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효리씨가 9일 오후 서울 논현동 한 카페에서 조국 서울대 교수와 얘기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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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만남
동물보호활동 하는 가수 이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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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 안좋은 제품 광고 안맡아
사람 생명에 당연히 관심 갖게 돼
‘두 개의 문’ 등 보며 약자들 생각 -어항에서 튀어나와 강으로 헤엄쳐 나가는 해방감을 느꼈군요. 다른 여가수에 비하여 여성 팬도 많은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요? “섹시함이건 뭐건, 자기주도적 여성의 모습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요. 남성의 시각에 맞춰진 여성이 아니라.” -효리씨는 남성의 부속물이 아니라 독립된 주체, 당당한 주체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니까요. 언제부터 끼가 발휘되었나요? “어린 시절부터 학예회든 뭐든 앞에 나가 보여주는 것을 좋아했어요. 잘한다, 멋있다 하면 기쁨을 느꼈고요. 춤을 잘 췄어요. 텔레비전에서 가수들 춤이 나오면 열심히 따라 연습했어요. 연기자든 가수든 유명한 연예인이 되고 싶었어요. 대학 입학 후 1학년 한 학기 보내고 데뷔했어요. 에이치오티(H.O.T.) 등이 데뷔하는 걸 보니, 다 제 또래더라고요. 가수 데뷔는 먼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은 청소년 때 데뷔하고 연예인이 된 다음 대학 진학하던데, 효리씨 경우는 늦은 편이었군요. “그냥 시기가 그렇게 됐던 것 같아요. 만약 그 전에 캐스팅됐다면 다른 친구들과 같은 절차를 밟았을 거예요.” -보통 학생들과 똑같은 대학입시 과정을 거쳤을 텐데, 공부를 열심히 했나요? “아뇨(웃음). 언어영역은 특출하게 잘했어요. 수학은 매우 못했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학원 다니거나 과외 받은 적은 없는데, 성적은 중간 정도 나왔어요.” -학교 다닐 때 사고도 좀 쳤을 것 같은데.(웃음) “중학교 때 노래방 갔다가 정학당했어요(웃음). 머리 염색도 하고, 교복 치마도 짧게 입고 그랬죠. 주목받고 튀고 싶은 것도 있었죠. 그런데 학생이 머리 염색하면 왜 나쁜 학생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몇몇 교육청에서 실시하기 시작한 ‘학생인권조례’의 문제의식을 선취(先取)하고 있었군요.(웃음) 요즘은 어린 시절부터 연예인이 되도록 부모나 기획사에 의해 키워지던데…, 또래 친구들이 공유하는 경험과 문화를 모른 채 말입니다. “안타까워요. 애처롭기도 하고. 너무 어린 나이 때부터 경쟁하면서 오디션 준비하고 통과하고, 그 후에도 8~9년 연습해서 나오잖아요. 그러고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 하는 것도 아니고. 그룹 구성원 사이에서 불화도 생기고 따돌림도 있고. 자기가 원하는 멤버도 아닌 사람들과 24시간 동안 같이 붙어 있는데 왜 그렇지 않겠어요?” -그런 뒤에도 새로운 ‘상품’이 나오면 버려지고 잊혀지고…. 아이돌 그룹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지만 생존기간은 짧은 것 같아요. 그런데 효리는 살아남았습니다(웃음). 게다가 더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 힘의 근원은 무엇인가요? “부모님의 방치가 아니었나 해요.(웃음) 두 분이 맞벌이하셨기에 밥 차려준다거나 옷 입혀준다거나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어려서부터 거의 대부분 스스로 해야 했어요. 심지어 몸 아플 때도 약 먹어야 하나, 참을 만한가 스스로 판단했어요. 연예계 진출에 대해서도 부모님은 ‘네 인생은 네가 알아서 하는 거다’라고 말하시고 전혀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남녀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의 영향을 덜 받았어요. 예를 들어, 여학생은 핑크색 옷, 남학생은 하늘색 옷 많이 입잖아요. 그러나 저는 구분하지 않고 예쁘면 다 입었거든요.” -연예인으로 활동하면서 불쾌한 일이 제법 있었을 텐데. “행사장에서는 갑자기 엉덩이 만지는 사람, ‘이효리, 너 나와’라고 막말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촬영장에서는 ‘가슴골을 조금만 더 보여주세요’라는 요청도 받았고….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왜 이런 취급 받아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몇억원 준다 해도 나를 상품 취급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놓는 게 싫더라고요.” 박노해·김제동 등 ‘좌빨’들과 친해
