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액물’이라는 속어가 있다. 국어사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세간에서는 흔히 쓰는 단어다. 뜻을 꼭 집어서 말하기는 어려운데 대략 ‘능력과 수완이 좋고, 노련하며, 교활하고, 악착같으며, 상대하기 까다로운 인물’이라는 뜻이 함축돼 있다. 연일 폭로전을 벌이고 있는 김태우 수사관을 보면서 이 단어가 문득 머리에 떠오른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권을 넘나들며 청와대 근무를 할 정도의 능력, 비위 행위로 감찰 대상이 된 자신을 일약 공익제보자의 반열에 올려놓는 수완, 능수능란한 언론플레이, 자신이 가진 무기 활용의 완급을 조절해가며 청와대를 궁지에 몰아넣는 모습 등이 액물의 전형을 보여준다. 청와대가 김 수사관 같은 고약한 인물을 복병으로 마주친 것은 크나큰 불운이다. 그리고 이 싸움은 청와대가 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개 6급 검찰 수사관 한 명을 상대로 청와대가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청와대는 치명상을 입었다. 김 수사관은 자신이 저지른 법률 위반 행위의 죄과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겠지만 그것으로 청와대가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이 어둡고도 끈끈한 늪에서 헤어나올 길은 매우 막막해 보인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제도는 태생적으로 위험한 건축물이다. 정보, 첩보, 내사 등 다루는 사안 자체가 인화물질투성이다. 게다가 한번 사고가 나면 불길이 순식간에 번지는 위험한 구조다. 최소한의 방화벽도 없기 때문에 행정관에서 발화한 불길이 해당 비서관-민정수석-비서실장-대통령까지 한꺼번에 번지게 돼 있다. 김 수사관 같은 위험천만한 인물에게 성냥을 안겨준 것이 잘못이지만 따지고 보면 안전사고의 위험은 이미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던 셈이다. 사건이 일어난 뒤의 청와대 대응도 어설프기 짝이 없다. 이런 종류의 사고에는 한발 앞선 신속한 대응, 불길이 번질 지점에 대한 선제적 조처,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 대응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는 불길이 솟으면 허겁지겁 쫓아가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그 물에는 ‘미꾸라지’ 등의 잘못된 어휘선택 ‘기름’까지 섞여 있어 화재 규모를 더 키웠다.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드는 근본적 의문은 과연 특별감찰반 제도가 꼭 필요한가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공직자나 공공기관 책임자 등에 대한 청와대의 감찰 기능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 청와대에 이런 기구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공직사회에 주는 경각심 등 심리적 효과도 상당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득에 비해 치명적 위험의 실이 너무 크다. 이 정권에 민간인 사찰의 유전자가 없다는 말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이런 기구 종사자들한테는 끝없는 정보 욕구의 유전자가 들어 있기 마련이다. 김 수사관이 일개 수사관 신분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수차례 독대한 것에서도 특감반의 권력기구화 위험성은 확인된다. 김태우 수사관이 폭로한 내용을 훑어봐도 이 기구의 활동이 국가운영에 그토록 필수불가결한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이미 언론에 난 것을 짜깁기한 것도 있고, 국회에서 문제가 된 것을 뒤늦게 새로운 사실인 것처럼 둔갑시킨 것도 있다. 정책 수립을 위한 민심 동향 파악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과연 특감반원 몇 사람이 파악하는 수준의 민심 동향이 제대로 된 민심의 현주소일까. 따라서 특별감찰반은 활동 개선이 아니라 폐지 쪽이 차라리 옳다. 이미 현실적으로도 이번 사건의 여파로 특감반의 활동에는 적신호가 켜졌다. 정 필요하다면 대통령 친인척 관리와 청와대 내부 감찰 기능을 빼고는 없애는 게 상책이다. 특별감찰반을 없애느냐 마느냐는 사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이 사건을 대하는 청와대의 마음가짐과 태도다. 지금과 같은 미온적이고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특감반을 폐지하는 식의 결단력과 과단성 있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역대 정권을 되돌아보면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의 반응은 늘 비슷했다.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 ‘조처를 잘못 취하면 스스로 과오를 인정하는 꼴이다’는 등의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미봉책으로 일관했고, 그것이 더 화를 키웠다. 지금 정권도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화재 때 불을 끄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불에 탈 만한 가연성 연료를 없애고, 산소를 차단하는 것이다. 이번 특별감찰반 사건에서 불이 계속 타오르게 하는 연료들은 무엇이고, 무엇이 산소 역할을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해답이 의외로 간단히 나올 수도 있다. kjg@hani.co.kr
칼럼 |
[김종구 칼럼] ‘특감반 폐지’ 등의 결단이 필요하다 |
