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친족 성폭력’에 대해 생존자 수기를 쓴 은수연(가명·뒷모습)씨는 “성폭력 피해자보다 가해자에게 사회적 관심이 더 많이 쏠리고 있는 점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집에서 탈출한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대책이 너무도 부족해 이 부분을 먼저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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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만남
친족성폭력 국내 첫수기 쓴 은수연(가명)씨
“화학적·물리적 거세요? 국가가 피해자 지킨다는 믿음부터 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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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맞았고 수없이 기절
그땐 살아남는 게 최고의 목표
대학 입학하며 ‘9년 지옥’ 탈출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이매진)는 우리나라에서 성폭력 생존자의 이야기로 공식 출간된 최초의 책이 아닌가 합니다. 미국에는 여성법학교수인 수전 에스트리치가 쓴 <진짜 강간>(Real Rape)이라는 책이 있었어요. 자신이 당했던 경험과 이후 법적용의 문제점을 생생히 밝힌 책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성폭력관련 법률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러 부담이 많았을 텐데 이 책을 왜 출간했나요? “‘제 고통의 시간들이 의미가 있을까?’ 이런 질문에서 시작했어요. 아프고 힘들었지만 밝고 힘 있게 이겨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성폭력 문제를 다룰 때 언론 등은 끔찍하고 선정적 느낌이 드는 사건만 보여주잖아요. 저는 사건보다 사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사건 속에 살고 있는 사람 말이에요.” -어떻게 이런 제목을 붙였나요? “엎드린 채 그 눈물을 쳐다보고 있는데 옆에 창문에서 햇빛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떨어지는 눈물과 만나면서 반짝반짝하는 거예요. 그때 내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눈물이 보석으로 변하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이 책은 눈물로 시작해서 보석이 된 사람의 이야기 같습니다. 떠올리기 싫은 끔찍한 기억이겠지만 피해의 경험부터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9년간 친아버지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바로 눈물을 흘리며) 언제쯤이면 그 기억을 떠올려도 눈물이 안 날까요. 당시 나는 살아남는 게 최고의 목표였어요. 그 사람을 죽이고 싶고 나는 살고 싶고…. 그랬기 때문에 아프다거나 힘들다거나 그런 감정도 못 느꼈지요. 가족 외의 사람들도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서 생존이냐 죽음이냐의 문제만 남아 있었어요.” -가족들은 수연씨의 피해를 알면서도 묵인했습니다. 이는 대다수의 친족 성폭력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인데. “집은 감옥이었고, 그는 폭력적 군주였어요. 그는 엄마를 무자비하게 때렸어요. 자식 보는 앞에서 발가벗긴 채…. 육식동물한테 물어뜯기는 토끼였지요. 그런 엄마가 바보 같기도 했고 원망스럽기도 했죠. 남자 형제들도 있었지만 어렸고, 그들도 많이 맞았으니 별수가 없었죠. 전체 가족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그냥 이 폭력에 시달리며, 이렇게 살다 죽어야 되나 보다 이렇게 생각했다고 할까.” -가족 구성원 모두가 ‘죄수’나 ‘노예’가 되어 폭력의 희생자가 된 것이군요. 1994년 대학에 입학한 후 집을 탈출했습니다. “가출청소년 쉼터에 무조건 뛰어 들어가서 도움을 청했어요. 거기 계시던 선생님이 일반 청소년 상담으로 안 된다고 판단하고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쉼터인 ‘열림터’로 데리고 갔어요. 가보니 저보다 먼저 온 아이가 있었어요. 제가 두 번째 아이였어요.” -상담소에서 어떤 상담을 받았고 그곳에서 어떠한 변화가 있었습니까? “상담소 선생님들이 그런 얘기를 많이 해줬어요. 