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 관악구 신사동 청솔지역아동센터에서 박건희(16)군이 센터에 처음 왔을 당시를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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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이혼한뒤 자폐적 게임중독
손톱물고 손가락 빨아 부정교합
엄마 공장벌이론 교정 감당못해
아동센터 도움받아 우등생 변신
겨우 대학진학꿈 키우게 됐지만
“발음탓 사회생활 힘들것 같아요”
RT, 소통이 나눔이다 ⑨‘부정교합’ 고민 깊은 16살 건희
사랑의열매-한겨레 공동기획 박건희(16)군이 이빨로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생긴 건 7년 전이다. 부모가 이혼한 뒤, 손가락을 빠는 습관도 생겼다. 이빨이 들쭉날쭉하게 자라고 턱도 한쪽으로 기울었다. 게임 중독에 빠진 것도 그 무렵부터다. 건희의 어머니 류아무개(43)씨는 “아이가 (이혼 때문에) 이 정도로 심하게 충격받을지는 몰랐다”며 안쓰러운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봤다. 류씨는 서울 구로구에 있는 봉제공장에 다니며 혼자 아들을 키웠다. 새벽에 일을 나갔다가 돌아오면 캄캄한 밤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집을 혼자 지킨 건희는 컴퓨터를 붙들고 게임만 했다. 방학이면 하루종일 게임을 했다. 게임에 빠져 한달씩 몸을 안 씻었다. 중학교 졸업 때까지 5년 동안 그런 생활이 이어졌다. 아들은 자폐 증상까지 보였다. “이혼 뒤로는 저도 충격이 커서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가 없었다”며 류씨는 한숨을 쉬었다. 2010년 겨울, 건희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나이가 됐다. 어머니는 아들이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을 정도로만 회복해주길 바랐다. 형편이 어려워 전문치료센터에 갈 엄두는 내지 못했다. 류씨는 아들을 데리고 집 주변에 새로 생긴 지역아동센터를 찾았다. “어휴, 처음에는 몸에서 쉰내 나서 겨울인데도 창문을 열고 공부를 했다니까요.” 청솔지역아동센터 교사 서유홍(47)씨는 건희가 처음 센터를 찾았을 때를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청솔아동센터는 주로 빈곤층 초등학생 아이들을 맡아 돌보면서, 예외적으로 빈곤층 중고등학생의 공부방 역할도 하고 있었다. 아동센터에 처음 왔을 때, 건희는 초등학교 수준의 수학문제도 풀지 못했다. 서 교사는 대학생 자원봉사자 교사와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매일 10시간씩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다. 집에 있는 컴퓨터와 게임기는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압수했다. “건희가 하루종일 통곡했어요. 달려들어 제 머리카락을 잡아 뜯더라고요.” 그때부터 건희가 조금씩 달라졌다. 본래 순한 성격이었던 건희는 교사가 시키는 대로 잘 따라왔다. 서씨는 “사실 자기도 공부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2달 동안 중학교 영어·수학을 마쳤다. 고등학교에 진학해 처음으로 중간고사를 봤다. 수학은 전교생 276명 가운데 10등, 영어는 19등 성적이 나왔다. 중간고사 뒤, “선생님, 저 포기하지 마세요”라고 한 건희의 말을 서 교사는 기억한다. “저도 눈물이 핑 돌았어요.” 이후 건희의 삶 전체가 바뀌었다. 몸도 매일 씻었다. 친구들도 공부하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건희에게 물었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중간고사에서 수학은 전교 1등, 물리는 3등을 했다. 꿈도 생겼다. 대학을 가는 것이다. 4년제 대학 입학도 문제 없겠지만,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 어머니를 돕겠다는 생각에 직업교육에 충실한 2년제 대학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건희는 생각한다. 요즘엔 하루 서너시간만 자면서 공부한다. 어머니는 최근 밤잠을 줄였다. 대학 등록금을 미리 마련하려고 봉제공장에서 밤 근무를 자청해 일하고 있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미싱을 돌리는 고단한 삶이지만 아들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건희가 공부를 잘하니까 저도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힘들지만 버텨야죠. 건희에겐 저처럼 힘든 삶을 물려주면 안 되니까요.” 건희에게 지금까지도 남겨진 자폐적 게임중독자의 흔적은 딱 한 가지다. 부정교합이다. 벌어진 이빨 사이로 발음이 샌다. 친구들이 건희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여전히 힘들다. “교덩(정) 안하면 사회생활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요. 입사 면덥(접) 볼 때도 힘들고요.” 새는 발음으로 건희가 말했다. 치아교정에만 800만원이 든다. 봉제공장에서 받은 월급 100만~120만원으로 생활하는 어머니 류씨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다. 기초생활수급권을 동사무소에 신청했지만, 전 남편에게 직장이 있다는 이유로 거부됐다. 최근엔 몸이 아픈 친정 어머니까지 모시고 사느라 생활은 더 빠듯하다. 병원비 가운데 300만원 정도는 직접 마련해보려 하지만 여전히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 “대학 들어가면 배운 거만큼 센터 아이들을 가르텨(쳐) 줘야죠. 취딕(직)하고 성공해서 더(저)처럼 힘든 사람들한테 나눠두(주)고 싶어요.” 비뚤비뚤한 이빨을 보이며 건희가 씨익 웃었다. 글·사진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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