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강풀(왼쪽)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조국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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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만남
영화 ‘26년’ 원작자 만화가 강풀
“가장 무서운 건 ‘기억’…5·18에 ‘문화적 처벌’ 내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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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엎어졌다 29일 개봉
대선용 영화로 보이는 건 싫어
‘26년’ 그린 건 내가 제일 잘한 일 -29만원? 상징적 숫자군요.(폭소) “2차 모금 때 7억원이 모였어요. 사실 문화 방면에서 펀드가 7억원이나 모인 건 전례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영화가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절반은 성공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펀드 참여한 분들이 무슨 특별한 혜택 받고 엔딩 크레딧에 이름 올리려고 돈 내신 게 아니에요. 32년 전(1980년) 일을 기억하는 사람들 공분 때문이지요. 저보다 젊은 사람은 광주를 잘 몰라요. 지금 대학생이 90년생인데, 5·18과 8·15를 헷갈리기도 해요. 걔네 잘못이 아니라 알리지 않은 우리 잘못이죠.” -판결문과 역사책이 5·18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했지만, 범죄인들이 뻔뻔하게도 죄의식 없이 떵떵거리고 있지요. “화해와 용서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용서를 빌어야 용서하는 거잖아요. 그걸 얘기하고 싶었어요. ‘문화적 처벌’을 내리고 싶었어요.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적어도 기억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함께. 그 사람한테 가장 무서운 건 사람들이 기억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 영화가 대선용 영화로 보이는 게 너무 싫어요. 두 번 엎어졌다가 이제야 개봉하는 거예요. 이 영화가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요. 제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여럿 있었는데, 이번이 가장 절박해요.”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억투쟁’이 필요하지요. 16일 서울광장에서 <26년> 콘서트를 하던데 잘되길 기원합니다. 지금까지 사회참여적 작품을 많이 그렸습니다. 여중생 사망 사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노무현 대통령 탄핵 관련 작품 등등. 태어날 아이 위해 동화 쓰는 중
세상이 선으로 차 있진 않지만
올바르게 살아갈 세상이 온다는 내용
내 아이는 공부 많이 안했으면… “데뷔 초기 ‘똥 만화’를 많이 그렸는데, ‘똥 만화’ 그리는 네가 뭘 안다고 그러냐, 이런 얘기도 들었어요. 뭘 모르면 좀 어때요. 정치 얘기는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 생활과 가장 밀접한 게 정치잖아요. 정치가 잘못되면 당장 등록금 올라가고 전세금 올라가잖아요. 제가 노래하는 사람이라면 노래로 정치 참여하고, 글 쓰는 사람이라면 글 써서 정치 참여했겠죠.” -직업적 정치인이나 엘리트만 정치를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부정이지요. G20 포스터에 쥐를 그려 넣었다고 처벌받은 ‘쥐 벽서’ 사건 아시죠?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만화가로서 어땠는지. “‘쥐 벽서’ 사건은 쪽 팔린 거예요. 정부가 공포심을 조장했어요. 더 심한 건 민간인 사찰이었고요.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일어났다면 탄핵 감이었겠죠. 임기 말이 왔는데, 정말 대선이 기다려져요.(웃음)” -만화가로서 창조적 상상력이 위축된다는 느낌 받았습니까? “저를 포함해 대부분의 작가들이 느끼고 있어요. 게다가 학교폭력 등 무슨 사회문제가 발생하면 학생들이 만화를 봐서 그렇다고 비난하더군요. 실제로 몇몇 만화가 청소년 유해 딱지를 받았어요. 이렇게 되면 작가들은 자기검열을 할 수 밖에 없어요. 혹시 나도 딱지 받지 않을까 쪼그라들어요. 작품에 대한 해석권을 대중에게 주지 않고 정부가 독점하고 딱지를 붙여요. 전체적인 맥락은 다 무시하고 말입니다.” ‘쥐 벽서 사건’은 쪽팔린 일
