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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2.15 20:57 수정 : 2013.02.15 22:17

14일 서울 서초3동 서초중학교 가사실에서 열린 교복 공동구매 행사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이 교복을 보고 있다.(위 사진) 한 남학생이 난생처음 교복 와이셔츠를 입고 즐거워하고 있다.(아래 왼쪽부터) 서울 동소문동2가의 미치코런던 학생복 성북점에서 길음중학교 교복을 입은 쌍둥이 이동언·이동희(13)양과 엄마와 함께 교복을 맞추러 온 이달음(13)양. 강재훈 선임기자, 최우리 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르포 / 교복 맞추는 날

▶ 교복이 예쁜 학교 가는 게 소원이었어요. 엄마 아빠, 생활지도 선생님은 모르시겠지만, 집을 나서면 일단 두어 번 치마를 접었고요. 교문을 통과하면 넥타이를 풀었어요. 어른들이 보면 똑같은 교복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 달라요. 와이셔츠 안에 살짝 보이는 티셔츠까지 자기 개성이죠. 부모님 부담 덜어드릴 수 있도록, 선배님들! 깨끗이 입은 교복은 꼭 물려주세요.

생긴 것은 기성복인데, 여느 기성복과 다르다.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인 녹색과 남색 체크무늬 치마와 회색 바지의 단은 깊었고, 탁자 아래 종이상자 안에 담긴 하얀색 와이셔츠 치수는 기성복보다 세세하게 구분돼 있었다. 왼쪽 가슴에 학교 이름을 적어 넣은 ‘친절한’ 남색 재킷은 이 옷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더 쉽게 알려줬다. 옷걸이에서 빼내어 들어보니 재킷은 아동복과 성인복의 중간 크기다. 누군가의 첫 교복이 될 옷이었다.

“메이커가 없어, 근데 소비자는 몰라”

봄이 오는 기운이 느껴지던 14일, 서울 서초구 서초3동 서초중학교 1층 가사실에서는 교복 공동구매가 한창이었다. 15일이 졸업식인 서일초등학교 6학년 여현준(13)군도 엄마 윤현희(44)씨와 교복을 맞추러왔다. 키 161㎝의 여군은 엄마와 키가 비슷했다. 간이 탈의실에서 분홍색 커튼을 열고 걸어나오는 아들을 본 엄마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큰아이(고1)도 입혀봤지만 또 다르네요. 입혀보니 정말 중학생 같아요. 마냥 좋기만 하진 않고 많이 컸구나 싶고. 내일 졸업식 끝나고 오자니까 애가 빨리 교복 사러 가자고 하더라고요. 자기도 빨리 입고 싶었나 봐요.”

교복을 벗고 남색 모자 달린 옷으로 갈아입자 여군은 다시 초등학생으로 돌아왔다. 엄마와 아들은 체육복을 사러 온 같은 반 친구 사영준(13)군과 사군의 엄마를 만났고, 두 엄마는 다음달이면 중학생이 될 아이들을 보며 축하인사를 나누었다. 졸업의 뿌듯함과 입학의 설렘이 교차했다. 교복을 맞추러 가사실로 들어오는 학생들을 보자마자 신체 사이즈를 부르는 박동규(67)씨는 이 학교에 공동구매 교복을 생산·판매하는 ‘신생학생복’의 대표이사다. 16일까지 열리는 이 공동구매 행사를 박씨는 지난해부터 기다려왔다. ‘어머니 아르바이트’도 고용하고, 회사 직원의 대학생 아들 2명도 불렀다. 교복업체는 중·고등학교 배정이 끝나는 2월 초부터 3월 입학일까지를 5월 여름 교복을 맞추는 시기와 함께 연중 최고 대목으로 꼽는다.

신생학생복은 인천과 서울에서 매장 3곳을 운영하는 중소업체다. 한때 서울 종로2가에 있던 화신백화점에 입점할 만큼 잘나가던 교복 전문업체였지만 지금은 시장점유율을 따질 수도 없을 만큼 사세가 줄었다. 박씨는 1959년 창업한 이 회사에 1966년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닌 적이 있는 현재 50살 이상은 모두 신생학생복을 입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한국방송 <해피투게더> 쟁반노래방에 개그맨 유재석과 가수 이효리가 교복 입고 나왔잖아요? 그 사람들 입는 옛날 교복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우리가 맞춰 줬어요.”

박씨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나라 교복 시장의 역사였다. 그는 전두환 정권이 단행한 두발·교복 자율화가 해제되면서, 일선 학교가 하나둘 교복을 도입한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을 일종의 분기점으로 기억했다. 이전에는 학교별로 배지만 달랐을 뿐 교복 디자인은 엇비슷했다. 덕분에 학교 앞 문구점에서 도매로 학생복을 떼어와 팔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자율화 해제 조처 이후 학교마다 다양한 디자인의 교복을 입으면서 교복 시장의 운명이 달라졌다.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에 대응하기 힘들었던 중소업체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자본력을 앞세운 대형 브랜드 교복업체 몇몇이 성장했다. 이후 그 차이는 공고해졌다.

