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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15 19:24 수정 : 2013.05.16 04:20

김종구 논설위원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이남기 홍보수석과 윤 전 대변인 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지켜보며 불현듯 떠오르는 게 박정희 정권 말기의 김재규-차지철 갈등이다. 권력 내부의 보이지 않는 암투와 반목, 갈등과 불화가 무척 닮은꼴이다. 관련된 인물들이 정권에서 차지하는 위상 등은 큰 차이가 있지만 밑바탕의 본질은 너무나 비슷하다.

모든 사람한테 손가락질을 받는 인물을 대통령이 유달리 애지중지하며 중용한 것부터 빼다 박았다. 그들이 최고권력자의 총애를 믿고 기고만장 안하무인으로 날뛴 것도 똑같다. 직속 부하가 상관인 자신을 졸로 여기며 오만불손하게 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 수석의 심경은 어땠을까. “이따위 버러지 같은 놈이…”라는 말을 수없이 입안에서 삼켰을지도 모른다. “윤창중은 내 인생 최대의 악연이었다”는 말 속에서 이런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각하께서 이따위 버러지 같은 놈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정치가 제대로 되고 국민과 소통이 잘 되겠습니까.” 이런 식의 감정 토로는 지금도 유효할 것 같다.

윤창중씨는 누가 총으로 쏠 것도 없이 스스로 자폭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상흔은 넓고도 깊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전체가 국제적으로 톡톡히 망신을 당하며 박근혜 대통령은 심각한 정치적 상처를 입었다.

역사에 가정은 있을 수 없지만 고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미리 대처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차지철의 오만방자함은 곪을 대로 곪아 터진 정권 말기의 한 표상이었다. 지금 박 대통령이 맞닥뜨린 상황도 비슷하다. 윤창중씨의 어처구니없는 일탈은 박 대통령의 판단력 마비와 잘못된 조직 운용 등을 상징하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런 불상사가 정권 초기에 터져 나온 점이다. 앞으로 대처하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전화위복의 좋은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기대가 무색해진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애써 무시하는지 느슨하고 안이하기 짝이 없다. 후속 대응책으로 들고나온 것이 고작 홍보수석실 직원들에 대한 감찰, 대통령 해외순방 시 청와대 공직기강팀 동행 방침 따위다. 물론 직원들의 기강 확립은 중요하다. 하지만 아랫사람들의 기강 해이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비서실장과 수석 등 청와대 수뇌부의 판단력 부재와 업무에 임하는 태도다. 요즘 며칠간 청와대의 대응 과정을 보면 윤창중씨 행동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다. 여기에 국민보다 대통령을 더 무서워하는 왜곡된 충성심, 대통령한테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는 경직된 분위기, 컨트롤타워의 부재 등 지금의 청와대 조직은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엉망임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런데도 이런 본질적 문제들에 대한 수술은 외면한 채 상처에 그냥 반창고만 붙이고 지나가려 한다.

그 중심에는 박 대통령 본인이 있다. 이번 사태의 원인 제공자도 박 대통령이고 이를 해소할 사람도 바로 박 대통령인데 변화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대국민 사과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는 애초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겉으로 표현은 하지 못해도 속으로는 이번 사태의 의미를 엄중히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지금 윤창중씨를 발탁한 것에 대해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구나’라고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은 게 큰 불찰이었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을 것 같다. 이는 굉장히 다른 차원이다.

여권 핵심에서는 슬슬 언론이 너무 호들갑을 떤다는 식의 말도 꺼내기 시작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국익을 생각해야 한다”며 언론 보도에 유감을 표명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번 사건에 대한 언론의 진단과 처방을 보면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큰 차이가 없다. 지금 박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이런 지적 사항들을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어떻게 하면 조직을 환골탈태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지만 아무래도 기대 난망인 듯하다. 더 큰 비극이 잉태되고 있다는 불길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윤창중 성추행’과 박근혜 독선 인사 [한겨레캐스트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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