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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15 20:52 수정 : 2013.03.17 15:07

연인들의 날인 14일 화이트데이 오후, 큰 사탕을 손에 든 여학생이 남학생과 함께 한 대학교 캠퍼스를 걷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르포] 봄, 대학가는 연애 수업중

▶ 미국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의 말을 들어보면, 성인 전기인 20대 초·중반에는 타인과 친밀감을 형성해 자아정체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면서 상대방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데에 연애만큼 좋은 연습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학생들은 연애를 ‘배우고’ 싶습니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납득이처럼 연애를 글로 배워서 되겠냐고요? 모를 땐 배워야지요.

결혼준비특강·사랑을 아느냐…
그 이름부터 솔깃하다
“먼저 자신의 매력을 발견하라”
교수들의 훈수는 한결같지만
학생들이 가장 궁금한 건
당장 남친여친 생기는 비결 

그런데 어쩌다가 사랑을
글로 배우는 시대가 됐을까
“요즘 애들은 경쟁에 익숙한데다
등록금·취직 걱정 하느라
사람 만나는 일 자체가 어려워요
온라인상 만남이 많아져서
현실적 소통에 서툴기도 하고요”

 봄은 캠퍼스의 낭만을 기다린다. 띵동. 수업이 끝나는 벨이 울린 뒤 강의실에서 쏟아져 나온 학생들이 건물을 점령했다. 젊음을 자랑하듯 쌀랑한 날씨에 얇은 봄옷만 걸친 신입생들이 지나가자, 동아리 홍보 중인 선배들은 환호했다. 계단에서 한 커플은 손을 조몰락거리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세계단 위에 서 있던 검은 뿔테 안경의 남학생이 여학생의 노란색 긴 머리에 입을 맞추자 연인은 계단 위와 아래로 갈라섰다.

 

 남자2호의 고민과 여자3호의 경험담 

 캠퍼스는 연애를 하고 싶다. 잘, 하고 싶다. 13일 낮 12시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김대건관 301호에서 3학점짜리 교양과목인 ‘결혼 준비 특강’ 수업이 시작됐다. 김영희 교수와 100여명의 학생들은 기자의 청강을 허락했다. 여성건강간호학 전공의 김 교수가 말하는 수업 목표는 청년기에 빠질 수 없는 연애를 포함한 대인관계에 대한 이해, 나아가 사회 구조에 대한 이해다. 가톨릭재단인 이 학교는 1980년에 성과 결혼, 가정을 주제로 이 수업을 개설했다가 수업명을 ‘결혼 준비 특강’으로 바꿨다. 철학과 교수이자 신부였던 담당교수의 후임인 김 교수가 2008년부터 수업명을 바꾸지 않고 계속 맡아오고 있다.

 이날 조별 토론주제는 ‘대인관계에서의 스트레스 상황 해결하기’였다. 연애수업이 아니듯, 연애가 주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가장 깊고 은밀하면서도 어려운 대인관계가 연애가 아니던가. 4명의 남학생과 3명의 여학생으로 이뤄진 한 조에서 자연스럽게 연애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들은 서로 이름과 전공을 몰랐다. 에스비에스(SBS) 프로그램 <짝>과 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남자2호(22)가 고민을 토로했다. 남자2호는 최근까지 새내기 여자 후배와 만났다.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짧은 만남이었다. 남자2호는 “둘이서 남산으로 놀러갔고, 밤마다 서너시간씩 통화했고 손도 잡았고 스킨십도 했다”며 입학하면 사귀자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갑작스런 후배의 이별통보가 이해가 안 되는 눈치였다. “후배가 날 갖고 놀았다는 생각에 배신감이 든다”며 괴로워했다. 남자2호의 고민을 경청한 남자1호(25)는 “풋풋하다”며 자신의 과거를 회상했고 남자3호(24)는 “과에 소문만 안 났다면 괜찮다. 힘내라”고 다독였다. 여자1~3호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남자2호를 바라봤다. 그때 남자4호(25)가 “더 오래 만났다면 남자2호가 상처받았을 것”이라고 하자 김 교수가 이어 말했다. “맞아요. 진실된 마음으로 만난 게 아닐 수 있어요.” 김 교수의 조언에도 남자2호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듯 표정이 어두웠다.