정부 공포심 조장에 위축
더 심한 건 민간인 사찰
탄핵감이었죠, 대선이 기다려져요 -옛날로 가 봅시다. 청소년 때도 만화를 그렸습니까? “고등학교 때 반마다 <드래곤 볼> 잘 따라 그리는 친구 있잖아요. 저도 그 정도였어요. 만화보다 책을 너무 좋아했어요. 가방에 교과서는 없고 소설책만 있었어요. 1주에 10권 이상 읽었어요. 집 근처 송파도서관 가서 책을 빌렸는데, 원래는 한 번에 두 권만 빌려주는 거였어요. 그런데 제가 너무 자주 가니까 사서 누나가 저에게만 10권씩 빌려줬어요. 처음엔 정말 읽었느냐고 의심하다 특혜를 준 거지요. 도서관 열람실 가면 한두 개는 소설 코너가 있잖아요. 그 코너에 꽂힌 소설을 다 읽었다니까요.” -독서가 강풀을 만들었군요. 소설 좋아해서 국문과 갔습니까? “고등학교 때 미술반 제의 받았는데 학원비가 비싸 못했어요. 국문과 선택할 때도 아무 생각 없었어요. 대학 가는 것 자체가 중요한 때였으니까.” -대학 시절 상지대 분쟁이 대단했죠. “엄청났죠. 김문기씨가 쫓겨났다가 다시 들어오려 했거든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김씨의 사람들이 상지대로 복귀하고 있더군요. “솔직히 신경 끄고 싶은데 그럴 수 없잖아요. 정말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해야 했던 일을 후배들이 또 해야 하다니 말입니다. 굉장히 화가 나요.” -우리 사회 기득권층은 집요합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목표달성을 위해 노력하잖아요. 역설적이지만 민주·진보 진영은 김문기씨에게 배워야 합니다.(폭소) 길게 보고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이기니까요. 직업적 만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언제 했어요? “대학 시절 학보사와 원주의 <영서신문>에 만평 연재하고 있었는데, 졸업반 되면서 결심했어요. 전화번호부 찾아 400여 군데에 만화 포함 이력서를 보냈지만 받아주지 않았어요. 오전 두 군데, 오후 세 군데 출판사 돌아다니며 구직활동 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스포츠 관련 주간잡지사에 근무하게 돼 만화 연재를 했어요. 그런데 만화 그리는 대신 기사 쓰라 했고, 이후 회사가 어려워져 그만두게 되었죠. 그래서 2001년 웹툰을 시작했어요. 전교조가 도와줘 거기 서버에 기생하면서. 전교조, 참여연대, 딴지일보, 스포츠투데이 등에 연재했어요.” -‘강풀’이란 이름은 언제 만들었어요? “‘강풀 닷컴’이란 홈페이지 개설하면서요.” -왜 이름으로 ‘풀’을 택했어요? 밥풀의 ‘풀’은 아닌 것 같고, 영문으로는 충분하다는 ‘full’을 쓰던데. “대학시절 별명이었어요. 제가 옷, 가방, 신발까지 풀색, 즉 국방색으로 도배하고 다녔거든요.(웃음)” -웹툰에서 각종 배설물 소재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죠. ‘똥 만화가’가 뭘 안다고요?
뭘 좀 모르면 어때요
정치 잘못되면 등록금·전세금 올라
노래했다면 노래로 참여했을 것 “‘똥 만화’로 시작을 했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예요. 저도 그것에 좀 취해 있었어요.(웃음) 어떻게든 이름을 알렸어야 했다는 점도 있었고요. ‘엽기 만화가’라 불리는 것도 좋았어요. ‘만화가’라는 이름이 붙으니까.” -더러운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보고 독자들이 대리만족을 느낀 것 같아요.(웃음) “남자들 술 마시면서 하는 얘기 순서가 있잖아요. 여자, 술… 마지막엔 더러운 얘기 하잖아요. 더러운 얘기를 적나라하게 하니까 금기를 깨는 쾌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후 작품을 보면 공포물과 순정물을 오갑니다. 깊이 보면 두 개가 결합돼 있기도 하고. “제가 재미있어서 하는 거예요. 귀신 얘기도 사랑 얘기도 다 좋아하거든요.” -우리 사회, 우리 삶이 공포와 사랑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한데, 좀비를 등장시킨 <당신의 모든 순간>도 이 세상이 좀비를 만들어낸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 같았어요. “기본적으로 사람은 선하다 봐요. 성선설을 믿어요. <26년>의 그 사람과 <이웃사람>의 살인마 빼고는, 제 만화에 악당이 안 나와요. 매너리즘 같을 수 있어 고민하기도 했어요. 나이 마흔 앞두고 보는 세상은 이래요. 사회적으로는 잘못된 부분도 있지만 사람들은 좋은 방향으로 나가려 해요. 착한 사람들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믿어요.” -작품 속 주인공들은 자기만의 비밀, 약점, 흠결을 갖고 서로 어울리고 사랑하고 힘을 합치고 그러더군요. 