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4.29 19:25
수정 : 2013.04.2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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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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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간의 화제는 역시 조용필인 모양이다. 엊그제 친한 친구들 몇 명이 모여 저녁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도 조용필의 귀환이 화제로 등장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발표된 해인 1975년에 고등학교 3학년이었으니 조용필의 노래와 함께 40년 가까이 살아온 친구들인 셈이다. 답답한 현실에서 속절없이 나이를 먹어가는 세대인 탓인지 조용필의 파격적 변신에서 받은 감동은 더욱 큰 듯했다.
“조용필은 확실히 단순한 엔터테이너를 벗어나는 사람이야. 그의 노래에는 시대의 고통과 고민이 담겨 있거든. 배호의 노래가 빗물, 안개, 눈물의 노래이고, 이미자가 여자, 이별의 노래라면 정상급 가수들 중에서는 조용필과 송창식이 거의 유일하게 시대가 담긴 노래를 불렀다고 봐.”
한 친구의 이런 ‘조용필론’에 다른 친구가 반론을 제기했다. “시대의 고통과 고민은 너무 과한 평가인 듯한데. 끊임없는 변신과 노래에 대한 열정이야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의 노래에 시대를 대입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아.” 그의 현실 참여와 시대에 대한 발언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불만의 표시였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못 찾겠다 꾀꼬리’가 전두환 정권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는지를 놓고 가벼운 옥신각신이 오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조용필이 지난 세월 다양한 패턴의 노래를 통해 우리 사회의 분노, 좌절, 절망을 감싸며 사람들의 고단함과 아픔을 위무해온 점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이번에 새로 내놓은 ‘헬로’ ‘바운스’ 등을 두고도 이런저런 감상평이 나왔다. “예전 조용필의 노래에서는 절규와 피가 묻어났어. 그런데 이번에 나온 새 노래들은 너무 둥글둥글해.” “나쁘게 말하면 시대의 편승이랄 수 있지. 그렇지만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어 자신의 음악성에 접목시킨 것이 바로 뛰어난 능력이지.” “노래 제목을 영어로 붙이고 랩까지 시도한 것도 대단한 파격이야. 지금까지 쌓은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위험도 있는데 그런 결심을 한 것부터가 대단해.” “우리처럼 소외돼 가는 세대들한테 큰 자극을 준 것은 분명하잖아. ‘나도 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떨쳐 일어나라고 말이야.”
조용필 노래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 끝에 한 친구가 조용필 콘서트 공짜 표를 구하려다 실패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내와 함께 조용필 공연을 한번 가려다가 마침 잘 아는 후배 중에 조용필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공짜 표를 부탁했어. 그랬더니 ‘조용필씨가 공짜 표라면 치를 떤다’면서 대신 자기가 표를 사서 주겠다고 하더군. 그래서 내 돈을 내고 샀지.” 한바탕 웃음이 터져나왔다. 조용필이 콘서트 무대만을 고집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공짜 표를 극도로 혐오한다는 것은 대부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공짜 표 이야기가 나오면서 갑자기 대화가 정치권에 대한 성토로 비화했다. “정치를 처음부터 공짜 표로 시작한 사람이 많다 보니 우리 정치가 이 모양이야. 떳떳하지 못하게 뒷거래들이나 하고 말이야.” “예전에 박원규라는 서예가가 개인전을 열면서 ‘하석 박원규의 개인전은 입장료를 받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지. 진짜 프로페셔널이라면 그 정도의 자부심은 있어야지. 그런데 지금의 정치인들한테는 그런 프로페셔널다운 자부심이 없는 것 같아.”
비판은 특히 민주당에 집중됐다. “그 사람들은 여전히 유권자의 공짜 표만 기대하는 것 같아. 그러니까 감동과 울림이 없지.” “민주당이야말로 조용필의 변신 노력을 본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를 읽고 돌파하며 세상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세대를 뛰어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잖아.” “조용필은 실버 세대의 존재의의를 증명했는데 민주당은 도대체 뭐야. 늙고 병들어 시들어가고 있으니….” 오랜 세월 야당의 변함없는 지지자들이었던 이 친구들의 마음은 이미 민주당의 귀환에 대한 기대마저 접어버린 듯했다.
“우리 노래방에 가서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나 한 곡조 뽑고 들어가자고.” 한 친구가 바람을 잡았으나 대부분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힘겨운 가장들의 처지라 나중을 기약하고 총총히 귀가의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래도 마음속에는 뭔가 희망이 약간 커진 듯한 느낌을 안고서.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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