 연애 고민은 다른 조에서도 나왔다. 여자친구가 예뻐서 스킨십을 하고 싶어 시도했는데 공공장소였던 까닭에 여친이랑 싸웠다는 남자5호(23)의 고민이 소개됐다. 교실 안 학생들은 순간 ‘빵’ 터졌다. 남자5호가 항변했다. “그렇다고 제가 스킨십에 미쳐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학생들은 한마음으로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관계 속에서 나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나아가 연애, 결혼 혹은 비혼, 그 이후의 인생까지 설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수업에 학생들은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들은 연애를, 궁극적으로는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잘하고 싶어했다.

 “어머니가 대학 가면 여자를 많이 만나보라고 했다. 연애를 할수록 나에게 맞는 사람 유형이 점점 잘 보이더라.”(남자3호)

 “20대 초반은 연애의 정답을 모르는, 몰라도 되는 시기다. 남친과 싸웠을 때 제3자에게 답을 묻고 의견을 구하면 내가 행동할 길이 보이기도 했다.”(여자3호)

 80학번인 김 교수는 ‘나를 들여다보는 수업’이 대학에서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가 초중고 교육기간을 거치면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훈련을 안 해요. 가족이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요즘 부모도 경제적 역할을 다하느라 바빠서 제대로 할 수 없어요. 결국 학생들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 자아정체성이 유보된 상태로 마지막 교육기관인 대학에 오는 셈이죠.” 김 교수가 말하는 수업의 목표는 ‘자기 발견’, ‘자기 변화’다.

 연세대학교 신입생 대상 1학점짜리 세미나 ‘너희가 사랑을 아느냐’는 이 대학 인기 수업이다. 8년째 이 수업을 진행하는 전용관 교수(스포츠레저학 전공)는 20대 초·중반에 겪는 연애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20대 초·중반에 했던 연애들이 제 인생의 자산이 됐던 것 같아요. 연애는 연애 자체로도 의미가 있고 연애를 통해 좋은 배우자상을 만들어갈 수도 있고요. 저는 ‘사랑을 알면 성공이 보인다’고 해요.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라도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모르면 뭐하겠어요. 20대에 사랑관을 세우지 않으면 인생이 늦어지는 거죠.”

 청춘의 상징은 불안이다. 불안한 청춘은 아름답지만 그만큼 깨지기 쉬워 다치기도 쉽다. 연애는 청춘이 ‘잘’ 깨지는 법을 배우는 가장 좋은 경험이다. 그래서 연애는 예나 지금이나 당연한 청춘의 통과의례다. 다만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청춘이 늘어나면서 연애에도 코칭이 필요해 보이고, 학생들 역시 자기계발하듯 더 적극적으로 연애를 배운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여성학, 심리학, 철학 등 대학 전공수업과 교양수업은 있어왔지만 최근 들어 학점의 틀 밖에서 더 직접적으로 연애코칭을 해주는 특강과 상담프로그램 등도 있다.

 

 ‘건축학개론’ 세대가 이 강의를 들었다면… 

 지난 8일 동국대 총여학생회에서도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제목의 연애특강을 마련했다. 40명 정도가 참석한 특강의 강사는 여성주의 관점으로 연애란 인간 대 인간의 만남임을 강조했다. 이 특강에 참석한 이 대학 2학년 백아무개(20)씨는 아쉬움이 조금 남았다고 했다. “좋은 내용의 수업이라 유용하긴 했는데, 사실 올해는 연애를 해보려고 특강에 갔거든요. 남친 생기는 법이나 어떻게 하면 연애를 할 수 있는지가 궁금했는데 그건 안 말해줘서 서운했어요.”