“근데 소비자는 몰라, 교복 시장에는 메이커는 없어. 방송 광고 때문에 우리가 지는 거지, 걔들이랑 우리랑 똑같아. 걔들한테 우리 공장에서 만든 거 납품한단 말이지.” 박씨는 요즘 학생들이 민감한 디자인적 요소를 보완하기 위해 미리 출시되는 브랜드 교복을 사다가 비슷하게 디자인을 ‘연구’한다고 했다.

부모는 “더 싸게 더 편하게”
아이는 “더 좁고 더 짧게”
한 벌에 20만~30만원대지만
오늘만은 지갑이 쉽게 열린다
예전처럼 3년 입을 요량으로
큰 치수를 사는 경우도 드물다 

한때 문구점에서도 팔던 교복
잠시 사라졌다 부활한 뒤
한철장사 경쟁은 치열해졌다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에
중소업체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대형 브랜드 업체가 성장
4개사가 시장 75%를 차지했다

달라진 시장 환경이지만 박씨의 교복을 알아봐준 것은 눈 밝은 소비자였다. 이날 가사실을 찾아온 학부모회장이자 교내 교복선정위원회 위원장 황혜신(43)씨를 박씨는 교장 선생님 모시듯 반갑게 맞았다. 주부인 황씨를 포함해 학년별로 2명씩 총 6명의 교복선정위원회 위원들이 박씨의 교복을 선택했다. 황씨는 중·고교 6년 동안 교복을 입지 않은 ‘교복 자율화 세대’다. 딸을 키우면서 교복에 관심이 많아졌다는 황씨가 교복 선정 이유를 말했다.

“브랜드 교복이 디자인은 더 예뻐요. 그런데 엄마들은 가격이 저렴하고 구입 뒤 서비스가 좋은지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어요. 교복치마와 같은 원단의 조끼는 종일 입고 있기 불편하니까 니트 조끼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는데 브랜드 교복은 올해 교복은 미리 만들어놨다며 요청을 거절하더라고요. 대신 이 업체는 재킷 안감이나 단추까지 엄마들이 고를 수 있도록 해줬어요. 3년째 (공동구매)하고 있어서 사장님이랑도 친해졌지만, 기자님이 걱정하실 만한 비리는 전혀 없어요.”

판매경쟁 심한데 교복값은 왜 비쌀까

2011년 기준 전국의 중·고등학교 5435곳 중 교복을 입는 학교는 5283곳이다. 학기 중에 학생들은 온라인쇼핑몰이나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기본 교복바지나 조끼, 와이셔츠를 1만~2만원대로 구입하거나 입학 전 지방자치단체나 학교를 통해 선배들이 입던 교복을 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입학철이면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 입학선물로 새 교복을 사는 편이다. 예전처럼 3년 입을 요량으로 서너 치수 크게 사는 경우는 거의 없고, 교복값이 부담스럽지만 한 벌 더 사주겠다는 부모도 많아졌다고 대리점 쪽은 전했다.

요즘 아이들은 교복 패션도 사뭇 다르다. 교복은 단정해야 예쁘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인도를 쓸고 다녔던 통 넓은 바지로 대표되는1990년대 교복과 반대로 ‘스키니한’ 요즘 학생들 교복은 바지통은 좁고, 치마는 짧다. 올해 한 브랜드의 남학생 교복은 허리 30인치를 기준으로 바지통을 8.5인치에서 7.5인치로 줄여 출고했다. 스키니진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여학생들은 상의를 크게 입는다. 회원 2만7000명이 있는 10대 대상 쇼핑몰 ‘부모님 등골 펴드리는 교복닷컴’의 서동현(30) 실장이 나름의 수요조사를 했다.

“보통 여학생들은 니트 조끼나 와이셔츠를 한 치수 크게 입고 치마는 자기 몸에 맞게 입어요. 남학생들 바지는 남부지방보다 서울, 인천 쪽으로 갈수록 통이 더 붙게 입는 편이고요. 입학철만 지나면 재킷은 벗어 손에 들고 다녀요.”

11일 매장에서 만난 학생들의 대답도 같았다. “특별히 핏(옷이 자신의 몸에 어울리는 모양새)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서울 용문고 진학 예정의 이재학(16)군도 바지통만은 줄일 계획이다. 서울사대부고 배정을 받은 정수현(16)양도 “중학교 교복보다 치마가 짧게 나왔다”며 기뻐했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이던 11일 오후, 아이비클럽·엘리트·스마트·스쿨룩스·미치코런던 등 5개의 브랜드 교복 대리점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서울 성북구 삼선동 일대를 찾았다. 한산한 거리와 달리 매장에는 아르바이트생, 학부모, 학생들이 뒤엉켜 바글거렸다.

미치코런던 학생복 성북점의 조문영(38) 실장은 설날에도 쉬지 않고 일했다. 교복대리점을 7년째 운영중인 조씨가 말하는 교복 시장은,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레드오션’이었다. 조씨는 대리점주들끼리 의견을 모아 지난해 8월 처음으로 아이돌그룹 ‘틴탑’을 내세워 카탈로그 광고까지 했다. 인기 아이돌의 광고를 앞세운 다른 유명 브랜드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18개의 학교에서 조씨의 교복을 공동구매 교복으로 선정했지만, 조씨는 인근 백화점에 입점하지 못한 것을 더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매해 4개의 대리점이 사이 좋게 입점해왔는데 새로운 브랜드 대리점이 지역에 하나 더 생겨 밀려났기 때문이다.

