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3.11 21:56
수정 : 2012.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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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시위 주역 아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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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약속 장소인 일본 도쿄 고엔지역 앞에서 만난 그의 모습은 다소 의외였다. 일본의 저명한 작가이자 활동가인 아마미야 가린(37)은 평소 하늘하늘한 원피스와 널찍한 모자로 꾸며진 이른바 ‘로리타 패션’으로 유명하지만, 이날은 단정한 정장차림이었다. “오늘은 수수한 차림인 것 같다”고 하자 “데모나 행사 때는 입는다”며 웃었다. 고엔지에서 재활용가게를 운영하는 마쓰모토 하지메(37)와 함께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아마미야는 3·11 이후 탈원전 시위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주역으로 꼽힌다.
그는 “지난해 4월10일 고엔지 데모 이후 지금까지 17회 데모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엔 원전노동자, 원전전문가, 사회·역사학자와 인터뷰해 일반인에게 알기 쉽게 원전문제를 전해준 <14살부터 원전문제>(가와데 출판사)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의 많은 사람들처럼 아마미야 역시 3·11 이전에는 원전문제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2010년 11월 가미노세키 원전 건설 중지를 요구하는 저널리스트 언론문화인 찬성자 모임에 이름을 올린 게 전부였다. 원전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함으로써 ‘원전 안전신화’ 형성을 방관했다는 반성에서 반원전 시위에 적극 참여하게 됐다.”
그는 ‘그날 이후’ 지난 1년간 일본 사회에 대해 “먹거리에 민감하게 신경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나뉘고, 후쿠시마에서는 보상금을 둘러싸고 갈등이 생겨나는 등 인간관계마저 분단시키는 게 원전의 무서움”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전체제에 대해 “1960~1970년대 자민당과 돈이 얽히고설킨 굉장히 더러운 옛날 정치의 집대성이 아닌가 한다”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의 원전 재가동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는 전력 부족을 이유로 재가동 움직임을 보이지만 현재 54기 중 2기만 운영해도 큰 문제가 없지 않으냐”고 반문하며 통제 불가능한 원전과의 공존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아마미야는 20대 초반 2년간 우익활동을 해 한때 ‘미니스커트 우익’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평화헌법을 읽은 것을 계기로 사상전향을 한 뒤 2006년 이후 신자유주의 지배체제 아래 신음하는 비정규직이나 실업자, 빈곤생활자 등을 지칭하는 프레카리아트(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를 뜻하는 조어) 문제에 천착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30여권의 저서(공저 포함)를 펴냈다.
도쿄/글·사진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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