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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09 21:42 수정 : 2012.04.18 11:07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와 공천심사위원회 위원들이 지난달 6일 오후 국회에서 첫 회의를 하기에 앞서 손을 맞잡아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박기춘, 최영희, 문미란, 김호기, 도종환 위원, 한 대표, 강철규 위원장, 조은, 최영애, 조선희, 이남주, 조정식 위원.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토요판] 르포
조선희 민주통합당 공심위원의 한달

▶ 민주통합당 공천혁신의 수위에 관해 말들이 많다. 그동안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 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진 것일까? 위원 중 한 명인 조선희(52)씨에게 내부 사정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는 일종의 르포 형식으로, 한달간의 공심위 내부 활동을 담은 장문의 글을 써 보내주었다. 그는 “거두절미하고 비판당하는 부분에 대해 최소한의 진정성과 전후관계는 밝히는 게 온당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해석은 독자들의 몫이다. 조선희 위원은 <한겨레> 기자와 <씨네21> 편집장, 영상자료원장을 지냈으며 <열정과 불안> 등을 낸 소설가이다.

지난 2월6일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 첫 회의를 위해 차를 몰고 가면서 문성근씨를 떠올렸다. 1980년 내란음모사건 재판 때 필기와 녹음이 금지된 법정에서 그는 김대중의 증언을 바깥세상에 알리기 위해 발언 내용을 하나하나 필사적으로 기억에 담으면서 자신의 나쁜 머리를 탓했다고 했다. 지금껏 나는 그저 건전한 시민으로서 선거날에는 투표장에 가고, 서울시장 민주당 후보경선 때는 선거인단에 당첨돼 장충체육관에 갔고,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선거 때는 모바일투표에 참가해서 두명의 후보에게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이번 일은 조금 더 적극적인 정치행위이고 이른바 2013년 체제로 가는 2012년 양대 선거의 하나에 깊이 개입하는 일이었다. 지난 2년 동안 간간이 사교와 유흥을 위해 외출하는 이외에는 꼼짝없이 집에 틀어박혀 1920~50년대 한국 현대사를 무대로 한 장편소설을 쓰던 나는 역사책의 책갈피 속을 헤집고 다니느라 일주일씩 신문을 거들떠보지도 않기 예사였고 ‘닥치고 정치’ 정신에 입각해 공심위원 제의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잘해내야 한다는 부담과 내 어리석음으로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긴장 때문에 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공심위 첫날 문성근씨를 생각하면서 나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이름으로 딱 한달만 내게 명석함과 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했다.

공천혁명이라는 캐치프레이즈

공심위 첫 회의에서 한명숙 대표는 “공천혁명을 이뤄달라”고 했다. 한 대표와 함께 보도진이 나간 다음 15명의 공심위원들이 돌아가면서 자기소개와 인사말을 할 때 나는 “저는 원래 온건한 사람이지만 한 대표 말씀은 혁명가가 되라는 뜻으로 알아듣겠다”고 말했다. 그저 정치적 수사만이 아니라 첫발을 떼는 순간의 의욕이었고 진심이기도 했다. 당내에서도 언론에서도 새누리당에서도 사방에서 온통 ‘공천혁명’, ‘혁신공천’이었다. 정치권을 오래 취재해온 옛 신문사 동료를 만났더니 그는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었다. “민주통합당은 공천혁명이 쉽지 않다. 새로운 인물을 대거 영입하는 데 성공하는 것 같지 않고 새누리당 절반밖에 안 되는 의석을 가지고 현역 물갈이도 쉽지가 않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할 뿐이지 섣불리 국민의 기대치를 높여놓는 것은 위험하다”는 이야기였다.