“브랜드 교복들은 공동구매에 많이 참여하는 편은 아니에요. 싸게 팔면 마진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학교에서 공동구매 업체로 선정했다고 해서 학생들이 꼭 그 업체 상품을 사야 하는 의무는 없거든요. 그러니까 공동구매 업체로 선정된 가게 방해할 겸 서로 손님 모셔가려고 다시 가격덤핑하고 기획상품 내놓고… 사실 대리점들은 재고 안 생기게 하려면 박리다매라도 팔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죠.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몰라요.”

매장 간 경쟁이 심한데도 교복값이 비싸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브랜드 교복은 보통 ‘2월과 5월 한철 장사, 제한된 수요에 따른 높은 경쟁’을 교복 시장의 특수성으로 내세운다. 대량생산하는 브랜드 교복회사는 맞춤생산하는 중소업체보다 재고 비용을 더 많이 고려해야 하고, 광고비와 유통 마진이 더해져 교복값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스마트교복’을 만들던 에스케이(SK)는 지난해 11월 말 교복사업에서 철수하는 등 현재 교복 시장은 지각변동 중이다.

훌쩍 큰 아이를 보면 좋기도 하지만…

교복 시장은 아이비클럽·엘리트·스마트·스쿨룩스 4개사가 시장점유율 75% 이상을 차지하는 독과점 상태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의 정현증(53) 조사위원장은 4대 브랜드의 상이한 출고가격(13만~18만원)이 대리점에 와서 똑같아지는 것을 들어 짬짜미(담합)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한다. 교육과학기술부 말을 들어보면, 올해 교복 동복 4개사 평균 출고가는 14만567원. 소비자가격은 보통 대리점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일반적으로 브랜드 교복은 공동구매가 아니라면 20만원 후반~30만원 초반, 공동구매를 하면 20만원 초반대로 결정된다.

김형태(47) 서울시의원은 대리점과 학교 간 담합을 막기 위해 교육청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쟁이 심한 지역이야 가격경쟁으로 소비자가 이익을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리점과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담합해 소비자가격을 올려 받을 수 있는 현 구조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감사 결과 2011년 10월 서울 시내 일부 학교의 공동구매추진위원회의 일부 학부모들과 교복업체가 입찰가격이 낮은 업체를 탈락시키고 비싼 가격에 입찰한 교복업체를 최종 선정한 사례가 적발됐다. 그러나 교육청은 학교 자율화 취지에 맞게 학부모와 학교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철 장사’의 기대감과 ‘레드오션’이라는 긴장감이 교차하는 매장 안으로 누군가의 생애 첫 교복이 될 옷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가게에서 만난 학부모들에게 자녀의 새 교복 구입이란 다른 쇼핑과 사뭇 달랐다. 성장한, 혹은 성장중인 자녀와 대화하는 소중한 시간이어서일까. 가족 단위로 매장을 찾은 이들은 결코 적지 않은 값의 교복을 사면서도 정서적으로 아깝지 않은 느낌을 공유한다. 값을 따져 묻던 부모들은 의젓하게 교복을 차려입은 자녀를 보자 쉽게 지갑을 열었다.

이날 배영란(42), 김승만(43) 부부는 아들 김인(13)군의 넉넉한 허리 치수에 놀랐지만 아들이 마냥 귀엽기만 하다. 작아지거나 입다가 해지면 몇 벌이고 사줄 생각이 있다. 아쿠아색 교복 조끼가 예쁜 길음중학교에 배정받게 돼서 기쁘다는 쌍둥이 이동언, 이동희(13)양은 “엄마보다 클 거예요. 엄마는 155㎝거든요”라며 엄마를 놀리고, 그런 딸들을 엄마는 흐뭇하게 바라본다. 딸 이달음(13)양과 함께 온 엄마 최인선(42)씨는 딸이 다닐 학교에 ‘무서운’ 언니들이 없기를 바란다. “중학교에 가면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싶다”고 딸 이소현(13)양이 말하자, 아빠는 공부나 더 열심히 하라며 농을 친다.

엄마 이윤정(43)씨는 교복은 활동성이 가장 중요하다며 원단이 보풀이 일어나지 않는지를 깐깐하게 골랐다. 아빠 정국환(47)씨는 교복 입은 아들 정태현(13)군의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했다. “(아들이 중학생이 된다니) 좋기도 한데 착잡하기도 하고요. 애들은 정말 빨리 크는 것 같아요. 아, 이제 예쁜 시기는 다 지났구나. 언제까지 내 품 안에 아기일 줄 알았는데….” 정씨가 아들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부모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정군이 의젓하게 포부를 밝혔다. “중학생이 되면 전교 50등 안에 들 거예요.” 교복 맞추는 날은 가족의 날이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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