 백씨는 졸업할 때 과가 정해지는 학부제 대상이다. 그래서일까. 과 활동을 따로 하지 않아 “남녀공학임에도 사람을 사귈 기회가 없다. 연애 의지가 점점 말라간다.” 백씨가 말했다.“다들 연애를 하고 싶어는 하는데 애인이 안 생겨서 그런지 몰라도 굳이 연애할 필요 없다는 애들도 있는 것 같아요. 돈 써야 하고 시간도 들여야 하니까. 스무살이 넘어도 연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아요. 시기가 오면 해보고 싶다가도 막상 연애할 생각하면 귀찮고….” 백씨는 새내기 때 한번 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두달 동안 “아주 좋아하지는 않았던” 상대와 한번 연애를 했다.

 ‘뭘 해도 안 생긴다고 믿고 있나요? 연못남, 연못녀를 위한 사랑의 기술을 가르쳐드립니다’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은 지난해 가을 연애를 못하는 남자, 여자(연못남·연못녀)를 위한 맞춤형 집단상담프로그램을 마련했다. 10명의 남녀가 현재 상태 분석, 나의 두려움과 바람 통찰, 맞춤형 목표 및 전략 설정, 상대방 반응 관찰과 이해, 의사소통 방법 연습, 소개팅 실습까지 6회에 걸쳐 집단상담을 받았다. 대학생활문화원은 서면 인터뷰에서 초기 연애관계 형성에 대한 프로그램을 마련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요즘 솔로, 커플, 연애, 피상적 작업의 기술 등의 주제가 부상하는 데에 비해 연애관계 형성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들은 충분히 강조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 연애를 시작하기 어려운 분들은 연애 시작 전의 애매하고 불확실한 단계, 즉 ‘밀당’(남녀관계에서의 미묘한 심리싸움), ‘썸남·썸녀’(호감 있는 남녀), ‘어장관리’, ‘친구와 연애 사이’ 등으로부터 서로가 연애하기로 확정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는 과정이 어렵다고 하시는 분이 많았습니다. 가벼운 호기심과 호감을 신뢰와 애정으로 발전시키기까지 필요한 의사소통의 기술, 자신감, 실천력, 용기, 스스로의 마음에 대한 확신 등이 부족해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현재 상태를 진단해보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요즘 대학생들이 태어난 시절 대학에 입학한, 영화 <건축학개론>의 이제훈·수지와 같은 세대인 이아무개(38)씨는 연애를 말과 글로 배우는 학생들이 안쓰럽다. 이미 고등학교 때 연애를 경험한 학생들이 많아서 ‘대학 가면 연애한다’는 욕망의 분출이 더는 통용되지 않거나, 대학이라는 공간이 공동체성은 사라지고 개인화됐거나, 아니면 군입대나 취업, 등록금 걱정에 내몰리면서 점점 관계 맺기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 ‘추정’한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이씨의 말이다.

 “90년대 대학을 다닌 새내기의 1학기는 뻔했다. 3월 봄꽃이 피면 선배 따라 다른 대학 학생들과 만나는 ‘합동 과팅’에 나간다. 이후 4월 연합엠티를 다녀와 중간고사를 보고, 5월 축제를 마치고 6월 기말고사를 보면 한 학기가 지났다. 남학생이 다니는 학교 과사무실로 학보를 접어 우편을 보내느라 그 학교 주소를 외우고 다녔는데 아직도 그 학교 주소가 기억난다. 학점은 엉망이었지만 적어도 사람은 많이 만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히는 기회 자체가 우리 때보다 적어 보인다.”