공천혁신에 관한 경쟁이라면 이번 19대 총선에선 새누리당에 비해 민주통합당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국회 과반의석을 가진 새누리당은 어차피 이번 공천에서 현역의원들을 대폭 털어내고 갈 수밖에 없다. 4년 전 18대 총선 때와는 서로 입장이 뒤바뀐 것이다. 2004년 탄핵총선으로 거대 여당이 된 열린우리당 현역의원들은 2008년 총선 때 박재승 위원장의 공심위에 의해 무자비하게 칼질을 당했다. 그처럼 새누리당은 이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아래 졸지에 주류에서 비주류로 몰린 친이계 의원들만 대충 정리해도 공천혁신이라 칭송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민주통합당 사람들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오세훈 시장의 자가발전 조기 퇴진과 야권연대 시장선거의 승리로 폭발한 피플파워는 민주통합당 출범으로 한층 게이지를 높인 다음 1월15일 민주당 지도부 경선에서 정점을 찍고 있었고 그 바람을 총선까지 몰아가야 하는 민주당 지도부 입장에선 한껏 부풀어오른 대중 정서에 걸맞게 발언의 톤을 높여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물론 강철규 위원장도 알고 있었다. 그는 첫주에 연 기자간담회에서 “포지티브 공천”, “희망공천”을 이야기했다. 그는 “누구를 잘라낸다는 쪽보다는 당의 비전인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 그리고 새로운 정치를 구현할 수 있는 좋은 인물을 뽑겠다”며 “그런 분들이 후보등록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간사라는 이유로 간담회에 참석했는데 기자들은 “희망공천”이라는 말에 별로 반응하지 않았다. “혁신공천”보다 매력 없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기자들은 현역의원들이 얼마나 물갈이될지에 더 관심이 있었다.

첫 일주일 동안 공심위는 공천심사의 기준과 방법에 대해 토론했다. 우리가 심사 배점에서 지역여론조사와 적합도 평가가 들어간 통칭 ‘당선가능성’의 배점을 40점에서 30점으로 낮추고 정체성 배점을 10점에서 20점으로 높이기로 결정하자 다음날 신문에 민주당은 당선 가능성보다 정체성을 더 중시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실렸고 그다음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찬성한 의원들을 배제하기로 했다는 추측보도들이 등장했다.

245개 선거구 후보등록 713명
주어진 시간은 많아야 3주
셀 수 없이 많은 지네의 발에
신발을 신기는 일과 같았다
오 부모님, 내게 명석함을 주소서

하루 12시간의 면접과 심사

공심위 심사는 영남부터, 그리고 전국 245개 선거구 가운데 후보자가 한명밖에 없는 52개 지역부터 시작됐다. 오전 10시에 시작하면 밤 10시 넘어 끝났고 집에 가서 잠만 자고 나와서 또 심사가 시작됐다. 토요일, 일요일도 없었다. 4월11일 선거일로부터 역산해서 선거운동 기간, 후보등록 기간, 그리고 당내 경선 기간을 빼면 2주일, 늦어도 3주일에 면접심사를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었다. 후보자 한사람당 면접시간이 5분씩 주어졌고 대개 한 지역구의 여러 후보들이 함께 들어오면 각기 1분씩 스피치를 하고 질의응답을 하는 식이다. 10분, 20분 단위로 한 지역구가 지나가고 여러 가지 고려가 필요한 지역구들은 뒤로 밀렸다. 이것은 마치 셀 수 없이 많은 발을 움직이며 걸어가는 지네의 발에 신발을 신기는 일과 같았다.

지역별 후보 명단을 보면 영호남의 극명한 대비, 그 현격한 지역구도는 한숨이 나는 것이었다. 민주통합당 후보로 등록한 사람은 모두 713명이었는데 호남이 31개 선거구에 124명인 데 비해 영남은 62개 선거구에 78명이었다. 그중에서도 대구·경북은 27개 지역에 후보는 21명이었으니 한명도 등록하지 않은 선거구도 많았다. 가까스로 경남 해안을 따라 마산·창원에서 울산까지 이어지는 진보의 해안벨트는 두가지 색깔로 무늬져 있다. 하나는 노동계급의 힘, 다른 하나는 노무현이 다녀간 흔적이었다. 부산에서 올라온 두 문씨, 문재인씨와 문성근씨가 면접심사장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액자가 걸려 있는 바로 아래 앉아 있는 모습은 뭉클했다. 퇴임하는 대통령을 따라 일가족이 봉하에 내려가서 마지막까지 노무현 대통령 곁을 지켰던, 지금은 노무현재단 일을 보면서 농사를 짓고 있는 청와대 비서관 출신 김경수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보정치의 토양이 척박한 경북지역에서 민주당 간판 아래 시민운동에 가까운 정당활동을 해온 이들이 가끔 감동을 주기도 했다. ‘번번이 떨어지면서 다시 또 출마한’ 낙선 경력이 다른 지역에서라면 감점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영남에선 ‘그 어려운 여건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당을 지켜온’ 노고가 된다.