네 잘못 아니고 네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처음엔 귀에 안 들어왔어요. 그런데 계속 이 말을 듣고 저도 책도 보고 생각하다 보니 생각이 변했어요. (주먹을 쥐며) 난 더럽혀지지 않았다, 난 망가지지도 않았다…. 이런 생각이 내 속에 정립되었어요. 그리고 내가 망가지지 않았다는 걸 그에게 말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지금도 많은 성폭력 생존자들이 자기 잘못이라고 자책하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제 잘못이라고 왜 생각 안 했겠어요. 수치심도 컸지요. 그런데 나 외에 수많은 피해자가 있다는 걸 보게 되니까 내 상황도 객관적으로 보이는 거예요. 내가 겪은 일이 최악의 일이겠지 하였는데 성폭력상담소에서 일을 할 때 보니 더 나쁜 경우가 있더라고요. 더 나쁜 놈, 더 나쁜 일이 많았어요. 그리고 그가 날 폭력적으로 짓밟은 것이지, 제가 섹시했거나 그를 유혹한 게 아니잖아요. 자기의 욕구를 채우는데 협조하지 않는다고 딸을 죽도록 팼고, 나는 수없이 기절했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고, 내 힘으로 벗어날 수도 없었고…. 이런 상황이 내 탓일 수가 없다고 스스로 정리한 거죠. 당시 ‘변화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자기 안에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는데, 그때 제가 그 손잡이를 딱 잡은 것 같았어요.” 변화의 문 여는 손잡이는 내 안에…
출소 뒤 해코지할 거란 두려움에
‘그 사람’ 면회가서 당당히 대면
난 더러워지지도 망가지지도 않아 -성폭력 피해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편견이나 무심함 때문에도 힘들었던 경험이 있나요? “어떤 목사님에게 성폭력 피해를 고백하고 상담을 했어요. 외국에서 오래 사신 분인데, 얘기를 나눠도 되겠다 하는 신뢰감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분이 제 얘기를 다 들으신 다음에, ‘그런데 너 이거 다른 사람에게는 더 얘기하지 마라’고 하시는 거예요. 이거 부끄러운 거니까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라는 느낌이 팍 드는데, 너무 싫었어요. 그리고 헤어진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저에게 이랬어요. ‘아빠한테 당하고 너 왜 나한테 지랄이니?’ 그때, ‘아, 아무리 화가 나도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했어요. 다행인 것은 성폭력상담소 바깥에서 사귄 친구 중에서도 저의 경험을 알고 난 후에도 성폭력을 가지고 저를 보는 게 아니라 저를 통해 성폭력이라는 문제를 보는 친구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저 자신조차도 성폭력이란 문제 안에 자신을 제한해두는 게 있었는데, 친구들이 그러지 않은 거예요.” -피해자로 보기보다 친구로 먼저 보고 그의 과거를 보았다는 거죠. “저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식하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던 게 제가 자신을 다르게 보는 눈을 가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아버지가 교도소에 있을 때 면회를 가서 직접 대면했습니다.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텐데…. “그때가 출소를 1년쯤 앞둔 시점이었어요. 그 사람이 나올 걸 생각하니 너무 무서운 거예요. 엎드려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가 등 뒤로 와서 칼을 꽂을 것 같고…. 그런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가 마주쳐야겠구나 하고 결심했어요. 그가 전력을 볼 때 출옥하면 또다시 나를 쫓아와서 해코지할 것 같았거든요.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마음먹었기 때문에 직접 얼굴을 보고 말을 하러 간 거죠. 저의 경우는 치유의 과정에서 가해자에게 쫄지 않는 게 중요했어요. 우리 사회도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너무 ‘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대단한 용기입니다. 면회할 때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가서 ‘진짜 나한테 할 말이 없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는 ‘할 말이 없다. 