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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2.28 19:56 수정 : 2013.01.03 11:10

[토요판] 르포 ‘탈주범’ 최갑복과의 만남

▶ 전과 25범의 낙오자 또는 장 발장. 2012년 만난 ‘비강도’ 최갑복은 1960년대를 사는 사람 같았습니다. 반백이 된 사람이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 태어나기란 쉽지 않은 길이겠지요. 그가 가난과 범죄의 유혹을 떨쳐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정상적인 삶을 꾸려갈 수 있을까요? 범죄자라는 낙인이 아니라면, 처음 느껴보는 사회의 관심이 있다면, 남은 삶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까요?

“멸치장사로 5일장 다니면서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여자친구 집에 경찰이 급습해
도망다니면서 무너지고 말았죠
마트에서 탑차를 훔쳤고요
하지만 절대 계획적으로는…” 

여자친구 이씨는 지난 4월께
대구 한 성당 성모상 앞에서
울고 있던 최씨를 처음 봤다
이씨는 최씨에게 김밥·우동을
사서 먹이고는 헤어졌다
그러곤 카바레에서 마주쳤다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 유리벽 안에서 옥색 옷을 입은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반가움에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남자는 ‘얼굴 좋아졌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멋쩍은 듯 배시시 웃었다. 자세히 보니 도드라졌던 남자의 광대뼈에는 살이 조금 붙었고, 헝클어진 머리는 단정히 빗어 넘겼다. 까맣던 얼굴도 하얘져 있었다.

24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의 대구구치소 접견실 2호실에서 ‘대구 유치장 탈주범’ 최갑복(50)씨를 만났다. 최씨는 세들어 살던 주인집에 골프채를 들고 침입해 강도상해 혐의로 입건됐다가 “억울하다”며 9월17일 대구 동부경찰서 유치장의 13.5㎝ 크기 배식구를 통해 탈출에 성공한 주인공이다. 최씨가 검찰에서 조사받은 기록을 보면 “머리에 무리가 갔고 머리가 부었지만 머리뼈가 조금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탈출해야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탈출해 지인을 만나 돈을 빌려서 휴대폰으로 언론사에 억울함을 알리려 했다”고 진술했다. 그만큼 그는 할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산을 넘고 강을 따라 5일 동안 도주 및 절도를 하다 결국 다시 붙잡힌 최씨는 현재 대구구치소 독방에서 1심 재판을 기다리는 중이다.

국민참여재판 무산…보이스피싱 여죄 조사중

면회는 최씨를 고용한 적이 있는 가게주인 이광술(54)씨와 함께 했다. 가벼운 눈인사를 한 뒤 마주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이씨를 통해 여러차례 안부를 물었던 터라 최씨는 기자임을 알아차린 듯했다. 이씨가 재판에 대해 묻자 최씨가 말을 받았다.

“참여재판은 못 받게 되었고예. 처음부터 검찰에서 참여재판을 못 받게끔 방해를 하더라고요. 저에게도 잘못은 있는데예. 보이스피싱 할 수 있는 그런 기술이 있으면 어렵게 살 필요도 없는 건데 여죄를 들먹이고, 그다음에 친한 친구가 나하고 반목관계가 생기니까 이야기해서….”

최씨는 아직도 억울해 보였다. 검찰 조사에서 “피해자였던 집주인과의 대질신문을 허락해주지 않자 억울함에 탈주했다”는 최씨는 여전히 법을 불신하고 있었다. 수용자의 서신교환에 대해 검열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최씨는 검열대상이었다. 최씨는 구치소 측에서 편지를 불허하고, 편지 내용도 검열하기 때문에 편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이씨를 통해 여러 번 전해온 적이 있었다. 일반 국민이 배심원단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을 열렬히 원했으나 이마저 불허되자 많이 서운한 눈치였다.

처음에 국민참여재판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11월14일과 28일, 12월5일 3번의 공판 준비를 거쳐 증인과 증거 채택 과정 때까지도 무탈했다. 새해 1월7~8일에는 참여재판이 진행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졌다. 하지만 3차 공판준비 기일 중 검사가 국민참여재판 반대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하자 13일 대구지방법원 제11형사부는 최종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배제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검찰 쪽 증인(70대 집주인 부부)이 고령이어서 출석 여부가 불투명하고, 최씨의 추가기소 가능성 등을 들어 신속한 재판을 위해 국민참여재판을 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씨가 재검거된 당시부터 최씨를 변호해온 국선변호인은 재판부의 이런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며 항의 표시로 사임했다. 최씨에게는 새 국선변호인이 선임됐다.