영남지역에 대한 1차 공천 발표가 나간 다음날 영등포 민주당사 마당에서 첫번째 1인시위가 시작됐다. 야권연대지역으로 공천이 유보된 부산 영도의 후보 김비오씨였다. 2차, 3차 공천 발표가 나가자 시위자들은 점점 불어났다. 비닐천막이 등장하고 “한명숙 대표, 강철규 위원장은 사퇴하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그리고 어느날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지낸 이강철씨가 “임종석은 후보 자진사퇴하라. 선당후사!”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다.

수도권의 단수후보들 공천 발표가 나간 이래 임종석 사무총장이 공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의 초점이 되고 있었다. 그를 공천하기로 한 것은 공심위의 결정이었지만 공심위원들도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 못한 것은 아니었다.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형사범을 심사에서 배제할 수 있게 돼 있지만 무죄추정의 원칙이었고 임종석씨의 경우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상태라 일단 배제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 있는 후보라 공심위 입장에서는 본인이 다소 억울하더라도 불필요한 논란을 차단하려면 공천을 주지 않는 편이 쉬웠을 것이다. 그것이 실책이었다면 외부 심사위원들 책임이다. 원내 7명과 외부 7명과 위원장으로 구성되는 공심위에서 당 내부 사정이나 친소관계를 떠나 자유롭게 발언하고 원칙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 건 외부 심사위원들 몫이다. 하지만 임종석씨 대목에서 나는 한명숙 대표가 당권을 쥐고 팀을 짠 지 한달도 안 됐는데 일 좀 하게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다른 외부 심사위원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임종석 문제가 민주통합당 공천 전체의 명분을 위협할 정도로 확대되자 이것은 한 대표를 일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리더십을 흔드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임종석 이슈는 사무총장 임명의 파장과 공천 논란이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예상 이상으로 커졌다. 공심위는 원칙에 충실했을지언정 정치적으로는 둔감한 결정을 한 것이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에서 열린 공천심사 면접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심사기준과 원칙, 그리고 소문의 벽 속에서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바깥에서는 “구민주계 공심위원들이 친노를 다 날린다”거나 “친노세력이 구민주계를 학살하고 있다”거나 하는 상반된 소문들이 싸우고 있었다. 편의상 단수후보 등록 지역과 2인 후보 등록 지역부터 먼저 심사해서 발표하다 보니까 경선이 너무 없다, 현역의원들은 모두 단수공천이냐는 비판들이 나왔다. 실제로 수도권의 현역의원들 가운데 단수공천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서울·경기·인천의 지역구에선 결과적으로 최규식·강성종 두 의원이 사퇴하고 이석현·김희철·김영환·이종걸·이찬열 의원이 경선을 치르는 것 외에는 모두 단수공천을 받았다. 지난 18대 총선은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참패해 111석 가운데 26석밖에 얻지 못했으니 이 선거에서 살아남은 수도권 의원들은 대체로 경쟁력을 인정받은 셈이다. 이들은 대체로 지역 여론조사에서 지지율도 높았다. 이들 중 다섯은 다른 후보가 없어 자동으로 단수공천이 되었고 나머지 14명이 단수공천을 받은 것은 역시 심사 기준대로였다. 처음 심사 기준을 정할 때 단수후보의 기준은 100점 만점의 면접심사 점수에서 2위 후보와 30점 이상 벌어지거나 최고점이 20~24점 수준인 적합도조사에서 5점 이상 차이 나는 경우로 했다.