우리네 인생처럼. “어떤 평론가가 제 만화는 협력해서 뭔가 이루는 걸 좋아한다 하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얼마 있지 않아 아빠가 되거든요. 태어날 아이를 위해 동화책을 쓰고 있어요. 아이에게 들려주고 보여주고 싶은 게 있으니까요. 교수님이 말씀하신 그런 얘기 쓰고 있어요. 세상은 온통 선으로 차 있진 않지만, 네가 올바르게 살아가는 세상이 올 것이다, 이런 얘기 말이에요.” -내년 초 아이가 태어나는데, 어떤 아이가 되면 좋겠습니까? 아이가 19살 성인이 되는 2032년 어떤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까? “아이들이 더 자유로워지고 더 개인적이 되면 좋겠어요. 공부 많이 안 하면 좋겠어요. 독서실에서 글 작업 하는데,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거의 혼자 독서실을 써요. 학생들은 그 이후에 오는데 너무 불쌍해요. 대학 안 가겠다 하면 안 보내고 싶어요. 아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어요. 아이가 학교 다니기 시작하면 교육 관련 만화를 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트위터 팔로어들은 알고 있겠지만, 일상생활에 대해 말해주세요. “1년에 5개월은 연재 작업 해요. 연재 들어가기 전 7개월 동안은 취재하고 스토리를 써놔요. 연재할 때는 새벽 4시 출근해서 밤 10시 반 퇴근해요. 하루 4시간도 못 자는 것 같아요. 이런 생활을 거의 10년 넘게 하고 있어요.” -트위터에 야식을 계속 올리던데, 진짜 그때 그렇게 먹습니까?(웃음) “솔직히 말하면 절반 정도가 진짜 먹는 거예요. 트위터리안에게는 야식으로 보이겠지만, 저에겐 그 시간이 저녁 먹는 시간이에요. 새벽 4시에 자니까.” -야식 올리는 패턴이 재미있던데요. 과거에는 아름다운 얘기 할 것처럼 ‘낚시’를 던진 후 음식을 보여주었는데, 최근에는 바뀌었더라고요. 사람들이 뭔지 알 수 없는 사진을 올려놓고 퀴즈를 던지더군요. 알고 보니 음식인데, 음식을 근접촬영해 장난치는 거죠. “트위터에서 노는 게 재밌어요. 거의 대부분 혼자 일하는데, 중간중간 놀고 약 올리고 장난치면 재미있더라고요. 아무 의도 없이.” -음식 근접촬영 사진을 올리는 ‘낚시’는 우리 편견을 깨뜨리려는 의도가 엿보이던데요. “교수님 같은 분이 참 좋아요, 멋지게 해석해주시니까.(웃음)” -원래 예술가들은 장난치듯 놀듯 일하지요. 트위터에서도 저를 놀리는 멘션을 툭툭 던지잖아요. 받는 사람 입장에서 통쾌함이 있어요. 무게 잡고 말하는데 긴장 풀라고 옆구리 간질이는 느낌이랄까. ‘범생이’ 스펙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장난기나 재치가 결여되어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싫어하는 사람한테 시비 안 걸어요. 교수님은 선비 같은 느낌을 줘 장난치고 싶은 마음이 막 생겨요. 꼰대가 아니시니 잘 받아주실 것 같고. 제가 진중권 교수님을 매우 좋아해요. 두 분이 친한 친구라는 게 재미있어요. 진 교수님은 항상 교실 맨 뒤에 다리 꼬고 앉고, 조 교수님은 교실 중간에 반듯이 앉아 있는 분 같은데, 서로 친하게 지내시니.” -진중권은 아예 교실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지요.(웃음) 저도 그렇게 ‘범생이’는 아닌데…, 여하튼 ‘범생이’만 있는 세상은 지옥입니다. 근래 대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한다면서요? ‘7개월 취재 5개월 연재’ 생활 10년
죽을 때까지 만화 그리고 싶지만
사람들이 안보면 시원하게 그만둘 것
가르치려 드는 만화 가장 경계 “뒤늦게 공부에 재미 붙였어요. 학교 다닐 땐 공부 더럽게 안 하다가.(웃음) 처음엔 그림을 정식으로 배우고 싶어 동네 만화학원에 갔어요. 그런데 제 신상을 밝히니까 원장님이 너무 싫어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교수 제의도 들어오지만 적어도 10년은 현역 작가로, 그리는 데만 집중하고 싶어요.” -강풀의 미래는 무엇입니까? “죽을 때까지 만화 그릴 겁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제 만화 안 보면 그때 그만 그려야죠. 제가 제일 경계하는 게 뭐냐면 누군가 가르치려는 만화를 그리게 되는 거예요. 언젠가 독자들이 제 만화 외면하는 날이 올 거예요. 그때는 시원하게 그만둘 겁니다.” -동화 말고 현재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타이밍>이라는 만화가 있었는데, <타이밍2>를 준비하고 있어요. <아파트>, <어게인>, <타이밍>으로 이어지는 연작물의 끝입니다. 내년 4월 정도면 나올 거예요.” -출간되면 ‘고기 파티’ 합시다.(웃음) 정리 최유빈 기자 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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