최씨는 분에 찼지만, 최씨를 둘러싼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감시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경찰 9명이 무더기 징계를 받았다. 유치장 배식구의 가로 창살이 하나 더 추가됐으며, 가로 창살만 있던 2m 높이 방범창 역시 세로 창살이 촘촘히 생겼다. 탈주 덕분인지는 몰라도 검찰 송치 이후 전면적인 사건 재조사를 통해 원래 경찰이 적용했던 ‘강도상해 혐의’가 아닌 ‘준특수강도 혐의’로 최씨의 죄명도 달라졌다.(<한겨레> 9월29일치 10면) 검찰은 10월16일 최씨를 강도상해보다 형량이 적은 준특수강도 및 절도, 도주 혐의 등으로 공소를 제기했다. 현재 최씨는 통장, 신분증, 휴대전화를 빌려준 뒤 통장에 입금된 돈을 출금하는 등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된 정황이 발견돼 검찰에서 여죄를 조사받고 있다.

재판 이야기를 하며 최씨가 눈물을 보인 것은 다음이었다. 누가 찾아오느냐는 질문에 최씨의 큰 눈이 금세 빨개졌다. 어려서부터 가족과 왕래가 끊겼던 최씨를 찾아오는 이는 여자친구 이아무개(74)씨와 최씨가 ‘회장’이라고 부르고 따르는 이광술씨뿐이었다. 두 사람 다 최씨와 올해 처음 만난 인연이었다. 최씨에게는 오래된 친구, 가족이 없었다.

“애초에 가족과는 인연이 없어가요. 왕래가 없고요. 저로 인해서 당장 회장님도 그렇고 저를 걱정해주시는 누님도 그렇고 매일 하루가 멀다 하고 면회를 저 때문에 (울먹이며) 다니시거든요. 그 마음이 이래 좀….”

지난 9월 이후 들여다본 최씨와 여자친구의 사이는 각별했다. 여자친구 이씨는 지난 4월께 대구 효목동의 성당에서 성모상 앞에서 울고 있던 최씨를 처음 봤다. 11남매가 함께 컸던 집안에서 가난하게 자란 이씨 눈에 최씨는 “자신과 닮은” 사람이었다. 배가 고프다는 최씨에게 김밥과 우동을 사서 먹이고는 헤어졌는데, 대구 중앙공원 근처 카바레에서 최씨를 다시 마주쳤다. 24살 연상이라도, 동네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해도, 이씨는 최씨의 외로운 마음을 이해하고 감싸줬다. 때론 어머니나 누나였고 때로는 애인이었다. 이씨는 최씨를 ‘아기’라고 불렀다. 최씨도 이씨에게 도둑질하며 살아온 지난 인생을 털어놓았다. 최씨가 가게 주인 이씨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여자친구 이씨는 “이상하게도 자신에게만 마음을 준” 사람이었다.

지난 9월19일 오전 경찰 350여명이 경북 청도군 청도읍 초현리 일대에서 탈주한 최씨를 검거하기 위해 2일차 수색 작업에 나선 모습.
“불쌍한 사람, 가엾은 사람, 정많은 사람”

남편과 사별한 이씨는 최씨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기도 했다. 딸과 함께 살며 외손자들을 키우던 이씨는 최씨에게 경차를 사주고, 방세를 대신 내줄 만큼 헌신적이었다. 집주인에게서 쫓겨난 6월 중순 이후에는 이씨네 집 옥상에 텐트를 치고 최씨가 기거할 수 있도록 해줬고, 달서구 신당동의 원룸을 함께 빌렸다. 9월 초 첫번째로 검거되기 전에는 흰색 차량을 회색으로 도색하고, 번호판 마지막 숫자를 바꿔 도망다니던 최씨 곁에 이씨가 있었다. 그 일로 이씨는 범인은닉 혐의 피의자로 경찰 조사도 받았다. 지난 11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여자친구인 이씨가 말했다.

“내가 갑복이에게 그랬어요. 내가 만약에 죽더라도 이 세상에 새로 태어나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이제 다시는 남의 것은 만지지도 보지도 말고 네 몸으로 벌어놓고 굶어서라도 깨끗하게 죽으라고…그런데 내 말을 안 듣고….”

최씨를 고용했던 이광술씨에게도 최씨는 동네 다른 건달들과는 달랐다고 했다. 이씨는 최씨가 살아보려는 의지가 있는,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라서 그렇지 신의가 있던 사람이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최씨의 유일한 아군인 이들이 기억하는 최씨는 ‘불쌍한 사람, 가엾은 사람’이었다. 최씨는 이들에게 ‘자신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하던 정 많은 사람’이었고, 최씨 역시 삶의 마지막 희망처럼 이들에 대한 애정의 끈을 붙들고 놓지 않았다. 함께 면회 오기로 한 여자친구가 눈 수술을 했고, 요즘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입원해서 함께 못 왔다는 말에 최씨는 무거운 표정을 짓고 고개를 떨구었다. 여자친구의 가족들은 이들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여자친구와 회장님 외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없을까. 찾아오는 사람들도 없지만, 최씨는 여자친구와 이광술씨 외의 사람들은 피한다고 했다.