현역의원들은 의원들 간의 다면평가와 의정활동 평가를 참고했다. 사상 처음이라는 다면평가 방식에 대해 의원들은 저항했지만 결국 수용했다. 다면평가 기록은 철벽보안이 지켜졌고 접근권은 위원장에게만 허용됐다. 현역의원 면접이 끝나면 위원장은 양복 안주머니에서 다면평가 결과 봉투를 꺼내 점수를 읽어주고 도로 집어넣었다. 처음엔 다면평가를 극력 반대했던 한 원내 위원은 “이제 다면평가를 4년에 한번씩 하게 되었으니 의원들도 의정활동에 좀더 긴장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공심위는 15인 집단체제이고 위원장도 15분의 1의 지분으로 참여했다. 당 조직국의 실사조사 보고를 듣고 후보들이 써낸 각종 서류들을 읽고 면접을 한 뒤 때로는 짧고 때로는 긴 토론을 거친 뒤에 각기 낸 점수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심사가 이루어졌다. 컴퓨터에 의해 점수가 합산되고 나면 그것으로 점수가 확정되고 프로그램에 아무도 손을 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다만 호남지역에 대해서는 지역 특성을 고려해 별도의 심사 기준을 마련했다. 이 지역은 경선을 통한 공천을 기본원칙으로 했고 현역의원에 대해선 다면평가와 의정활동 평가, 지역 여론조사에서의 교체지수를 참고했다. “그렇다고 다른 당을 찍을 수는 없고”라고 말하는 호남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물, 또다른 선택권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물갈이 공천이 불가피했다. 그 물갈이의 수위가 어느 정도가 될 것이냐는 공심위 시작부터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런 만큼 심사과정도 특별해서 호남지역에 대한 사흘간 심사의 마지막날 공심위는 장소를 영등포 모처로 옮기고 핸드폰을 모두 수거해 가 외부와의 통신을 차단한 상태에서 하루 종일 회의를 했다. 현역의원 6명의 탈락이 결정됐을 때 공심위에서 유일한 호남지역 현역의원인 우윤근 위원이 몹시 곤혹스러워했다. 그는 “앞으로 한달 동안은 집에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했다.

사실무근의 오보들도 난무했지만 여론의 지적은 뼈아픈 부분들도 많았고 공심위원들은 한편으로 비판들을 귀담아듣고 대중의 기대가 무엇인가에 안테나를 세우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달아오른 선거판에서 팝콘처럼 튀겨지는 헛소문과 악소문들 가운데서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야권연대 협상을 가까이에서 엿보니 민주통합당이 나름대로 애쓰는데도 바깥에선 “오만하다”고 집중포화를 맞고 있었다. 강철규 위원장은 회의를 시작할 때 자주 “자, 그럼에도 우리는 원칙대로 갑시다”라고 말하곤 했다.

공심위에서 바라보니 당 지도부의 처지 역시 마찬가지로 보였다. 야권통합해서 당이 생겨난 지 두달밖에 안 되었고 새로 구성된 최고위원회가 팀워크를 만들어가느라 진땀 빼고 있었다. 민주통합당은 아직 짓고 있는 집이었고 내부 공사 중인 건물에 사람들이 모여서 다가오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강철규 위원장은 수십년 전 노스웨스턴대학 유학 시절 이야기를 했다. 당시 미국 시카고의 시장과 의회가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대립했는데 건물도 지어지다 말고 다리도 놓다 말고 해서 군사독재 시절을 겪은 그로서는 요령부득이었는데 미국 친구들이 “이것이 민주주의다”라고 말하더라고 했다. 어쩌면, 강력한 대선후보가 당권을 쥐고 비상체제로 운영하는 새누리당의 구조가 이처럼 숨 가쁜 전쟁판에서는 더 근사하게 작동할지 모른다. 리더십이 아니면 파시즘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인가.

임종석 이슈는 공천 전체의
명분을 위협할 정도로 커졌다
대표의 리더십도 위협했다
원칙에 충실했을지언정
정치적으로 둔감한 결정이었다

새 인물을 발견하는 즐거움과
원로들의 쓸쓸한 퇴장…
외부위원은 대의·명분 중시했고
내부위원은 당을 떠밀고 가는
사람들을 챙기고 싶어했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

