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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14 17:51 수정 : 2019.01.14 20:51

코엔 형제의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 중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코엔 형제의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 중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점점 극장에 가서 한국영화를 보는 횟수가 적어진다. 업계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모르겠으나 지난해 한국영화는 지난 몇년 간 최악의 해였다고 생각한다. 추석 시즌에 <안시성>이 개봉을 앞두고 있을 무렵 영화업계 사람들과 잠깐 대화할 자리가 있었는데 망작이라고 들었다니까 그들은 꽤 놀라는 눈치였다. “그래요? 평단쪽 시각은 그런가? 우린 대박 영화라고 보는데.” 나중에 그 영화를 봤는데 한숨만 나왔다. 볼거리를 전시하겠다는 욕망은 알겠는데 화면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점점 인내심이 없어져서 극장에 가서도 아니다 싶으면 중간에 나오게 된다.

지난해 연말 개봉한 한국영화들도 그런 연유로 보지 않았다. 당시 개봉한 한국영화에 대한 주변의 지인들 얘기가 대체로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애정하는 배우 송강호가 나온 <마약왕>을 아이피 티브이(IPTV)로 봤는데 중반 이후로 견디기 힘들었다. 역시 근사하게 화면에 공을 들였지만 찰기가 하나도 없었다. 요즘의 한국상업영화는 내게 점점 위화감을 준다. 화면은 자세히 음미하기도 전에 휙휙 지나가고 인상의 고정점이 될 순간을 남겨두지 않는다. 감독이 뭘 하려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클로즈업은 지나치게 많고 배우들은 너무 감정 과잉이다.

내게 영화다운 영화란 무엇인가를 새삼 깨닫게 해준 영화들은 극장이 아니라 넷플릭스를 통해 왔다. 코엔 형제의 <카우보이의 노래>와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가 그랬다. 옴니버스 영화인 <카우보이의 노래>는 다 좋은 건 아니었으나 몇몇 에피소드는 모골이 송연했다. 신화적 역사의 무대인 서부를 늘 죽음의 가능성을 끼고 분투한 생존의 연대기로 해석한 그 영화의 화면들은 하나 하나 긴장과 박진감이 있었다.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것은 늘 화면 바깥과 관계가 있고 그 때문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긴장하면서 화면 안을 주시한다. 화면 안과 밖의 관계를 맺어주는 화면의 호흡과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우리는 등장인물이 바라보는 것을 잠시 후 따라서 보게 된다. 화면이 바뀌면 인물이 보던 것이 보인다. 또는 상대편 인물이 보인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작업인가. 그게 아니라는 걸 코엔 형제의 영화를 보면 알게 된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 중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알폰소 쿠아론의 영화는 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한 화면이 장면이 되는 롱테이크 스타일로 멕시코 중산층 대가족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여주인공의 생활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카메라가 보여주는 걸 우리가 기대하고 따라가게 되는 극도로 예민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고정화면에서 서서히 카메라가 움직이면 우리는 그 움직임의 질에 반응한다. 아, 영화는 활동사진이었구나, 카메라가 이렇게 움직이는구나, 인물도 저렇게 움직이는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특정 공간 안의 상황에 집중하게 된다. 그 와중에 개인의 삶은 개별적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당대의 역사적 맥락에 늘 접속되며 주인공 여자 사람의 상처가 스피커에 나오는 둔중한 베이스 음처럼 확산되고 공명하는 것이 경이적이었다. 극장이 아닌 티브이로 영화다운 영화를 보고 오히려 영화다운 호흡을 느끼게 되는 오늘의 이 현실이 아이러니하다.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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