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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18 19:56 수정 : 2012.03.18 22:51

FTA 깨어진 약속 ② 1% 대 99%

다국적 기업들 철수해도
안전망 없어 속수무책

지니계수도 10.8%↑
일자리정책, ISD 휘말려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에 사는 조지 패너(36)는 지난 15년간 자동차 제조공장을 아홉 군데나 옮겨다녔다. 처음에는 중소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기술을 익혀 다국적 기업으로 이직했고, 최근에는 공장들이 잇따라 문을 닫으면서 어쩔 수 없이 이직했다. 지난달 3일에는 아홉 번째 직장이자 세계 1위 중장비업체인 캐터필러가 런던의 디젤기관차 제조공장을 폐쇄했고, 패너는 동료 직원 450명과 길거리로 내몰리게 됐다.

캐터필러가 공장을 폐쇄한 이유는 임금 50% 삭감, 연금제도 폐지, 의료 혜택 축소 등의 새 근로조건을 캐나다 자동차산업노조가 받아들이지 않아서다. 이에 회사는 폐쇄한 기관차 제조공장을, 산업노조의 힘이 약한 미국 인디애나주로 옮길 계획이다. 회사의 경영 상황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다. 캐터필러는 지난해 49억달러(5조5200억원)의 이익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2010년(27억달러)에 견줘 83%나 늘어난 것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다. 기관차 제조공장 앞에서 캐터필러의 보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던 패너는 “온타리오주에서 일자리를 다시 구할 수 있을지 암담하다. 아내, 딸과 헤어져 석유 채굴을 하러 다른 주로 옮길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 이후 캐나다 사람들은 시장 경쟁 논리를 앞세우는 대기업에 대항하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플램버러 지역 주민들은 지하수를 지키겠다며 투자자-국가 소송(ISD)을 제기해 채석장 사업 인허가를 받아내려는 다국적 시멘트업체에 맞서고 나섰다. 캐나다 자동차산업노조(CAW) 제공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발효 후 캐나다 상위 1%는 경제적 이득을 얻었지만, 나머지 99%는 산업구조가 재편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학자인 짐 스탠퍼드는 “나프타의 ‘에너지 공유’ 정책에 따라 캐나다의 석유와 가스 등 천연자원이 미국으로 대거 수출됐다. 그래서 캐나다 달러 가치가 올라가고, 캐나다산 상품과 노동력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2000년에 미국 달러의 67% 수준이었던 캐나다 달러의 가치가 지난 10년간 폭등해 미화와 동등해졌고, 그사이에 57만개의 일자리가 제조업 부문에서 사라졌다. 반면, 대미 수출 증대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자원 부문에서 저숙련, 저임금 노동력을 흡수하고 있다.

고용이 불안해지면서 1920년대 이후 처음으로 캐나다의 소득 분배 상태가 악화됐다. 소득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10.8%나 상승해 2011년 현재 0.324를 기록했다. 선진국 가운데 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한 미국(0.378)보다는 낮은 수치지만, 불평등 진행 속도는 캐나다가 빠르다. 스탠퍼드는 “나프타가 발효될 때 정부는 승자와 패자가 생기겠지만 재분배로 균형을 맞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국과의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대기업이 법인세와 소득세를 삭감하라고 압박해 정부의 재정 수입이 줄었고, 덩달아 사회복지 지출도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나프타 발효 때 국내총생산(GDP)의 43%였던 재정 수입 규모는 지난해 38.2%로 떨어졌고, 정부 지출도 49.7%에서 43.2%로 감소했다. 고용보험부터 노인연금까지 사회보장제도가 전반적으로 축소됐다. 스티븐 클라크슨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정치학)는 “캐나다 같은 중소국이 세계 최강국과 경쟁 논리로 맞서서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정부의 산업 정책도 나프타에 어긋나는 ‘보호무역주의’라고 압박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물산과 한국전력이 70억 캐나다달러(약 8조원)를 투자해 캐나다 온타리오주 정부와 체결한 신재생에너지 개발사업이 투자자-국가 소송(ISD)에 휘말린 것이다. 삼성물산 등은 2016년까지 총 2500㎿ 규모의 세계 최대 풍력·태양광 발전 및 생산 복합단지를 온타리오주에 건설해 20년간 운영하기로 계약했다. 주 정부는 캐나다 현지 부품과 노동력을 25% 이상 의무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신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을 비싼 값에 사들이기로 했다. 이에 대해 미국 텍사스주 재생에너지 개발업체인 메사(MESA)파워그룹이 “나프타 위반”이라며 손해배상금 7억7500만 캐나다달러를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팀 캐리 자동차산업노조 런던지역 대표는 “예전에는 캐나다에 자동차를 판매하려면 타이어 등 일정 부품을 캐나다산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프타 위반이라서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호하고 기업의 탐욕을 제어할 정부 규제를 시행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토론토/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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