나 해주세요”
‘새정치’에 대한 기대감 커
현장 분위기는 우호적이었다

최대 현안 ‘상계 뉴타운’ 문제
“최선 다하겠다”는 말만 반복
“대통령 후보씩이나 했는데
자기 생각은 말 안하나”
‘애매모호’ ‘어영부영’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노원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티브이로 볼 때보다 더 핼쑥해지셨어요.”

‘티브이로 보던’ 안철수 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이제는 서울 노원병 무소속 국회의원 후보로 나선 그가 인사를 건네자 상계동 주민들은 먼저 덕담을 건넸다. 지난 17일 오전 10시께 노원구 상계4동의 한 정형외과에서 그를 맞은 30대 여성 환자는 안 후보의 건강을 걱정했다. 일주일 전 교통사고를 겪은 그는 다리에 붕대를 친친 감고 있었다.

“대통령선거보다 서너배 힘들다”

2~4층에 병원과 부동산중개업소, 뷔페식당 등이 입주한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 근처 신천지빌딩을 빠져나오자 이번에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안철수씨~ 고마워요, 고마워~!” 금호스포츠센터 셔틀버스에 탄 중년 여성의 무리가 차창을 열어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노원병에 출마해줘서 고맙다는 말로 들렸다.

노원구 상계동 일대가 선거 열기로 들썩인다. 원래 이곳 국회의원이었던 진보정의당 소속 노회찬 의원이 ‘삼성 엑스(X)파일’ 판결로 지난 2월14일 의원직을 상실한 탓에 치러지는 노원병 보궐선거에는 안철수 후보를 비롯해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 김지선 진보정의당 후보, 정태흥 통합진보당 후보, 나기환 무소속 후보 등 5명이 뛴다. 노원병은 상계 1~5동, 8~10동을 아우르는 지역이다. 유권자 수는 모두 16만2000여명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안철수 후보는 노원병의 선두주자로 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에스비에스>(SBS)가 티엔에스(TNS)에 의뢰해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나흘간 벌인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는 51.2%의 지지율로 허 후보(27.9%)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엠비엔>(MBN)과 한길리서치가 비슷한 시기(16~17일)에 벌인 여론조사에서도 안 후보(44.0%)는 허 후보(28.8%)에게 15.2%포인트 앞섰다. 두 후보의 뒤를 잇는 노회찬 전 의원의 부인 김지선 후보는 5~7%의 지지율에 그쳤다.

선거를 일주일 앞둔 17일, 노원구 상계동에서 직접 맞닥뜨린 ‘안철수 바람’은 여론조사 수치만큼이거나 어쩌면 그 이상이었다. 어떤 후보보다 열성적이며 자발적인 지지자가 많다는 사실은 안 후보만의 강점이었다. 이날 오전 10시30분께 아침밥을 먹던 상계4동 신우커피숍의 주인 김윤선(58·여)씨는 안 후보를 발견하자마자 숟가락을 놓고 뛰쳐나왔다. 입안에 남은 밥 때문인지 반가움 때문인지, 김씨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어머…, 나 정말 안철수님 꼭 한번 만나고 싶어서…, 그동안 왜 이렇게 안 오셨…, 어제도 당고개역에 왔다고 해서 내가…, 일단 사인 하나 해주세요.”

사인을 받은 뒤 안 후보에게 살짝 기댄 채 기념사진을 찍는 김씨의 모습에서 인기 아이돌 가수를 만난 여고생의 설렘이 느껴졌다. 안 후보 일행이 커피숍을 빠져나간 뒤 김씨에게 따로 물었다. “안철수 후보, 어디가 그렇게 좋으세요?”

“워낙 똑똑하고 인물이잖아요. 그렇다고 돈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오로지 나라를 위해 ‘새 정치’ 한번 해보겠다고 선거에 뛰어들었는데, 한번 해야죠. 새로운 정치!”

상계동 곳곳은 ‘새 정치’에 대한 기대감으로 물들고 있었다. 상계3동에서 잡곡과 말린 나물 등을 파는 김진천(57)·강영숙(55)씨 부부도 안 후보의 열혈 지지자였다. 김씨는 안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나처럼 청각장애 3급인 사람은 우리 사회 어디에도 발붙일 데가 없다. 안 후보는 우리 같은 약자를 위해 구정치가 아니라 새 정치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부인 강씨는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같은 사람의 목소리도 좀 들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안철수 후보 본인도 현장 분위기가 우호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선거가 막바지로 접어들수록 안철수-허준영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 밖으로 벌어지며, 선거 초반 안 후보 캠프 안팎을 엄습했던 ‘위기론’은 자취를 감췄다. 상계동 주민과 인사를 주고받는 그와 틈틈이 몇 마디를 나눴다.