내가 내년에 나가는데 운전면허증 어떻게 됐는지 엄마한테 알아봐라’ 이러는 거예요. 협박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나는 그런 얘기 들으러 온 게 아니다. 나는 할 말이 있다. 나는 당신이 망가뜨리려고 해도 망가지지 않았고, 더럽히려고 해도 더럽혀지지 않았다는 걸 말하려고 왔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쓱 들어가 버렸어요. 기막히더군요. 그날 정말 많이 울었지만, 그때 이후로는 칼에 찔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같은 것은 많이 해소되었어요.” -출소 후 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나요? “직장 행사로 산행을 갔다가 기도원 화장실을 가는데 그가 차를 몰고 들어오는 것을 봤어요. 그는 저를 못 봤지만, 온몸이 다 떨려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옆에 있던 동료에게 부탁하여 데리고 가달라고 했지요. 그가 집으로 전화한 적도 있어요. ‘우체국인데 배달할 집 주소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사람 목소리인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물건 그냥 가지세요’ 하고 끊었어요. 그런 후 이 사람 그냥 놔두면 찾아오겠다 싶어서 전화를 걸었어요. 나타나기만 해보라고, 경찰에 신고해버릴 거라고 말했어요. 욕도 퍼부었죠. 그랬더니 그 뒤로 전화는 안 하더라고요. 저도 무서움이 좀 덜어졌고.” -가해자야말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겁쟁이지요. 수연씨는 그 겁쟁이에 맞서서 이긴 것이고. “무의식에서도 대면한 적 있어요. 몇 년간 도망 다니는 꿈을 계속 꿨어요. 뒤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채 겁에 질려 도망 다니는 거예요. 집 나와서도 그랬고, 그를 감옥에서 대면한 다음에도 그랬고. 하루는 잠자기 전에 작정을 하고 잤어요. 오늘은 내가 돌아서 본다. 그리고 잠이 들었는데 또 꿈속에서 도망을 가는 거예요. 순간 ‘아, 나, 돌아보기로 했잖아’ 그 생각이 딱 드는 거예요. 그리고 확 돌아봤거든요.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팔을 만지며) 지금도 소름이 돋는데, 그때 이후로는 그 꿈을 안 꿔요.” -도망치지 않고 맞섰기 때문에 사라진 것이지요. 그래서 ‘피해자’에서 벗어나 ‘생존자’가 된 것이고요. 책 끝에 보면 ‘아빠에게 보낸 편지’가 있습니다. 그 편지에서 신앙에 기초하여 아빠를 ‘용서’하겠다고 썼습니다. “삶의 순간순간 그에 대한 미움, 분노, 원망에 사로잡히곤 했어요. 더 이상 그런 기운에 묶여 지내고 싶지 않았어요. 평생 미워만 해도 끝이 없을 거 같았거든요.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용서의 편지를 썼어요. 그 이후에도 매일 새롭게 용서를 선택해요. 미움, 분노, 원망 때문에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서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원수를 위한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성폭력 피해자의 삶에는 미래가 없을 것이라는 편견도 있습니다. 지옥에서 생환한 후 어떻게 살고 있나요? “(밝게 웃으며) 주업도 잘하고, 취미생활도 잘하고 있어요. 대인관계도 좋아요. <텔 미 썸딩>이나 <여자, 정혜> 같은 영화는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여성을 우울하게만 그리거나 연쇄살인을 하는 괴물로 묘사해요. 보면서 많이 불편했어요. 저는 우울해지기 싫고, 살인하기 싫거든요.(웃음) 그냥 보통 저 또래 여자들이 사는 삶을 살고 있어요. 물론 다른 여자들이 상상할 수 없는 힘든 경험을 했지만, 연애도 하고 운동도 하고 학교도 다녔어요. 가끔은 남들이 보면 ‘쟤 사치 아냐?’라고 할 만한 일도 해요. 나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거죠. 집에서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영어학원 다니기’ 같은 거요. 직장생활 할 때 철칙 중 하나는 재미없으면 떠나는 거예요. 일할 때 일하는 느낌이 안 들 때까지만 일했어요. 사람들을 돕는 걸 좋아했는데,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할 때도 내 경험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좋았어요. 남을 위해서 일을 하고, 나는 그 일을 즐기고…. 그런 느낌이 나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미움·분노 벗어나려 용서의 편지
