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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1.18 20:27 수정 : 2013.01.19 17:57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보안 철저’ 방침에 따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들의 말수가 적어져 기자들이 인수위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눈이 내린 지난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 건물 앞에서 기자들이 안의 상황이 궁금한지 연신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 인수위사진기자단

[토요판] 르포
인수위는 요즘

▶ 인수위 기자들은 오늘도 고민이 많습니다. 아무도 얘기를 안 해주니 기사 쓰기도 힘이 듭니다. 어렵게 기사를 써놨더니, 윤창중 대변인은 “오보가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린다”며 언론을 탓합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건 정치권을 오가는 폴리널리스트 때문이란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답을 피했습니다. 이제 첫발을 내딛는 새 정부에서, ‘불통’은 나름 이유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언론 탓’은 좀 그렇습니다.

기자들은 본관, 위원들은 별관
서로 만날 수 있는 곳은
주차장과 식당, 운 좋으면 길거리
그나마 대화 내용도 별게 없다
물 먹을까 크게 불안하지는 않다
어쨌거나 몸도 편하다
오늘은 뭘 써야하나 고민일 뿐 

윤창중 대변인 입만 바라보지만
사실 그도 잘 모른다는 말이
한쪽에선 흘러나온다
며칠 언론 비판에 시달리다
어느 언론사 기자에게 물었단다
“너희들은 내가 그렇게 싫냐?”

서울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정문 앞은 늘 시끄럽다.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자리한 이곳에선 매일같이 시위가 벌어진다. 상주하는 경찰을 빼면 아침마다 제일 먼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시위대다. 노동과 지역 등 한국 사회의 각종 억울한 목소리들이 모여든다.

하지만 삼엄한 경계를 지나 연수원 경내로만 들어오면 1만8733㎡ 넓이에 펼쳐지는 풍경은 대체로 고요하다. 기자들은 대부분 본관의 기자실에서 일하고, 인수위원과 실무·전문위원 등으로 구성된 인수위원회는 별관에서 각종 회의 및 검토를 한다. 당장은 인수위가 이른바 ‘뉴스의 중심’이라고 하지만, 기사를 쓸 기자들과 기삿거리를 제공할 인수위가 아예 별도의 건물로 분리돼 있다. 서로의 일상적인, 자연스러운 접촉은 원천 차단된 셈이다.

만나기가 어렵다, 대화는 더 어렵다

인수위 건물은 취재진의 출입이 통제된다. 경찰이 가로막는다. 인수위원들은 한번 출근하면 좀처럼 건물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다. 기자들이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차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갈 때까지, 또는 건물에서 나와 차에 탈 때까지가 전부다. 가끔 주차장을 가로질러 정문으로 드나들기도 한다. ‘주차장 대화’라 하면 적절하다. 한 사람당 길어야 30초를 넘지 않는 문답은 이렇게 나온다. 인수위원들이 건물을 들락거리는 시간대는 출근시간, 점심시간, 그리고 퇴근시간이다. 운이 좋아 3차례 모두 만난다고 해도, 한 사람과 나누는 대화의 길이는 2분이 채 안 된다.

그나마 별 내용도 없다. 기자들은 별관 앞을 지키다가 드나드는 인수위원과 정부 부처 공무원들을 보는 족족 옷깃을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본다. 하지만 모른다고 하거나 답변을 피한다. 한마디를 한다 해도, “좀 지나갑시다”, “보고를 받아야…”, “정해지면 알려드릴게요”, “따로 말할 게 없어요” 등 하나 마나 한 소리다. 지난 6일 인수위로 출근하기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그들과의 ‘주차장 대화’는 뻔해졌다. 굳이 취재진 무리에 들지 않고 멀찍이서 바라만 봐도, 무슨 답변이 나오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물론 인수위원들을 다른 곳에서 만날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다. 예컨대 인수위원들이 본관의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할 때도 있다. 하지만 입구의 기자들을 피해 뒷문으로 나와 약 200m 거리의 식당까지 걸어서 간다. 물론 구내식당에서 기자를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수위원들은 밥 먹는 입만 열려 있고, 말하는 입은 닫혀 있다. 한마디라도 벙긋하면, 묻는 사람과 답하는 사람 둘에게 식당 내 모두의 시선이 집중할 판이다.

삼청동의 식당에서나 길거리에서도 기자들이 인수위원들을 아주 우연히 만나는 경우가 없진 않다. 반응은 비슷하다. 하나 마나 한 답을 하거나, 답변을 피한다. 그나마 인사라도 받아주면 ‘감사’하다. 인수위원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기자들의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 널리 알려진 대로 요새 인수위 취재는 힘들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 기자들이 다들 힘들다. 그래서 그런가. 마음에 크게 불안할 것도 없다. 삼청동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뭔가 평화롭다.

