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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야구기록지에 관심을 쏟는 야구팬도 많아지고 있다. 한국야국위원회가 주최한 ‘2013년 프로야구 기록강습회’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학교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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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르포] 초짜 야구기자, 야구기록 강습회 가다
▶ 야구를 흔히 ‘기록 경기’라 부릅니다. 9이닝을 기준으로 짧으면 약 두시간, 길면 서너시간씩 이어지는 야구 경기의 모든 것이 단 두장의 야구기록지에 오롯이 담깁니다. 안타와 아웃, 홈런과 삼진을 뜻하는 표기법이 있는 것은 기본입니다. 타자의 타구 방향, 아웃당한 과정 등도 기록지에 흔적을 남깁니다. <한겨레> 스포츠부에서 ‘야구 3진’을 맡고 있는 허승 기자가 한국야구위원회가 연 프로야구 기록강습회에 다녀왔습니다.
“너 야구기록지 볼 줄 아냐.”
지난해 12월 스포츠부 선배가 휙 던져준 종이 위에는 각종 숫자와 알파벳,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호가 가득했다. 스포츠부로 건너와 야구 담당 3진을 맡자마자였다. “이게 뭐예요?”라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석달 뒤인 2월28일 서울 광진구 화양동(능동로) 건국대 국제회의장을 찾아야 했다. 회의장 입구에 ‘2013년 프로야구 기록강습회’라고 쓰인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매년 2월 말이면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기록강습회가 열린다. 올해는 2월28일부터 3월2일까지 사흘간 건국대에서 치러졌다. 첫날인 2월28일에는 오후 5시부터 강습이 시작됐다. 강습 장소인 회의장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최근 야구의 인기가 많아지면서 강습회를 찾는 사람도 늘었다. 십수년째 150여명 정도이던 강습생 수는 재작년부터 350명 정원을 채우더니 올해는 신청 접수를 시작한 지 8시간 만에 접수창을 내려야 했다.
숫자와 알파벳, 기호들은 다 무엇인가
첫 시간에는 진철훈 한국야구위원회 기록위원이 기록법의 기초에 대해 설명했다. 공식기록지는 선공팀의 공격 순서를 기록하는 갑(甲)지와 후공팀의 공격을 기록하는 을(乙)지, 두장으로 이뤄져 있다. 타순과 이닝이 행과 열로 이뤄져 칸마다 한 타석을 기록하게 돼 있었다. “한 칸은 다시 네 부분으로 돼 있죠? 네 귀퉁이에 각각 1루, 2루, 3루, 홈 사이에 생긴 상황을 기록합니다.” 실제 경기장을 본뜬 듯한 모양이 한눈에 들어왔다. 야구기록지에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담긴다. 단순히 안타, 실책, 삼진 같은 성적을 남기는 게 아니었다. 타구가 플라이인지 땅볼인지, 직선타인지, 타구의 방향이 어디로 갔는지, 누가 누구에게 송구했는지 등등 ‘이런 것까지 기록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세세한 상황이 기록됐다.
“직접 한번 해봅시다. 아까 나눠준 기록지 있죠? 타자가 친 공이 중견수 뜬공 아웃이 됐습니다.” 그 정도야 쉽지. 문제를 몇 개 더 냈고 거뜬하게 해결했다.
“이번엔 한 단계 어려운 거예요. 무사 주자 1루에서 타자가 친 땅볼을 3루수 잡아서 2루에 송구해 주자 포스아웃, 1루로 던져서 타자주자도 아웃. 병살타입니다.” 배운 대로 기록했다. 스크린에 정답 화면이 떴다. 틀렸다. 슬쩍 기록지를 손으로 가렸다. “5-4-3 병살입니다. 1루 주자는 3루수가 2루로 송구해 포스아웃시켰으니까 오른쪽 상단 귀퉁이에 ‘5-4B’, 타자는 3루수 땅볼을 쳤으니까 오른쪽 하단에 ‘3-’, 그 아래 2루수가 1루에 송구해 아웃이니까 ‘4-3A’입니다. 혹시 3-2-1이라고 하신 분은 없겠죠?”
내가 그랬다. 야수를 숫자로 부르는 게 익숙하지 않은 탓에 무심결에 3루, 2루, 1루를 따라 3-2-1이라고 했다. 야구에서는 투수에서 우익수까지 고유 번호를 붙인다. 투수는 1, 포수는 2, 1·2·3루수는 각각 3·4·5로 기록하는 식이다. A와 B는 1루와 2루 포스아웃을 뜻한다. 3루와 홈은 C와 D다. 태그아웃은 T로 표기한다.
“이번엔 더 어렵습니다. 눈 잘 뜨고 보세요.” 경기 영상이 나왔다. 주자가 런다운에 걸렸다. 이쪽저쪽에서 야수들이 달려와 주자를 몰아 태그아웃시킨다. 눈이 빙빙 돈다. 기록하기를 아예 포기했다. 직접 해보니 헷갈리는 것투성이였다. 외워야 할 기호와 규칙도 쌓여갔다. 초보 야구기자인 나로서는 따라잡기 쉽지 않았다. 등판하자마자 안타를 두드려 맞는데도 감독이 교체를 안 해주는 투수가 된 기분이었다.