회사선 이 인터뷰 한다 하니 울상
유권자들이 투표 제대로 해야만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바뀔 것 -가수 활동 외에 동물보호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금 키우는 개 이름이 순심이죠? “유기견 보호소에 있을 때의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어요. 이름 바꾸면 혼란스러워할까 봐. 동물 권리에 대한 관심은 <도시의 개>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데서 시작됐어요.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동물보호운동을 하고 있던 임순례 감독께 전화했죠. 우리나라에서 동물의 권리, 정말 열악합니다. 한 해 버려지는 개만 8만마리 이상이에요.” -버림받은 동물은 정신병이 생기죠. “맞아요. 보호소 가면 정신이상으로 마음 닫아버리는 개들이 엄청 많아요. 벽만 본다든지, 자해한다든지. 사실 인간의 권리도 잘 보장되지 않고 있으니 사람들이 동물의 권리에 관심이나 있을까, 절망적인 생각이 들어요. 대형마트에서는 장난감 옆에서 동물을 팔고 있어요. 생명으로 보지 않는 거죠. 동물 치료에 부가가치세를 매기니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들어가 버려지는 동물도 많아요.” -동물을 키우다가 왜 버릴까요? “필요에 의해 키우다가, 필요 없으니까 버리는 거겠죠. 아이들이 사 달라면 귀엽고 예뻐 키우다가, 늙고 돈 들고 귀찮아지면 버리는 거죠. 처음에 저는 버리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외국 갈 때마다 그 나라 유기견 보호소를 가 봤어요. 제도가 매우 잘되어 있더라고요. 자기가 키우다가 정말 못 키우게 되면 거기 데려다 주고, 그러면 안전하게 새 주인을 찾아줘요. 제도적 장치가 잘 마련되면 많은 동물들이 버려지지 않겠지요.” -우리나라 상황은 어떤가요? “시마다 보호소가 있는데, 한 달에 100마리 들어오면 70마리 정도는 10일 보호한 다음 안락사 시키고, 10마리 정도는 주인이 찾아가고, 5마리 정도는 입양된다고 해요.” -애완동물 또는 반려동물 보호 문제를 넘어 ‘공장형 사육’ 반대운동도 벌이고 있죠? 이 맥락에서 채식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완전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인가요? “아니요. 붉은 고기, 치즈, 우유는 먹지 않고, 물고기는 먹어요. 내가 동물을 너무 사랑해서 먹을 수 없다는 게 아니에요. 제가 채식하는 이유는 소, 돼지, 닭 등이 키워지는 체제에 반대하기 때문이에요. 인간이 고기를 너무 싸게 많이 먹으려 하니까 동물들은 점점 더 열악한 상황에서 키워질 수밖에 없어요. 에이포(A4) 용지 한 장 크기 공간에 닭 두 마리씩 들어가 평생 살아야 한다는 걸 상상해보세요. 얼마나 끔찍해요. 우리 인간들은 자신이 먹는 고기가 어떻게 키워지고, 어떻게 죽임 당하는지 모르잖아요. 광고에선 동물이 파란 하늘 아래 푸른 목장에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전혀 사실과 다르거든요. 이런 현실을 널리 알리고 싶어요. 고기를 먹든 안 먹든, 현실을 알고 나서 선택해야 하니까요.” -동물 가죽이나 모피로 만든 제품도 사용하지 않는다면서요? “유명 브랜드 회사에서 악어가죽 가방을 보내주었는데 돌려보냈어요.” -동물의 권리에 관심을 가지면 생명과 생태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법인데…. “환경에도 관심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점점 제약이 많아져요. 환경 생각하면서 샴푸 선전 하지는 못하겠더라고요. 환경문제가 있는 광고를 안 하겠다 했더니, 소속사에서 싫어하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사람의 생명에도 당연히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두 개의 문>, <저 달이 차기 전에>, 이런 다큐영화 많이 봐요. 노동자, 약자의 생명이 돈과 강자에게 밀리는 현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요. 관련 책도 보고 있어요. 언젠가 <녹색평론>을 보고 있으니 회사 대표님이 ‘불온서적 보고 있냐’고 잔소리하시더라고요.(폭소) <녹색평론>은 어디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내용들을 많이 알려줘요. 한 달에 1만원 내고 정기구독하고 있어요. <작은 책>도 정기구독하고요.” -아, 효리씨도 곧 ‘좌빨’ 소리 듣겠습니다.(웃음) “교수님은 이미 듣고 계시잖아요.(웃음) 교수님과 인터뷰한다고 소속사에서 울상이 되더라고요.