연애도 공부도 일도 즐겁게
한발만 뗄 수 있다면 해결 보여
수치심은 가해자한테 던져버려라 -아버지를 처벌하는 형사절차에서 느낀 것은 없나요. 성폭력상담소 일을 하면서 다른 성폭력 피해자가 형사절차 속에서 느끼는 고통도 접했을 텐데. “다행히 저는 좋은 형사분을 만났어요. 여자 순경을 대동하게 하는 등 배려를 해주었고요. 그런데도 많이 창피한 거예요. 남성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성폭력 사건인데 성애(性愛) 이야기처럼 들릴까봐 수치스러웠어요. 남자 피해자는 남자 경찰에게, 여자 피해자는 여자 경찰에게 조사를 받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제가 만난 다른 성폭력 생존자들도 다들 형사절차 과정에서 힘들어했어요. 어떤 여자 검사는 ‘너 아빠랑 연애했니?’라고 물었다더군요. 저는 기겁했어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법조인도 사회 일반인이 갖고 있는 편견을 그대로 갖고 있기에 부지불식간에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3차 피해를 입힙니다. 성폭력 피해자는 국가기관이 자신의 피해를 치유해줄 것이라고 믿고 갔는데, 오히려 경찰, 검찰, 법원 각 단계를 거칠 때마다 상처를 받는 거죠. 2003년 <형사법의 성(性)편향>이란 책 등에서 제도개선을 촉구했는데, 아직 부족한 것 같아요. 최근 성폭력 범죄가 많이 일어나면서 그 대책으로 사형집행이나 거세 등이 제안되고 있는데, 이런 대책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성기만 벌하면 된다는 시각 문제
성폭력 대책 가해자에만 초점
국가차원의 피해자 지원방안 시급
‘친고죄 조항’ 반드시 폐지돼야 “보복의 두려움을 생각하면 가해자가 죽으면 편하긴 할 거 같아요. 가해자가 나에게 다시 올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으니까요. 화학적 거세, 물리적 거세 같은 방안은 웃겼어요. 성폭력은 남자의 참을 수 없는 성욕, 남자의 성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니까 거기에만 벌을 내려주시오, 그런 것 같거든요. 성폭력은 범죄라고 인식해서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해야 된다는 생각은 못하고, 단순히 주사를 놓거나 자른다는 것은 대책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남자라면 거세 논란이 기분 나쁠 것 같아요. 욕구조절 못해서 저지르는 실수로 보는 것 자체가 말이에요. 요즘 친고죄 폐지가 논의되던데, 반드시 이루어져야 해요. 가해자를 고소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는 고통이라도 덜어주면 좋겠어요. 반드시 가해자는 처벌받고 피해자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국가가 줘야죠. 그리고 성폭력 관련 프로그램들은 거의 다 가해자에게 맞춰져 있다는 게 정말 문제예요. 피해자들이 탈출한 후 보호하는 대책은 너무 미미해요. 제가 집에서 탈출해 나왔을 때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어요. 한 번도 학교등록금을 제대로 제때 내 본 적이 없어요. 어떨 땐 고아원에 있는 애가 너무 부러웠어요. 걔들에겐 어느 정도 지원이 되니까. 성폭력으로 집을 뛰쳐나오면 적어도 고아원 아이들 수준으로라도 보호해주면 좋겠어요. 성폭력 피해자가 사회에서 정상 생활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어떻게 지원해줄까를 먼저 논의하면 좋겠어요. ‘나영이 사건’이 났을 때 보면 시민들이 모금운동을 해요. 말이 안 돼요. 성폭력 피해자가 생길 때마다 모금운동을 할 건가요? 국가 차원에서 피해자들의 사회적 지원을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지금도 피해 사실을 숨기거나, 드러내고 난 뒤에도 고통받는 피해자들이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과거에 비하면 지금은 도움 받을 수 있는 곳이 많이 생겼어요. 성폭력에 대한 인식도 그런대로 많이 개선됐어요. 먼저 문제 상황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용기를 내고 한 발만 떼어야 합니다. 그 한 발에서 문제해결이 시작되거든요. 한 발만 앞으로 나오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꼭 말해주고 싶어요. 수치심, 죄책감은 가해자에게 던져주고 신세계를 만나기 바랍니다.” 정리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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