끊임없이 생명이 태어나고 또 소멸해가는 이 세상처럼 한차례 선거가 치러지고 나면 정치권에도 많은 새로운 얼굴들이 나타나고 그만큼 많은 낯익은 얼굴들이 사라진다. 700명이 넘는 후보들을 만나는 동안 뜻밖의 새로운 얼굴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인천에서 후보로 나온 안귀옥 변호사도 그중 한사람이었다. 공장 노동자로 십대를 보낸 그는 교복 입은 여고생들이 그렇게 부러웠다고 한다. 그녀는 스물일곱살에 마침내 대학생이 되었고 결혼해서 세 아이를 키우면서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되었다. 공부 못 한 한이 깊어 서른살에서 쉰살에 이르는 동안 중국문학, 법학, 심리치료상담, 보건학 등으로 네군데 대학과 대학원을 다녔다. 그는 일하면서 전문지식이 필요하다 싶으면 바로 학교에 들어갔다고 했다. 아직도 공부하고 싶은 게 있냐고 했더니 다시 대학원을 간다면 정치학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일산에서 후보로 나온 나우콤 대표 문용식씨는 이름으로만 알던 사람이었다. 민주당 인터넷소통위원회 위원장으로 서울시장 후보와 최고위원 선거에서 모바일경선 시스템을 고안한 인물이라 했다. 나는 그가 20대에 세차례에 걸쳐 시국사건으로 투옥되고 5년 남짓을 감옥에서 보냈다는 사실은 그의 이력서에서 알게 되었다. 감옥에서 나오니 나이는 많고 뽑아주는 기업체는 없고 그래서 호구지책으로 벤처기업을 시작했다 한다. 나우누리로 출발한 나우콤은 아프리카티브이(TV)로 촛불집회를 생중계했고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에는 서버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 한편에서 우리는 낯익은 원로들의 쓸쓸한 퇴장을 목도해야 했다. 원로 정치인들은 스스로 불출마를 결정할 때 “아름다운 퇴장”이지만 공천에서 탈락하거나 선거에서 낙선하면 강제은퇴를 당하게 된다. 호남에서 공천탈락한 현역의원 가운데 강봉균 의원은 강철규 위원장과 대학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로 알려졌다. 면접 끄트머리에 강철규 위원장은 “자, 질문 더 없으십니까? 그러면 제가 강봉균 후보께 한가지 묻겠습니다. 장관도 하셨고 국회의원도 하셨는데 이제 젊은 후배들에게 물려주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하고 물었고 강봉균 의원은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요지의 대답을 했다. 질문하는 위원장이나 답변하는 후보나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공심위에선 토론으로 의견조정이 되지 않아 네차례 표결로 갔는데 그 하나가 이부영 전 의원의 자격 문제였다. 한 내부 공심위원은 “90년대 이후 젊은 세대는 민주화운동을 해도 편하게 했고 청와대 행정관 비서관 경력 하나로도 막 밀고 올라오는데 군사정권 시대에 감옥 살고 고문당하면서 목숨 걸고 민주화운동 하던 분들을 빗자루 쓸어내듯 하는 게 과연 옳은가. 최소한 경선을 치를 수는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옹호 발언을 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공천 발표가 나갈 때마다 시위자들은 점점 불어났다. 민주통합당 총선 예비후보들의 모임인 국민경선쟁취 민주연대 회원들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임종석 사무총장 등의 자진 사퇴와 단수공천된 지역의 국민경선 등을 촉구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가장 감당하기 힘든 건 욕먹기

지역구들에서 경선이 끝나고 지도부의 전략공천이 마무리되고 야권연대 결과가 나오면 공천의 전체구도가 잡히겠지만 중간 결과를 자평해보자면 공천혁신은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였다.

많은 지역에서 인위적인, 또는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가 이루어졌고 수도권에서 40~50대 여성군단의 출현은 괄목상대할 만하다. 박영선·이미경·추미애 등 현역의원 외에도 서영교·유승희·차영·전혜숙·김영주·김현미·유은혜·김상희·안귀옥이 단수공천, 김진애·김유정이 경선후보가 되었다. 공심위에서 원내와 원외의 갈등도 많았지만 여성 후보들을 전진배치하는 데는 대체로 의기투합했다. 민주당 후보 713명 가운데 여성이 49명, 6.9%라 이번 총선을 앞두고 생겨난 여성 15% 의무공천 원칙을 달성하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지만 첫술은 뜬 셈이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의 대의를 공천으로 실천하는 것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당이 재벌개혁의 간판으로 내세우고 있는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 위원장 유종일씨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마땅히 단수공천 또는 전략공천 대상이 됐어야 했다. 하지만 그가 후보등록한 전주와 호남의 여론, 다른 후보들에 대한 배려 등을 따지다가 공심위는 속수무책이 되었고 그를 비례대표 후보로 돌리거나 하는 식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지만 최고위는 전략공천 지역을 물색하면서 뾰족한 결정을 내놓지 못했다. 나우콤 대표 문용식씨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말하자면 이야기가 되는 인물이고 정치판에선 산뜻한 뉴페이스인데다 철학이 분명한 자수성가형 중소기업 경영인이라 당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의 또다른 얼굴이 될 만했다. 그 역시 전략적인 고려가 필요한 대상이었고 공심위는 고심하느라 그의 지역 심사를 유보하고 또 유보했지만 결국 얽히고설킨 당내 이해관계 속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3인 경선의 싸움을 치러야 하게 되었다. 사무금융노련 위원장 출신으로 한국노동경제연구원 원장인 곽태원씨 역시 여섯 후보가 각축하는 서울 강서을에서 김효석 전 의원과 오훈 당 지역위원장에 맞서 3인 경선의 벽을 넘어야 한다. 김진표 대표의 문제에 대해서는 더이상 할 말이 없다.