드디어 ‘교체 사인’이 떨어졌다. 첫날 강습이 끝난 것이다.
누가 이 어려운 야구기록지 작성법을 배우려는 걸까. 한 강습생 옆자리에 슬쩍 앉아 물어봤다. 취업준비생인 유은지(26·여)씨는 바쁜 공부 시간을 쪼개 강습회에 왔다고 밝혔다. “대학을 부산으로 갔는데 거기서 야구 경기를 처음 봤어요. 그날 이후 롯데 팬이 됐죠. 야구를 좀더 깊이 알고 싶어서 참가했어요.” 어렵지는 않은 걸까. “처음엔 좀 어려웠는데 하다 보니 재밌는데요.”
하상태(41)씨는 부인 서범선(35)씨, 아들 주완(10)군을 데리고 광주에서 올라왔다. 온 가족이 기아(KIA) 타이거즈 팬인 하씨 가족은 이날부터 3일간 건국대 근처 모텔에 투숙하며 기록법을 배울 예정이다. 하씨 가족이 야구기록의 세계에 빠진 이유는 뭘까. “그냥 경기 보고 응원하는 것을 넘어서 가족들이랑 기록지도 작성하고 기록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야구를 즐기고 싶어요. 주완이도 직접 기록지 그려보는 걸 재밌어하네요.”
스포츠 팬은 기록에 열광한다. 기록이 있었기에 FC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가 지난해 12월23일 바야돌리드를 상대로 넣은 골은 메시의 수많은 골 중 하나가 아니라 한 선수의 한해 최다골(91골)이 됐고, 2011년 10월22일 엘지(LG)와 케이티(KT)의 프로농구 경기는 흔한 농구 경기 중 하나가 아니라 서장훈이 한국 프로농구사상 최초로 5000튄공잡기를 기록한 경기가 됐다. 기록은 스포츠에 의미를 부여하고 플레이의 한순간을 팬들의 뇌리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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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공팀의 공격 순서를 기록하는 갑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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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여신을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김응용 한화 감독은 현역 시절 한국을 대표하는 강타자였지만 정확한 기록이 없어서 지금은 그저 ‘잘 쳤던 타자’ 정도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4할 타자’로 불리는 테드 윌리엄스는 4할6리란 타율이 있기에 그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겁니다. 2003년 이승엽의 56호 홈런(한 시즌 최다홈런)도 1984년 최동원의 223번째 탈삼진(한 시즌 최다탈삼진)도 마찬가지죠.” 윤병웅 한국야구위원회 기록위원장이 설명했다.
야구에서의 기록은 좀더 특별하다. 윤 위원장은 “야구는 다른 스포츠 종목과 달리 모든 과정 하나하나를 기록에 남깁니다. 기록지만 보고도 머릿속으로 경기를 재현해낼 수 있다는 게 야구 기록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9회말 0-0, 1사 1루, 투볼 원스트라이크. 투수의 네번째 투구에서 1루 주자가 도루를 시도했지만 포수의 재빠른 송구로 1루 주자는 도루에 실패했다. 하지만 2루수의 포구 실책으로 공이 빠지고 1루 주자는 2루를 돌아 3루까지 진루했다. 이 긴박한 플레이가 에이비시(ABC) 초콜릿 한 조각만한 기록지 한칸에 모두 담긴다. “기록은 플레이를 역사화하는 작업이에요.” 윤 위원장의 말이다.
야구 기록지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미국식은 약식에 가깝다. 결과와 성적 중심으로 기록한다. 간편한 대신 기록지만 가지고는 경기 상황을 재구성하기 어렵다. 반면 일본식은 상세한 대신 기록법이 너무 복잡해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만 기록하고 읽을 수 있다. 한국 기록지는 야구장 베이스의 이미지를 활용해 기록과 독해의 효율성을 추구했다. 누가 한국식 기록지를 체계화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프로야구 출범 전부터 지금과 비슷한 기록법이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이튿날인 3월1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강습이 진행됐다. 강습생은 전날보다 더 몰렸다. 예상 밖으로 여성 강습생의 비율이 많았다. 주최 쪽에서는 전체 강습생의 약 40%가 여성이라고 했다. 최성용 기록위원은 “야구의 인기는 여성팬이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남성팬은 혼자 야구를 보는 것에 그치지만 여성팬은 애인이나 가족을 경기장에 데리고 옵니다. 야구장 문화도 술과 담배에서 가족적인 분위기로 바뀌었고요.”
강습생 가운데 미녀 한명이 눈에 띄었다. 쉬는 시간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공부에 열심이었다. 책상 위에 펼쳐진 그의 강의 노트에는 야구기록에 쓰이는 숫자와 기호가 가득했다. 슬쩍 옆자리에 앉았다. 취재를 핑계 삼아 말이나 한번 걸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신분을 밝히고 강습회에 참가한 이유를 물었다.