“직접 선거를 치르는 게 힘들지는 않습니까?”

“국회의원 선거가 대통령 선거보다 서너 배 힘들 줄은 몰랐네요. 대선은 메시지 중심이다 보니 어떻게 보면 정신적 고민이나 스트레스가 훨씬 세죠. 반면 국회의원 선거는 바닥 선거라고 하잖습니까. 육체적으로 많이 걷고 만나고. 그런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상계동 주민이 안 후보에게 거는 기대가 많은 것 같던데요.”

“그러니까 제가 더 잘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죠. 많은 믿음을 보내주시는데, 믿어주시는 만큼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안철수 후보를 향한 ‘기대’와 ‘믿음’의 총합이 지지율로 나타난다면, 정치적 연고가 없는 노원병을 스스로 선택해 찾아온 안 후보는 상계동 주민에게 지지율만큼의 빚을 지는 상황이다.

지역구 현안에 대해 쏟아지는 부탁

‘안철수의 새 정치’를 통해 해소하고자 하는 상계동 주민의 욕망은 때로는 지극히 현실적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안 후보를 지지하는 주민의 상당수는 기존 정치권과 정치인이 풀어주지 못한 민원 해결을 그에게 요구했다.

이날 오전 상계4동 당고개사거리에서 안 후보를 발견한 50대 여성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안 후보님, 우리 세대는 6·25를 겪어서 글을 모르는 분이 참 많아요. 우리 어머니들을 위해 배울 수 있는 공간을 좀 공약해주세요.” 주부 대상 무료 교육시설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였다. 안 후보가 대답했다. “제 공약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상계4동에서 3동으로 통하는 골목에서 김희환(46)씨는 안 후보에게 주거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국회의원이 되시면 여기 주택가 골목 곳곳에 방치된 쓰레기부터 좀 치워주셔야 합니다. 이게 어디 사람 사는 동네입니까.” 안 후보가 대답했다. “제 공약에도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텅 빈 식당의 주인은 “장사 좀 잘되게 해주세요”라고 푸념했고, 문방구에서는 “상계동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밖에도 안 후보를 향한 노원 주민의 요구는 계속 이어졌다. 오후 2시30분께 상계동 마들역 근처 상계주공아파트 15단지에 안 후보의 유세차량이 나타났다. 차량 한쪽 면에 붙은 ‘철수씨 부탁해’ 제목의 메모판에는 많은 주민이 각자의 민원을 적은 메모지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노원구에 어린이집을 많이 만들어주세요.” “종합체육관도 만들어주세요.” “우리도 집 앞 학교에 다니고 싶어요.”

노원병 지역의 최대 현안이라 할 상계 뉴타운(도시재정비촉진지구) 사업 추진 문제에 대해서도 안 후보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상계3·4동 일대를 중심으로 뉴타운을 조성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주민은 주민대로 서로 입장이 달라 수년째 표류하는 중이었다. 상계4동 가마솥해장국집에서 안 후보를 만난 최상규(65)씨는 “힘 좀 써달라”며 그를 부추겼다. “우리 안철수 후보가 의원님이 되시면, 국회에 가서 힘 좀 써주셔서 도로를 좀 내주십시오. 그러면 뉴타운 사업도 원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씨가 기대한 대답은 “뉴타운 사업, 꼭 추진하겠습니다”였다. 반면 안 후보는 “잘 풀어보겠다”,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다른 정당 소속 후보들은 그의 이런 ‘애매모호’한 태도를 집중적으로 문제 삼고 있다. 쟁점 현안, 혹은 불리한 사안에 대해서는 언제나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두루뭉술한 말만 늘어놓는다는 비판이다.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는 지난 16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안 후보의 불분명한 태도를 이유로 그를 “시골 약장수”에 빗댔다. “맨날 새 정치라 하는데 들어보면 애매모호하고 실체도 없잖아요. 국가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분명한 입장은 말하지 못하고 그런 불분명한 말과 태도로 일관한다면, 자질이 없는 겁니다. 약장수가 시골 장터에 나타나 만병통치약이라고 하면 처음에는 사람들이 맨발로 쫓아나가 환호할지 몰라도 한두 명씩 배탈을 겪고 나면 알 만한 사람은 실체를 다 알게 됩니다.”

허 후보는 “안 후보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노원병 출마부터 너무 쉬운 길만 선택한 것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큰 인물이 되려면 어려운 길을 걸어야 합니다. 국회의원을 하겠다는 저만 해도 노원병 지역의 ‘야(당)세’가 강한 줄 알면서도 어쨌든 이 지역에서 계속 민심을 얻으려고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안 후보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더 큰 일을 꿈꾸고 있다면서 이렇게 쉬운 길만 찾으면 안 됩니다.”