 

  넘어지면서 걷는 아기처럼 연애하라 

 대학가의 연애코치는 온라인상으로도 이어진다. 14일 낮 이화여대 근처 한 스터디룸에서 대학원생 이아무개(27)씨가 연애카운슬러 제니(35)씨를 만났다. 검은 긴 머리와 눈웃음이 예쁜 이씨는 대학 누리집 자유게시판을 통해 제니씨의 블로그를 알게 돼 온라인 무료상담을 받아오다 직접 만나 유료상담까지 받게 됐다. 이씨가 경험한 두번의 아픈 연애사를 듣고 카운슬러가 말했다. “과거 기억으로부터 단절할 필요가 있어요.”

 이씨가 두 손을 턱 앞으로 끌어당기고 카운슬러의 말에 집중했다. 카운슬러는 자신도 연애 때문에 운 적이 많았다며 말을 이었다. “저도, 여기 계신 기자님도, 우리 다 똑같아요. 연애로 인한 상처가 있고요, 또 나랑 잘 맞는 사람을 만나 행복했던 기억도 있어요. 중요한 건 생각의 전환이에요. 아기들이 걸음마를 배울 때 처음에는 근육이 약해서 자꾸 넘어지지만 계속 넘어지면서 근육이 생기고 결국 걷게 되는 것처럼 연애도 마찬가지예요. 시행착오는 당연한 거예요.”

 이씨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누굴 만나야 좋을지 모르겠고 만남 뒤 인연으로 이어가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없다고 말하자 카운슬러가 다시 물었다.

 “연예인 누구 좋아해요?”

 “드라마 <내 딸 서영이>에 나오는 의사요.”

 “박해진씨 말이죠? 그런데 세상 사람 모두가 배우 박해진을 좋아할까요?”

 “아니오.”

 “맞아요. 사람마다 달라요. 모든 사람의 마음에 다 들 수는 없어요. 날 좋아해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돼요. 소개팅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쿨하게 버리세요. 내 매력을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나는 거예요.”

 개별상담 결과, 카운슬러는 이씨에게 ‘나의 매력을 알고 연애하라’는 제목의 종이를 건넸다. 이씨는 자신의 장단점과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이상형 등을 적었다. 카운슬러는 공감하고 격려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예쁘지 않지만 제가 예쁘다고 생각해요. 거울 보면서 제일 자신있는 표정을 연습하기도 하고요.” 1시간의 상담 뒤 이씨의 얼굴은 밝아졌다. 이씨가 말했다. “친구들은 그냥 새로운 소개팅에 나가면 된다고만 말해줬는데, 선생님 말씀은 마음에 와닿았어요. 특히 걸음마 이야기가요…. 대학 1학년 때는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을 만났고 25살 때는 결혼할 사람을 찾았는데 헤어지고 나니 누굴 만나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이제는 친구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이씨의 밝아진 표정에 카운슬러도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즘 픽업아티스트(여성을 유혹하는 기술에 능숙한 남성)니 연애코치라며 연애기술을 가르쳐주는 사람도 많아졌는데, 전 기술보다 내담자가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심리치료에 초점을 둬요. 왜 젊은 사람들이 연애코치를 찾냐고요? 제 생각에는 일단 상담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사회가 됐고, 어떤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중요한 사회가 되다 보니 연애에도 헤어짐을 실패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아졌고요. 또 온라인상의 가상관계가 많아질수록 현실에서 소통이 어렵다는 분들이 많아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처럼 연애에서도 그런 게 아닐까요?” 상담은 카운슬러가 이씨에게 곧 있을 소개팅에서의 실전용 팁을 조금 가르쳐주면서 끝났다.

 화이트데이였다. 그날 오후 이화여대 앞에는 해마다 그렇듯 쇼핑백이나 사탕바구니를 든 남학생들이 나타났다. 대학가의 연애수업과 특강, 상담을 비웃기라도 하듯 행복한 학생 연인들은 팔짱을 끼고 캠퍼스를 빠져나갔다. 캠퍼스는 연애를 기다린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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