“인터뷰하시는 건가요? 사실 2년 전에도 한번 왔었는데, 야구를 몰라서 제대로 못 배웠어요. 시험 볼 엄두도 못 냈고요. 이번엔 한번 보려 하는데 어려워서 고민이에요. 답안지에 이름 써내면 저인 줄 알 거 아니에요. 호호.”
“누구…신데요?”
“네? 저 모르세요?” 당황하는 미모의 여성.
“모르겠는데요.” 여전히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나.
어색한 웃음을 주고받으며 명함을 교환했다. 명함에 ‘아나운서 배지현’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야구 여신’으로 불리는, <에스비에스 이에스피엔>(SBS ESPN)의 간판 아나운서였다.
“기자라기에 저를 알아보고 인터뷰하는 건 줄 알았어요. 민망하네요. 하하.” 웃음이 해맑았다.
“스포츠 아나운서도 기본적인 규칙은 파악하고 있어야 정확히 전달할 수 있어요. 기록법을 배우면 규칙은 물론 경기 흐름을 읽는 법도 배울 수가 있어서 도움이 돼요.” 열정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야구기록은 결과만 입력하는 ‘단순노동’이 아니다. 타자가 출루한 타구가 안타인지 수비 실책인지를 판정하는 것은 기록원의 몫이다. 심판은 아웃인지 세이프인지,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등과 같이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내용을 판정한다. 반면 기록원은 그 결과가 누구의 활약이고 누구의 잘못인지를 판단한다. 기록원의 판단에 따라 대기록이 이어질 수도 있고 중단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이렇다. 야수가 평범한 파울 타구를 놓치면 실책으로 기록한다. 하지만 3루 주자의 태그업을 막으려고 일부러 파울을 안 잡는다면 실책으로 볼 수 없다. 순간적인 판단도 해야 한다.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야수가 타자의 타구를 잡아 선행주자를 잡으려다 타자와 주자 모두 살았을 때, 결과만 놓고 보면 안타다. 하지만 야수가 선행주자를 잡지 않고 1루로 던졌을 경우 충분히 타자주자를 아웃시킬 수 있었다면 안타가 아니다. 이런 건 기록원이 사관의 심정으로 판단해야 한다.
강습생 350명, 공식기록원 합격자는 1~2명
쉬는 시간이 되자 도망가듯 밖으로 나왔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긴 강의에 지친 탓인지 누군가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하상태씨의 열살짜리 아들 주완이였다.
쉬는 시간 공지사항이 전달됐다. 공식기록원을 희망하는 사람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제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강습회는 공식기록원의 등용문이기도 하다. 현역 공식기록원 14명 전원도 강습회 출신이다. 올해에는 30여명이 지원했지만 이 중 한두명만 공식기록원이 될 수 있다.
김제원 기록위원은 “보는 야구에서 참여하는 야구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프로보다 사회인야구에서 더 두드러진다. 김세훈(37)씨는 공식기록법을 배우는 게 사회인야구를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강습회를 찾았다고 했다. “지금은 회사원이지만 기회가 되면 생활체육 쪽으로 직업을 바꿀 생각입니다. 사회인야구가 점점 확산되는데 그쪽에 일자리가 많이 생길 것 같아요.”
충남 천안에서 온 김경연(39)씨는 “야구심판이 꿈”이라고 했다. 심판이 꿈인데 왜 심판학교가 아니라 기록강습회를 왔는지 물었다. “지금 생활체육회에 야구심판으로 등록은 돼 있는데 야구를 하나도 모르니까 심판위원장님이 기록강습회부터 듣고 오라고 했어요. 호호.”
“야구를 하나도 모르는데, 야구심판이 꿈이라고요?”
“네.”
마지막 날에는 직접 기록지를 작성하는 실기시험이 있었다. 경기 상황이 서술된 문제지를 보고 기록지를 쓰는 것이다. 시험지와 기록지 이쪽저쪽으로 눈과 손이 오가며 정신이 없다. 어떻게 시간이 흐른지도 모른 채 답안지를 내고 나왔다.
강의실을 빠져나가는데 기둥에 붙여진 기록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역대 최다안타 경기, 역대 최장시간 경기, 류현진의 한 경기 최다탈삼진 경기 등등 역사적인 경기의 기록지였다. 지난 3일 동안 수십번 이곳을 지나가면서도 그냥 지나쳤던 기록지였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한글을 막 깨쳤을 때 거리의 간판들을 쉬지 않고 읽어댔던 시절이 생각났다. 아무 의미 없는 무늬로 보이던 것인데 일단 한글을 깨치자 그전처럼 무심하게 지나칠 수 없어 신기해했던 적이 있었다.
한 기록지가 눈을 사로잡았다. 1987년 5월16일 롯데 최동원과 해태 선동열의 연장 15회 혈투였다. 투수 교체 표시 없이 15회까지 빽빽하게 기록된 ‘K’(탈삼진)와 아웃 표시들, ‘209’, ‘232’라고 찍힌 투구수를 보니 두 전설의 치열한 명승부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윤병웅 위원장이 왜 기록이 경기를 역사화하는 작업이라고 했는지 알 듯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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