(웃음) 제가 이상한가 봐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다 ‘좌빨’이잖아요.(폭소) 박노해 시인도 그렇고. 친구처럼 지내는 김제동 오빠도 그렇고.” -지난 총선 때 트위터에 투표 인증샷을 올렸죠? “소속사에서는 제 트위터 계정을 없애버리겠다 하더라고요.(웃음) 온라인에서 험한 말도 많이 들었어요.(웃음) 그런데 그런 거에 개의치 않는 성격이거든요. 옳다고 믿는 걸 밀고 나가는 성격이라서요. 생명에 관심 갖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치에도 관심 갖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선거에는 당연히 참여해야죠. 다른 사람들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유권자가 관심 갖고 대표를 제대로 뽑을 때만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잖아요.” -팔에 새긴 문신이 특이합니다. “하나는 ‘브라마 비하라스’(Brahma Viharas)인데, 의역하면 ‘우주의 근본’이란 뜻이고, 다른 하나는 화엄경에 나오는 ‘인드라망’ 그림이에요. ‘우주의 근본’을 생각하고, 내가 모든 만물과 연결돼 있다는 점을 항상 환기시키려고 새겼어요.” -생명과 생태에 대한 생각을 몸에 새겼군요. 멋집니다! 유기견 보호에 관심 가진 것을 시작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군요. 생각 바뀌니 예전 노래는 어색
지금 생각들 덕에 좋은 노래 할 것
돈·유명세 아닌 소소한 일상에서
남에게 도움된다 느낄 때 행복해 “저도 저에게 이런 큰 파장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 전에 자랑스럽던 게 지금은 부끄럽고, 그 전엔 좋았던 게 지금은 싫고…, 고민이 많아요. 자본주의의 꽃이었던 제가, 자본주의 최대 수혜자인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 나름의 이유로 광고를 안 하겠다 했더니, ‘이효리 한물갔나’ 이런 기사 나오더라고요. 이런 기사 접하면 씁쓸해요. 내가 아직도 그런 것에 연연해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대중의 기호에 맞는 내가 있었는데, 이제 사람들로부터 잊히고 멀어지는 것 아닌가, 걱정도 들어요. 또 내가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것은 아닌가, 염려도 하고요. 아무것도 모를 때는 무지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잖아요. 돈도 많았고 인기도 많았고요.” -자초한 고민이고 갈등이네요. 그러나 소중한 고민이고 갈등이고요. “고민하지 않고 갈등하지 않고 사는 사람 많잖아요. 왜 자초한 것인가 나도 모르겠어요.(웃음)” -어디서 행복을 찾나요? “돈은 아닌 것 같고요. 유명세나 발언권도 아닌 것 같고…, 어디서 찾을까요? (고민을 하더니) 소소한 일상의 삶에서 찾는 것 같아요. 동물이든 사람이든 내가 도움 주고 필요한 사람 된다는 느낌 들 때 제일 행복해요.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에 힘입어 살고 있잖아요.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 상당수는 동물실험을 해요. 그 동물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되돌려주는 삶을 살자, 이런 생각을 해요.” 팔에 ‘인드라망’ 등 문신 새겨
만물과 연결된 나 항상 생각
대중에게서 멀어지진 않나
걱정도 있지만 멋있게 살 것 -현재 앨범 작업을 하고 있나요?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어요.(웃음) 말씀드렸듯이 저에게 너무 많은 변화가 생겨서 이전과 같은 노래를 하기가 어색한 거예요.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요. 과도기에 있으니까. 어떤 노래를 하고 싶다는 확신이 들지 않아 앨범을 못 내고 있어요. 그러나 제가 하고 있는 고민과 갈등 덕분에 정말 좋은 노래를 하는 가수가 될 것 같아요. 박노해 시인이 그랬잖아요. 좋은 시를 쓰려고 하지 않았지만 세상에 관심을 갖다 보니 좋은 시를 썼다고.” -10년 뒤의 효리는 어떤 모습일까요? “저도 궁금해요.(웃음) 나이 들고 주름지는 것, 이런 건 전혀 상관하지 않을 것 같아요. 모든 것 접고 시골로 가 자연과 벗하며 살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다시 흘러흘러 살면서 방송하고 노래하고 살 수도 있고요. 과거의 저보다 미래의 제가 더 멋있을 것 같아요, 어떤 방향이든 간에. 멋있게 살고 싶어요. 스타는 주위가 어두울 때 빛난다고 하잖아요. 주위가 환하면 그 빛이 약하니까. 더 빛날 수 있게 어둠으로 들어가야죠.” 정리 음성원 기자 e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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