편집인 ‘액물’이라는 속어가 있다. 국어사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세간에서는 흔히 쓰는 단어다. 뜻을 꼭 집어서 말하기는 어려운데 대략 ‘능력과 수완이 좋고, 노련하며, 교활하고, 악착같으며, 상대하기 까다로운 인물’이라는 뜻이 함축돼 있다. 연일 폭로전을 벌이고 있는 김태우 수사관을 보면서 이 단어가 문득 머리에 떠오른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권을 넘나들며 청와대 근무를 할 정도의 능력, 비위 행위로 감찰 대상이 된 자신을 일약 공익제보자의 반열에 올려놓는 수완, 능수능란한 언론플레이, 자신이 가진 무기 활용의 완급을 조절해가며 청와대를 궁지에 몰아넣는 모습 등이 액물의 전형을 보여준다. 청와대가 김 수사관 같은 고약한 인물을 복병으로 마주친 것은 크나큰 불운이다. 그리고 이 싸움은 청와대가 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개 6급 검찰 수사관 한 명을 상대로 청와대가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청와대는 치명상을 입었다. 김 수사관은 자신이 저지른 법률 위반 행위의 죄과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겠지만 그것으로 청와대가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이 어둡고도 끈끈한 늪에서 헤어나올 길은 매우 막막해 보인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제도는 태생적으로 위험한 건축물이다. 정보, 첩보, 내사 등 다루는 사안 자체가 인화물질투성이다. 게다가 한번 사고가 나면 불길이 순식간에 번지는 위험한 구조다. 최소한의 방화벽도 없기 때문에 행정관에서 발화한 불길이 해당 비서관-민정수석-비서실장-대통령까지 한꺼번에 번지게 돼 있다. 김 수사관 같은 위험천만한 인물에게 성냥을 안겨준 것이 잘못이지만 따지고 보면 안전사고의 위험은 이미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던 셈이다. 사건이 일어난 뒤의 청와대 대응도 어설프기 짝이 없다. 이런 종류의 사고에는 한발 앞선 신속한 대응, 불길이 번질 지점에 대한 선제적 조처,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 대응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는 불길이 솟으면 허겁지겁 쫓아가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그 물에는 ‘미꾸라지’ 등의 잘못된 어휘선택 ‘기름’까지 섞여 있어 화재 규모를 더 키웠다.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드는 근본적 의문은 과연 특별감찰반 제도가 꼭 필요한가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공직자나 공공기관 책임자 등에 대한 청와대의 감찰 기능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 청와대에 이런 기구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공직사회에 주는 경각심 등 심리적 효과도 상당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득에 비해 치명적 위험의 실이 너무 크다. 이 정권에 민간인 사찰의 유전자가 없다는 말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이런 기구 종사자들한테는 끝없는 정보 욕구의 유전자가 들어 있기 마련이다. 김 수사관이 일개 수사관 신분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수차례 독대한 것에서도 특감반의 권력기구화 위험성은 확인된다. 김태우 수사관이 폭로한 내용을 훑어봐도 이 기구의 활동이 국가운영에 그토록 필수불가결한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이미 언론에 난 것을 짜깁기한 것도 있고, 국회에서 문제가 된 것을 뒤늦게 새로운 사실인 것처럼 둔갑시킨 것도 있다. 정책 수립을 위한 민심 동향 파악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과연 특감반원 몇 사람이 파악하는 수준의 민심 동향이 제대로 된 민심의 현주소일까. 따라서 특별감찰반은 활동 개선이 아니라 폐지 쪽이 차라리 옳다. 이미 현실적으로도 이번 사건의 여파로 특감반의 활동에는 적신호가 켜졌다. 정 필요하다면 대통령 친인척 관리와 청와대 내부 감찰 기능을 빼고는 없애는 게 상책이다. 특별감찰반을 없애느냐 마느냐는 사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이 사건을 대하는 청와대의 마음가짐과 태도다. 지금과 같은 미온적이고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특감반을 폐지하는 식의 결단력과 과단성 있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역대 정권을 되돌아보면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의 반응은 늘 비슷했다.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 ‘조처를 잘못 취하면 스스로 과오를 인정하는 꼴이다’는 등의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미봉책으로 일관했고, 그것이 더 화를 키웠다. 지금 정권도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화재 때 불을 끄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불에 탈 만한 가연성 연료를 없애고, 산소를 차단하는 것이다. 이번 특별감찰반 사건에서 불이 계속 타오르게 하는 연료들은 무엇이고, 무엇이 산소 역할을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해답이 의외로 간단히 나올 수도 있다.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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