돌이켜보면 인수위가 출범하면서 기자들은 꽤나 긴장을 하고 있었다. 지난해 대선을 치르면서 각 언론사 기자들 가운데는 ‘인수위에 끌려가기 싫다’는 이들이 많았다. 몸과 마음이 너무도 고된 곳이기 때문이라는 ‘합리적 상상’ 탓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나의 복지를 위해서, 나의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서, 상대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란다”는 우스갯소리도 오갔다.

인수위 취재가 왜 고될 거라고 봤을까? 대통령 선거를 치른 뒤 취임식까지 두달 동안 가동되는 인수위는 갖은 권모술수와 복마전이 벌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차기 정부의 밑그림을 그린다는 인수위의 주요 임무는, 결국 앞으로 5년 동안 누구에게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배분할지를 결정하는 작업이다. 인수위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각계각층으로부터 대통령 당선인의 측근이나 인수위원들에게 줄을 대보려고 아우성이 벌어진다.

외부 이해관계의 씨줄과 날줄이 인수위를 향해 뻗치는 사이, 당선인의 정치역정에서 간난신고를 함께한 측근들은 헤게모니 다툼에 돌입한다. 인수위원들도 다들 누군가를 대변하고 있는 만큼, 나름대로 한몫을 하려고 목소리를 낸다. 언론은 이들의 충실한 도구가 돼준다. 한마디만 슬쩍 흘리면 바로 대서특필한다. “인수위 관계자”를 인용해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표현되는 인수위발 보도는 온 사회를 들썩이게 만든다.

아침엔 물먹고 저녁엔 술 먹는다는데…

그러나 이런 발언은 공식적인 경로로 나오는 ‘성명’이 아니라 은밀하게 오가는 ‘정보’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취재경쟁이 뜨겁다. 각 언론사와 기자들은 동원할 수 있는 취재 역량을 모두 동원해서 인수위 내부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인수위원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캐내려 든다. ‘친하다’고 생각되는 기자, 또는 ‘가깝다’고 생각되는 매체가 유리할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인수위의 누가 어디서 무슨 발언을 할지도 모르고, 그걸 어떤 매체가 어떤 식으로 해석해 쓸지는 아무도 모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지난주 박근혜 당선인의 측근인 한 인사와 기자들이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복지 관련 지원금이 실제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어지기보다는 늘 받던 사람들에게만 거듭 집중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역의 간부급 공무원들은 현장에 대한 체계적 인식이 부족해서, 상황을 파악도 못 했는데 줄줄이 내려오는 지원금을 배분해야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지원을 못 받는 국민은 계속 사각지대에 남고, 심지어 배분처를 찾지 못한 말단 공무원들이 지원금을 횡령하는 경우도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사실 새로운 사실을 이야기한 것도 아니라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갈 흔한 ‘밥자리 대화’였다. 그러나 과거 인수위 취재 경험이 있는 한 선배 기자는 뼈있는 농담을 건넸다. “이 발언만 가지고 기사를 두건은 쓸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박근혜 정부 첫 내각 인선의 가장 중요한 인선 기준은 ‘현장’이 될 것이며, 말단 공무원들 전원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이겠다는 것.” 좌중 사이에 곧장 폭소가 터져나왔을 뿐, 실제 기사를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수위발 추측성 기사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단독 보도’ 또는 ‘특종 보도’를 미덕으로 여기는 기자 사회에선 ‘물먹는다’, ‘물먹인다’는 은어가 있다. 특종 보도를 하면(물먹이면) 반대로 물먹는 쪽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하지만 인수위는 그냥 물먹는 게 일상인 ‘홍수 지역’ 같은 곳이라는 게 기자들의 인식이었다. 인수위 기자들의 일상은 ‘아침엔 (조간 보고) 물먹고, 저녁엔 (속상해서) 술 먹는’ 거라고도 했다. 그런 인수위 취재를 앞두고 기자들이 긴장을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서울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회의실에서 18일 김용준 인수위원장(왼쪽 둘째)을 비롯한 각 분과 인수위원들과 출입기자들의 환담회가 열린 가운데, 진영 부위원장(맨 왼쪽)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인수위 사진기자단
‘박근혜 인수위’는 달랐다. 이런 점을 우려해 보안을 강화했다. 박근혜 당선인은 7일 첫 전체회의에서 “과거의 사례를 보면, 인수위에서 설익은 정책들이 무질서하게 나와서 국민들에게 혼선을 주고 그것이 결국 새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경우를 많이 봤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주시기를 부탁드린다”며 손수 입단속에 나섰다. 인수위는 대변인을 통해 “국민의 혼란과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인수위의 언론 창구는 대변인으로 일원화한다”고 방침을 정했다.