김지선 진보정의당 후보는 “안철수 후보는 지역 현안인 뉴타운 문제와 관련해 대립하는 양쪽을 중재하겠다며 모호한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공동체의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경쟁은 민주주의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인데, 안 후보는 지금까지도 자기 입장 없는 정치만 고집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후보는 특히 삼성 엑스파일 판결에 대해서도 “노원병 보궐선거는 삼성 엑스파일 유죄 판결이라는 납득할 수 없는 사건 때문에 치러지는 만큼, 각 후보는 노회찬 전 의원을 지지했던 주민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라도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안 후보는 삼성 엑스파일 판결에 대해서도 ‘안타깝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태흥 통합진보당 후보는 안 후보의 정치를 ‘애매모호’와 ‘어영부영’ 등 단어로 요약했다. “상계 뉴타운 사업과 관련해 정치권은 지금까지 수렴된 여론을 바탕으로 이제는 해법을 제시해줘야 합니다. 이제 와서 안 후보처럼 ‘이쪽 이야기도 듣고, 저쪽 이야기도 수렴해서 문제를 풀어가겠다’고 하는 건 주민을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회피성 정치입니다.” 정 후보는 “국회의원 후보라면 다소 욕을 먹더라도 현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안 후보는 4·24 재보선 이후의 정치 행보에 대해서도 아직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단서가 될 만한 발언은 “주민의 뜻대로”다. 안 후보는 지난 10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민주통합당 입당 및 신당 창당 가능성에 대해 “(노원병) 주민들께서 새 정치를 선택해주신다면 아마 그 이후에 새 정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의견을 모아주실 것”이라고 했다.

17일 오후 상계동 당고개 사거리에서 만난 상계3동 주민 허남수(69)씨는 안 후보의 애매모호한 태도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안철수가 인물은 참 인물이야. 그런데 자기가 내세우는 게 없어. 맨날 이쪽저쪽 평가만 한다 말이야. 그걸 누가 못합니까. 대통령 후보씩이나 했던 사람이라면 자기가 뚜렷하게 내세우는 게 있어야 하는데, 자기 생각은 말 안 하고 이쪽저쪽 잘못된 것만 꼬집잖아.” 허씨는 이번 선거에서 허준영 후보를 찍겠다고 밝혔다.

“찬성과 반대 반반…내 역할은 중재자”

오후 4시30분께 다시 상계동 당고개 사거리에 나타난 안 후보에게 뉴타운 사업에 대한 해법은 뭔지 직접 물어봤다.

“그동안 많은 주민을 직접 만나셨잖아요. 이제 해법이 좀 보이시나요?”

“사실 숫자만 갖고 해법을 정할 수는 있는데요, 문제는 지금 주민의 절반은 강하게 반대하고 나머지 절반은 열렬히 찬성하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정치인들이 너무 오랫동안 방치한 채 8년이 지나서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졌어요. 정치인이 먼저 자신의 소신을 밝혀서 사람을 한쪽 방향으로 설득해가는 식의 해법이 요구되는 문제가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생각은 있더라도 중재자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종류의 갈등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상계 뉴타운 문제는 후자 쪽입니까?”

“네, 정치인이 중재하는 가운데 양쪽의 의견을 좁히면서 해법을 같이 찾아가야 하는 종류의 문제라고 봅니다. 제 나름의 해법은 어느 정도 윤곽은 서 있는데요, 일단 협의체부터 구성해서 서로 이야기하며 해법을 풀어가야 합니다.”

“안 후보의 해법을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요?”

“입장을 밝혀 자칫 의견이 다른 나머지 정치인과 주민들을 적으로 돌리면 오히려 해결이 안 돼요. 그런 성질의 문제가 아닌 거예요.”

이날 오후 안 후보가 유세를 마치고 떠난 당고개 사거리에는 각 후보의 선거용 펼침막이 바람이 나부끼고 있었다. 이 지역의 핵심 쟁점인 상계 뉴타운 사업에 대한 약속들이었다.

“기호 1번 허준영 ‘뉴타운 주민 부담 최소화로 개선·보완, 추진’”

“기호 3번 정태흥 ‘뉴타운 전면 백지화’ ‘답답하다 뉴타운 시원하다! 정태흥’”

“기호 6번 나기환 ‘뉴타운 전면 재검토’ ‘새마음 힐링 휴먼 문화타운 조성’”

기호 5번 안철수 후보의 펼침막도 있었다. “뉴타운은 주민 뜻대로-매몰비용은 정부, 지자체 부담 늘려야”. 결론은 “주민 뜻대로”였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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