백조는 우아하게 물 위에 떠 있지만 물 밑에선 죽어라고 다리를 젓고 있다고 하던가. 당이라는 것도 바깥에서 그리고 멀리서 보면 대의와 명분의 자태를 하고 있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그것을 떠밀고 가는 무수한 사람들의 팔다리가 보인다. 공심위에서 외부 심사위원들은 대의와 명분의 전략적 선택을 하고 싶어했고 내부 심사위원들은 당 조직을 떠밀고 가는 사람들을 챙기고 싶어했다. 무수한 언쟁과 타협 속에서 어렵게 어렵게 심사가 진행됐다. 경제민주화의 대의는 공천에서 실천하지 못한 바로 그만큼 당 지도부의 숙제로 남겨질 것이다.

선거판은 전쟁판이라더니 실제로 전쟁터란 이런 것이지 싶다. 다른 생각, 다른 이해들이 날것 그대로 부딪치는 현장, 총 대신 말이라는 무기에 의해 생목숨이 아니라 정치생명이 죽고 사는 현장인 것이다. 1년 동안 내 아이폰에 들어온 것의 10배가 넘을 문자와 전화가 한달 사이에 폭주했다. 문자의 절반은 누가 훌륭하다거나 누가 나쁘다거나, 또는 내가 옳다거나 그가 틀렸다거나 하는 내용이었다. 인간은 양과 늑대가 함께 거처하는 동굴이라는데 아마 정치판도 그럴 것이다. 공심위원인 도종환 시인은 가끔 염증이 느껴진다 했고 혼자 영등포 시장에 나가 소주를 마시면서 따로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공심위에 들어와 있는 원내의원들은 저녁회의가 일찍 끝나면 지역구로 달려갔고 일요일 오후 2시에 시작하는 회의 이전에 통상 대여섯군데는 들러서 왔다. 와이에스(YS)가 “머리는 빌려도 체력은 못 빌린다”는 명언을 했다지만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일지 모른다. 나도 체력은 그럭저럭 되는 편이라 심야까지 이어지는 회의는 견딜 수 있었지만 가장 감당하기 힘든 것은 욕먹는 일이었다. 원래부터 심약한 나는 공심위 시작한 지 2주쯤부터 신문을 들춰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나도 기자 출신이지만 정치면 기사들을 보면 구타가 습관이 된 폭력남편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한겨레신문에 공심위 내부 정보가 기사화되었을 때 나와 무관한 일이어도 매번 곤혹스러웠다.

나는 정치인들이 폭풍 같은 사건사고들과 살인적인 일정들을 견뎌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무지막지한 욕을 먹으면서도 정신분열에 걸리지 않는 평상심이 새삼 존경스럽다. 정치권력이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을 보상할 만큼의 엔도르핀을 생성해내는 것일까. 왕년에 국회의원을 지내고 다시 선거전쟁에 뛰어드는 이들을 보면 “국회의원은 석달 고생하면 4년이 편하다잖아”라는 누군가의 말이 사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모님의 이름으로 간구했지만 평소에 없던 명석함과 분별력이 갑자기 솟아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공심위가 잘한 일도 있고 못한 일도 있겠지만 이제 우리에겐 결과를 기다리는 일만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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