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지적장애 청소년 이재현(가명)군이 10일 서울 은평구 자택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왼쪽에 이군이 직접 그린 그림이 보인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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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학교폭력 시달린 지적장애 10대
일상적 대화조차 힘든 2급 장애3년간 괴롭힘 신고뒤 보복폭행
폭력남편과 이혼한 엄마도 아파
“가족 모두 심리치료 지원 필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간다. ‘무서운 친구들’과 마주칠까 겁이 나서다. 지난 10일 서울 은평구의 한 주택가에서 만난 이재현(가명·17)군의 운동화 뒤축은 너덜너덜 닳아 있었다. 친구들은 3년 전부터 같은 중학교 특수학급에 다니는 이군을 괴롭혔다. 고등학교 진학 이후에도 이군을 찾아와 폭행했다. 어머니 변아무개(61)씨는 그 일을 까맣게 몰랐다. 올해 초에야 아들의 머리에 든 멍을 봤다. 손등과 가슴팍에 새겨진 담뱃불 흉터도 봤다. 그 무렵 시작한 정신치료 상담에서 아들은 폭행 피해 사실을 그림으로 그렸다. 상담사는 이군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학교 친구 12명에게 괴롭힘을 당해왔다고 어머니 변씨에게 전했다. 이군은 어머니에게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이군은 일상적 대화조차 하기 힘든 지적장애 2급 장애인이다. 알아듣기 힘든 말을 혼자 중얼거릴 뿐 누군가와 말을 나누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전문 상담사가 아니라면 이군의 생각과 느낌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한글을 쓸 수는 있지만 글로 속내를 털어놓지도 않는다. 말도 못하는 아들이 일방적으로 당한 폭력이 원통해 변씨는 아들을 괴롭힌 친구들을 경찰에 신고했다. 아들은 지난 10월 또다시 집단폭행을 당했다.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유였다. 그 뒤부터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군은 혼자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하교길에는 이군이 다니는 중학교의 인턴교사가, 방과 후 심리치료를 받으러 갈 때는 자원봉사자가 동행하고 있다. 어머니 변씨가 아들을 바라보는 눈길엔 회한이 있다. 남편은 날마다 술을 마시고 주먹을 휘둘렀다. 아들을 낳자마자 이혼했다. 아들은 남편이 맡아 길렀다. 그 뒤로도 남편은 술 취해 이웃과 싸움박질을 벌이며 어린 아들을 집에 방치했다. 남편은 결국 병을 얻어 입원했다. 이웃 아주머니가 이군의 손을 잡고 변씨를 찾아왔다. 그때 이군의 나이 9살이었다. 8년 만에 만난 아들은 한글을 깨쳐야 할 나이에 “아”와 “어” 말고 어떤 소리도 내지 못했다. 작은 몸 곳곳에는 흉터가 보였다. “어떻게 지냈는지는 몰라도, 제대로 안 돌봤겠거니 짐작만 하는 거지요.” 변씨의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최근엔 변씨 자신도 몸을 가누기 어렵다. 길에서 미끄러져 허리뼈에 금이 갔다. 병원에 가는 일은 언감생심이다. 그저 쉬는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지원을 받아 임대주택에 들어왔지만 기름값 때문에 보일러를 틀지 못하는 집엔 한기가 감돈다. 벌이가 없는 형편이니 변씨는 아픈 허리를 동여매고 근처 산에서 도토리나 나물같은 반찬거리를 직접 구해 온다. 당장 이군에게 필요한 심리치료비와 특수교육비가 걱정이다. 그동안 장애인권익연구소와 서부장애인복지관의 지원으로 심리치료를 받아왔지만 지원이 곧 끊어진다. 복지관 예산이 한정돼 있어 한 사람에게만 계속 지원할 수는 없다. 보복폭행의 위험으로부터 이군을 지키기 위해 등하교길에 동행해줄 봉사자도 필요하지만 찾기 어렵다. 이군의 학교폭력 사건 처리를 지원해주고 있는 청소년폭력예방재단 나눔사업부의 유혜인 간사는 “재현이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 모두 치료가 필요하다. 어머니가 겪고 있는 마음의 상처가 깊고 누나도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있다. 재현이는 보복폭행의 위험 때문에 당장 위치추적이 가능한 휴대전화를 지원하고 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특수직업교육도 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유빈 기자 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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