여전히 누군지 알 수 없는 ‘인수위 관계자’라는 표현으로 물을 먹이는 매체가 있다. 추측성 보도도 없지 않다. 하지만 특정 매체에 정보가 몰리는 것도 아니고 과거처럼 억측이 난무하는 수준도 아니라는 점에서, 보안 정책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조용한 인수위’라는 지향점과도 일맥상통한다. 정책은 선거 과정에서 충분히 설명해서 선택받고 인수위는 실제 정권 인수인계 작업에만 충실해야 한다는, 과거 인수위의 폐단에 대한 전문가들의 지적도 사실 충실히 반영한 셈이다. 기자들도 인수위 자체의 취재는 다소 불편하지만, 그동안 친분을 쌓아둔 실세들에 대한 취재로 중요한 기류를 파악할 수는 있다. 이게 요즘 인수위 기사의 주요 원천이다.

그렇다면 이런 인수위의 유일한 창구 구실을 하는 대변인은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언론과 정치권을 오간 전력과 막말에 가까운 칼럼 탓에 입길에 올랐던 윤창중 대변인은 ‘단독기자’를 자임한 상태다. 그는 10일 기자들에게 “제가 사실 인수위 안의 단독기자다. 완전히 혼자 뛰는 1인 기자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야만 여러분에게 신속하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제 나름의 판단”이라고 했다.

6일 인수위 첫날 워크숍에 대해 그는 “영양가가 없었다. 영양가가 있는지 없는지도 대변인이 판단해야 될 일”이라고 했다. 17일엔 기자들에게 “내가 전화를 안 받으면 그건 기사가 아닌 거야”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기자 경험을 내세운다. “26살 반에 기자가 됐다. 30년 동안 정치부 기자와 논설위원을 지냈다.” 종합하면, ‘나는 여러분보다 기자 생활을 오래 한 기자다. 나는 모든 걸 알고 너희는 뭘 모르니, 내가 판단해서 알려주는 것만 받아써라’ 하는 태도다.

윤 대변인, 무용담 말고 뉴스를 달라!

하지만 정작 실제로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는 의문이다. ‘단독기자’ 윤 대변인의 취재 결과라는 것도 인수위 차원에서 정리한 문건을 손으로 베껴쓴 메모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매일 아침 ‘기자들에게 내놓을 것’을 찾아 취재하지만, 그 이상을 구하진 못하는 것이다. 브리핑 시간이 되면 그는 으레 “오늘도 저는 (기자들에게) 죽으러 가는 날이군요”라고 푸념하며 터덜터덜 나온다고 한다. 그의 브리핑엔 알맹이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걸핏하면 “확인해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 지난 13일 최대석 전 인수위원의 사퇴 배경에 대해 “알고는 있는데,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며 기자들을 약올린 윤 대변인의 말도 얼마나 진짜인지 알 수가 없다.

지난 6일 방송에 생중계된 공식브리핑에서 윤 대변인이 질문을 받다 말고, “제가 인수위 출입도 여러 차례 했다”며 무용담을 시작했다. “특종을 위해 상상력을 발휘하면 결국 오보로 끝나는 게 사실이다. 제가 30년 정치부 기자, 정치담당 논설실장을 하면서 피부로 느낀 게 뭐냐면, 국가 요직에 대한 인선 때마다 엄청난 오보를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언론의 신뢰가 상실되는 것을 통감했다. 저는 26살 반에….”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건 폴리널리스트 아니냐’는 질문에 그의 발언은 이어지지 못했다.

고압적인 태도 탓에 그 뒤 며칠 동안 언론의 ‘까칠한’ 비판에 시달린 윤 대변인은, 과거 자신이 속했던 언론사의 한 기자에게 “너희들은 내가 그렇게 싫냐”고 물었다고 한다. 문제제기를 하는 목소리만 나오면 ‘쟤가 날 싫어한다’는 인식은 무슨 피해의식일까. 브리핑 때마다 윤 대변인의 곁을 지키고 있는 아무개 부대변인도 지난해 10월 비슷한 태도를 보였던 게 떠오른다. 언론계 출신인 그는 박근혜 캠프가 후보에 대한 취재진 접근을 과도하게 통제한다고 보도한 당시 <한겨레> 기사에 대해, “그런다고 박근혜가 대통령 안 될 것 같냐. (한겨레도) 그 뒤를 봐야지”라고 ‘엄포’를 놓은 바 있다.

<삼국지>에는 유비가 한때 편한 삶을 살며 말을 탈 일이 없다 보니 허벅지에 살이 올라 탄식했다는 고사(비육지탄)가 있다.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해 허송세월을 한다는, 요즘 인수위 기자들의 심정을 대변해준다. 인수위로 취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답답한 마음으로 선거 공약집을 뒤적이며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헷갈리고 있다. 인수위가 지나치게 시끄러운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도, 제대로 된 입도 없는 건 문제가 있어 보이고, 그럼에도 나의 몸은 왠지 편하니까 말이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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