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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1.28 19:27 수정 : 2013.01.29 14:50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구 칼럼] ‘밀봉 대통령-불청 총리’ 시대가 오는가

허를 찌르는 인사의 진가는 신선한 감동과 울림이 수반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단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데 머무는 수준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첫 국무총리 후보자로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지명한 것은 허를 찌르는 인사임에는 틀림없지만 감동을 수반한 인사가 아님도 분명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3년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뒤 기용한 첫 국무총리는 군사쿠데타에 다소 부정적이었던 최두선씨였다. 어수선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일종의 포용정책이었다. 첫 총리 기용만 놓고 보면 박 당선인은 아버지한테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과거 예를 보면 대법관 출신의 총리는 대부분 ‘임기 마지막-청문회 통과용’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김대중 정부 말기의 김석수 총리나 지금의 김황식 총리가 모두 그렇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는 총리 지명에 관한 한 ‘처음을 마지막처럼’ 시작하는 희한한 경우에 속한다. 게다가 김 후보자의 도덕성을 둘러싼 의혹이 연일 튀어나오면서 애초 기대했던 순조로운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마저 불투명하게 됐다.

‘등잔 밑 검증’의 결과는 앞으로 청문회 등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김 후보자한테 어른거리는 강한 불통의 이미지는 도덕적 흠결 의혹 이상으로 심각한 상태다. 김 후보자는 여러모로 ‘불청 총리’라고 이름 붙일 만하다. 그것은 단순히 귀가 약해 잘 듣지 못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일각에서는 일흔다섯의 고령 등을 들어 김 후보자의 총리 적격성에 물음표를 던지기도 하지만 생물학적 건강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인 것일 수 있다.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보청기를 끼면 어느 정도 해결될 문제지만 김 후보자한테 더 필요한 것은 귀 보청기가 아니라 가슴의 보청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김 후보자가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자주 써온 “요지가 뭐요” 등의 언어습관부터 그렇다. 일반 사회생활에서도 ‘요지가 뭐냐’는 말은 진정으로 상대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시비조 내지는 답변회피용으로 주로 쓰는 말이다. 실제 김 후보자는 이 말의 용법을 생생히 보여준다. 기자들이 질문의 요지를 자세히 부연 설명해도 돌아오는 것은 “내가 답변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꼭 설명해야 하나” 등의 퉁명스러운 대답뿐이다. 여기에다 ‘반말’까지 남발한다. 하기야 기자들 중에는 나이로 손자뻘도 있을 터이니 반말을 해도 무관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기자들은 엄연히 국민을 대표해서 그 자리에서 질문하고 답변을 요구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것을 분간하지 못하면 공인으로서 자격 부족이다. 공적인 자리에서 반말을 일삼는 사람치고 됨됨이가 훌륭한 사람도 별로 보지 못했다.

옛말에 ‘위로는 불경(不敬), 아래로는 불청(不聽)’이라는 말이 있다. 위로는 임금을 욕보이는 행동을 일삼고 아래로는 백성의 하소연을 아랑곳하지 않는 관리를 지칭하는 말이다. 김 후보자는 최소한 ‘위로 불경’은 아니다. 오히려 당선인의 그림자도 밟지 않으려는 공손함이 지극해서 탈이다. 그리고 어느 면에서는 ‘위로는 공손, 아래로는 불청’이 ‘불경·불청’보다 훨씬 나쁠 수 있다. 국민이 원하는 총리는 대통령에 대해서는 불경스러울 만큼 제 목소리를 내고 밑으로는 귀를 활짝 열고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인데 정반대로 바뀐 셈이다.

권위주의, 엄숙주의, 소통부족 등은 그동안 박 당선인의 문제점으로 지겹도록 지적돼온 사항들이다. 실제로 요즘 박 당선인이 주재하는 인수위 보고회의에서 참석자들이 당선인의 말을 필기하느라 바쁜 모습을 보면 마치 선생님 말씀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초등학생들이 연상된다. 조직 내부의 이런 딱딱함과 격식주의를 깨는 것이야말로 ‘관리형 총리’의 진정한 미덕이기도 하다. 김 후보자에게 그런 능력과 의사가 있는지는 매우 의문이다. 오히려 공무원들은 앞으로 ‘범접하기 어려운 대통령’과 ‘듣기 능력 부족 총리’의 이중고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른다.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잘 판단하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현명함의 으뜸이다. 물론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김 후보자가 왠지 나서지 않아야 할 때, 나서지 않을 장소에 나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관련 영상] '김용준 의혹', 사실이면 물러나야 옳다 (한겨레캐스트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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