“찾아오는 사람 중에 내가 피해야 하는 사람도 있어요. 신문에 나고 하니까 염려된다고 마약 전과자들이 접견 오면 그게 또….”

검찰 수사기록과 예전 최씨의 범행 판결문을 보면, 전과 25범의 최씨가 등장한다. 또다른 최씨다. 1977년 7월8일 만 14살 때 가게에서 돈을 훔친 소년보호사건이 시작이었다. 13회의 실형 중 10회의 절도, 2회의 필로폰 투약과 2회의 강간미수 또는 강간상해… 화려한 범죄경력이 최씨의 모든 것을 압도했다. 77년 11월 절도로 첫 징역을 산 이래 2008년 2월 한달 160만원에 숙식을 제공한다며 대출 사무직원으로 채용한 14살의 가출 청소년을 강간해 징역 4년을 더 살기까지, 반백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감옥에서 보냈다. 그 시절 최씨에 대해 한동네 살던 친척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나쁜 짓을 많이 해 동네에 소문이 안 좋았다”고 진술했다. 소년원에서 만난 친구들은 최씨의 욱하는 성격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최씨도 이광술씨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들에 대해 “그들은 친구도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최씨가 평생을 함께 보낸 것은 이들이 전부였다. 판결문과 검찰 조사에서 최씨의 범행에 함께 등장하거나 최씨가 언급했던 인물들은 예전에 소년원, 혹은 교도소에서 만난 인연이 대부분이었다. 9월22일 경남 밀양에서 검거되기 전에 경북 청도에서 만나 도움을 받으려 했던 지인 역시 1980년 대구교도소, 1992년 전주교도소 등지에서 알았던 형님이었고, 카바레를 함께 다니던 형은 대구 서남신시장의 상인 박아무개(53)씨 살해 혐의로 붙잡혔다. 익숙한 환경이 잘못된 습관에 관용을 실어줬다. 누군가 감옥에 가면 서로 남은 가족들을 챙겨줬다. 초등학교 5학년 중퇴와 23년의 수감생활이 최씨에게 사회 안에서 관계를 맺고 적응해가는 시간을 충분히 경험하게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뿐이었다.

그는 과연 ‘갱생’할 수 있을까

진행중인 현재 재판보다 재판 이후의 삶이 중요했다. 1심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주목할 부분은 상습적으로 해오던 절도를 끊을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반성하시나요?”

“예, 뭐….”

올 2월 순천교도소를 출소한 최씨는 지인들에게 새 삶의 의지를 열심히 내비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리 쉽지 않아 보였다. 경찰에 대한 피해의식이 많았다. 계획적 범행이 아닌 도주 과정에서의 우발적 범행이 많았다고 하지만 이 역시 그가 감당할 몫이었다. 검찰 조사를 보면 최씨 역시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무너졌던 순간을 진술했다.

“이씨(여자친구)와 멸치장사를 하는 등 5일장을 돌아다니며 착한 짓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사건 이후) 여자친구 집에 경찰이 급습해 도망다니면서 무너졌습니다. 거기서 무너져서 마트에서 탑차를 훔치고… 하지만 계획적으로 남의 집에 침입하거나 마음먹은 적 없습니다. 남의 물건에 손 안 대려 노력 많이 했습니다… 저는 밥 한끼 못 사먹는 빈곤한 생활을 했기에 검사님께서 생각하시는 만큼 큰 룰의 범죄는 아닌 걸로 봐주십시오.”

10분의 짧은 면회가 끝났다. 문을 열고 나서는 기자에게 최씨는 똑같은 말을 했다. 검고 깊은 눈에 진실함 이상의 억울함과 간절함이 느껴졌다.

“이제껏 살면서 사람 해친 적 없고요. 강도질한 적 없고요. (가진 것이) 없어가지고 남의 것에 손댄 적은 있다 하지만 안 한 걸 했다고 하니까 심적인 고통은 큽니다. 찾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최씨는 그의 바람대로 평범하게 ‘갱생’할 수 있을까. 면회를 마치고 구치소 밖을 걸어 내려가는 길, 구치소 밖에는 세밑 매서운 칼바람이 불었다. 최씨 본인이 가장 먼저 자신의 삶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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